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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 : 3 약하며 두려워하고 - 고전 2 : 5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 상 )

작성자jung8h|작성시간23.10.26|조회수41 목록 댓글 2

고전 2 : 3  약하며 두려워하고 - 고전 2 : 5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 상 )                           

 

 

고전 2 : 3  약하며 두려워하고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 능력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머물렀을 때 사람으로서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으나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인 바울 자신은 약했다.

 

이런 사실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 내용의 중심이 된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잘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느낄 때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충실히 전해야 한다.

 

 

1]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거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게노멘'(*)은 '갔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은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의 뜻이다.

 

바울은 본 절 초두에서 '카고'(*, '내가 또한')라는 말로 시작하여 주제를 전환하고 있다.

 

 

2] 약하며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약함'은 육체적인 허약이 아니다.

 

그가 가끔 자신의 육체적인 허약을 언급하였다.

 

고후 10: 10 -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본 절에서는 전체 문맥상 육체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Hodge).

 

바울의 마음이 약하고 두려웠던 것은 그가 고린도에 이르기 직전 아덴에서의 전도에 실패한 것이 그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행 17: 17-34 – 바울의 아덴 전도 –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아덴 사람들아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하니라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설상가상으로 바울이 당도한 고린도 지역은 이교도들의 세력과 각종 철학자들의 사변과 음란한 도덕적 타락상이 활개치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온갖 술수로 바울을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린도 지방에서 성행하던 이교도들의 강한 세력들, 철학자들의 사변과 교만한 태도, 그리고 음탕한 도덕적인 타락상 등이 난무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 때 느꼈던 인간적인 중압감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강하고 담대한 대 사도였다.

 

고후 4: 7-11 -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엡 6: 19-20 -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자기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겸비한 인격자였음을 보여준다.

 

바울 사도는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에 그러했다고 갑자기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갈 1: 6-7에서 보듯이 성도들이 참 진리에만 계속 머무르지 아니하고 다른 복음을 속히 좇을 수 있음을 우려하므로 사도가 경계하여 한 말이다.

 

갈 1: 6-7 –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의 우려는 고린도 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오늘날 도처에 변질된 복음이 난무하고 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방법대로가 아닌 쉽고 빠르다는 세속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전도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을 뿐 아니라, 온갖 기복적인 동기로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몇 분 또는 몇 시간 만에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완성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 즉각적 결심의 방법은 거부감 없이 널리 행해지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방법을 통하든 간에 현실적으로 성도의 숫자가 불어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면서 더욱더 몰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고후 11 : 14에서와같이 사탄이 광명한 천사를 가장하여 사람을 속일 때 쉽게 분별하기 어려운 변질된 복음도 허다하다.

 

고후 11: 14 -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아무튼 날림과 졸속의 즉석 풍조가 기독교에도 만연하므로 오늘날 기독교는 신자를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못하고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종교인만을 양산해 내게 된다.

 

 

고전 2 : 4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

 

사도 바울은 전도하며 설교할 때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했다.

 

여기에 전도자의 바른 자세가 있다. 복음 전도자는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 단순한 복음 전파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신다. 그 능력은 과거에 외적으로 나타난 기적들뿐만 아니라, 또한 어느 시대나 내면적 변화의 능력, 즉 죄인을 회개시키고 믿게 하는 구원의 능력을 가리킨다.

 

 

1]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의 헬라어 '페이도이 로고이스'(*)는 '유혹하는 말'(enticingwords, KJV), '그럴 듯한 말'(plausible words, RSV)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유혹하는 말, 곧 인간의 지혜가 상상해 낸 설득조의 말을 의미한다. 바울은 사람들을 믿음에 복종하도록 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논쟁이나 설득으로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학문에는 그와 같은 논리와 설득력, 그리고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웅변술과 화려한 말들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지혜가 부각되면 십자가의 도는 헛되게 된다(1: 17).

 

지혜의 권하는 말이 원문에는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되어 있다. 사람의 지혜란 세상의 지혜와 같은 말로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보이는 현상 세계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적 지혜를 가리킨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보이는 현상 세계의 일이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모든 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다.

 

전도를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가 세상 지혜로 이해할 수 있는 세상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서 해야 하며, 제일 선행 조건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의 임하심을 의뢰하여야 한다.

