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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동체
사도행전 2장 42-47절 / 김병삼 목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 2장 42-47절입니다. ➤“42.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43. 모든 혼 위에 두려움이 임하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들과 표적들이 일어나더라. 44. 믿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45. 자기 소유와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대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46. 또 날마다 한마음이 되어 성전에 거하고 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며 빵을 떼면서 단일한 마음으로 즐겁게 자기들의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주]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KJV)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일단 맥주감사 주일입니다. 우리 하나는 참 작은 것 같지만 우리들이 꽃 한 송이가 되어서 하나하나 이렇게 전염시키면 큰 꽃밭을 이룰 수 있어서 여러분들이 오늘 드리는 맥주감사 헌금은 이 땅에 나그네 된 자들 과부와 고아들을 위해 쓰이는 헌금입니다. 여러분들이 정성스럽게 맥주감사 헌금을 잘하세요. 귀한 곳에 쓰입니다.
또 오늘은 월드 휴먼브리지 선데이로 우리들이 드리는 날인데 2년에 한 번 정도 월드 휴먼브리지를 소개합니다. 작년 올해 또 새로 교회 오신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월드 휴먼브리지를 소개하는데 휴먼브리지는 14년 전에 제가 그전에 응급실에 이렇게 실려 가는 구급차 안에서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 저에게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얼마나 큰 교회 목회하다 왔느냐? 하나님은 그거 물으실 것 같지 않았어요. 너 뭐 하다 왔느냐? 저에게 주시는 물음이었어요.
어제 토요일 예배 때 한 분이 저에게 아주 자랑스럽게 목사님 QR 코드 찍는 거 이제 배웠어요. 오늘 예배 때 이거 이제 밸런스 게임 참여할 거예요. 그런데 요번 주에는 밸런스 게임이 없어요. 안타까운데 여러분들이 잘 참여하실 수 있고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함께 할 수 있으니까 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가 다시 꿈꾸는 교회 13번째 다음 주면 마무리가 되겠습니다. 오늘은 다시 새롭게 세워지는 공동체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나눌 거예요. 벌써 이 본문 말씀은 다섯 번이나 설교를 했고 오늘도 여섯 번째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설교를 하면서 참 힘든 게 설교가 잘 안 풀릴 때예요. 토요 예배와 오늘 10시 예배를 드리는데 정말 제가 설교가 너무 힘든 것은 안 풀려요. 오늘은 12시 예배 때 제가 어디에서 안 풀리는지 잘 주의 깊게 들으면서 아 저 부분이 목사님이 잘 안 풀리는구나? 요런 생각을 하면서 설교를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뭔가 좀 이렇게 제 마음에이 말씀이 흡족하지를 않아서 아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러 어떻게 왔는데 그런 저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뭐 또 은혜 받을 사람은 또 은혜 받는 부분이 또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부족함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려고 그러니까 이해해 주세요. 자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제가 제일 많이 인용했던 책 중에 하나가 알렌 클라이더가 쓴 초대교회의 길을 묻는다는 책이었어요.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교회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다.] 초대교회에서 한번 길을 물어보자 그런 의미였고 오늘도 제가 그 책에 나오는 짧은 부분을 좀 읽어 드릴게요. 여기서 그들은 누구냐면 그리스도인을 이야기합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또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썼던 편지에 나오는 글이에요.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에서 살지만 거주민이자 나그네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시민으로서 모든 일에 참여하지만 외국인으로서 모든 것을 참고 산다. 모든 낯선 땅이 자신들의 조상 땅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조상의 땅이 또한 낯선 땅이다. 여러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자녀를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지만 침대를 더럽히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한다. 간단히 말해서 영원히 육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안에 있다. 책에서 그런 표현을 써요.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던 것은 그들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하면 나그네처럼 살았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맥주감사 예배를 드리고 맥주감사 헌금이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쓰이고 우리가 굳이 월드 휴먼브리지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우리들의 살아가야 되는가? 그리고 우리들의 도움에이 손길 가운데도 굳이 oo교회라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님이 드러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가?
이 세상은 자기를 내보이고 싶은 자기의 선행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 저는 우리 교회공동체에 주시는 큰 도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면 세상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만나교회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 공동체의 주시는 가장 큰 도전 “너희들이 이 땅 위에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지 말아라.” 그게 진실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라고 우리들에게 말씀에 주시는 거예요.
