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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마음으로 예배*김병삼목사

작성자(一麥.)|작성시간24.01.20|조회수358 목록 댓글 4

☞예수님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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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마음으로 예배*

로마서 12장1-2절 / 김병삼 목사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KJV)


 말씀을 나누게 되는데 제가 20년 가까이 10년을 맞이하는 첫 주일은 예배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요번에는 두 번째 주에 설교를 하게 되었어요. 지난주에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오늘 이제 첫 번째 사역으로 들어가면서 역시 예배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배하기] 이런 제목이고 우리가 요런 건 좀 한번 알아두고 가면 좋겠다. 하는 걸 서론에서 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 이런 표현 예배를 [본다] 또 예배하다 이런 표현들을 있습니다.


 한번 보여주세요. 자 [예배 본다]가 맞습니까? [예배드리다]가 맞습니까? [예배하다] 맞습니까? 네 고마워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와서 제가 설명할 이유가 되는 거 같아요. 이 권정생이라고 하는 아동동화 작가가 있습니다.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들이 예전에 이런 표현들을 많이 썼습니다. 야! 우리 잔치 [보러간다] 우리 또 주 [보러간다] 이런 표현들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게 구경하러 간다. 이런 뜻이 아니라는 거요. 잔치 보러 간다라고 하는 것은 잔치에 참여하러 간다. 상주 보러 간다. 그 말은 또 위로하러 간다. 이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배 본다]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조금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지만 권정생 씨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우리 민족이 [보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예배 본다]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배 본다]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거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예배라고 하는 말을 한자로 예도(禮道), 예절(禮節) 절할 배자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드린다는 말이 두 개가 반복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옳은 한글 사용은 [예배드린다] 아니라 [예배 하다]가 맞습니다. 그러니까 문법적으로 우리말에 있어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예배 하다가 맞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본다]거나[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관념 속에서 잘 이렇게 이해되고 있다면 그걸 그렇게 틀렸다고 지적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예배 본다] [예배드린다] [예배하다] 하는 말이 어떤 의미로 있는지 요런 정도는 알고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 자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우리 교회 예배 철학에 대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여러 가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저는 우리 목회자들과 늘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목숨을 건다. 오늘 뭐 말씀 가운데 나오겠지만 만나 교회에서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그렇게 예배 준비를 철저하게 하다 보니까 여러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오늘 예배에 대한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찬양부터 특주 모든 것이 예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몇 달 전부터 찬양 팀이든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이든 저도 오늘이 예배를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온 거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만나기 위에 예배는 참 좋다. 그런 표현들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많이 준비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뭐 크리스마스 때나 송구영신 때나 이런 때 방송국에서 연락이 하여 생방으로 좀 내보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제 CTS 우리교회에 주일 예배를 늘 생방으로 내보내고 있지요. 저희가 내보내 달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요. 그럼 저는 우리 예배 팀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오케이 우리가 준비하고 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누군가 함께 드린다고 하는 것 잘못될 것 없습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우리예배 순서나 시간이나 그런 것들이 제약이 되거나 침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방송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우리 예배의 목적은 방송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것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목회 철학에 대한 부분입니다. 자 오늘은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들이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해요.


여러분들 만나교회 슬로건이 뭔지 아세요.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이 땅이 소망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워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소망이 되는 일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이 땅에 소망이 돼야 된다. 그래서 교회가 이 땅에 소망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미션스테이트먼트를 가지고 있어요. 자 외워볼까요 시험 들까요? 보여드릴게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예배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제자가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지역과 세상을 섬긴다.” 제가 만나교회 목회를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 우리 교회 미션 스테이트먼트 아주 신학적으로 잘 정리가 돼 있는 미션 스테이트먼트 그래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자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예배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훈련된 제자가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지역과 세상을 섬긴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예배와 훈련과 섬김이라는 세 가지 축을 가지고 있어요. [성부] [성자] [성령] 예배 훈련 섬김 자이 미션 스테이트먼트 제일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바로 예배라고 하는 거요. 교회는 왜 예배하는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지만 예배하지 않고 하는 그 일들을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예배 사람들이라면 세상에 선한 일을 하는 것과 우리들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의 차이가 뭐가 있겠습니까?


