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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 만난 목자의 비밀.
누가복음 2장 8-12절 / 扈一麥 목사
➤“8. 바로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들에 거하며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라. 9. 보라,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임하고 [주]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두루 비추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더라. 10. 천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가져왔노라. 11.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 12.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니 곧 너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라, 하매”(KJV)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탄생하신 현장을 중심으로 어떤 사건이 가장 인상이 깊습니까? 예수님 탄생 사건 중 어떤 사건, 어떤 모양,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라고 하는 페르시야 박사입니까? 아니면 아기 낳을 곳이 없어서 마구간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즉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상대적으로 낮아져서 마구간 말구유에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입니까? 아니면 동방 박사들이 예물을 드렸던 장면이거나 아기 예수님께로 인도해준 별이 인상에 남습니까?❞
그 지역 [목자] 성경적인 [비밀]을 나누고자합니다.
우리는 성탄절만 되면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왜 들판에서 양치는 목자에게 메시야가 오신 소식을 천사들이 전했을까요? 저부터 성경적인 배경을 모르고 성경을 보다보면 아래와 같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목자가 ①-착하고 순수하다. ②-천한 직업을 가진 미천한 자에게 전하였다. ③-자기 일에 충실한 자에게 전하였다, 등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까지 천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처음 전해들은 목자의 이야기가 성경 역사에는 어떻게 전해졌는지 자세히 알아보는 기회가 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배경을 모르면 불쌍하고 착한 목자들이니 예수님이 탄생한 것을 천사들이 목자에게 알려 주셨다고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결론은 항상 최선을 다하라 하면서 마무리를 합니다.
착하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여주십니까? 저나 목사님들이 최대한 잘 전한다 하지만 성경의 배경을 모르면 바르게 전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의 자료는 성경적이고 배경으로 이제까지 저처럼 몰랐던 사실이 성경 안에서 해결되시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2장8-12절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날 밤에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전한 소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8-12절 “8. 바로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들에 거하며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라. 9. 보라,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임하고 [주]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두루 비추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더라. 10. 천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가져왔노라. 11.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그리스도 [주]께서 태어나셨느니라. 12.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니 곧 너희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라, 하매”
태초로부터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은 대언자들이 전해주신 대로 때가 되어 유대 땅 베들레헴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습니다. 그 날 밤에 베들레헴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그 천사들이 전해 주신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예수님을 경배하려고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지역] 목자는 누구입니까?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을 중심으로 처음 경배했던 목자들이 항상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그러면 성경적으로 처음 예수님께 경배했던 목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그 해답을 얻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그동안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왜 최초의 경배자가 목동들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목동들이었을까? 목동들이 어린 양과 관계였을까요? 아니면 목동들이 부지런하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목동들이었을까? 대해 몇 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❶첫째. 그 당시 목동들은 비천한 사람들이었고 무식한 사람들이었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선입견이 없었을 것입니다. 메시야의 비천한 탄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하얀 백지와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목자들의 무식(無識)론 설이었는데 성경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어 설득력이 없습니다.
❷둘째. 밤새 들녘에서 양떼를 지키고 자기 일에 충실하던 목동들에게 메시야를 첫 경배하는 복을 주셨다고 하지만 이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❸셋째. 사회적으로 상당히 약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약자들을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라는 설이 있지만 이것은 사회적으로 본 관점이고 성경적으로는 설득력이 낮습니다. '사회적 약자' 또는 '자기 일에 충실'이라는 이런 적용들이 바로문제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3가지 설이 '성경적으로 지지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리적인 배경을 보면?
➤“8. 바로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들에 거하며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라.” 이스라엘 예루살렘 가서 보면 예루살렘 수도가 있고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닙니다. 현재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땅에 있지 않고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들어가려면 국경을 넘어가야 하며 검문을 받아야 합니다. 베들레헴은 아주 가난하고 못사는 동네입니다.
예루살렘과 거리가 멀지않고 차로 한 20분 거리에 있고, 둔덕으로 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 [라못라헬]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브이(V)자 형태로 되어 있는 언덕에 위치하고 목자들의 교회가 있습니다. 대대로 목동들이 양을 치던 현장인데 옛 이름은 *[벧학게렘]이었고, 현재는 *[라못라헬]이라고 부릅니다.