개척하던 시절에
제가 만나기에 담임이 되던 때 제가 2002년 10월부터 담임목사 대행을 했고 2004년 2월에 제가 만나기에 담임이 됐어요. 그 무렵에 분당에는 그런 말들이 유행을 했어요. 분당에 있는 많은 교회당들을 보면서 야 저기는 별들의 전쟁 이래! 이게 무슨 얘긴지 아세요. 그 당시에 이름을 댈 만한 유명한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고 계셨고 이 분당 지역의 교회들이 급성장했어요. 그 틈바구니에서 저는 39살의 나이에 만나교회당에 다닙니다.
별들의 전쟁에 저도 되었어요. 힘들고 어려웠겠지요. 그러니까 그 큰 교회 유명한 목사님들 틈에서 제가 목회를 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어요. 어쩌면 제가 몸이 많이 아팠던 것 중에 하나도 제가 드러내지 않았지만 저도 그 사이에서 뭔가 경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마음 교회당에 대한 마음이었어요. 교회당 이 세상 속에서 세상과 경쟁하는 교회가 되어야지 왜 다른 교회와 경쟁을 하느냐는 거였어요. 우리 교회공동체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느냐? 중요한 일이 있지 왜 교회공동체가 다른 교회당과 경장을 해야 되는 것이냐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요.
1992년 분당의 신도시가 막 들어올 때 저는 29살의 나이에 저기 이매동에 있는 동신 상가에서 만나교회당이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을 했어요..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저는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입에 이렇게 달고 살았어요. 저는 곧 유학을 갈 사람입니다. 곧 떠날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는 언제든지 미국에서 어드미션이 오고 비자 인터뷰를 받으면 떠날 사람입니다. 그렇게 목회를 홀가분하게 시작했는데 교인들이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 당시에 아주 조그마한 상가 그래서 몇 달이 지나서 3부로 예배를 드려야 되는 29살의 나이에 쉽지 않은 부흥을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조그만 상가에 모여든 교인들에게 이런 설교를 했던 기억이 나요. 여러분 저희 교회당을 찾아오셔서 제가 설교하는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 저에게는 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들이 분당의 신도시로 이사를 와서 내가 다니던 교회가 멀다는 이유로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로 찾아오셨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러니 여러분들 사명이 있는 것으로 올라가세요. 참 멋있잖아요 29살의 나이에 그런데 제가 그렇게 설교를 했던 이유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저는 거기서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하고 어떤 약속을 하고 시작을 했냐면 저는 언제든지 떠날 사람이니까 제가 월급 안 받겠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월급을 안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까 교인이 10명이든 100명이든 천명이든 내가 안 받는 건 똑같아 여러분들 제가 굉장히 세속적으로 보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들의 신앙에 우리들의 신앙의 본질을 변질시키는 그 중심에는 결국 돈이 있는 거예요. 내가 돈에 어떤 자세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따라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 그랬던 거 같아요. 나에게 경제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편안하게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었고 만일 그때 그게 저에게 경제적인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면 저는 그런 설교를 할 수 있었을까?
오늘 많은 분들이 여기에서 예배를 하고 있어요. 만나교회당 뭐 그렇게 큰 매가 처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고 있는 교회당이니 굳이 사람들한테 여기 등록했어요. 뭐 그렇게 교인을 만들 필요 그런 거 별로 없는 교회일지 몰라요. 여러 가지 이유로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예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에게 주는 아주 깊은 신앙적인 질문이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함께 예배를 하는 우리 공동체의 이 예배가 우리가 참 좋고 기쁜데 하나님도 그거 기뻐하실 수 있는가 여기에서 예배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하고 있는가?
