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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하시니
마가복음 4장35-41절/양의섭 목사
➤“35. 바로 그 날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 36. 그들이 무리를 보내고 그분을 배 안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작은 배들도 그분과 함께하더라. 37. 큰 폭풍이 일어나고 파도가 배 안에 들이쳐서 이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으되 38. 그분께서는 배 뒤쪽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라. 그들이 그분을 깨우며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매 39. 그분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신즉 바람이 그치고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40.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두려워하느냐? 어찌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막4:35-41 KJV)
1. 하나님의 위로
어느 부부, 너무도 자주 싸웠습니다. 결혼 이후 늘 싸웠습니다. 그렇게 싸우다, 싸우다 지쳐서 부인이 말합니다. “이렇게 싸우며 살 바에야 이혼을 합시다.” 그러자 부인이 무슨 말을 해도 기분 나빠 반대부터 하던 남편이 그랬습니다. “이혼하려면 뭐 하러 싸워? 살아보려니까 싸우는 거지.” 말을 이렇게 하고 보니 그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싸우는 거지 이혼하려면 뭐 때문에 싸우겠습니까?
그래서 한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상대가 기분 나쁠 때에는 무조건 비위를 맞춰주기로 서로 약속했습니다. 기분 나쁘다는 표로 남편은 모자를 비뚤어지게 쓰고, 아내는 치마를 반대로 입기로 했습니다. 그럴 때는 서로 노력하여 기분 나쁜 상대를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주기로 해서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싸울 일이 사라졌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직장에서 기분이 몹시 상하여 모자를 비뚤어지게 쓰고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도 치마를 반대로 입고 울고 있습니다. 둘이 다 기분 나쁜 경우에 대해선 어떻게 하자고 한 약속이 없었던지라 서로 상대의 위로를 기다리며 주춤하다 부부는 자기도 힘들고 아프지만 그래도 상대를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순간, 서로 와락 껴안고 울었답니다. 위로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가,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에게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2. 잔잔하여 지더라.
오늘 본문에는 놀라운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고, 파도를 꾸짖으시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9. 그분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신즉 바람이 그치고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기록된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친 제자는 아니지만, 늘 예수님 주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는 그녀의 집에 자주 머무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즉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된 곳도 바로 이 마가의 집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난 기도 모임도 바로 이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직접 뵙고, 때로는 말씀도 들었고, 종종 예수님의 친 제자들로부터 집에서 직접 들은 것들을 토대로 하여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입니다. 게다가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는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당시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산 증인들이 즐비하던 시절에 쓰인 것으로 마가복음의 기록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만약 잘못 썼다면 살아있는 증인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겁니다.
왜 씨뿌리는 비유 뒤에 이런 이적들이 뒤 따라 기록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본문 앞뒤의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버렸고, 돌밭에 떨어져 자라긴 자라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곧 타버렸고, 가시떨기 속에 떨어져 그늘 속에, 가시 속에서 자라지 못하고 죽고 말았고, 어떤 것은 옥토에 떨어져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는 비유가 나오며, 이 뒤를 이어서 몇 가지 기적이 계속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풍랑을 재우신 예수님
5장에 들어서서 거라사의 군대 마귀 들린 사람을 치료하는 장면, 회당 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예수님, 그리고 12년 동안 혈루 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을 치료하신 일 등 예수님의 이적 행함이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 기적들, 시시껄렁하게 받아들이면 시시껄렁할 수밖에 없으나 전적인 믿음으로 사실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옥토가 되어 받아들이면 믿음의 역사, 기적의 복이 자신에게도 30배, 60배, 100배로 이루어집니다. 아멘! 남들에게 다 일어나는 기적의 복이 왜 나에겐 안 일어나겠습니까? 옥토의 마음 밭으로 오늘 말씀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오늘 본문에 주목합시다.
예수님은 비유로 많은 것을 가르치시고 피곤하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시고 장소를 옮기는 동안 배 안에서 잠이 드셨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지금도 그렇지만 지형적으로 돌풍(突風)이, 광풍(狂風)이 자주 일어나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예측했던 것이 아니고 평온하던 호수에 갑자기 미친 듯이 바람이 불어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는 호수입니다. 마치 우리들의 인생살이와 비슷한 곳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재난들이 미친 듯이 일어나는 우리네 삶과 비슷한 곳입니다.
보험회사들이 잘된답니다. 왜 보험회사가 잘될까요? 인생에 광풍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그것이 무서운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무너뜨리고, 뒤흔드는 재난이 날아듭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병으로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난폭한 차에 불구가 되고, 졸지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사업이 휘청거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삶의 광풍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갈릴리 호수이며, 우리들의 생의 현장입니다.
물론 이런 광풍이 일어날 때, 우리들의 힘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명예와 재물과 주변의 인맥으로 해결할 수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런 광풍이 자기의 전문 분야, 직업 분야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면 가능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광풍이 일어나자 모두들 불안해하는데 내심 기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굴까요? 어부 출신 제자들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 이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들입니다. 광풍이 일자 모두들 두려움에 빠져드는데,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능력을 보일 때가 왔음을 알고 내심 기뻐하며 광풍 속에 흔들리는 배를 안정시키려고 열심히 노를 젓고, 자신의 일생을 통해 얻은 재주를 다 부려 힘을 썼습니다. “아니야,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날 봐, 이건 내 전문 분야야. 내가 프로야, 잔소리 그만! 날 뭘로 보는 거야? 여긴 내 집 안방처럼 내가 잘 알아. 나에게 맡겨!”
