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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위한 기다림*최태선목사

작성자(一麥.)|작성시간23.06.25|조회수287 목록 댓글 5

☞예수님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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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위한 기다림

요한복음 7:1-13 / 최태선 목사


➤“1. 이 일들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인들의 거주지에서 다니려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유대인들이 그분을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더라. 2. 이제 유대인들의 장막절이 가까이 왔으므로 3. 그분의 형제들이 그분께 이르되, 여기를 떠나 유대로 들어가 당신이 행하는 일을 당신의 제자들도 보게 하소서. 4. 은밀히 일을 행하면서 드러나게 알려지기를 스스로 바라는 사람은 없나이다. 당신이 이것들을 행하시거든 당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분의 형제들도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6.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는 미워하지 못하나 나는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에 대해 증언하되 곧 세상의 행위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라. 8. 너희는 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충만히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명절을 지키러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9. 그들에게 이 말씀들을 하시고 그분께서 가만히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 ¶ 그러나 그분께서도 자기 형제들이 올라간 뒤에 그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시되 드러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은밀히 하시니라. 11. 그때에 유대인들이 그 명절에 그분을 찾으며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더라. 12. 또 그분에 대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수군거림이 많았으니 이는 어떤 이들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아니라. 그가 사람들을 속인다, 하였기 때문이라.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아무도 그분에 대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아니하더라.”(요 7:1-13 KJV)


⚑기다림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주저 없이 기다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인간의 훌륭한 업적들이 기다림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려면 기다림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낚시꾼이 허울 좋은 미끼로 물고기를 유혹하듯 만병통치약 같은 새로운 기도 기법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무익하다. 그리스도처럼 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한다. 이것 말고는 다른 대책이 없다. 그러므로 기도는 낚시와 마찬가지로 기다림에 관한 것이다. 기도는 기다림의 시이다. 기도는 기다리면, "현재의 상황이 변한다!"라고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들의 언어이다.’(마크 부케넌)


 기다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폭풍 속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이 있는데, 스탈린 정권하에 감옥 생활을 했던 러시아 여교사의 이야기다. 그녀는 13년 동안(그중 6년간은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간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수감 기간이 아니라 체포되기 전의 3주였다고 말했다. 알 수 없는 것을 기다리며 느꼈던 불확실과 불안감이 그녀와 가족들에겐 더 힘든 고문이었다고 말했다. “불가피한 재앙을 기다리는 것이 재앙 그 자체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진다. 너무 길게 느껴져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느끼게 되는 임계점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통의 시간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고통 속에서,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고, 마침내 주님의 때가 임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다림


 요한복음 7장1절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은 5장에서 언급된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벳세다 저수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신 것과 하나님을 가리켜 내 아버지라고 한 것을 문제 삼았을 뿐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분개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이 죽이려 해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수 없었고, 6개월 동안 갈릴리 지방을 두루 다니셨다. 당시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은 행정 자치권이 달랐다. 예루살렘은 로마로부터 파견된 총독이 다스리던 지역이었고, 갈릴리 지역은 분봉 왕 헤롯의 관할 하에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 머물고 계시는 동안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죽이기가 어려웠다.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용기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해가 오면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본문말씀의 예수님을 보아도 그렇다. 자신의 사명,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시는 주님께서 죽는 것이 두려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죽음의 때가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 10:23)


 어떤 한 가지 태도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융통성이 없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해야 한다. 때로는 장렬하게 순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똑같이 용감하게 도망을 칠 수도 있다. 거기에 기다림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재물을 포기할 수 있다. 반대로 재물을 소유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을 내어드릴 수 있느냐? 관건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기 위해 기다림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에 나타내소서(유혹)