저는 요즘 교회당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는 문을 좀 열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오든지 괜찮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지 이 교회 공동체를 떠나도 괜찮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누구든지 올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저에게 꿈이 있는데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좀 이유를 배반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어떤 이유에서 여기에 찾아왔던지 이 교회공동체가 우리 성도들에게 마지막 교회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적어도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공동체에서 내 자녀들에게 이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교회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 이들의 마음 가운데 사명을 주셔서 교회공동체를 떠나야 될 이유가 분명하다면 떠나가는 것이 기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게 지금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제가 지금 하고 있는데 이거 두 가지가 우리들에게 함께 있어야 되겠다. 얼마 전에 새 가족 애찬을 누었는데 한 세 가족이 저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목사님 참 오래 고민하고 만나기에 등록을 했는데 왜 자꾸 흩어지라고 그러세요. 왜 그러냐고? 왜 그러냐고? 그런데 제 마음 가운데 주님께 우리 교회당이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입니다 저희 교회 권사님 부부가 저에게 면담을 요청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목사님 제가 젊은 시절 섬기던 교회 부목사님이 교회 개척을 했는데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저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명이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찾아가 일꾼이 되십시오. 그래서 목사님 그 교회로 가야 되겠다고 결심이 섰고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떠나가려고 왔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참 장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서운해요.
말과 다른 행동들
참 이상하지요? 제가 이렇게 떠나가도 좋다고 사명이 있다고 생각이 있다면 떠나가도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사명을 가지고 떠나가겠다는 그 교인을 보니까 아까운 거예요. 저런 교회는 교회 중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참 이율배반적인 그런 일들이 제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들이 알고 있는 진리와 그 진리를 살아낸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일이고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스트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늘도 말씀을 전하면서 저에게 지금 드는 생각이에요. 아 우리들에 게이 스트록을 하는 것이 살아있는 동안 우리 공동체는 살아있는 공동체이겠구나!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우리들에게서 어떤 선명한 비전도 우리들에게 나타나지 않다면 우리는 어쩌면 잘못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고 진리로 산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우리들이 견뎌내야 되는 것이고 이겨내야 되는 일들이 참 많아요. 교회는 우리들이 좋고 싫고 때문에 우리들이 떠나갈 수 있는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닌 거예요.
우리들에게 선명한 비전과 사명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초대교회를 보면 교회가 부응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다고 나와 있지 않아요. 교회 부흥을 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디자인했던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자연스럽게 초대교회가 성장했어요. 여기에서 성장했다고 하는 것은 저는 단순히 사람이 많아졌다 이런 차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구원받는 숫자를 하나님께서 통하셨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구원받는 숫자가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공동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이겠지요.
자 우리가 몇 주 동안 나눴던 사도행전 2장 42-47절까지의 말씀에 그들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먼저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되어 있어요. NIV 영어성경에 보니까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가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어요. 사도들의 가르침에 그들이 힘썼다는 말이 영어로 뭐예요. 헌신했다. 저는 이 말이 이렇게 와 닿는 거예요. 적어도 초대교회 사람들이 복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사도들의 가르침의 헌신했다는 그들은 자의적으로 신앙생활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도들의 가르침이 뭐예요 이들이 성령을 받고 초대에게 공동체를 이루고 3장과 4장과 5장과 계속해서 사도들의 가르침이 나오는데 그 가르침이 아주 심플해요 뭔지 아세요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거예요 교회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를 믿는 일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교회 공동체, 초대교회를 이루는 말 가운데 제가 공부할 때 보면 선교학을 공부할 때 그 초대교회를 가리켜서 영어로 뭐라고 표현을 했냐면? 가톨릭 처치라고 하는 말이 지금의 천주교를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가톨릭이라고 하는 말은 보편적인 유니버설 나라는 거예요.
적어도 초대교회 사람들이 당신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라고 이야기를 할 때 그들에게 형제와 자매는 예수를 믿는 고백이 있는 사람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들은 우리야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그들은 유대인이고 어떤 이는 헬라인이고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들의 믿음의 고백 가운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누구를 그렇게 쉽게 정죄하지 않았다는 거요.
오늘 제가 10시 예배를 마쳤는데 우리 교단의 어떤 관계자가 저에게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우리 교회당이 교단이 어디에 속했는지 혹시 아세요? 모르는 분도 많지요. 우리 교회는 감리교회에 속해있습니다. 근데 한 번은 제가 어떤 모임에 갔더니 합동측 목회자가 저에게 우리 선배님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 교회가 별로 이렇게 교단 교리 이런 이야기를 잘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마음이 있어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물론 제가 감리교회 목사로서 교육을 받고 웨슬리 안에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법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교단을 넘어선 하나님을 믿는 교회인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와 신앙생활을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데 교리와 교파로 나눠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세례를 주는 방식에 따라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에서는 수세를 줘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어떤 교회에서는 침례를 받기도 해요. 중세교의 교회가 갈라졌던 참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 나오는 여자들이 옷을 입을 때 단추를 다느냐 마느냐 가지고 교단이 나눠졌어요. 우리나라에도 아직도 존재해요. 예배 시간에 악기를 연주하는 악기파와 예배 시간에 악기를 연주하면 안 된다는 무 악기파가 있어요.