세상도 교회도 힘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왜 힘을 가지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적어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힘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한 관점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있을 때 교회는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힘이 뭐라고요.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능력이 아니라고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명확한 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관점이 보일 때 그것을 우리는 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자 오늘 로마서 12장 1절과 2절만큼이 예배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이 없다고 생각해요. 자 오늘이 말씀 먼저 한번 다시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해 봐야 될 것 나를 드린다는 거예요. 몇 년 전입니다. 제가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제 안에 컴플렉스가 있다. 그게 뭐였냐면 이 선교사님들이 우리 평신도들이 아 나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라는 말을 이렇게 들을 때면 제가 이렇게 위축이 되는 거요. 아 나는 그런 고백을 잘 못해봤어요. [나를 하나님께 드린다] 야 어떻게 저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삶을 바쳐서 선교지에 나가서 그런 삶을 드리는 분들을 보면 아 나는 참 부끄럽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었어요. 제가 [믿음으로 살아라] 라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를 드린다. 이 부분에서 제가 딱 걸려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을 주신 적이 있어요. 야 입장을 한번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나를 드린다고 하는 말이 그렇게 위대해 보이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를 드린다고 하는 말은 그렇게 위대한 말이 아니다.


나를 드려요.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면?


 그 괜찮을 거 같아요. 여러분들 한번 하나님께 나를 드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고 저걸 쓰려면 저거, 저거 성질도 고쳐야지 저거 좀 건강하게 만들어야지 손댈게 한두 군데가 아니 나를 드린다는 게 나는 참 굉장한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그게 그렇게 굉장한 기도가 아닌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드린다고 하는 그 드림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지 우리가 어떤 자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를 트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때 제가 말씀을 준비하다가 이 찬양이 하나 떠올랐고 그 찬양을 부르면서 제가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은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그날 제가 이 찬양을 부르다 많이 울었어요.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은 선한 것 다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품으시고 날 아 그렇구나! 내가 주님 앞에 자격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구나! 오늘 로마서 12장 1절에 보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라. 고 되어 있는데 nib 영어성경에 보니까요. 거룩한 어떤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몸을 드리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기뻐 받으시는 이유가 돼있어요. 하나님의 자비하심 가운데서 우리의 몸을 받아주시는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족한 우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우리의 몸을 드릴 때 하나님이 왜 기뻐하실까요? 저에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때 내 삶을 하나님께 양도하고 나를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 그때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그런 도전을 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그런 고백을 하고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나를 하나님께 드린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나요. 만일 우리들이 예배하는 자로 살아가는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를 내어드린 것이 아니라는 증거일 거 같아요. 자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제가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고 오늘 10시 예배도 그런 야기를 했어요.


 하나님 오늘 말씀은 듣는 우리 성도들의 마음이 불편해지기 원합니다. 이 말씀이 너무 불편해서 내가 잘못 살았던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왜 예배합니다. 예배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어떤 선행과 훈련도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없기 때문이에요. 예배하는 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예배를 통해 혹시 우리들은 나의 만족이나 나의 감정이 충족되는 걸 그것을 혹시 예배에 성공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는가?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는 거 그래서 오늘이 예배자로서 우리들이 물어야 될 중요한 질문이 있는 거예요.


예배를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는가?


 자 우리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예배의 가치를 우리가 예배의 성공을 내가 어떤 은혜를 받고 내가 어떤 기쁨을 가지고 내 감정에 어떤 일이 일어난 나로 판단하게 되는 거요. 여러분들 예배를 드리고 나가면서 가끔 그런 얘기하잖아요. 나 오늘 은혜 받았어! 가끔 안 하세요. 아 나 은혜 받았어요. 그래 내가 은혜 받았어! 그때 그 은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분들의 감정의 만족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쉽게 아 예배 좋았어! 은혜 받았어! 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묻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감정의 문제일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려 볼게요. 혹시 여러분들 예배를 하면서 억지로 예배를 드리거나 예배드리기 싫을 때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자 다 다른 질문을 한번 해 볼게요? 저는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데 저 제가 설교를 하기 싫거나 예배드리기 싫을 때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아니 내 얘기는 쉽게 대답하고 그 참 아 굉장히 그래요. 저도 이렇게 매주 서서 설교를 하지만 늘 제 마음이 늘 충만한 상태에서 그렇게 설교하는 게 아니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제가 10여 년 전에 이 예배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혹시 기억나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40대 아들과 60대 어머니가 대화합니다. 아들이 이렇게 합니다. 어머니 나 예배드리기 싫은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 저 주일날 늦잠 좀 자고 싶어요. 두 번째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요. 세 번째 성가대의 불협화음이 싫어요. 아니에요 여기에 이 말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이렇게 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배를 드려야 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한다. 두 번째 예배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니 세 번째 아주 결정적인 이유인데 또 담임목사가 결석하면 안 된다.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예배 때마다 우리는 은혜를 받고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요. 아 설교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입장에서 저는 우리 교인들이 그런 감격 속에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우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들여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감정의 좌우 돼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내가 예배드리기 싫어 오늘 내 기분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아 그것이 여러분들의 삶을 좌우하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은 거지요.


