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믿음
누가복음 8:40-56(마 9:18-26; 막 5:21-43)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않는 여인이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열두 살 된 딸을 살리기 위해 바쁘게 가시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댐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이 혈루증을 앓은 ‘열두 해’와 야이로의 죽은 딸의 ‘열두 살’의 ‘열둘’(12)이란 성경적인 의미로 ‘완전함’, ‘충만함’을 뜻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구약 시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전체를 의미하며, 광야의 성막과 제단의 열두 기둥은 하나님 백성의 완전한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는 신약 교회의 영적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요한계시록에는 새 예루살렘 성은 열두 문과 열두 기초석과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는 영생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을 고쳐주시고,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린 것은 육체적인 질병을 고칠 뿐 아니라 영적인 구원과 영생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은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48), 야이로에게도 ‘믿기만 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5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은 가진 모든 것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마가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막5:26-28)이라고 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언제 소문을 들게 되었는가를 우리는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처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에 소문을 들었음에도 그는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관심 없는 말로 들었기 때문에 듣고도 듣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는 말은 ‘경청’했다는 말입니다. ‘경청’은 관심 있게 듣고 그 말씀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가진 것과 의사에게 고쳐 줄 것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의 소문을 들었음에도 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을 다 허비하고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지든 차에 비로소 예수의 소문이 듣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도 낫게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음에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믿고, 다른 믿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어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지 못하고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들어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관심 없이 듣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도 듣지 못한 것입니다.
건강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는데 병들고 아프니까 마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듣게 됩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지지만, 삶이 고달프고 영혼이 굶주렸을 때 말씀이 들려집니다.
‘혈루증’이란 병은 혈관 조직이 약해서 혈관 틈을 통해 피가 몸 밖으로 불규칙적으로 새 나오는 병입니다. 주로 여성의 자궁벽에 종기가 생겨 피가 흘러나오는 병으로 자궁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율법도 혈루증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으며 이 병에 걸린 자를 멸시 천대하였고 사회로부터 격리 시켰습니다(레15장).
그는 부정한자라서 성전에도 올라갈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어도 함께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 도와 달라고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그 여인은 세상에서 버려진 자이며 구원도 영생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메고 와서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다줄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말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고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효험도 없고, 그가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지만 도리어 더 중하여졌습니다(막5:26).
그때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절망의 벽에 부딪힌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고쳐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마가는 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함일러라’(막5:27,28) 라고 기록했습니다. ‘생각함’이란 말은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허비해도 소용이 없고 병은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해서 그가 고침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곧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어가는 열두 살 된 외동딸을 살리기 위해서 바쁘게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밀려든 무리에 에워싸여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의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댈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에는 장애물이 크고 많았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서 믿음대로 무리를 뚫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바쁘게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그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능력’(Power)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붙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질 것이라’(마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혈루증을 고침 받은 그 여인에게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음’을 불 수 있습니다.
많은 장애물도 그의 믿음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는 순간 그의 혈루증은 즉시 그쳤습니다(44).
‘혈루 근원이 말랐습니다’(막5:29). ‘혈루 근원이 말랐다’는 말은 완전한 고침을 의미합니다.
열두 해를 그를 괴롭히던 지독한 혈루가 완전히 말랐습니다. 흘러내리던 피가 일시적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완벽한 치료를 의미합니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막5:29). 자신이 병 나은 것을 직접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창조적인 능력을 증명합니다.
우리의 죄 사함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순간에 과거와 현재의 죄뿐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도 사함을 받게 되는 완전한 구원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이 고침 받은 것을 아셨습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이 아무도 모르게 행한 그 모든 것까지도 다 아셨습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들 ‘나는 아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무리가 밀려들어 밀어서 닿았다’고 말했습니다(45). 그러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막5:32,33).
예수님께서 고침 받은 그를 찾으신 것은 그의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8:48;막5:3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에게 공개적으로 내린 구원 선언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은 그 여인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였으나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죽은 야이로의 딸도 살려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54,55).
예수님으로부터 고침받은 후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예수님께서 살리신 야이로의 딸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 감사하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하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낙원에 들어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여인은 어떤 믿음의 사람이었습니까?
첫째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입니다(마9:21).
둘째로 겨자씨 한 알만한 생명있는 믿음입니다.
셋째로 많은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들어가는 믿음대로 행하는 믿음입니다.
넷째로 고침받은 것을 숨기지 않고 예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다섯째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은 믿음입니다.
열두 해를 열루증을 앓은 여인의 이와 같은 믿음은 세상적으로 고침을 받을 수 없는 질병도 고침을 받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열두 해를 혈루증을 고침받은 여인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믿음으로 고침받고 구원받고 영생하는 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질병도 고침받고 죄사함 받고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