중세 개혁교회는 교회에 십자가를 거느냐? 마느냐? 가지고 교단이 나누어져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하기는 한데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정죄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들이 생각이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너희가 돌이켜 회개하라고 하는 말씀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 사도들이 무엇을 가리켰어요.
➤사도행전 3장 19-20절 “19. ¶ 그런즉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앞으로부터 이를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될 것이요. 20. 또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너희에게 미리 선포된 분을 보내시리라.” ➤사도행전 4장12절 “12.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이게 성령을 받았던 세례 그 사도들이 가르쳤던 가르침이었어요.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믿는 주님을 전하는 일이지 우리의 생각을 전하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공부할 때 저에게 가장 큰 인사이트를 주었던 책 중에 하나가 찰스크래프트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인데 문화인류학 책이었어요. 거기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따지지 마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따지지 말고 들으세요. 자 어떤 인도 정글에 친한 두 친구가 있었대요. 원숭이와 물고기가 베스트 프렌드였습니다. 따지지 말라 그랬어요.
원숭이하고 물고기가 그런데 그 정글에 홍수가 나고 폭우가 쏟아지게 되었고 원숭이는 재빠르게 나무 꼭대기로 도망을 갔어요. 그런데 도망가서 보니까 아이고 베스트 프렌드인 물고기를 놔두고 혼자 도망을 간 거야! 그래서 원숭이가 목숨을 걸고 그 물속으로 들어가서 물고기를 구해 가지고 나무 위로 올라갔어요. 그랬더니 물고기가 죽었어요. 이 책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냐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에게 목숨을 건 헌신과 사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들이 생명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 아십니까? 원숭이야 물고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겁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복음의 핵심을 전하며 그들의 삶 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우리의 신앙의 형태를 우리들의 삶의 스타일을 강요하는 것, 그것이 복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16절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16.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그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그리스]인에게다.”
복음의 능력 그들이 유다인이고 [그리스]인이지만 그들에게 복음이 능력이 된다는 고린도전서에서 1장17-18절 “17.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선포하라고 보내셨거니와 이 일을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효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사도 바울이 뭐라고 얘기해요. 세례를 주는 세례의 방식, 그리고 내가 어떤 말로 전하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들의 구원받는 것 그것이 복음에 핵심이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고백 위에 우리들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것.
공동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오늘 말씀에 보니까 ➤“42.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라고 되어 있어요.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초대교회 사람들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데 즐거웠을까요? 힘들었을까요? 아니 초대교회 사람들 말고 여러분들이 오로지 기도의 힘쓰고 살아가면 힘들까요? 안 힘들까요? 어떻게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살아갈까?
기도가 힘들다?
우리들이 왜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하면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들의 삶에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기도해야 되는 그 무엇으로 생각할 때가 참 많은 것입니다. 저에게도 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교회에 일을 하면서 제가 해야 무슨 일 하겠어요. 목회하잖아요. 너무 바쁘고 힘들면 기도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내가 기도해야지!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 기도 시간을 떼어 놓으려고 하면 그 시간이 너무 부담스러운 거요.
