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8: 10 애통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 4 )
2]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이런 표현들은 모두 극한 슬픔을 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은 굵은 베옷을 입거나, 머리를 밀었다.
* 삼하 3: 31 – 다윗이 요압과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가
* 렘 4: 8 - 이로 말미암아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이는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 렘 48: 37-38 – 37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이 수염을 밀었으며,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사 3: 24 -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이며
* 사 15: 2 – 그들은 바잇과 디본 산당에 올라가서 울며, 모압은 느보와 메드바를 위하여 통곡하는도다. 그들이 각각 머리카락을 밀고 각각 수염을 깎았으며
* 사 22: 12 -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 렘 47: 5 -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 겔 7: 18 -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 겔 27: 31 - 그들이 다 너를 위하여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띠를 띠고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하리로다.
* 미 1: 16 -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또한,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재 가운데 뒹굴며 슬픔을 나타내기도 했다.
* 겔 27: 30 - 너를 위하여 크게 소리 질러 통곡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며 재 가운데에 뒹굴며
우리는 아모스 당시의 장례식 관습을 엿볼 수 있다. 어떤 옷을 입습니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굵은 베를 입는다고 했다.
당시의 굵은 베는 염소 털이나 낙타 털로 짜서 만든 옷이다. 상복으로 쓰였다.
또는 선지자들이 입기도 했다. 입는 방법은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죽으로 만든 띠를 사용했을 것이다.
* 왕하 1: 8 -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 사 15: 3 -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 지붕과 넓은 곳에서는 각기 애통하여 심히 울며
* 사 20: 2 -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 사 22: 12 -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 막 1: 6 -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또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머리를 밀어 버린다.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슬픔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 또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가슴을 치기도 하고, 옷을 찢기도 하고, 먼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했을 것이다.
3]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10절 끝 부분을 보면 슬픔을 더욱더 고조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 하며."
독자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더 이상 대를 이어나갈 아들이 없습니다.
가정의 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독자가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스라엘에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성경에 보면 아주 큰 슬픔을 나타낼 때 "독자를 잃음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렘 6: 26 -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홀연히 우리에게 올 것임이니라.
* 슥 12: 10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0절 마지막에도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고 했다.
모든 사건의 결과는 기쁨과 승리가 아니라, 고난과 파멸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단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아모스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 차례에 걸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은 아모스가 예언한 그대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반드시 이루어지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심판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945년 8월이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까사끼에 원자탄이 투하되기 직전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아무런 경고도 없이 원자탄을 투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경고장을 뿌렸다.
"시민 여러분! 8월 6일 오후가 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 투하될 것이다.
시의 중심지에서 적어도 반경 50㎞ 밖으로 다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중에서 전단을 뿌렸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경고장을 보고 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고장을 무시하고 코웃음을 쳤다.
드디어 8월 6일 오후 경고한 대로 원자탄이 투하되었다.
피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은 다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심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등법원으로, 대법원으로 계속해서 끌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 이후의 심판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후의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번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때는 아무리 울며불며 뉘우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4]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의 비밀 ( 8: 1-10 ) / 성지교회
장마가 그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 밤 열대야 현상으로 잠못 이룬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가 절기상으로 대서였고, 내일은 중복입니다.
바야흐르 불볓 더위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푸른 바다, 녹음이 우거진 시원한 계곡, 동네 앞 느티나무나 원두막, 피서,
그리고 풍성한 여름 과일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특별히 과일이 풍성합니다.
수박, 참외, 포도, 자두, 복숭아가 있습니다. 여름과일은 빛깔이 화려합니다.
수분과 당분이 많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는 빙과류보다는 과일을 먹어야 수분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름과일은 오래 보관이 힘듭니다.
물론 요즘은 냉장시설이 잘 되어 전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름과일은 오래두고 먹을 수 없습니다.
빛깔은 화려하고 맛있지만 금방 철이 지나고 오래 보관하기 힘든 것이 여름과일입니다.
그래서 ‘여름 한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름실과 한 광주리 환상이 나옵니다.
그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모스는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6.6km 떨어진 드고아 라는 조그마한 동네에서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뽕나무를 심는 농부였습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무거운 짐진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모스에게 무거운 짐이 지워졌습니다. 흔히 아모스를 가리켜 ‘재앙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은 여로보암 2세입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13대 왕으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다윗·솔로몬 시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가장 넓은 영토와 여러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정치 외교적인 안정과 경제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평안함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자의 인권이 무시되고 신발 한 켤레 값에 팔리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인신매매를 비롯하여 부정과 불의가 만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황금만능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영적 암흑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부르셔서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방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의 메시지를 선포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에게 여름실과 한 광주리를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러자 아모스는 “여름실과 한 광주리입니다.”대답합니다.
