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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야기(71)-요나서(1)

작성자(一麥.)|작성시간25.10.23|조회수290 목록 댓글 4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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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야기(71)-요나서(1)

자료 / 박신배 교수

 

➤“8. 거짓되고 헛된 것들을 준수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받은 긍휼(矜恤)을 버리되 9. 나는 감사의 목소리로 주께 희생물을 드리며 내가 서원한 것을 갚겠나이다. 구원은 주께 속하나이다. 하니라.”(욘2:8-9 KJV)

 

1. 우리의 생각과 다른 창조주의 생각

 

요나서는 재미있는 동화책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린이 기독 동화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 삼일 동안에 있다가 토함을 받아서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 사명을 망각하고 다시스로 놀러갔다가 거기서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위에 배에 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만 배가 좌초되는 재난을 맞이했다가 제비뽑기에 걸려서 바다 속에 빠지니 바다가 잔잔해서 배가 안전해지고 자신은 고래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11. 바다가 움직이며 사나워지므로 그때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네게 무엇을 해야 바다가 우리를 위해 잔잔해지겠느냐? 하니”(욘1:11).

 

이 이야기는 사명을 가진 주의 종들의 소명이야기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세상일에 욕심을 가지거나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그만 주의 일을 하지 않을 경우에 당하는 재난을 종종 듣게 된다. 소위 백만장자, 수백억의 재산가가 한 순간에 물질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니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한 것이 생각나서 회개하고 주의 종의 길을 가게 되었다. 종을 부르기 위해 하나님은 한 순간 바람을 후 부는 것처럼 물질을 불어가시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요나서가 이처럼 주의 사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동화와 같지만 사실과 같은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진짜와 같은 이야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요나서는 12소선지서 중에 예언서와 같은 않은 형식이다. 다른 예언서는 예언 설화를 모아놓았는데 이 요나서는 예언자에 대한 산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예언서에 넣은 이유는 그가 니느웨 성에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4. 요나가 그 도시로 들어가 하룻길을 다니기 시작하며 외쳐 이르되,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뒤엎어지리라, 하니 5. ¶ 이에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며 그들 가운데 가장 큰 자부터 가장 작은 자까지 굵은베 옷을 입었고 6. 말이 니느웨 왕에게 다다르매 그가 자기 왕좌에서 일어나 자기 몸에서 옷을 벗어 내려놓고는 굵은베 옷으로 몸을 덮고 재 속에 앉았더라.”(욘3:4-6)

 

요나의 사명이 강대국 수도,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적국 앗시리아가 하나님을 믿고 돌아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멸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가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이었다. ➤“1. 한편 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곳을 대적하여 외치라. 그들의 사악함이 내 앞에 다다랐느니라. 하시니라.”(욘1:1-2).

 

우리의 생각과 창조주의 목적은 차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박 넝쿨을 아끼며 조그만 식물에 마음을 쓰고 우리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에 전부를 거는데 창조주의 목적과 마음을 그렇지 않은 것을 본다. ➤“9.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그 박으로 인해 분노하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죽는다 할지라도 내가 분노하는 것이 옳나이다. 하므로 10. 그때에 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하지도 아니하고 자라게 하지도 아니한 박 곧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그 박을 네가 불쌍히 여겼거든 11. 자기의 오른쪽과 왼쪽을 분간할 수 없는 자가 십이만 명이 넘고 또한 많은 가축이 있는 저 큰 도시 니느웨를 내가 아껴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4:9-11)

 

2. 창조주의 우주적 사랑을 보여주는 요나서

 

요나서는 예레미야서나 엘리야 이야기처럼 3인칭 화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문학적으로 욥기나 룻기, 에스더처럼 아이러니(Irony) 기법으로 기록된 교리적 목적을 가진 소설(novella)양식이다. 요나서는 여러 가지 개별적 장면을 가지며 세 장면이 특징적인데 고집 센 요나가 창조주에 저항하는 장면을 이룬다. 먼저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간다.(욘1;1-3).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회개 기도를 하며 창조주의 구원와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는 니느웨로 간다.(욘1:17-3:3).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으로, 바다들 한가운데로 던지셨으므로 큰 물들이 나를 에워쌌고 주의 모든 큰 물결과 파도가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2:3).

 

셋째 니느웨 성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박 넝쿨 그늘 아래 보고 있는 요나의 모습이다.(욘4:1-11). 반면, 창조주는 백성 12만 명을 구원하시기 원하고 계신다. ➤“1. 그러나 요나가 그 일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매우 분노하여 2. 주께 기도하며 이르되, 간청하나이다. 오 주여, 내가 전에 내 나라에 있었을 때에 내 말이 이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먼저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이는 주께서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큰 친절을 베푸사 해악에 대해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기 때문이나이다.”(욘4:1-2).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이셔서 구원이 아시리아 니느웨 백성들에게 미치기를 원하신다. 요나서는 그 보편적 사랑을 나타내는 책으로서 크신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을 잘 보여준다.

 

요나서는 이방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그러한 보편적 사랑을 현실적으로 가져오는 분임을 나타낸다. ➤“8. 사람과 짐승이 굵은베 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참으로 그들은 각각 자기의 악한 길과 자기 손의 폭력을 버리고 돌아설지니라.”(욘3:8). 세상은 재난과 재앙으로 하나님의 분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회개하지 못하고 있다. 터키의 지진이나 필리핀 따가이 따가이, 딸 화산 폭발이나 중국 우한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병 확산 등이 갖는 재앙의 원인을 모르고 있다. ➤“4. 요나가 그 도시로 들어가 하룻길을 다니기 시작하며 외쳐 이르되,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뒤엎어지리라. 하니”(욘3:4).