후한가루로서 오르지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여러분들에게 기도가 지루한 노동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기도에 힘쓴다는 것이 이게 노동으로 여겨진다면 우리들이 기도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뚝 떼어서 내가 기도해야지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했다. 저는 그렇게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하나님이 그들의 신앙 가운데 그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함께 하실 때에 그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하는 것이 큰 기쁨일 수 있다는 기도는 사역이고 의미입니다. 라는 제목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자 제가 좀 읽어드립니다. 기도는 더 위대한 사역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자체가 더 위대한 사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준비나 고차원적인 능력을 상식의 차원에서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지금 우리교회 여러 선교 팀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우리들이 예를 들어서 “선교 준비를 할 때 우리 준비 기도해야 합시다.” 라고 선교를 잘하기 위해서 준비 기도를 이게 잘못된 게 아니지요. 그런데 만일 우리들이 기도를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기도는 늘 우리들에게 일이 되어 버린 정말 중요한 기도는 하나님 이것이 참 귀한 일입니다. 라고 느껴지고 이것이 우리들의 힘입니다. 라고 느껴질 때 우리의 사역과 연결이 됩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아주 작은 습관이 있어요. 예배당이 들어와서 예배를 하기 전에 말씀을 하기 전에 기도원에도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나님 도와주세요. 함께 해주세요. 그 시간이 저에게 참 귀한데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나에게 참 복이다. 꽤 저에게 제일 복된 시간이 뭐냐면? 그때 기도하는 시간 오로지 기도에 힘쓴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뚝 떼어 놓아서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복된 기도의 시간 부흥이랍니다.
한 팀과 식사를 하면서
말씀을 준비하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음을 주셔서 예배 팀에 제가 이야기를 했어요. 요번 3주 동안에는 토요일에 우리들이 한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자 기도가 좀 즐겁게 우리들에게 은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토요 예배 시작하기 2시간쯤 제가 함께 우리 교인들과 기도하면서 기도의 즐거움에 우리들이 한번 들어가 보자 마누라 눈치 볼 사람은 안 와도 돼요. 그냥 올 사람만 오면 돼요. 오로지 기도의 힘쓴다고 하는 게 우리들이 특별히 뚝 떼어서 우리들이 기도해야 되는 의무감이 아니라 그 기도가 우리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동체에 보니까 어떤 모습이 있냐면 빵을 떼었다고 되어 있어요.
저는 우리교회당 성도들을 보면서 제일 이렇게 반갑고 기쁜 게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사람들이 먹을 걸 이렇게 들고 있는 경우들을 봐요. 그럼 제가 물어봐요. 뭐 하는 거예요. 아 오늘 나무모임이 있는데요. 저 그것을 보면 저 모임은 잘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먹으면서 모이면 다 잘 돼요. 진짜예요.
제가 요즘 우리 청년들을 이렇게 이제 격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변화산 때 이렇게 개근한 나무를 제가 시상을 하는데 그 시상이 뭐냐면 저와 함께 밥을 먹는 거예요. 그리고 1등 한 그 팀은 제가 영화도 보고 밥도 같이 먹어요. 가끔 궁금하기는 해요. 제가 같이 먹는 게 상일까? 벌일까? 궁금하기는 한데 아무튼 밥을 같이 먹는데 지난주에도 한 팀 하고 밥을 같이 먹는데 제 아내 하고 같이 이렇게 식사를 하는데 청년 애들이 아무튼 예외 없이 묻는 게 있어요.
목사님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애들한테는 제일 큰 관심사인 거예요. 제가 아이들한테 이렇게 얘기를 해요. 제 아내하고 저는 4년 동안 대학을 다니는데 같은 과 같은 학년이었는데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어 서로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원에 가서 유일하게 여자가 제 안에 딱 혼자였고 같이 이제 공부를 하는데 학생들이 몇 안 되니까 늘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때로 돌아가서 87년으로 돌아가서 상상을 해보세요. 제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거의 매일 제 아내가 밑에서 저를 불렀어요. “병삼아! 밥 먹으러 가자”라고 부르며 제가 이제 내려가서 같이 밥을 먹고 제가 청년들에게 하는 얘기예요. 우리가 이렇게 같이 밥 먹다가 평생 밥 먹게 됐어!
그러니까 너희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밥을 먹어 밥을 먹는데 한두 번쯤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계속해서 같이 밥을 먹는 건 쉽지 않아요. 그리고 그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함께 빵을 떼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어떤 식당에 가든 어떤 음식을 선택하든 누군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그 빵을 떼는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함께 빵을 떼는 공동체가 된다고 하는 거 그것이 참 포기구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그 공동체의 오로지 기도의 힘쓰며 그들이 함께 빵을 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 큰 복이었구나! 그리고 그 공동체에 일어난 일을 오늘 성경에서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냐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이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거예요. 그러면 기사와 표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일 맞아요.
