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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세계*차명권 목사

작성자(一麥.)|작성시간23.06.28|조회수295 목록 댓글 5

☞예수님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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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세계

히브리서 11장11절 / 차명권 목사


➤“11. 믿음을 통해 사라 자신도 나이가 지났을 때에 씨를 수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히11:11 KJV)


 이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모든 호의와 기쁨이 수천만 명의 사람 사이를 뚫고 여러분을 향해 돌진해오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 군중 사이에 12년 동안 피 흘리는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살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이 질병에 든 여인은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올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있다가 예수님 뒤에서 그분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모세에게는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낮고 낮은 여인을 돌아보시고, 그의 영광의 얼굴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치유가 예수님에게서 여인에게로 흘렀습니다. 여인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5장32-34절입니다. “32. 그분께서는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거늘 33. 그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서 떨며 나아와 그분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그분께 아뢰니라. 34. 그분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온전하게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역병에서 놓여 온전 할지어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을 기뻐하셨고, 예수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기쁨과 호의와 생명을 끌어당겼습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헬라어로는 피스티스(Έμβολος). 믿음이 있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는 슬로건으로 많은 일들을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의 근원은 믿음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6절입니다. “6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시고, 믿음에 끌리십니다. 우리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을 주셔 놓고, 우리 안에 있는 그 믿음을 또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로 삼아 하나님의 모든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믿으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성취하셨다고 하실 때,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구약에서는 믿음이 언급된 곳이 적습니다. 많은 경우에 구약에서는 믿음이 부정적인 측면에서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구약의 마지막 쪽인 하박국에서 믿음의 시대인 신약을 찬란하게 밝히는 말씀 구절이 등장입니다. 바울이 신약의 로마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은혜의 복음을 설명했고, 이 구절을 중심으로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가톨릭에 저항하여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뤄졌습니다.


 ➤로마서 1장17절을 보겠습니다. 하박국 2장4절을 바울이 인용한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죄인 됨을 밝히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입은 의인이 된다는 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때 살리라, 곧 생명이 나타납니다. 그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 없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되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의를 끕니다. 믿음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변화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마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믿음이 아닌 불신을 가진다면, 그것은 마귀를 옳다고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8절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호수에서 자기 몫을 받으리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마지막 때에 완전한 심판인 둘째 봇물에 들어가게 되는 그룹들이 있는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뒤에 살인자, 음행자, 우상숭배자, 거짓말하는 자 둥이 나오면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에 처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보다 선행적인 항목이 뭡니까?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믿지 않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살인을 큰 죄라고 생각하지만, 계시록에는 두려워하는 것, 믿지 않는 것이 더 큰 항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만 해도 살인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밝히셨기에,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모두 둘째 불 못 행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움이 아닌 평강을 선포하심으로 두려움이라는 가장 첫 항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 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심판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26절입니다. “26. ¶ 여드레가 지나서 그분의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더라. 그때에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그 뒤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두 손을 보며 또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니 28.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하매 2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도마야,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도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고 흔들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흐름입니다. 살인하고 행악하는 것이 곧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은혜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둘째, 은혜에서 멀어지고, 안식에서 멀어지게 하여,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셋째, 믿음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넷째, 그 결과가 살인과 기타 등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늘 은혜의 말씀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안식에서 멀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영혼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차곡차곡 쌓아두지 마십시오. 큰 파도가 되어 되돌아옵니다.


 두려움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머물고, 안식에 머물고, 믿음 아래 거하는 것을 통해 주시는 평강으로 떠나보내십시오. 씻어내고, 자유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이렇게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두려움을 행위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영역으로 돌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모든 정죄함이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의 선함이 아닌 주님의 선하심을 더욱 믿을수록 우리는 더욱 안식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안식입니다. 성막의 뜰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늘 소란하고 시끄러웠지만, 성막의 가장 안쪽인 지성소에는 완벽한 안식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고요함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성막이라고 치면, 영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그 안에 지성소의 완전한 안식과 평화가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영광과 평화와 안식이 있었습니다. 고역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식이었습니다. 성경의 명령입니다. 너희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지성소의 평화와 안식과 쉼에서 출발하는 매순간, 인생이 되도록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언약적인 위치는 지성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는 자인데, 그 말이 곧 우리가 지성소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지성소의 자리를 즐거워합니다. 매일 기분 따라 바뀌는 감정과 감각, 혹은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주시는 믿음으로 우리가 지성소에 있음을 즐거워합니다. 나는 도착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가 값을 대신 지불해줬기 때문에 어떤 집을 사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다른 이가 불법점유를 하고 있다고 합시다. 이럴 때, 여러분은 그 집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 집을 have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얻어서 점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즉 그 집을 possess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have 와 possess가 다른 것입니다. 그 집을 실제로 얻어 점유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박사학위가 필요하다거나 이런저런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지불로 인한 소유권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 불법점유를 선포하고 여러분이 실제로 possess 점유하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바댜 1장 17-18절입니다. “17. ¶ 그러나 시온 산 위에는 구출이 있겠고 거룩함이 있을 것이요, 야곱의 집은 자기 소유를 소유하리라. 18. 야곱의 집은 불이 되고 요셉의 집은 불꽃이 되며 에서의 집은 지푸라기가 되리라. 그들이 저들을 불사르고 삼킬 터인즉 에서의 집에 남은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창조주}가 그것을 말하였느니라.”


