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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이야기(36)*에스더Ⅱ
자료 / 박신배 교수
➤“1. 이제 십이월 곧 아달 월 즉 바로 그 달의 십삼일이 되어 왕의 명령과 그의 칙령을 집행할 때가 가까이 이르니라. 이 날에 유대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지배하려고 바랐으나 (일이 거꾸로 되어 유대인들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던 자들을 지배하였더라.) 2. 유대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모든 지방에서 두루 자기들의 도시들에 함께 모여 자기들을 해치려고 하는 자들에게 손을 대려 하였더라. 아무도 능히 그들을 막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두려움이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더라. 3. 지방들의 모든 치리자들과 부관들과 총독들과 왕의 직무 수행자들이 유대인들을 도왔으니 이는 모르드개의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더라. 4. 모르드개가 왕의 집에서 창대하게 되고 그의 명성이 모든 지방에 두루 퍼졌으니 이는 이 사람 모르드개가 점점 더 창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더라. 5. 이와 같이 유대인들이 칼을 휘둘러 자기들의 모든 원수를 쳐서 살육하고 멸하였으며 자기들을 미워하던 자들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하였더라. 6. 또 수산 궁에서 유대인들이 오백 명을 죽여 멸하였고 7.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8. 보라다와 아달랴와 아리다다와 9.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대인들의 원수인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노략물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에9:1-10 KJV)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에스더서
➤“4. 모르드개가 왕의 집에서 창대하게 되고 그의 명성이 모든 지방에 두루 퍼졌으니 이는 이 사람 모르드개가 점점 더 창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더라.”(에9:4).
에스더서는 모르드개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게 되고 에스더서 10장 결론부에는 모르드개의 영예로운 상태를 언급함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2. 그의 능력과 권력에 따른 모든 행적과 왕이 모르드개를 위대한 자리로 승진시키고 그의 위대함을 밝히 드러낸 일이 메대와 페르시아 왕들의 연대기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 3. 유대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대인들 가운데 위대하게 되어 자기의 형제들 무리에게 인정을 받으며 자기 백성의 번영을 추구하고 자기의 모든 씨에게 화평의 말을 하였더라.”(에10:2-3).
모르드개는 이집트의 제국에서 이인자(二人者)가 된, 창세기의 요셉과 같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의 다음이 되었던 것을 본다. 이는 요셉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족장으로서 에브라임 지파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면 모르드개는 아각 족을 무찌르는 사울처럼, 베냐민 지파의 리더십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포로기에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사울의 왕족으로서 못다 한 이스라엘 통일의 한(恨)을 포로지(地)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는 대업(大業)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의 화합과 일치, 통일의 리더십을 보여주려 한다고 하겠다(에2:5).
모르드개는 하만이 가지고 있던 아하수에로 왕의 인장을 받게 되었다. 하만의 가산이 에스더에게 주어졌고 에스더는 다시 왕에게 유대인을 대적하는 칙령을 말하며(에3:13), 그 조서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6 내가 어찌 내 백성에게 임할 화를 차마 볼 수 있으리까? 또 내 친족들이 멸망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있으리까? 하니라.”(에8:6).
이 이야기가 단순히 에스더의 바램이 성취되는 이야기라고 하면 위험이 벗어낫고 고통당하는 것이 보상을 받게 되었다고 끝나면 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피가 뒤대는 사건이 벌어진다. 왜 핍박 받는 자가 반대로 핍박하는 자가 되는가? 왕이 발표한 법은 단순히 취소될 수 없기 때문에(에8:8; 1:19; 단6:8이하) 유대인들은 그들의 적을 없애고 핍박자들을 살육하도록 허용을 받았다.
➤“8 너희는 또한 왕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을 위해 너희 마음대로 문서를 쓰고 왕의 반지로 그것을 날인할지어다. 왕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왕의 반지로 날인한 문서는 아무도 취소할 수 없느니라. 하니라.”(에8:8).
유대인들은 아달월 13일에 원수를 갚았고 그 다음 날에도 또 살육을 행하였다.(에9:1-19). 에스더서가 유다민족의 원수 갚는 이야기라고 하면 성경으로서 의미가 없다. 여기에는 구속사의 큰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보배와 같은 책이다. 에스더서의 은폐 주제(창조주의 이름, 유다민족 은폐, 십자가 나무)가 있는 구속사의 책인 것이다.
