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라
이 사 야 26 : 1 - 7
‘平康’은 복중에 가장 큰 복입니다. 재물이 많은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평강이 없으면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평강하면 행복합니다. 본문은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로 나라는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고 어려움을 당하는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3)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평강’을 두 번이나 거듭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도 평강하게 지키실 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평강하도록 지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평강하고’는 현재형으로 포로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평강하도록 지키신다는 말씀이고, ‘평강하도록’은 미래진행형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도 평강하도록 영원히 지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세상에서도 평강으로 지키시고 죽은 후에 내세에서도 영원토록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된 우리에게도 주신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와 같습니다. 우리는 범죄함으로 죄악 세상에서 사탄 마귀의 짓밟힘을 받는 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포로들이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돌아가야 할 영원한 본향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평강하고 죽어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평강하도록 지켜주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나름대로 평안하게 살던 사람이 죽어서 지옥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평강을 모르고 불행하게 살던 사람이 죽어서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세상에서는 고통을 당하며 살던 사람이 죽어서는 천국에서 영원토록 평강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평강을 누리며 살다가 죽어서도 천국에서 평강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평강하고, 천국에서도 평강을 누리는 사람이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는 복을 받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포로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을 평강으로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을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축복하십니까? 결론을 먼저 말씀드린다면 ‘의인’입니다. 7절에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은 죄가 없는 의인이 아니라 속죄함을 받은 의인입니다.
세상에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의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나와 여러분은 의인입니다. 의인된 나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영원히 지키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의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먼저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자’는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포로가 된 모든 사람들을 평강으로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포로들 가운데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포로 생활에서 평강이 없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소망도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평강이 없는 매우 불행한 자들이였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으로 잡혀 포로가 되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신의를 지킨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신의를 지킨 자들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신의를 지킨 자들은 포로가 되어 이방에서 살면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섬긴 자들이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애굽으로 팔려 종이 되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교회를 잘 섬기던 사람이 다른 곳에 이사를 가서는 교회도 다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교회 일도 잘 하던 사람이 사업이 잘되고 돈이 생기니까 교회 출석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성도는 여기 살던 미국에 가서 살던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 형통할 때도 교회 일 잘 할 뿐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성도가 신의를 지키는 자입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치고 어린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아 와 안 주인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어린 계집아이는 이스라엘 자기 집에 있을 때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리고 잡혀 남의 나라에 종이 되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좋을 때도 믿음이 좋아야 하지만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믿음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의를 지키는 자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리고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영원히 지키시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의인은 심지가 견고한 자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心志가 堅固하다’는 말씀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믿음의 뿌리가 내려 흔들림이 없는 절대적인 믿음을 의미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폭풍에도 흔들리거나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작은 비바람에도 흔들리고 넘어집니다. 사탄 마귀는 성도들이 평강을 누리며 사는 것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평강을 빼앗으려고 온갖 시험을 합니다.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면 사탄 마귀에게 쉽게 넘어갑니다. 심지가 견고한 성도는 어떤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평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심지가 견고해야 합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는 어떤 환난과 핍박도 이겨냅니다. 그러나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자는 작은 시험에도 넘어집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떤 환난과 핍박에도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신앙이라야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만큼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속에 던져지는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속에 던져져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평강으로 지키신다면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기까지 왜 지켜 주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평강으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칠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지지 않도록 지켜주시지 않으셨느냐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면 실패가 없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병들지 않고 사고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던져지지 않도록 지켜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도가 실패하고 사고로 다치고 병들면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면 어떤 어려움도 실패도 없고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막히거나 맺힌 것이 없이 평탄한 대로처럼 무엇이든지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어려움도 없어야 하나님께서 평강으로 지켜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신앙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지기까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칠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지기까지 두고 보셨습니다. 여기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덤 속에 사흘을 지나시고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방에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이다”(요20:26)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으시고 무덤 속에 장사되지 않으셨다면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축복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피했다면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니엘이 평강하겠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지므로 다니엘에게는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다니엘을 괴롭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역시 풀무불 속에 던져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풀무불 속에 던져지므로 해서 그들에게는 현재와 미래까지 평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이나 실패나 질병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당해도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실패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주실 뿐 아니라 평강으로 지켜 주십니다. 실패가 없고 병들지 않았다면 평강은 빼앗겼을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을 섬긴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만큼은 빼앗기지 않고 변함없이 지킨 자들은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많은 손해를 보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변함없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형편 따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을 속이고 자기를 속이는 믿음입니다.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자들은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는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는 어떤 신앙입니까? ‘주를 신뢰’하는 신앙입니다. 주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환난과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역시 풀무불 속에 던져 넣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던 것은 불속에서라도 능히 건져 주실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성도의 믿음은 주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라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과연 하나님을 신뢰하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내 마음을 더 신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재물이나 어떤 권력자를 더 신뢰하지 않습니까? 성도는 그 어떤 것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신의를 지키는 의인입니다. 반석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가 되셔서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평강하고 죽어 천국에서도 평강하도록 지키시는 축복을 받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