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7: 9 내가 비옵는 것 - 요 17: 11 아버지께 가옵나니
요 17: 9 내가 비옵는 것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
예수께서는 막연히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고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 곧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여기에 선택의 진리가 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는 말씀은 선택의 진리를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인류 중 일부를 선택하셨다는 진리는 성경적 진리이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택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택자들은 빠짐없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1]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본 절에서 예수께서 위하여 간구하는 대상을 제자들에게만 제한시키셨다고 해서 세상을 위하여 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제자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있다(L. Morris).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과 제자들은 밀접한 상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Lenski), 예수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유지 시키신다.
(1) 비옵나니
'비옵나니'의 헬라어 '에로탄'(*)은 종속 관계에서 사용하는 '아이테인'(*)과는 달리 대개 동등한 위치에서 말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는 곧 중보자로서의 예수의 신적 신분을 시사한다.
(2)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예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도 기도하신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요 3: 16) 궁극적으로 세상 역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대상이다.
본 장에서도 예수는 세상이 '믿을 것'(21절)과 세상이 '알게 될 것'(23절)을 위해 기도하신다. 예수는 제자들의 죄만을 짊어지신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짊어지셨다.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는 세상의 어리석음과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하셨다.
* 눅 23: 34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세상은 제자들과 달리 하나님과 대립적(對立的)인 위치에 있다. 따라서 그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른 것은 필연적이며, 세상을 위한 기도는 더 이상 세상이 '세상적'이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회개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L. Morris, C.K. Barrett).
2]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는 세상에서 그의 말씀을 듣고 회개를 외쳐야 하는 제자들을 위해 먼저 기도한다.
요 17: 10 내 것과 아버지의 것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
예수께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 곧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가리킨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神性)을 나타낸다. 신성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없다.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다”는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신적 구주이심을 알고 그를 인정하고 믿고 경배함으로 그가 영광을 받았다는 뜻이다.
1]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모든 피조물은 모두 이처럼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라는 말씀은 피조물 중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Luther).
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함을 증언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의 말씀'(7, 8절)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2절), '그에게 속한 제자들'(6, 9절) 뿐만 아니라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지녔던 신적인 존재와 영광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Lenski, Luther).
따라서 예수의 인성은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신성도 예수의 것이다. 이것은 아들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부자 관계로서 예수의 계속적인 중보(中保) 사역을 보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 롬 8: 34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2]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하여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예수는 제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았다고 완료형으로 기록한다.
이러한 완료형은 제자들의 복종적인 믿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미 영광을 받으셨음을 시사함과 아울러(6, 8절) 장차 제자들의 신앙 고백과 복음 사역을 통해 영광 받으시게 될 것을 암시한다.
외관상 제자들이 동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특출한 신앙을 보였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말씀하심은 제자들의 장래에 대한 예수의 신뢰와 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혹자는 이 완료형 시제의 사용을 저자가 보다 후대의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하나(C.K. Barrett) 그다지 합당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영광을 아들이 받았지만, 그것은 곧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기에 예수를 통한 영광의 길이 되는 것이다.
3. 하나 되게 하소서 ( 17: 11 - 16 )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요 17: 11 아버지께 가옵나니 -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예수께서는 떠나실 것이며 세상에는 제자들만 존재하게 된다. 즉 아직까지 보내실 보혜사 성령도 없기에 잠깐이지만 제자들은 홀로 남아있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의 주권에 있는 것처럼 제자들 또한 하나가 되어 보호받을 것을 간구하신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승천을 앞두시고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그의 이름으로 구원하신 제자들을 보전하셔서 하나가 되게 하시기를 기도하셨다. 제자들의 연합의 본보기는 하나님과 아들의 연합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은 영적, 본질적 연합이다. 이와 같이 택자들의 모임인 교회의 연합은 영적, 정신적 연합이어야 한다.
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시간이 임박해짐에 따라, 자연히 예수의 관심은 황량한 세상에 남는 제자들에게 닥칠 위험에 집중되었다.
