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도들간의 사랑(3:8-12)
⑧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⑨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⑩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⑪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⑫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3:8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권면하고 마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의 권면과 교훈을 좀 더 계속되게 하셨다.
첫째, 우리에게 마음을 같이하라고 권면하였다.
'마음을 같이하라'(호모프론)는 생각을 같이하라는 뜻이다. 성도들의 교제는 생각의 일치에서 이루어진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16에서 '서로 마음[생각]을 같이하며.'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1:10에서는 '같은 마음[생각]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하였다.
빌립보서 2:2에서는 '마음[생각]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생각]을 품어.' 즉 생각이 서로 같아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르면 다투고 분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이 하나 되도록 힘써야 한다.
둘째, 서로 체휼(동정하며)하라고 권면하였다.
'체휼하다'(쉼파테스)는 같은 감정을 가지다, 동정심(同情心)을 가지다는 뜻이다. 사람은 생각이 첫째로 중요하지만, 아울러 감정도 중요하다. 감정이 같은 것이 좋다.
어떤 이는 무엇을 좋아하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것을 싫어하면 서로 사랑으로 단합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도들이 어떤 일에 대해 좋아하는 같은 감정을 가지고 다른 일에 대해 싫어하는 같은 감정을 가질 때 일치 단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다.
셋째, 형제를 사랑하라고 권면했다.
사랑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예수께서도 친히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는다.'고 말했다(고전 13:4-7).
넷째, 남을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하였다.
'불쌍히 여기다'(유스플랑크노스)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다는 뜻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부족과 연약을 볼 때 멸시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자비로운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울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교훈했다(엡 4:32).
다섯째, 친절하라고 권면하였다.
'겸손하며'(타페이노프론)은 전통사본(Byz)에는 '친절하며'(필로프론)라고 되어 있다. 겸손함과 친절함은 거리가 멀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겸손하고 친절해야 한다.
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베드로는 본 절에서 2:18-3:7에 있는 명령을 마무리하면서 5개의 형용사를 사용함으로 완곡한 권면을 하고 있다. 본 절에 사용된 5개의 형용사는 동일하게 분사적인 용법을 취하고 있다. 이는 특별한 계층으로 부터 성도의 특성으로 관심을 옮긴 것으로(Goppelt, Selwyn) 신자의 상호 관계에 대한 언급이다.
2)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호모프로네스)
이것은 '같은'을 뜻하는 '호모스'와 '마음'을 의미하는 '프렌'의 합성어로서 '한 가지 일에 뜻을 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일한 의견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가 서로에 대한 동일한 관심을 가지며 영적인 끈으로 연합되어야 함을 시사한다(Michaels).
* 행 4:32 -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 동정하며(체휼하며, 쉼파데이스)
이것은 '함께'를 뜻하는 '쉰'과 '고통을 받다'에 해당하는 '파스코'의 합성어이다. '쉼파데이스'의 직접적인 의미는 '동정심을 갖다'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참여하여 고난 받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것을 나타낸다.
* 히 10:34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4) 형제를 사랑하며(필라델포이)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나오는 '필라델포이'는 '사랑'에 해당하는 '필로스'와 '형제'에 해당하는 '아델포스'의 합성어이다. 이는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속시키는 형제애로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윤리적 덕목이다.
* 롬 12:10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살전 4:9,10 - ⑨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⑩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 히 13:1 -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 벧후 1:7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 불쌍히 여기며(유스플랑크노이)
이것은 '좋은'의 뜻을 가진 '유'와 '마음'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합성어이다. '유스플랑크노이'는 히포크라테스 당대에 '내장이 강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의미가 변화되어 '용기 있는'이나 '인정 많은'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Selwyn).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이나 동정심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 고후 7:15 -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 몬 1:7 -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6) 겸손하며(타페이노프로네스)
이것은 '겸손한'의 의미를 가진 '타페이노스'와 '마음','생각'에 해당하는 '프렌'의 합성어이다. 이는 예수께서 가지셨던 마음으로 낮은 마음을 나타낸다.
* 잠 29:23 -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 빌 2:6-9 - ⑥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⑦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⑧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⑨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3:9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섯째, 남에게 보복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주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고(마 5:39)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셨다(마 5:44 전통사본; 눅 6:27-28).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교훈했다(롬 12:17).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위해 부르심을 입었다. 그 복이란 죄 사함과 구원의 복, 평안의 복, 또 영광스런 천국과 영생의 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이 복을 깨닫고 귀히 여기고 감사하며 또 서로에게 이 복으로 축복해야 한다. 사람이 이 구원과 영생의 복을 잃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부족한 형제라 하더라도 이 복에서 제외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해 이 복을 빌어야 한다.
1)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베드로는 본 절에서 일반적인 불신자와의 관계를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해치고 욕하는 자에게도 보복하는 일이 없이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교훈이다.