레갑의 족속들의 목자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목자들의 구약적 배경 / 구약성경에서 옛날부터 불리던 이름은 [벧학게렘] 이란 곳인데 구약성경에서 그 지명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목자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목자들이 최초로 예수님의 탄생을 경험하게 된 것은 목자들이 사회적약자이거나 부지런한 사람이여서도 아니고 거기에는 근본적인 성경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3장14절을 찾아보겠습니다. “14. 그러나 거름 문은 [벧학게렘]의 일부를 치리하는 자,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보수하되 그가 그 문을 건축하고 그것의 문짝과 자물쇠와 빗장을 달았더라.”
성경 말씀의 [벧학게렘]이 현재의 [라못라헬]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목자들이 양을 치던 자리였습니다. [거름문]은 한자로는 분(糞)=즉 [똥의 문]이란 뜻입니다. 그 문의 용도가 오물들을 들고 나는 용도로써 만들어진 문이기 때문입니다. [거름문]은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오랜 생활동안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재건하고 있는 기록들입니다.
⚑ 예레미야가 기록된 시대는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시대에 왕은 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이 너무 말을 안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협조를 안 할까?"하고 고민 끝에 레갑 자손을 주의 집(성전 안)에 불렀습니다. 고관들이 있는 방 옆에다 그들을 데려다 놓고 옆에는 지도자들, 장관들, 국무위원들을 아래 위로 꽉 채워서 어떻게 하는지를 보게 하였습니다. 초대한 레갑 자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했으나 그들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안 마시는 명분이 "조상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5장 1-10절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시대에 {창조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라. 이르시되, 2. 레갑 사람들의 집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창조주}의 집으로 데려가 방들 중의 하나로 들어가게 하고 그들에게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라, 하시니라. 3. 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의 형제들과 그의 모든 아들들과 레갑 사람들의 온 집을 데려가더라. 4. 내가 그들을 {창조주}의 집으로 데려가 [하나님]의 사람 익달랴의 아들인 하난의 아들들의 방으로 들어가게 하였는데 그 방은 통치자들의 방 옆에 있으며 문을 지키는 자인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위에 있더라. 5. 내가 레갑 사람들의 집에 속한 아들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 담긴 단지들과 잔들을 놓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포도주를 마시라, 하였으나 6.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리라. 우리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아들들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7. [너희는 집도 짓지 말며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원을 세우지도 말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평생 동안 장막에 거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그네로 지내는 땅에서 너희가 오래 살리라, 하였으므로 8. 우리가 이와 같이 우리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한 모든 일에서 그의 음성에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의 아내들과 우리의 아들들과 우리의 딸들이 우리의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9. 우리를 위하여 거할 집들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씨도 소유하지 아니하고 10. 오직 장막에 거하여 우리 조상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것에 따라 순종하고 행하였노라.”
레갑 족속의 조상은?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라는 구절이 ➤역대상 2장55절 “55. 야베스에 거주하던 서기관 가족들 곧 디랏 족속과 시므앗 족속과 수갓 족속인데 이들은 레갑의 집 조상인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니라.” 거기서 나온 [겐]족속은 ➤사사기 1장16절에 “16. ¶ 모세의 장인 겐 족속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도시에서 올라가 아랏의 남쪽에 있는 유다 광야에 이르렀고 그들이 그 백성 가운데 거하니라.”
“모세의 장인” [겐] 사람이라 모세의 장인은 ➤출애굽기 3장1절에 "이제 모세는 자기 장인 곧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지키더라. 그가 그 떼를 사막의 뒤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곧 호렙에 이르매" 성경에서 레갑의 조상과 자손이 양치는 목동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이 기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조상들이 명령한지가 이미 30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쉽게 변질되는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레갑의 자손들은 신앙의 절개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의 이름 중 [요나답]이 나옵니다. 예레미야가 "너희들은 레갑 자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나 봐라? 내가 테스트 해줄게?" 하는 의미로 명령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러 이러한 명령을 했다."고 했는데 그 명령은?
