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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28)*맹세 말라.
야고보서 5장 11-12절 / 신윤식 목사
➤“11. 보라, 참는 자들을 우리가 행복한 자로 여기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께서는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니라. 12.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먼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 하라. 이것은 너희가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약 5:11-12 KJV)
 <설교> 본문말씀에서 야고보는 맹세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신자는 법정에서 증인 서약하는 것도 안 된다고 말하지만 야고보는 그런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세상의 주관자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어떤 맹세를 해도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그 맹세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의지가 강해서 맹세를 지키고자 해도 형편과 상황이 맹세를 지킬 수 없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하루에 성경을 10장 보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했을 때,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실천만 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10장을 읽을 수 있는 형편과 상황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지 그것까지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지킬 수 없는 맹세
아무리 맹세를 해도 하나님이 병들게 하신다면 인간의 맹세는 지켜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한다는 것은 곧 세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망각하는 것이며, 매일매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고 있음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맹세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과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맹세했을 때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창조주}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맹세는 지켜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엄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교묘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하늘이나 땅이나 다른 것을 두고 맹세했으면 사정에 따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맹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33. ¶ 또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스스로 거짓 맹세하지 말고 네가 맹세한 것들을 [주]께 이행하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코 맹세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왕좌이기 때문이요. 35. 땅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그것이 그분의 발받침이기 때문이요, 예루살렘을 두고도 하지 말 것은 그것이 위대한 [왕]의 도시이기 때문이라. 36. 네가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 것은 네가 머리털 하나를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마 5:33-36)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늘이나 땅이나 무엇을 두고 맹세를 해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맹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이든 땅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맹세가 아니라 ‘오늘 내가 기도한 것도 성경을 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맹세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하나님만이 ‘이렇게 하겠다.’는 맹세를 하실 수 있는 것이고, 맹세하신 것은 분명히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당에서 소원이 있으면 서원하고 기도하라는 말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요구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자신의 요구에 응답하시면 어떠한 보답을 하겠다고 서원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서원이라고 하는 인간의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 정성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를 무당 수준으로, 미신의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엉터리들입니다.
이익을 챙기는 사기꾼 맹세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이익을 챙기려는 사기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마치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교묘하게 꾸며서 미혹을 하니 사기꾼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말에 미혹되는 것도 십자가에는 관심이 없이 자신을 위한 욕심으로만 가득한 채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우리를 사셨고 구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소유인 신자가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인간의 의지와 열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신자는 자신의 결단이나 의지를 믿고 맹세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도로서 진심으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신자 되기를 소원합니까?
사도처럼 어떤 고난과 핍박에서도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뻐하고 찬송하는 세상도 어찌 할 수 없는 능력의 성도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하다면 맹세를 하고서라도 그런 신자가 되고자 열망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성도라면 그런 마음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가 어떻게 자기 결단과 의지를 앞세우는 맹세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도는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라 할 것은 아니요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예 할 때 예하고, 아니요 할 때 아니요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예든 아니요 하든 항상 주변의 상황을 살피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면서 결국 예할 때 아니요 하기 십상이고 아니요 해야 할 때 예하는 것입니다. 맹세를 하여도 자신을 위해 맹세하고 예와 아니요 해도 진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따라 말을 바꿉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죄 정함을 받아야 마땅할 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항상 살아도 자신을 위해 사는 삶에서 떠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면서 결국 성도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것이고,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요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맹세하고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목적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19-20절을 보면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너희 가운데서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는 아니요 하신 분이 아니었으며 그분 안에는 예만 있었느니라. 20.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분 안에서 예가 되고 그분 안에서 아멘이 되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느니라.”고 말합니다.
주님께 약속
하나님의 약속이 왜 예수님에게는 [예]만 되고 [아니요]가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구원의 사역을 하나님이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도 자신들의 사역을 주님에게 온전히 맡겼을 때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의 인생 역시 주님의 권능과 은혜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리기를 소원한다면 똑같이 아니요는 없고 오직 예만이 역사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맹세하고 내가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삶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람이 맹세하고 사람의 의지로 맹세를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는 그런 말에 대해서는 아니오 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도에게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간절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