 

 

2]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강한 영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1: 18).

 

여기에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의 헬라어 '아포데익세이 프뉴마토스 카이 뒤나메오스'(*)는 (1) '능력 있는 성령의 나타남' 또는 (2)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이라는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능력'의 헬라어 '뒤나미스'(*)가 종종 이적적인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전체적인 문맥에 비추어 (1)의 번역이 타당하다.

 

즉 성령께서 능력 있게 나타나심에 근거하여 바울이 복음을 전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성령의 나타나심에 의존하여 설교했으므로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이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전도의 근거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에 둠에 대해서는 행 1: 8에서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전도 명령을 통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순서에 따라 전도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1-2에서 주님의 전도 명령과 성령 강림을 통한 전도의 시작과 3-7의 예루살렘 전도, 8-12의 유대와 사마리아 전도, 13-28의 땅끝 전도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반드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권능이 함께 하시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막 16: 15-18의 말씀과 같은 많은 표적과 기사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막 16: 15-18 – 15 또 이르시되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러나 만일 성령을 받지도 않고 성령의 권능도 함께 하지 않는 가운데서 일종의 뜨거운 종교심을 가지고 전도한다면 그런 가운데서도 수적인 증가는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참으로 구원받는 성도들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이 포교할 때 성과를 얻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고전 2 : 5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복음의 성격이 그러하듯이, 성도의 믿음도 사람의 지혜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다.

 

이처럼, 성도의 믿음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를 믿게 하셨다.

 

 

1]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본 절에서는 바울이 왜 인간의 지혜로 된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전도하고 가르친 이유는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믿음'의 헬라어 '피스티스'(*)는 정관사 '헤'(*)와 함께 사용되어 믿는 행위 그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에 기초한 믿음의 본질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너희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Mare).

 

바울은 전도하며 설교할 때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하였다. 여기에 전도자의 자세가 있다.

 

복음전도자는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단순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 단순한 복음 전파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신다. 그 능력은 단지 외적으로 나타나는 기적뿐만 아니라, 또한 내면적 변화의 능력, 즉 죄인을 회개시키고 믿게 하는 구원의 능력을 가리킬 것이다.

 

 

2]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다만'의 헬라어 '알라'(*)는 본 절을 앞 절과 완전한 대조를 이루게 하는 접속사로 믿음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은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의 근거가 이성에 호소하는 논증(論證)이 아니라 진리와 함께 그리고 진리로 말미암아 심령에 역사(役事)하는 하나님의 권능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그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서 그들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도록 가르친다.

 

복음의 내용이 능력이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머물었을 때 인간적으로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구원의 능력으로 사용하셨으나 복음을 전하는 당사자인 바울 자신은 약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 내용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잘 드러낸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느낄 때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전해야 한다. 복음의 성격이 그러하듯이, 성도의 믿음도 사람의 지혜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믿음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를 믿게 하셨다.

 

전도는 사람의 아름다운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사실을 단순히 전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 오늘날도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다.

 

실로암 사건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거나 혹은 죄인이라면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표적을 행할 수 있는지 논쟁이 생겼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이고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아무리 설명하려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단순하지만 완전하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그가 지금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는 안식일이나 예수에 대한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순종하여 만물을 분명하게 보게 된 사실만은 안다고 말했다.

 

이것이 신앙인의 축복이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경험하지 못했던 심령의 변화를 체험하는 놀라운 변화된 생활이다. 누가 뭐라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십자가는 인생의 운명과 가치를 바꾸어 놓는 천국의 열쇠가 되고 하늘의 문이다용서와 사랑의 마당이 되고 무대가 된다.

 

십자가를 얼마나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고십자가가 삶의 중심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의의와 가치가 결정된다.

 

여러분들의 삶도 십자가 앞에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교회에 커다란 십자가를 높이 매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십자가 앞에서 여러분들의 운명이 변화를 받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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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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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23.10.26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3.10.26 💖하루를 시작하면서 웃음으로 시작 한다면
    안될 일도 좋은 결과로 돌아 올수있다 합니다.
    미소는 행복을 만들고 역경 속에서
    탈출 할수있도록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오늘도 활짝 웃으시는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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