  여기 우리 남자들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여러분들은 가끔이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가 없어요? 자 여자 분들에게 물을 게요? 여러분 여러분들은 가끔 이렇게 집안에서 이렇게 살아가다 집을 나가고 싶을 때가 없어요? 참 모든 예배가 여자들이 담대해 남자들은 감히 이야기를 못 하는데 여자들이 훨씬 더 담대 당연히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만일 그 기분에 따라 집을 나가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거예요.


  저도 그랬고 여러분들 학창 시절에 아 나 오늘은 학교 가기 싫어!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갑니다. 왜 학생이니까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려야 되는 이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늘 우리들이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이 예배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자녀고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예배는 우리의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12장 또, 1절에 나오는 예배의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는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는 이 말 가운데서이 예배가 우리의 사명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드리는 것이요. 삶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사명자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래요.


구약 시대에 그들은 예배를 재물로 대신했어요.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들리든 화목제를 들리든 그들은 예물을 드릴 때 예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제사장과 함께 제단에 가서 재물을 동물을 잡았어요. 칼로 각을 뜰 때 피가 튀고 그 내장들을 그 긁어낼 때 역한 냄새를 맡으면서 그들이 각을 뜨고 하나님 앞에 재물을 들렸어요. 그리고 그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대신하여 죽는 그 죽음을 바라보면서 내가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피해 제사를 드렸어요.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종종 아니 우리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 마음을 드린다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굉장히 참 멋진 표현인 거 같은데 마음으로 드리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거 같아 제가 선교 제가 마음으로 선교해 마음으로 애국도 해요. 마음으로 무언가를 내요. 그런데 진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너의 몸을 드려 보라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아닌 너의 몸을 드리는 것 우리의 헌신의 행위들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이냐는 거 여러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쉽게 예배 하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누군가의 헌신과 누군가의 몸을 들임을 통하여 이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거요. 우리들은 오늘 예배를 드리러 오면서 여러분들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여기 오셨을 거예요. 시간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아니 이 땅 위에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오늘 만나교회를 선택하고 오늘 예배를 드리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선택이라는 말이 혹시 늘 우리들의 삶에 나의 편의 때문에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들이 예배자로서 선택하는 것이 우리들의 헌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늘 나의 편의에 의하여 예배를 선택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예배가 아닐 수 있다 이게 저에게도 여러분들에게도 큰 도전이 돼야 될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예배드리는 우리의 모습들이 우리의 행위들이 다 나의 편의적인 선택이 되었다면 이거 우리들 하나님 앞에서 잘못 예배드리고 있는 것 같다 제가 조금 전에 이야기했어요.


 오늘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은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말씀이 우리들 가운데 부딪칠 때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지 내 마음에 듣는 말씀을 내가 기분 좋게 듣고 가는 것이 은혜가 아니요. 자 하나님 앞에이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들 무엇보다도 이 편의적인 태도 자기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이것은 올바른 예배자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해 2023년 우리 성지순례 팀들과 함께 이 혼란이라고 하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자 사진 잠깐 볼까요? 여기 유적지가 있는데요. 안에 이 혼란공동체가 있어서 성경을 필사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자 저기 보면 저기 조그만 구멍들이 보이는데 저기에서 그 유명한 혼난 사해사본이 발견되어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거의 완벽한 형태의 성경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바로 저 혼난 공동체에서 성경을 필사했던 이 한 사람들이 있어 가이드를 하던 목사님이 고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성경을 쓸 때 그 당시에 사람들이 성경을 쭉 써내려 가는데 그 성경 구절에 하나님이라는 구절이 나오면 그 사람들을 딱 멈추고 바로 저기 가면 정결례를 행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몸을 한번 씻고 그리고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한 절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세 네 번 반복해서 나오면 세 네 번 몸을 씻고 와서 씁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돼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거룩함을 훼손하는 어떻게 조금 편의주의적인 좀 쉽게 가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 목회자로서 저에게도 그런 모습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주의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들이 훼손하고 있다면 우리가 불편함에 서버는 것도 우리들이 올바른 예배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또 우리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들을 때였어요. 여러분 예루살렘 성전은 정말 견고하게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그런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어요. 옛날 만들어 놓은 거예요. 성전으로 올라가는 저 층계, 자 이거 제가 찍어온 사진인데 보세요. 이상한 걸 좀 발견하셨을 거요. 저렇게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저렇게 폭을 못 맞추고 어쩌면 저렇게 만들었을까? 설명을 듣는데 사람들이 성전으로 올라갈 때 경거망동(輕擧妄動)치 않도록 일부러 계단의 폭을 다르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주위해서 올라가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도록 저 폭을 일부러 넓게 좁게 만들었다는 거요. 저에게 굉장히 은혜가 됐어요. 그렇구나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하는 것은 내 맘대로 경거망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구나! 오늘 우리들이 이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서 있는가? 오늘이 예배의 주체가 나가 아니고 하나님임을 인정할 때 예배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이 되어야 되는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나와 있는가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아니 우리는 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그런 얘기를 종종 듣지요. 아 나 저 사람하고는 진짜 예배가 안 돼 예배 못 드려 그래서 예배가 여러 번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하는지 몰라 아 저 인간 안 보고 예배드리는 거 너무 감사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배드리는 시간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시간도 우리들이 선택을 해요.