* 눅 6:27-29 -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 눅 23:34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갚다'(아포디돈테스)는 당연히 갚아야 하는 것을 가리키는 '아포디도미'(지불하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복을 빌라'(율로군테스)는 저주의 반대말로 '좋게 말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악이나 욕으로 갚아도 될 만한 상황 속에서라도 저주나 앙갚음을 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고 중보 기도해야 함을 시사한다(Blum).
2)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입었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히나, ...을 위해서)로서 목적절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 절의 '히나'는 목적절로 보아서는 안 된다. 만약 목적절로 해석하면 복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본 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복을 빌어야 한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Lenski,Bengel, Blum).
3:10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고 천국의 좋은 날들 보기를 소원한다. 죽음은 죄 때문에 왔고 그것은 슬프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에게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셨고 천국의 복된 날들을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모든 일을 확증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이런 놀라운 약속의 세계를 바랄진대, 거기에 합당한 자들답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
먼저 성도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한다. 악한 말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남의 명예에 손상을 주는 말을 가리킨다. 물론 불결하고 더럽고 음란한 말들도 악한 말에 포함된다. 음란하고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런 악하고 더러운 말을 그쳐야 한다.
또 성도는 입술로 궤휼 즉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셨고(계 21:8), 주 예수께서도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계 22:15).
1)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본 절은 시 34:12-16을 인용한 것이다. 본래 시편에서는 '생명'과 '좋은 날'이 이 세상과 관련된 표현이나 베드로는 본 절에서 시편을 인용하면서 그 의미를 종말론적 차원까지 확대하고 있다(Blum).
즉 베드로는 '생명'이 단순히 '이 세상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망인 영생을 지칭하는 것으로(Michaels), '생명을 사랑하고'는 7절의 '알아'와 연결되어 단순히 생명을 사랑하고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깨달아서 그 목적에 맞게 소망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Lenski).
'좋은 날'은 시편 기자가 '이 세상의 아름답고 즐거운 날'로 묘사했으나 본문은 장차 올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Beare, Kelly) '그리스도인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날'을 가리킨다(1:8). 이렇게 영생을 소망하고 사랑하며 다가올 세계를 기다리는 자는 곧 그리스도인이다.
2)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영생을 사랑하고 다가올 세계를 간절히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혀를 조심하여 악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 약 3:6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궤휼'(돌론)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해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삼가하며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화평은 세상에 목표를 두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이루어진다.
3:11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성도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한다. 선은 남에게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위로를 주는 것이다. 또 성도는 서로 간에 화목을 구해야 한다. 성도는 악과 거짓을 버리고 선과 화목을 구해야 한다. 말에 있어서 뿐 아니라 행실에 있어서도 그러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또 히브리서 12:14에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확증하였다.
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떠나'(엑클리나토)는 문자적으로 '돌아서라'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의지로 악에서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가운데 선을 행해야한다(Tasker).
2)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구하여 이를 좇으라)
본문은 시 34편에서 인용한 듯하다(Goppelt,Michaels). '화평을 구하는 것'은 서로를 세워 주는 것이다.
* 딤후 2:22 -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현실적인 삶에 순응하여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삶이다. 이런 '화평'은 상대가 불신자든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윤리적 덕목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을 다해 붙잡아야 할 것이다.
* 롬 12:18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 고후 13:11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살전 5:13 -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3:12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눈은 의인들, 곧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실제로 의롭게 살고자 애쓰는 자들을 향하신다. 그것은 그의 사랑의 관심과 돌보심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들이 연약할 때 격려하시고, 낙심할 때 위로하시고, 위험할 때 지키시고 도우시며, 그들이 죄를 범할 때 근심하시고 책망하시는 그의 관심과 돌보심이다.
또 하나님의 귀는 의인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신다. 의인들이 감사할 때나 회개할 때나 무엇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낯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향하신다. 그것은 그가 그들의 악한 행위를 보시고 판단하시고 기억하시고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고 징벌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긍휼이 풍성하시지만, 악한 자들에게는 엄위하시고 두려우시다.
1)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Michaels) 시 34:15,16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lum, Stibbs).
'눈'은 항상 자신의 섭리에 따라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감찰하심을 의미한다.
* 출 2:25 -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귀'는 자신이 백성의 필요한 간구를 들으심을 의미한다.
* 출 3:7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2) 주의 얼굴(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의 낯'은 하나님께서 악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진노의 모습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표현이다(Blum). '향하다'(에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1) '넘어서'(over).
(2) '대항하여'(against).
두 의미 중 본 절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은 선을 행하는 자들이나 악을 행하는 자들이나 동일하게 향하시나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넘어 가시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냥 지나가지 않으시고 악한 자를 대적하여 진노하시기 때문이다.
* 시 34:16 -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같은 생각과 같은 감정을 갖자.
이것은 성도들이 서로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상대가 당하는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다. 이것은 하나 된 교회의 모습이다.
둘째, 서로 사랑하며 자비로운 마음과 친절한 생각을 갖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상대의 허물과 부족을 용서한다. 우리는 서로 인자하게 하며 친절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셋째,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복하지 말고, 복을 빌고 악한 말과 거짓말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목을 구하자.
우리가 정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은 주 예수님의 교훈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성도의 본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