 예수님이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자 예수님의 형제들이 찾아왔다.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들이 찾아온 목적은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숨어 지내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도대체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드러내 놓고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제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종교는 성업 중이었고, 3대 절기의 하나인 초막절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나가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라는 거였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처박혀 있는 예수가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비판하지 않는 신실한 신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7. 세상이 너희는 미워하지 못하나 나는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에 대해 증언하되 곧 세상의 행위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참 아픈 말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처럼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악하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인들의 모습과 똑같다. 사실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교회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을 증거로 제시하며 자신들이 교회를 존중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그들이 교회 공동체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한 관심도 없을 만큼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시 ➤“8 너희는 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충만히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명절을 지키러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 사건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다. 어쨌든 가까운 사람들의 몰이해는 시리고 아픈 상처이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형제들 스스로 예수님이 자신들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만일 예수님을 믿고, 이해하고 잘 돌보아 주려고 노력했더라면 예수님의 진로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더라면 예수님께서도 ➤“48. 그분께서 자기에게 말한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냐?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자기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니라.”(마12:48-50)라고 쉽게 반문하시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은 만일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후에 제자들에게 한 고별사에서도 그리고 마지막 대제사장적 기도라고 불리는 부분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그 말씀을 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이 너희를 미워하기 전에 나를 미워한 줄 너희가 아느니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였으리라.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15:18-19).


이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숙명(宿命)이다.


 만일 우리들이 사회로부터 별나다는 말을 듣지 않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가 세상에 속했기 때문이며,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함을 입은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님의 형제들이 한 말, “세상에 나타내소서!”는 영원토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유혹이 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는 것은 스스로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빛이기 때문에 어둠의 세상에서 빛나는 것이다. 스스로를 나타내려는 시도는 세상의 방식이지, 결코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니다.


가장 아픈 가까운 사람들의 몰이해(沒理解) (상처)


 장엄한 산기슭에 사는 사람은 그 산의 장엄함을 잘 모른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산 형제들이 그러했다. 공관복음서에서도 이런 형제들의 계속되는 불신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의 공생애의 시작부터 예수님을 방해했다. ➤“21. 그분의 친지들이 그것을 듣고 그분을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제정신이 아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막 3:21)


 공생애 기간 중 딱 한 번 고향을 방문했을 때에는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말들을 듣고 진노가 가득하여 29. 일어나서 그분을 도시 밖으로 밀어낸 뒤 자기들의 도시가 세워진 산의 낭떠러지까지 그분을 끌고 가서 그분을 거꾸로 떨어뜨리려 하되 30. 그분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 길로 가시니라.”(눅 4:28-30) 그분은 거의 죽을 뻔했다.


 마태복음에서는 친족들의 배척을 받고 ➤“54. 자기 고향으로 들어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그들을 가르치시니 그들이 깜짝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 지혜와 이런 능력 있는 일들을 얻었느냐? 55.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 하지 아니하느냐? 그의 동생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라 하지 아니하느냐? 56. 그의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데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 모든 것을 얻었느냐? 하고 57.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대언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받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거기서는 능력 있는 일들을 많이 행하지 아니하시니라.”(마 13:54-58)라고 했다.


 사실 복음을 살게 되면 훼방꾼이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도 가족만큼은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현실은 그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수님도 바로 그런 가족들의 몰이해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족과 친척들의 저항과 방해에 맞서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대로 하거나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당신의 뜻을 꺾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다만 참고 기다리셨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침내 변화되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20명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그들이 있었다. ➤“13. 그들이 들어가서 다락방으로 올라 가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 시몬과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다 거기 머물더라. 14.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 1:14).


결국 신앙이란 기다림이다.


 ➤“17. ¶ 비록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올리브나무에 수고의 열매가 없고 밭이 먹을 것을 내지 아니하며 우리에서 양 떼가 끊어지고 외양간에 소 떼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전히 {창조주}를 기뻐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리로다. 19. {창조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니 그분께서 나의 발을 암사슴의 발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들에서 다니게 하시로다. 이 노래는 내 현악기들에 맞추어 우두머리 노래하는 자에게 준 것이니라.”(하박국 3:17-19)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갈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픔을 참는 것도, 그리고 갈라지고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도 모두 기다림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힘든 이유이다. 유혹과 아픔을 이기고 그 기다림을 잘 참고 견디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잠잠하며, 입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는 진정한 성도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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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23.06.25 설교 감사합니다.
  • 작성자유토피아3 | 작성시간 23.06.26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3.06.26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성하 | 작성시간 23.07.01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서울장애인교회 | 작성시간 23.07.0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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