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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기에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15.02.08|조회수71 목록 댓글 5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기에

이사야 59 : 1 - 8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개에게 물려 병원에 치료를 받는데 의사가 선생님은 미친개에게 물려서 광견병에 걸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광견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종이에 뭐라고 쓰기에 유서를 쓰는가 해서 의사가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그 병은 금세 죽지 않습니다. 요즘 약이 발달해서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금새 죽지 않는 줄은 알고 있었요. 광견병에 걸려 있는 동안 물어뜯어야 할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고 하더랍니다. 한이 맺혀 있고, 물어뜯고 싶은 사람, 일생을 한을 품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광견병에 걸렸을 때 마치 미친개처럼 물어뜯어 죽이고 싶다는 말입니다. 소리 안나는 총이 있으면 쏘아버리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아들이 자기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이고 8개월을 시신을 방에 방치한 사건이 보도된 것을 보고 모두가 놀랐을 것입니다. 상당한 충격을 주는 사건이라 신문지상에 그 사건을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가장 신뢰하고 사랑해야 할 모자 관계가 어쩌다 엄청난 비극을 만들었는가? 엄마가 아들을 물어뜯고 아들이 엄마를 죽여야 하는 관계까지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엄마를 죽인 아들이 경찰의 조서를 받으며 하는 말이 5년 전에 가출한 아버지를 향해 그동안 아버지만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느냐 이제 날 버리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행을 가져온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러한 일들이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평강을 알지 못한데서 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들은 평강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8)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친 개에게 물렸다니까 자신도 그 개처럼 물어뜯어야 할 사람의 이름을 적는 사람이나, 아들의 손에 죽는 엄마나, 엄마를 죽인 아들이나, 그리고 그의 아버지, 이들 모두는 평강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강이 무엇이가를 알았다면 그런 끔찍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도 평강이 있어야 하고, 운동하는 사람도, 과학하는 사람도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 평강이 깨어지면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평강이 없는 가정은 무서운 곳이 되어집니다. 이웃과의 관계에도 평강이 없으면 이웃이 아닌 물어뜯어 죽이고 싶은 원수가 됩니다. 평강을 알지 못하면 제일 먼저 생각이 악해집니다. 7절에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라고 했습니다.

 

평강을 알지 못하니까 그 생각은 악한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광견병에 결렀다고 하니까 당장 물어뜯을 사람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평강을 알지 못하니까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닥달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를 죽이고 싶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럼 평강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여호와 안에서의 즐거움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58:14). 여호와 안에서의 즐거움을 얻는 것은 무엇으로 됩니까? 그것은 오직 공의를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이사야는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32:17)고 말했습니다. 그럼 공의는 무엇입니까? 공의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만족시키는 바른 행위”(6:25)입니다.

 

너무 어려운 말씀을 해서 무슨 말인지 햇가려 이해가 잘 안되지요. 그럼 좀 쉽게 말하면 평강의 길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권리를 바르게 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할 의무와 권리를 바르게 하고, 자녀로서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바르게 행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또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의무와 권리를 알고 행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평강이 깨어집니까? 역시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회자가 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하지 못할 때 공의가 깨어지고, 나아가 교인 역시 교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하지 못할 때 평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시끄러운 교회를 분석해 보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으므로 공의가 사라지고 평강이 깨어지고 시끄러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권리를 바르게 행하는 것이 공의라고 하니까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공의는 내가 해야 할 의무를 바르게 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알고 바르게 행할 때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평강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강을 알지 못하니까 그때부터 악한 생각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7). 악한 생각은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다고 했습니다. 악한 생각의 결과는 황폐와 파멸입니다.