1. 집짓지 말고 2. 파종하지 말고 3 포도원을 소유하지 말고,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려면 먹고 살 것이 목동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레갑의 족속이 300년 전에 [요나답]이라는 사람에 의해 후손들을 향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손들이 무려 300년간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 짓지 말라, 파종하지 말라, 포도주 먹지 말라. 헸다면 사실 목동밖에는 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포도주는 왜 나왔을까? 단순히 술에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요나답]이 처음에 예후 왕과 함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14절 “14. 그가 또 온 예루살렘과 모든 통치자와 모든 강한 용사 곧 만 명의 포로와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그 땅의 백성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 외에는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비천한자 외에는 다 사로잡혀갔다고 나옵니다. 여기에서 비천한 자는 목동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도 끌려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과 하를 읽으면 [예후]라는 왕 이름이 나옵니다. 요나답과 예후와 개혁을 함께 시작하다가 예후가 배반을 하면서 [요나답]이 결별을 합니다. 결별한 이유가 예후가 처음에는 좋게 시작했으나 정치적 이유와 정치적인 계산 때문에 점점 마음이 변하였던 것입니다. 요나답이 예후와 결별하면서 3가지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바알 종교와 아세라 종교가 [엘로힘{창조주}의 종교와 섞여버린 것입니다.
그 당시 예후가 타협한 것이 바알신과 아세라 신상을 [엘로힘{창조주} 하나님]의 종교와 섞어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요나답이 반대하였습니다. [엘로힘{창조주}의 종교와 섞을 때 매개체가 술이었습니다. 술잔을 헌주하고 주고받으면서 바알 종교와 아세라 종교가 [엘로힘{창조주}의 종교와 섞여버린 것입니다.
요나답은 레갑 족속의 조상이었습니다. 그것을 요나답이 반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답이 자기 후손들에게 역사의 맥락에서 명령한 것입니다. “너희들은 포도주 마시지 마라”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순전하게 섬기라는 의미로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거류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도는 생활을 할찌라도, 비천한 직업인 목동 생활을 할찌라도 그 생활을 꿋꿋하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목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후손들은 바벨론이 쳐들어오고 고관대작들이 다 끌려갈 때에도 비천한 존재라고 끌려가지도 않았습니다. [남은 자]가 되어서 순전하게 메시야를 기다리는 족속이 되었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먹고 살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거기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목동생활을 후손들이 한 것입니다. 지금도 양떼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양떼만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로 들어가게 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이 대대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 생활을 한 것입니다.
⚑메시야를 고대한 레갑 족속 목자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왜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만 경배 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적부터 대대로 약속한 말씀 붙들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슴 뭉클한 사연을 가지고 오랜 기간 인내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름이 [라못라헬]로 바뀌어 있으나 바뀌었어도 우리나라에도 동사무소에 변경된 지역의 지적도 떼러 가면 알 수 있듯이 과거 역사에도 정확하게 [벧학게렘]이라는 지명 표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라못라헬] 옛날 [벧학게렘]이란 동네였습니다.
내용들을 다시 정리를 해 보면 이렇습니다.
벧학게렘 지역은 레갑 족속이 사는 동네입니다. 이 사람들의 직업이 목동들입니다. 왜 그 후손들이 비천한 직업 목동의 일을 하면서 살았는가? 그 조상 [요나답]부터 내렸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답이 예후라는 왕과 개혁을 하다가 배반한 예후와 결별을 하면서 후손에게 명령한 말씀이 3가지였습니다. ①장막 짓지 말라, ②파종하지 말라, ③포도주 먹지 말라 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목동일 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무식해서도, 사회적 약자에서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기 일에 충실했다는 그런 의미도 아니었습니다. 그 목자들은 요나답으로 부터 가문 속에서 내려온 성경의 말씀을 붙잡고 오랜 세월을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성탄하면 기다림! 세 글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또 그렇게 기다려야 합니다. 역사에는 구원 역사와 일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역사입니다. 구원 역사, 구속의 역사를 위해 일반적 역사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내려갔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징계하지 않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징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도리어 파라오 왕이었습니다. 파라오 왕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역사는 제국의 왕 파라오까지 동원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야고보서 5장7-12절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위해 인내하느니라. 8.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9. 형제들아, 서로 불평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 보라,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시느니라. 10. 내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대언자들을 고난당하는 것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참는 자들을 우리가 행복한 자로 여기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께서는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니라.
레갑 족속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레갑 자손처럼 인내의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수시로 자기 유리한 쪽으로 치우치다가 망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말고 지금 이 시대에도 변함없이 양치기를 하는 레갑 자손처럼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4복음서에는 누가복음에만 목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점도 특이한 면입니다. 그 이유는 4복음서 쓸 때에 각각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악하여 쓰러져 버릴 것 같이 험난한 인생을 살게 될 찌라도 항상 약속된 말씀에 기초해서 성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물질의 신(神)인 산타가 영광 받는 성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영광을 받고 유일한 우리의 소망이 되는 성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을 기다리는 성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