내가 원하는 예배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일 하나님께서 예배를 드리는 이 회중을 선택해서 예배를 받으신다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거나 우리를 가려서 예배자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셨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인 관계가 올바로 되어 있을 때, 우리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는 회중들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혹시 여러분들 공동체에서 여러분들이 예배드릴 때 회중이 여러분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면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될 거 같아요.


 마태복음 5장 23-24절 말씀. ➤“23. 그러므로 네가 네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너를 대적할 어떤 일이 네 형제에게 있음을 거기서 기억하거든 24. 네 예물을 거기에,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맨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자 오늘 말씀이 여러분들을 좀 불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예수님 당시에 누군가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려고 예배를 드리려고 예물을 가지고 가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내가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어 아 내가 예배자로서 이렇게 헤서는 것은 아 내가 합당한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거든 그 예물을 놓고 가서 와 화목하고 와서 이 예물을 드리라. 예배는 그렇게 쉽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예배자로 준비되지 않는다면 그거 예배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 오늘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준비가 되어 여기에서 있는가?


  지난 더 글로리라인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 뭐냐면 그 성가대 석에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설교할 자격과 찬양할 자격과 기도할 자격을 갖추지 않고 세상의 부패와 그리고 돈 마약 그 찢은 사람들이 그 세상일을 그대로 하면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불편한 거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는 거야 맞아요. 그렇게 예배자로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그 예배자로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의 편의대로 서서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제가 우리 젊은 부부들이 이렇게 만나면 많이 질문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저도 이제 36년을 넘게 살다 보니까 아 목사님 사모님은 얼마나 싸우세요. 이런 질문들을 해요.


  그리고 우리 별로 잘 안 싸우는데 그러면 굉장히 실망해요. 진짜냐고 묻기도 하고 그런데 제가 언젠가 그런 얘기 했던 거 같아요. 제 아내하고 저하고 같이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어요. 저희가 참 안 싸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제 아내는 금요일 토요일부터 제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안 합니다. 왜냐면 제가 주일 날 설교해야 되니까 뭐 여러분 교인들 중에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아내가 지금 다혈질이 아아 막 이렇게 다혈질의 특징은 막 이렇게 화가 나더라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잊어버려요. 그런데 제 아내가 그 다혈질이 주말에는 참아요. 그래서 제 삶에 지혜가 생긴 거예요. 아내가 화나는 일이 있을 땐 주말에 얘기를 해요.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면 별로 문제가 없어요.


 우리 가정에 참 작은 일일 수 있지만 예배자로 서기 위해서 설교자로 서기 위해서 우리가 감정대로 살지 않는 거 오늘 여러분들이 이 예배에 나오기 위해서 예배자로 서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감정이 아니라 준비된 자로 우리들이 나온다면 이 예배가 다르지 않을까요? 우리의 편의대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는가? 오늘 말씀의 결론이 될 거 같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드린다고 하는 그 예배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저는 구별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번의 예배가 있어요. 어떤 장소에 들어도 괜찮아요.


 우리가 지난 코로나를 지나는 동안 그런 얘기 많이 했잖아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을 때 교인들에게 이렇게 해서 여러분 하나님은 여기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도 계십니다. 여러분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분들 그 자리에서 예배 하세요. 코로나가 끝나고 나니까 많은 교회들에서 유튜브 닫습니다. 여러분들 예배를 예배당에서 드려야지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예배를 동일하게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시간을 선택하든 어느 장소를 선택하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삶에 어떤 구별이 있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지요.