본 절의 기도 내용은 특별히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승천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시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할 수 있다. 예수는 부활 승천 후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시고 성령 안에서 제자들을 계속 보호 인도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죽음에서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막간(幕間)에는 예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제자들을 맡기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Godet).
2] 거룩하신 아버지여!
세상의 죄악과 대조를 이루는 '거룩하다'라는 단어가 아버지의 칭호에 붙여졌다.
* 출 15: 11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 레 11: 44 -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 시 22: 3 -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거룩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동의어 반복적 표현이다. 아버지의 이름 즉 본질은 모든 죄와 분리되어 있고 대립되어 있기에 거룩한 아버지에게 죄악 가운데 남겨두는 제자들의 보전을 간구하는 것은 조화를 이룬다(Lenski).
또한 이 말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 45)고 말씀하심으로 세상으로부터 성별을 요구하셨던 것과 같이 제자들에게 당신 안에서 세상과 성별되기를 바라는 예수의 간구를 담고 있다.
3]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헬라어 '테레오'(*)는 '조심스럽게 돌보다', '굳게 붙들다', '보호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며 본 장에서는 '제자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6절)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제자들을 보전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악이며 그 수단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계시 특히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모든 신성(神性)과 뜻을 가리킨다. 이후에 사도들은 자신들의 복음 사역의 능력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한다.
* 행 4: 10-12 –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4]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이름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저희를 성별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신다.
'하나'가 되는 근거는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이다. 예수는 고별 설교 속에서도 연합과 하나 됨을 계속 강조하셨다.
* 요 13: 34-35 –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 15: 13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본 장 기도에서도 계속 반복하고 있다(21, 22, 23절).
'하나가 되게'라는 표현에 대한 여러 견해를 살펴보자.
Ⓐ '하나가 되게'가 아니라 '하나로 계속 있게'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L. Morris, Lenski).
제자들은 이미 아버지가 '예수에게 주신 이름에 의하여 하나가 되었으므로 계속 하나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켜 달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 제자들은 독립된 여러 개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연합된 하나(as a unity)로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보는 견해(Barrett).
Ⓒ 제자들이 예수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유기체적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세상의 온갖 불의와 죄악으로부터 성별 되고, 보호받아야 함을 뜻한다는 견해.
세 번째가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되지만 나머지 두 견해도 보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교회 분열의 문제는 단지 외형적 조직의 분열 문제만이 아니다.(김효성 목사) 실상 교리적, 정신적 분열이 더 큰 문제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다룬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교인들의 마음의 분열이었다.
* 고전 1: 10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 엡 4: 2-3 –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의 연합에 대해 몇 가지 원칙들이 있다고 본다.
첫째, 교회는 성경의 근본 교리들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경의 근본 교리들은 교회 연합의 기초이다. 어떤 교회 연합체이든지 성경에 계시 된 기독교 근본 교리들 위에 조직되어야 한다. 성경의 근본 교리에서 이탈하는 것이 이단이다.
기독교 근본 교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기적 행하심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 등의 사실들이 있고 그 핵심은 그의 십자가 대속(代贖) 사역이다. 또 이 모든 진리의 기초가 되는 것은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성에 대한 믿음이다.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성을 부정하는 자는 확실히 이단이다.
둘째, 교회는 중요한 교리들에서도 가급적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경의 중요한 교리들에서 탈선하는 것은 큰 오류들이며 그런 오류들을 양심적으로 포용하기는 힘들다. 여기에 교파들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잘못된 교리가 구원에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는 그런 자들 혹은 그런 교회를 정죄하지 말고 한 교회의 지체로 여기며 서로에 대해 긍휼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셋째, 교회는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 교리들에 있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진 자들을 포용해야 하며 그런 문제로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은 이런저런 지식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잘 깨닫지 못하는 신자들의 영혼을 귀히 여기고 사랑과 인내로 그들을 포용하며 그런 문제에 대하여 함께 연구하고 토의함으로써 다같이 일치된 지식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