여기서 여름실과는 히브리어로‘카이쯔’인데 ‘끝' 혹은‘끝장’이란 단어는‘케쯔’를 씁니다.
이렇게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연이어 사용함으로 여름실과인‘너희들은 이제 끝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보여주신 여름실과 한 광주리는 싱싱하고 풍성한 과일이 아니라 끝물 과일입니다.
겉은 멀쩡한 것 같은데 속은 곯아서 먹을 수 없는 썩은 과일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직면해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싱싱하고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향기를 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이 곯아터진 늦여름의 썩은 과일 같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너희들의 미래는 이제 끝장이라는 준엄한 말씀입니다.
왜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재앙에 직면하게 되었을까요?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이 바로 여름실과 한 광주리 같은 모습은 아닌지 돌이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 그들이 여름실과 한 광주리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
이스라엘 백성들은 월삭을 지켰습니다.
월삭은 매월 첫째 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들은 또한 안식일도 지켰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월삭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누가보아도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형식은 있는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키기는 지키는데 아주 인색한 마음으로, 아까워 하는 마음으로 지켰다는 것입니다.
몸은 제사를 드리러 왔지만 마음은 언제 이 시간이 지나갈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했습니다.
마음은 딴 곳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을 재구성하면 이렇습니다.
‘아 빨리 곡식을 팔아야 하는데,
이 놈의 월삭은 왜 이렇게 자주 돌아오는 거야.
빨리 밀을 팔아야 하는데 왜 안식일은 이렇게 자주 오는 거야.
귀찮아 죽겠네. 안지키자니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지키자니 시간이 아깝고’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태도였습니다.
안식일은 오늘날 주일성수를 말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성도의 의무요 특권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에게 은총을 내리시는 축복의 날입니다.
느헤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주일은 나를 위한 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날입니다.
영어로 ‘The Lord's Day'라고 합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위한 날이 되면 일요일이 되고, 주님을 위한 날이 되면 주일이 됩니다.
주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6일동안 세상 속에 살던 주의 자녀들이 거룩하신 주님 앞에 모여 경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안식과 평안으로 채워주십니다.
따라서 예배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임재의식이 중요합니다.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Coram Deo)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느끼면 우리는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종종 예배시간에 종종 엉뚱한 생각에 잠기거나 졸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의 전략입니다.
마귀는 예배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배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예배 드리거 나오려고 하면 마귀가 갑자기 남편을 통해, 자녀들을 통해 시험을 들게 만듭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좀 기분 나쁜 소리해도, 말을 좀 듣지 않아도 혈기를 부리지 마십시오.
아하! 마귀가 예배를 방해하려고 지금 공작을 하고 있구나.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십시오.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와 지금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주님께 집중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찬양과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기쁨과 감격으로 예배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과 땅의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요즘은 주 5일 근무가 확산됨으로 주일성수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주일성수가 더 쉬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금요일 저녁에 갔다가 토요일 저녁에 돌아와 주일은 가족과 더불어 주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월요병이 있습니다.
주말에 나들이를 가면 대부분 주일 저녁 늦게 파김치가 돼서 돌아옵니다.
그러니 월요일에는 병걸린 닭처럼 직장에서 졸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건전한 직장문화를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을 받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새 힘을 얻는 날입니다.
세상을 이길 권세를 얻는 날입니다.
주일을 형식으로 지키지 마십시오.
성령이 임재하는 기쁨과 감격의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예배의 기쁨과 감격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정성으로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로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합니다.
아무정신 없이 6일을 살다가 주일 아침에 교회가자 하면 ‘아니 벌써 주일이야!’
그런 마음으로 나오면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토요일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거룩한 주일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무엇을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나의 어떤 모습을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주실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나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일주일을 시작하는 첫날을 주님께 온전히 드려보십시오.
나머지 6일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기쁨과 감격을 회복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 삶 속에 예배가 회복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 가운데 충만케 됩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채워 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이 껍데기만 남아 그 영광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썩은 여름과일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형식만 남아 있는 껍데기 예배자가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만이라도 우리의 형식과 위선의 탈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 성지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살아날 때 우리는 생명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는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거짓과 불의가 만연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자들은 불의한 삶을 삽니다.
거짓된 삶을 삽니다. 왜 그럴까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망각하기 때문에 불의와 거짓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4절에 보시면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하려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멸시하는 불의한 태도를 말합니다.
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에바를 작게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그들은 장사를 하면서 에바를 작게하여 부피를 속입니다.
세겔을 크게하여 무게를 속입니다. 저울을 속입니다.
한마디로 남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2800년 전의 여름실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모습입니까?
오늘 이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오늘날 가장 많은 범죄 유형은 사기죄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 상식처럼 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짜가 판을 칩니다.