세 부분 에필로그는 이러한 사건으로 결론을 맺는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적들로부터 받은 슬픔의 날들, 두 날에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다(에9:22; 8:15이하).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권위(에9:20이하, 29이하)에 따라 부림절이 매 시대에 기념되게 되었다. 결론은 다시 모르드개의 명예를 환기시킨다. ➤“3. 유대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대인들 가운데 위대하게 되어 자기의 형제들 무리에게 인정을 받으며 자기 백성의 번영을 추구하고 자기의 모든 씨에게 화평의 말을 하였더라.”(에10:3).
이 에스더서 이야기는 페르시야 제국의 배경에서 많이 거론되고 페르시아 사람의 이름이 많이 언급된다(에1:10,14;9:7이하). 그러나 역사적 배경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문서가 발견되지 않는다. 사건의 과정이나 유대인들이 대적에게서 승리하였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에스더서는 역사적 소설로 볼 수 있다.(쉬미트 שמידט).
그러나 일반적 상황은 정말로 역사적이며 유대교는 이 시대에 전 세계로 퍼졌다. 이방인적 성격(에3:8, 우상숭배거부) 때문에 유대인은 거부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게 되었다(단3장 이하). 유대인들이 부자라는 소문이 관련이 있는지는 모른다(에3:9, 13). 어쨌든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을 은폐하는 것이 더 나았던 것 같다(에2:10).
이러한 상황은 주전 3세기, 2세기의 헬라 시대에 실제 하였고, 이 이야기는 동부 디아스포라 지역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에스더서의 현재 이야기는 부림절의 유래(由來)를 보여주고 부림절의 근거를 보여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문의 통일성에 대한 의심이 있는데, 그것은 유월절의 다른 준수 날짜 때문이다.(에9:22; 9:18). 부림이라는 말은 ‘제비(lot)'뽑기라는 의미이다.
에스더(에5:1; 7:1)와 모르드개(에3:1;6:1)의 두 개의 전승은 각기 서로 엮어져서(에2:5,19)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구두 전승이 문서로 쓰여 졌고 나중에 부림절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에스더서의 영적인 기록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기념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구약 부림절 축제를 기리기 위해 편집한 서기관들이 알았을까?
이 부림절 이야기는 바로 원수의 복수, 보복의 부림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 기념으로 확대되고 있는 책인 것이다. 또 부활의 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초대 교회의 역사가 담긴 책으로 요한복음과 상통하고 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예수 그리스도)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5:39).
➤“63.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2.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절대 신앙, 에스더
➤“22. 이 날들을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원수들에게서 벗어나 안식을 얻은 날들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곡하는 일이 변하여 좋은 날이 된 달로 지키게 하고 또 그들이 그 날들을 잔치하고 기뻐하는 날로 삼으며 또 서로에게 음식을 보내고 가난한 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로 삼게 하니라.”(에9:22).
에스더서가 정경에 들어가는 배경이 무얼까? 에스더서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중요인물로서 베냐민의 후손들이며, 사울의 전통이 들어간다. 이는 주후 90년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 공동체들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서 회당을 중심으로 생존을 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이스라엘 나라와 다윗 왕조, 예루살렘 성전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이냐는 심각한 질문을 하며, 다윗(유다지파)과 사울 전통의 통합, 이스라엘 지파의 연합을 꾀하며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였을 것이다.
에스더서의 민족주의와 국수(國粹)주의를 강조하고 있어서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이 빠져 있고, 여성 에스더의 이방적인 요소가 많고 외래적인 것의 타협성과 페르시아 제국의 이질적 문화는 정경에 들어가기에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이스라엘 전통의 통합과 일치를 위해 에스더서가 생존의 신학에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필요성으로 인해 정경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에스더서는 축제를 설명하는 기적적 이야기로서 부림절 축제에서 이미 실제 이야기가 되었고 아마도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에게 온 이야기이거나 메소포타미아 세계에서 일종의 신년 축제의의 기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에스더서는 에스더의 이름이 페르시아 말로 ‘별’(이쉬타르)로 설명되고, 모르드개는 ‘마르둑(바빌론의 주신)의 경배자’라는 뜻이 있지 않는가? 신년 축일의 운명을 읽는 것으로 제비뽑기(lots)의 의미가 있고, 부림이라는 말은 “나누기”(sharing)의 의미로서 설명되고 선물을 서로 나누어 주는 것(G. Gerleman)을 언급된다.