그러나 현실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쯤이야” 했으나 갈수록 힘이 들며, 한계에 부딪히고, 상황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하여 광풍을 이겨나가려고 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절망하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잘 살려고, 행복하게 살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자기 가정 지키려고 얼마나 가장들이 고생합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40대 가장들의 쓰러짐이 세계 제일이랍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자신의 힘, 능력으론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자들은 비로소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망이 그분에게 집중되었습니다. 누구? 예수 그리스도! 이미 자신들과 함께하시며, 그 광풍 속에서도 편안히 잠들고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문제에 부딪혀 스스로 해결해 보겠노라고 예수님은 아예 잊어버리고 생각지도 않고 있다가 절망하고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이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4.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이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40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두려워하느냐? 어찌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죽어도 주님을 믿어야하는데? 좀 억울하지 않습니까? 아니 풍랑이 일어나 배가 쪼개질 정도까지 되었다는데 어찌 안 무서울 수 있습니까? 삶의 터전이 흔들리는데, 이리 솟았다 저리 솟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무서워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11절과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제자들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음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은 특별히 하늘의 비밀을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택함 받고 하늘의 비밀을 가르침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향하는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믿음을 행사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들에게 향하는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성령님을 알고, 교회를 알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알고 한 것들이 그저 평범하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을 안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오해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아무리 알려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알려고 애를 쓰는데도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왜 그런가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이 비밀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 하는 것, 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온 것,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바보짓입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왜요? 이 무더운 날에 이 무슨 사서 고생인가 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것이 사서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비밀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고와 예배가 괜한 사치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고, 저들은 비밀을 모르기에 그런 것뿐입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래서 그 믿음이 있는 사람이 세상의 광풍에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것, 예수님의 한탄과 책망을 받을만합니다.
우리에겐 모두 세상을 이길 믿음이 있습니다! ➤요한1서 5장4-6절 “4.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 6.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믿습니까? 그러면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세요. 세상의 광풍을 이기세요. 내 평안을 위협하는 돌풍을 잠재우세요.
경기도 연천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일입니다. 연천 지역에 큰 물난리로 연일 장대비가 억수로 퍼부어 대던 날 밤이었습니다. 그날도 고 권사님은 평소대로 금요철야 기도를 드리기 위해 홀로 예배당에 가셨답니다. 교회는 오래되었고, 건물은 낡았습니다. 폭우는 사정없이 함석지붕을 요란하게 두들겨 패는데 심히 걱정이 되더랍니다. 그러나 고 권사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교회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데, 조금 있으려니 바닥이 축축해지더랍니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갑자기 뿌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뜬다 싶어 한쪽 눈을 뜨고 보니 송판으로 된 예배당 마룻바닥이 통째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고 권사님은 이름답게 고집이 있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기도를 계속 했답니다. 비도 계속 세차게 퍼부어 댔습니다. 그러면서 실내의 수위는 계속 상승하여 마룻바닥도 함께 상승하여 머리가 천장에 닿게 되었음에도, 권사님은 허리를 굽히고 기도를 더욱 크게 하셨답니다.
그런데 비가 멈출지 모르고 계속 쏟아지는 바람에 물이 자꾸 자꾸 불어나 엎드린 권사님의 뒤통수가 천장에 눌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엎드러진 권사님의 엉덩이, 머리 뒤통수, 양 어깨가 천장에 닿으며 압박해왔습니다. ‘아, 이러다가 일 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권사님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그만!” 그 순간, 거짓말처럼 비가 뚝 멎더랍니다. 비가 멎으니 물이 내려가고 서서히 마룻바닥이 함께 내려가더랍니다. 우연이라고요? 예수님의 꾸짖음과 책망을 받고 즉시 호수가 잔잔해지자 제자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
5.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요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미 내 안에, 내 삶의 한 가운데 들어와 계십니다. 이 예수님을 깨우세요. 여전히 예수님을 주무시도록 하는 사람, 사는 게 퍽이나 힘들 겁니다. 내 능력과 권세,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깨우세요. 삶의 현장에서 당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세요.
예수님, 어디 계세요? 이미 내 안에 계심에도, 그럼에도 내가 예수님을 의식도 못하고 산다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게 하세요. 예수님이 내 가정에 목자가 되게 하세요. 예수님이 내 사업에 경영주가 되게 하세요. 기적의 역사, 놀라운 복의 역사와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고 붙듭시다.
어떻게? 기도의 골방을 만듭시다. 시간의 골방을 만듭시다. 새벽기도제단을 쌓읍시다. 집에서, 직장에서 기도의 시간을 정하고 기도합시다! 찬송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합시다! 예수님께 부르세요. 복잡하고도 어려운 여러분의 삶의 현장을 향해 평강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적의 축복이, 그것이 질병이든 사업이든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풍성히 맺힐 줄 믿습니다. 꼭 그리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