수입소를 한우로 속여 하는 사람, 공업용 색소를 뿌려 만든 가짜 고춧가루, 가짜 참기름,
거리마다 시장마다 넘쳐나는 짝퉁 상품들 --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서로를 속이고 속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남을 속여서라도 자기 이기심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저울추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 받으십니다.
지금이야말로 온갖 불의와 부정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함을 보여주어야 할 때입니다.
세상에 진정한 짠 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불의와 맞서 아니오 라고 외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며 성실과 정직함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이 시대의 영웅입니다.
어느 택시 운전수의 이야기입니다.
택시를 운전하여 근근히 셋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싶어도 제대로 보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손님이 내린 뒷자리에 가방이 하나있었습니다.
열어보니 현금으로 엄청난 액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이 돈이면 전세로 옮길 수 있는데, 자녀들 교육도 시킬 수 있는데
-- 결국 그는 양심을 속일 수 없어서 파출소에 신고했습니다.
돈을 찾은 사람이 너무 고마워서 상당한 액수의 격려금을 건넸지만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자신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정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바로 이런 자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요?
이 시대가 여름실과 한 광주리 같은 곪아터진 모습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이 공의를 선포해야 합니다.
정직함으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스스로 양심을 속이는 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될 때 이 시대를 살리는 유일한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땅을 사고 팔 수 없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땅을 사봐야 7년 안에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50년 즉 희년이 되면 모든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돈이 없어 땅을 팔았던 가난한 자들도 희년이 되면 자기 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의 부자들은 땅의 주인들에게 은으로 땅값을 지불하고 난 후에 자기 땅임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은으로 가난한 자를 샀다’는 말입니다.
또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이것은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람을 샀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빌려주고 다 값지 못하면 신 한 켤레 값에 그 사람을 종으로 팔아먹는 몰염치한 것을 말합니다.
‘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잿밀은 밀을 벗기고 남은 찌꺼기입니다.
밀기울은 버려도 되고 그냥 줘도 되는 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까지도 돈을 받고 팔아먹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셔는데, 그들은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갚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약한 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했습니다.
신 한 켤레 값이 모자란다고 종으로 팔아버리고, 공짜로 줘도 될 것을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사용하지 않으면 썩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은 속히 사용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돈도 내 지값에 있다고 해서 내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소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에 쓸 때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얼마전 노숙하는 어떤 분이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습니다. 그런데 보따리를 절대로 놓지않고 끌어 않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안심을 시키고 풀러보니 현금으로 2천 7백만원이 들어 있더랍니다.
아무리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어도 매일 노숙하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다 죽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 바르게 쓰여질 때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은사도 자신만을 위해 쓰여지면 의미가 없습니다.
남을 세우기 위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쓰여질 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바르게 선용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바르게 쓸때 주도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을 때 빨리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도울 수 있을 때 빨리 도우시기 바랍니다.
충성할 수 있는 지혜와 건강 주셨을 때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어리석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이기심을 극대화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쌓아두고도 모두 썩게 만들었습니다. 다 썩어서 자신도 먹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먹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 주변은 온통 악취가 진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신 모든 은혜들을 선용하지 못하면 그것들이 나의 삶을 악취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도 먹지 못하고 남도 먹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주도권을 가지고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선한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여름실과 한 광주리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둠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축제의 노래가 슬픔과 탄식의 애가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여름실과 한 광주리의 환상을 동일하게 보여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우리도 자멸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이 투하되기 직전 미국 군인들이 미리 경고장을 뿌렸습니다. “시민 여러분! 8월 6일 오후가 되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 투하될 것입니다. 시의 중심지에서 적어도 반경 50㎞ 밖으로 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중에서 전단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경고장을 보고 피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경고장을 무시하고 비웃었습니다. 결국 8월 6일 오후 경고한 대로 원자탄이 투하되었고, 피하지 않고 비웃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름실과처럼 썩어 하나님 앞에 버린바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들과 반대로 행하면 됩니다.
그들은 예배가 타락했습니다. 불의와 거짓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선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우리의 살 길은 무엇입니까?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짓과 불의를 몰아내고 정직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주도적으로 선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복된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겉만 화려한 썩어 버린 여름과일 한 광주리가 되지 않도록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무더위로 지치기 쉬운 여름입니다.
다시한번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고 살아있는 예배를 통해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고,
공의와 정직함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아름답게 선용하여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같이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一麥.) 작성시간 26.02.05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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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별이야 운영자 작성시간 26.02.05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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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현채 작성시간 26.02.05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잠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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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하늘바라기 작성시간 26.02.05 💖바꿀 수 없는 어제보다 기대할 수 없는 내일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늘이 가장 좋은 하루입니다.
평생 단 한번 오는 오늘 보람 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jung8h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2.07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