한번 생각해서 예배는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들이 그곳에 가서 머무르는 곳이 예배할 장소일거요.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예수님 오셔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예배일까요. 저는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우리들이 거하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편안한 곳에 하나님 오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우리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예배일 텐데 우리는 구별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어떤 예배를 드릴 수도 있지만 여러분들의 삶에 구별이 무엇인가 제가 참 여러분들 그렇게 하기 싫은 걸 자꾸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토요 예배 나와서 우리 주일날은 다른 교회 흩어져서인 앤 아웃에서 작은 교회 가서 예배도 드리고 여러분들이 사역도 좀 도와주고 헌금도 하고 작은 교회를 도와줍시다.


  우리니까 10여년을 그렇게 해요. 교인들이 너무 너무 힘들대요. 그리고 사실 교회 예배가 흔히 말해서 그냥 좋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거 맞는다고 생각해요. 왜 우린 예배의 목숨 거니까 이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새 가족들이 와서 등록을 하고 이제 막 만나기 위에 예배 좋다고 예배를 지금 여기서 드리려고 했는데 와 봤더니 토요예배 나오고 뭐 주일날 흩어진다. 그러고 이 내 어떤 새 가족이 저한테 그런 얘기해요. “목사님 기껏 결정하고 왔는데 뭘 나가라 그러세요.” 화가 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아직 믿음과 신앙이 여린 사람들이 자기의 편의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지만 아니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편의를 제공해야 되는 거예요. 아직 예배도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할까?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이 있고 내가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앞에 기꺼이 우리의 불편을 감수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마음들이 우리들에게 있을 때 아 그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야 여러분들이 어떤 돈을 하나님께 헌금해 관계없어요. 그런데 똑같은 돈이지만 여러분들의 삶에서 구별된 돈인지 아니면 그냥 있는 돈 중에 일부인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구별된 그런 예배 구별된 삶을 드리는가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그 글을 하나 아 제가 쓴 글이에요.


 우리 이어령 장관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당신은 크리스천입니다. 제가 그 책을 보다가 이렇게 정리해 놓은 글이 있습니다. 얼마 전 이어령 장관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온 [당신은 크리스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민아 목사의 예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딸을 따라 예배에 나가고 딸이 그렇게 좋아하니 세례도 받고 그렇게 기독교의 문지방을 밟았던 이어령 전 장관이 참 힘들었던 것이 있었답니다.


  굳이 예배를 드리면서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말하며 찬양을 하는 그런 모습은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말이요. 그런데 그 딸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그렇게 열정적으로 예배하는 딸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매 시간 그런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면 어떻게 예배일 수 있느냐고 생각하게 되서 세례를 받고난 후 이장관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독교를 비판하다 죽을 때가 돼서 천국에 가려고 하느냐고 말이지요. 이어령 씨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는데 참고 살았다고 합니다.


 본질을 벗어난 교회와 목회자들을 바라보며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었지만 그 모습들이 본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고 합니다. 어떤 선생님이 일탈을 했다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며 의사가 실수했다고 병원을 찾을 환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어령 씨는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자신의 비참함과 간절함이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발 시력을 잃어가는 딸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 기도만 이루어진다면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전혀 가능성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딸의 눈이 완전히 고침을 받았을 때 당황을 했답니다. 내가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구나! 교회당을 나오게 된 동기는 자신의 무기력과 비참함 때문이었는데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니 예수님의 외로움과 고독감이 보이더라는 겁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도 오병이어의 기적만 붙드는 사람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사랑을 외면하는 우리들 때문에 우리 주님이 얼마나 외로우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며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지방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난 이 말이 굉장히 은혜가 되었어요. 예배로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 주님의 외로움이었다. 주님의 외로움이 보이니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신앙의 문지방에 들어서게 되서 예배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고 아 이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주님의 외로움이 보였다.


  이게 그렇게 은혜가 되더라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 그게 예배나 여러분들이 어떤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어떤 시간에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그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의 삶의 그 선택 나의 편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으로 여러분들의 삶과 여러분들의 예배가 구별될 때 우리는 그때 예배자로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도전합니다. 진정한 예배자로 살아가기 위하여 여러분들의 삶에 선택 거룩한 선택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예배자로 서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영상녹취 / 김은영 목사-


☞예수님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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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24.01.20 설교 감사합니다.
  • 작성자서울장애인교회 | 작성시간 24.01.21 감사합니다.
  • 작성자# 이현채 @ | 작성시간 24.01.2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4.01.21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음으로 해서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군요,
    누구를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이랍니다.
    어머니에 조건 없는 사랑, 우리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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