 여기서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라고 되어 있는데, 누리다가 (απολαμβάνω)입니다. 소유권에 따른 점유를 실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할 부분은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보통 표현하는데, 여기서는 야곱 족속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을 한 후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이후 야곱이라고 쓸 때도 있고, 이스라엘이라고 쓸 때도 있는데, 야곱은 야곱의 육적인 측면을 나타내고, 이스라엘은 성취된 언약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굳이 여기서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 족속이 자기 기업을 possess 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약속들을 실제 점유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야곱이라는 육적 상태여도, 즉 성장 중에 있는 상태여도, 언약적으로 소유권이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믿으면, 점유할 수 있다,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실제로 점유, 소유 하기 위해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주셨음을, 즉 have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 1-4절입니다. “1. 이제 {주}의 종 모세가 죽은 뒤에 {주}께서 모세의 섬기는 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이 온 백성과 함께 일어나 이 요르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것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을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나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을 향한 대해까지 너희의 지경이 되리라.”


 3절에서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 고 하십니다. 과거시제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 언약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 기업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세요. 이미 주셨음을 믿고 선포하고, 누리고 즐거워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여러분 안에 예를 들면 평화가 주어졌습니다. 노력해서 평안과 평화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 평화를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공격적인 말을 해도 욕으로 받아치거나 상한 말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이미 와 있는 평화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싹으로 나있는 평화에 물을 주는 것입니다. 안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왔기에 그 평화가 거대한 나무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너희에게 모두 이미 주었다는 그 선하심에 믿음을 두세요. 여러분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빛의 자녀로 삼으셨음을 믿으세요. 강한 용사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믿으세요.


자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빛의 자녀로 삼으셨다.


➤신명기 6장 10-15절입니다. “10. {창조주} 네 [하나님]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데리고 들어가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좋은 도시들을 네게 주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집 곧 모든 좋은 물건이 가득한 집을 주시고 파서 만든 우물 곧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주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올리브나무를 주사 네가 먹고 배부르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이집트 땅 속박의 집에서 데리고 나오신 {창조주}를 잊지 말고 13. {창조주}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할지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너희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15. (너희 가운데 계신 {창조주} 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창조주} 네 [하나님]의 분노가 너를 향해 타올라 너를 지면에서 끊어 멸하실까 염려하노라.”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뤄질 안식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때를 사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신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너희가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을 얻게 하신다. 너희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될 것이다. 너희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와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여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이 모두가 의미하는 바는 누군가의 대신 일함으로 성취됨을 말합니다. 수고하고 경작하여 땀을 흘려야 배를 채울 수 있는 저주를 받은 아담이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율법을 은혜로 바꾸셨습니다. 성도들은 아무 공로도 없이,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파지도 않고 건축하지도 않고 심지도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저 은혜로 믿음으로 소유하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안식은 그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러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은 여러분이 바르게 행위를 하여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그것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의 일하심에 기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모든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고, 여러분과 함께 부활하심으로 여러분을 의롭게 하셨다는 이 진리를 바르게 믿을 때, 여러분은 바르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반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바르게 살아서, 그것으로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바르게 살아서 이후에 여러분이 바르게 믿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르게 믿으면 바르게 살게 됩니다. 바르게 믿는 것을 통해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강력하게 역사하기기 때문입니다. 잘못 사는 때가 있을지라도 바르게 믿고 있으면 돌이킬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도 바르게 믿고 있는 것을 잠시 잊었었지만, 그 바르게 믿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종들도 풍족하게 먹는다는 아버지에 대한 바른 믿음을 떠올리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견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의 복음을 계속 들으면 이 믿음이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좋은 견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라가 얻은 힘의 원천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1절입니다. “11 믿음을 통해 사라 자신도 나이가 지났을 때에 씨를 수태하는 힘을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한 분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라.”


 사라는 잉태 불능이었지만, 믿음을 통해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힘은 헬라어로 두나미스(Ντουναμίς)입니다. 다이나마이트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폭발적인 힘과 능력을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라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견해와 생각입니다. 이 믿음을 가질수록 성령을 통해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근원적인 두려움은 유기의 두려움입니다.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일종의 죽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의지하다가 탯줄을 끊고 어머니와 분리됩니다. 그러면서 그 첫 분리가 유기의 두려움이라는 기억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자라면서 사람은 사랑을 구하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삽니다.


  이 근원적인 유기의 두려움을 사람에게서 근원적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땅에서의 출산이 지닌 한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지시고 버림당하심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땅으로부터 출산했던 우리를 유기의 방식이 아닌 부활의 연합의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도인 여러분은 땅에서 난자가 아니라, 이제 하늘로부터 난자라고 요한복음 3장6-7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요 3:6-7)


 그리고 사람이 줄 수 없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며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영원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더욱 소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사라와 같이 죽은 태에서 생명이 잉태되는 것과 같은 능력을 부어주실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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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23.06.28 설교 감사합니다.
  • 작성자유토피아3 | 작성시간 23.06.29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3.06.29 💖긍정적인 사람의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작성자성하 | 작성시간 23.07.05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서울장애인교회 | 작성시간 23.07.0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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