사도행전 바로 3장으로 넘어가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사건이 일어나요. ➤“6.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그의 오른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매 곧 그의 발과 발목뼈가 힘을 얻고 8. 그가 껑충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단순히 놀라움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두려움도 있었던 거죠 저게 뭐지 근데 저 에게는 이 기사와 표적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환자를 고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초대교회 공동체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기사와 기적 병이 낫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삶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 어떻게 저런 삶의 패턴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가 꿈꿔야 되는 공동체의 이사야서 55장 8-9절까지 유명한 말씀 같이 봅니다. ➤“8. ¶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 {창조주}가 말하노라. 9.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으며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공동체 가운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타나는 거예요. 우와 저기에 두려움과 경외심이 있는 거예요. ➤마태복음 6장33절에 보면 “33.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구하며 살아갈 때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들은 그렇게 살지 그런데 그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모든 것을 더 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이 있는 거예요
저에게 떠오른 말씀이 있어서 ➤요한일서 4장10-11절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일본 선교에서
저는 월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일본에 있어요. 매일 1번 목회자들 일본 교인들 위해서 세미나와 설교를 하고 금요일에는 우리 청년들과 함께 그 소라 하늘좌 라고 함께 찬양하고 이렇게 축제를 하는 시간이었어요. 20-21살 또래 청년들이 여러 명이 같이 갔어요. 그런데 이렇게 은혜라고 하는 찬양을 부르는데 21살이란 우리 청년 하나가 눈물을 톡톡 흘리면서 찬양을 하는 거예요. 눈물은 전염성이 있어서 그 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눈물이 나고 일본 성도들도 눈물을 흘려 그 집회를 마치고 오는 버스 안에서 제가 청년들에게 우리 잠깐 나눔의 시간을 가지자 그랬더니 그 아이가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제가 일본에 올 때 저는 일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 그게 제 속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원수니까요. 근데 제가 설교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오늘이 예배당 안에서 일본 사람 한국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그 청년의 마음 가운데 그런 생각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저는 이 한 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저는 우리 신앙과 우리 교회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번 일본 단기 선교하면서 그 목사님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만 같으면 아는 문제가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여러분 우리들에게 아픔과 증오가 있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들 가운데 들어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다른 이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우리들에게 순전한 기쁨이 우리들에게 있어지는 저에게는 꿈꾸는 교회의 모습이 있어요. 하나님 우리 성도들이 이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우리들에 게이 순전한 기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하고 섬기고 헌금하는 게 여러분들에게는 기꺼운 일이에요. 힘든 일이에요. 어떤 분에게는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에게 그런 꿈이 있는 거야 하나님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기쁘고 즐거웠으면 좋겠고 우리들에게 이 일로 인하여 행복했으면 좋겠고 우리들의 섬김 왜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피곤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그 무엇이 무엇일까요? 저도 요번에 일본에서 매일 강의와 설교를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특히 이제 통역설교를 하는 거 쉽지 않아요. 더 힘든 건 끝나고 나서 일본 목회자들이 저에게 와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통역해 주는 목사님이 통역을 해주고 제가 질문에 답을 해요. 제가 진짜 힘든 건 와서 묻는 게 되게 다 똑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계속 똑같은 말을 또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다 말고 한 번은 통역하는 목사님 내가 또 해야 돼요. 힘들어요. 그런데 이 힘든 거를 한 방에 탁 날려버린 게 저에게 와서 질문을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기도해 주세요. 라고 하는 그 일본 목사님을 바라보며 아 이게 참 복된 일이구나! 힘든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우리들에게 있을 때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저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그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듣고 함께 빵을 떼는 것이 매 순간마다 다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요 그들이 그 일로 인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의 구원받는 숫자를 더해 주시는 기쁨을 맛보았을 때에 그들의 수고보다 더 큰 기쁨이 있었다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의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을 우리들이 경험할 때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마땅히 해야 될 일들 마땅히 따라가야 될 일들 마땅히 순종해야 되는 이들 그것들이 쉽지 않지만 우리들의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는 일들이 쉽지 않지만 그들이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고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를 토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있었던 기쁨이 우리 공동체에도 살아 있으면 좋겠다. 우리 만나 교회가 여러분들이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의 예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와 저기에는 하나님이 계셔 하나님이 살아계셔 그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는 것 우리 그런 공동체를 꿈꾸며 이곳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주님 앞에 복된 공동체를 꿈꾸며 나아가는 주의 사랑을 모든 백성들을 위해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