어떠하든 축제는 분명히 세속적인 성격이 있고 기쁨이 있고 친구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다.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십삼 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그러므로 촌촌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 고을에 거하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 일로 경절을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에 9:18-19).
오늘날 추수감사절, 성탄절, 망년회, 신년 맞이로 이어지는 서양 연휴(Holliday) 풍습과 시기적으로 비슷한 면이 있다. 이 부림절은 유다민족이 금식하므로 일이 잘 된 것을 기념한다. “정한 기한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명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을 인하여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에9:31). 구약 성경의 추수 축제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역사(레23:42)와 관련해서 절기를 지키듯이 부림절은 에스더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동기가 주어진다.
부림절이 후기에 유대교의 축제로 지켜지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민족적 생존 의지가 강조되고 중요시되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에스더는 유대교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전통의 파괴, 구약 정경의 신학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신학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는 신약 성경과 연계되어 고대 이스라엘 종교와 유대교, 신구약 중간시대의 유대교로의 변천과 신약 성경의 복음을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시기적 연결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부림절의 하만의 나무와 빅단과 데레스의 나무에 달린 사건은 예수 십자가의 전조를 보이며 유다 민족의 대적자로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대적자(모반 발견을 통한 왕의 공로자)로서 처형되는 희생자로 나타난다. 구약의 원수 보복 사상에 의하면 그들은 진멸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구원의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진다(요3:16). 앞서서 언급했던 부림절과 부활절의 연계성은 신약의 구속사로 이어지는 놀라운 섭리인 것이다.
초기 유대교나 특히 기독교에서는 이 에스더서가 정경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의심이 많이 제기 되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정말로 그들의 유대교에 매달려서 모범적 신앙을 보이며 위험할 때도 굳게 믿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에스더서가 유대교의 우월성을 너무나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13 자기에게 임한 모든 일을 자기 아내 세레스와 자기의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때에 그에게 속한 지혜로운 자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가 그에게 이르되, 모르드개가 유대인들의 씨라면 당신이 그 앞에서 쓰러지기 시작하였으니 당신이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쓰러지리다. 하니라.”(에6:13).
유대교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민족의 우수성을 하만의 부인이 언급하며 하만이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유다 민족이 멸망당하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 이 구원이 적으로부터 승리를 가짐으로서 가능해진다. 죽임을 당하려는 상황이 역전이 되어 자신들의 손으로 보복하는 것은 분명히 핍박받아오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견지에서 그러한 복수는 잘못된 것이며 바람직하지 못하다. 요나서에서 아시리아 니느웨가 구원 받는 기사와 어떻게 이렇게 다른가?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이름 사용을 피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 행동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 추정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를 하지 않으면 구원이 다른 데에서 일어난다. “14 이때에 네가 전적으로 잠잠하면 유대인들은 다른 곳으로부터 해방과 구출을 받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이와 같은 때를 위해 왕국에 들어갔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라.”(에4:14).
십계명의 제1계명,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절하지 않는(פרוסקינזיס 프로스퀴네시스, 에3:2;5:9) 거절은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때(단3장)조차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가? 이 근본적 신앙의 문제를 에스더서는 가르쳐 준다. 하나님 절대 신앙을 강조하며, 우상 숭배 금지 명령을 지키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종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한다.
➤“2. 왕의 문에 있던 왕의 모든 신하가 왕이 그에 관하여 명령을 내렸으므로 하만에게 몸을 굽히고 경의를 표하되 모르드개는 몸을 굽히지도 아니하고 경의를 표하지도 아니하니 3. 그때에 왕의 문에 있던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범하느냐? 하더라.”(에3:2-3).
➤“4.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였더라. 이것은 첫째 부활이니라.”(계20:4-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