 

➤“1. 이 일들 뒤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많은 사람들의 큰 음성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이 주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이는 그분의 심판들이 참되고 의롭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음행으로 땅을 부패시킨 그 큰 음녀를 심판하셨고 자신의 종들의 피의 원수를 그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그들이 다시 이르되, 할렐루야, 하매 그녀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더라.”(계19:1-3).

 

요나서는 유대 민족주의와 보편적 세계주의가 맞닥뜨리는 책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해 유대 국수주의(nationalism)로 나가는 길목에서 요나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서 적국까지도 포용하고 품는 세계적 개방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1. 그러나 요나가 그 일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매우 분노하여 2. 주께 기도하며 이르되, 간청하나이다. 오 주여, 내가 전에 내 나라에 있었을 때에 내 말이 이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먼저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이는 주께서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큰 친절을 베푸사 해악에 대해 목적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기 때문이나이다.”(욘4:1-2) 고국에 있는 요나와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성을 멸하지 아니하시는 주님 사이에 간극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요나서는 회개할 아시리아 니느웨가 재앙을 맞지 않을 가능성을 예시(豫示)하며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1. 그때에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주 자기 하나님께 기도하며 2. 이르되, 내가 내 고난으로 인해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셨고 내가 지옥의 배 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나이다.”(욘2:1-2).

 

요나는 비둘기라는 이름을 가진 예언자로서 북왕국의 왕 여로보암 2세(주전 787-747년)때 아밋대의 아들 요나라는 선지자가 예언하기를 잃어버린 지역이 회복하리라고 말한다. ➤“25.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 대언자 요나의 손으로 친히 하신 말씀대로 여로보암이 하맛 입구에서부터 평야의 바다까지 이스라엘의 지경을 되찾았으니 26.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매우 심하여 갇힌 자도 없고 남은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시고 27. 주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우리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그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더라.”(왕하14:25-27).

 

이 시대의 요나는 아모스와 동시대에 예언하였지만 후기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의 정경화 과정에서 보편적 사랑이 이방인에게까지 구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긍휼을 가지신 교훈적 이야기로 주전4-3세기에 쓰여 졌다고 본다(쉬미트). 그래서 후기 포로기 이후 시대에 이 예언자는 ‘민족적 구원의 예언자’가 영웅이 되었는데 어떻게 비둘기라는 요나라는 이름으로 늘 웃는 낯으로서 혹은 더 좋게 어리석은 본성을 가진 사람으로 나타나는가?

 

이는 하나님의 긍휼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렇다고 본다. 요나서는 12소선지서의 일부로 들어가서 전면에서 선지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예언을 드러내는 책이 되었던 것이다. 이는 요나서가 가지고 있는 보편주의(Universalism)의 특성이 룻기나 에스더서, 다니엘서 등과 같이 하나님의 보편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주전 4세기 페르시아 시대 말에 최종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말한다(앤더슨).

 

원래 요나서는 좀 더 긴 ‘물고기 이야기’였는데, 오늘의 요나서로 변형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고래의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바다 7곳을 돌아다니는 큰 고래의 배 속에서 삼 일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토함을 받아서 살아난다. 이는 많은 상상력을 불어 일으키는 이야기이지만 요나의 사명과 하나님의 사랑이 초점이 되고 있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요나서의 구조를 보면 요나서 1-2장은 바다에서 있는 이야기이고, 요나서 3-4장은 육지에서 있는 이야기로 반분된다. 바다에서 이야기는 요나서1:1-3 사명과 도망감, 요나서1:4-16절은 선상에서 폭풍속의 위험에서 잔잔해지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또 요나서 1:17-2:10절에서는 요나가 삼 일 낮과 밤을 물고기 뱃속에서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2:3-10절은 감사시편으로 고난과 탄식의 순간에서 회개를 통한 구원과 감사의 단계로 나가는 시편의 구조를 보여준다.

 

인생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이나 국가의 모습도 이와 같은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5. 물들이 나를 에워싸되 혼까지 에워쌌으며 깊음이 나를 둘러막고 해초가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자기 빗장들과 함께 영원히 내 곁에 있었으나,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썩음에서 끌어 올리셨나이다.”(욘2:5-6).

 

바다는 혼돈의 세력을 말하며 어둠의 상황을 이야기 하지만 육지에서는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장(場)이 된다. 그래서 육지에서 요나서 3장은 새로운 사명(1-3절)과 니느웨 성에서 선포(4절) 인간과 짐승들의 탄원의 금식(5-9절) 하나님의 돌이킴(10절)을 보여준다. 4장에서는 결국 땅에서 하나님의 관대한 처분에 대한 요나의 분노가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다르고 창조주의 목적과 인간의 뜻이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다.

 

➤“10. ¶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을 버리고 돌아선 것을 보시고 친히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전에 말씀하신 해악에 대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욘3:10). 오늘 일어나고 있는 우한 폐렴 바이러스 전염병은 하나님을 떠난 재앙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요나에게서 보여주는 심판의 연기와 하나님의 인내는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기도와 간구로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아시리아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중보 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우리의 평안을 구하는 길이다.

 

➤“20.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오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둠이 되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이나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0-21) =다음 편에 계속=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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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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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현채 | 작성시간 25.10.23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9).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25.10.23 설교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5.10.24 💖따뜻한 배품은 가슴에 남는다고 합니다.
    미소가 따뜻한 사랑을 나누며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복된 하루 되세요.💖
  • 작성자서울장애인교회 | 작성시간 25.10.2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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