 

악한 생각을 하니까 그 마음에 독사의 알을 품게 됩니다.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5)고 했습니다.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을 짭니다. ’거미줄을 짠다는 말은 독을 품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 위해 거미줄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선을 품고 선을 행하여야 할 사람이 가장 악한 마음으로 치밀하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악하고 마음에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을 짜서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단이 흐려집니다. 공의가 없어집니다.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공의는 내가 해야 할 의무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판관이 바르게 판단해서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의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을 말하고 악행을 만들어 죄악을 낳고 있다고 했습니다. 공의가 사라지고 거짓을 말하고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 중에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담장 하나 사이로 여러 해를 같이 지내던 두 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집에 닭이 담장을 넘어 저쪽 집에 가서 알을 낳고 꼬꼬덱 하고 울고는 이 집으로 넘어 오는 것을 아이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쪽 집 아이에게 우리집 닭이 너희 집에 가서 알을 낳았으니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쪽 집 아이가 쫒아가서 살펴보고 알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쪽 집 아이는 내 눈으로 분명히 보았는데 왜 없냐고 하느냐고 하며 달라’, ‘없다고 하며 두 아이가 대판 싸움을 합니다.

 

이렇게 싸우는 것을 양쪽 집 엄마들이 보고 이제 엄마들이 싸움을 합니다. 해가 질 때 남편들이 직장에서 돌아와 남편들이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쪽 집 남편이 화가 잔뜩 나서 그만 저쪽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러 이쪽 집까지 홀랑 다 태웠습니다. 이제 두 집은 다 타버리고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잿더미가 된 두 집은 그날 밤에 서로 쳐다보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를 생각했을 때 아무것도 아닌 계란 한 개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며 서로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두 집 사이에 평강의 길이 없었기 때문이였습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면 공의가 사라지고 옳고 그름이 없어지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판사라고 하면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 주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판사가 공의대로 판단하지 않게 되면 무서운 세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판사를 지냈던 분이 변호사로 일하면서 사건을 맡았을 때 그 사건을 잘 살펴 억울한 것이 없도록 해 주어야 하는 데 요즘 변호사들 가운데는 사건을 살펴보지 않고 얼마짜리로 해 드릴까요라고 한답니다. 돈 액수에 따라 변호해서 판결을 굽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시대 역시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가장 공의대로 판단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사로운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거짓을 동원하여 진실 자체를 왜곡함으로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억압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불의의 재판이 또 다른 보복과 죄악을 낳았음으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탓하게 됩니다. 잘못에 대한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남에게로 돌립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젊은 이들이 무섭다고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되니까 정부를 탓하며 무리를 지어 시위를 합니다. 일자리가 없어 취직이 안되는 것을 정치 탄으로 돌립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정치 탓으로 돌립니다. 대통령을 욕합니다. 정치를 잘못해서 어렵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을 탓합니다. 날씨가 나빳다고 합니다. 세상을 탓합니다. 이렇게 탓을 하다보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그 원인을 돌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1)는 말씀에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을 구원치 못하는 것이라고 불평을 한 것입니다.

 

부산에서 목회를 할 때 교인들이 여름에 기도원에 가자고 해서 한 번 금정산에 있는 가나안 수양관에 같이 간 일이 있었습니다. 초저녁에 집회를 마치고 산에 흩어져 개인 기도를 하는 데 바위나 나무 밑에 혼자 않자 고함을 치며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를 하려고 하는 데 도저히 시끄러워 기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도를 듣고자 안해도 조용한 밤에 소리치며 기도하는 소리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연히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니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와 안주십니까?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이 과연 계시기나 합니까?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떼를 쓰다가 공갈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전혀 감동케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듣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은 생각하라는 응답입니다. 응답이 없는 것은 너 자신을 돌이켜 보아라는 응답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기도를 듣지 않습니까? 손이 짧아서가 아니고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닙니다. 응답이 없는 것의 원인은 오직 너희에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손에 피가 있고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고 입술은 거짓을 말하고 혀는 악독이 있어서 응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너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왜 응답이 없냐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산 기도를 하고 부르짖어도 왜 응답이 없습니까? 그 원인이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고 귀가 둔해서 듣지 못함도 아니라, 너희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3절에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려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한 마리로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평강의 길을 알고 있습니까?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므로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짧습니까? 귀가 어둡습니까? 라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돌이켜 보십시오. 평강의 길을 알고나 있는지를 ..... 자신을 돌이켜 보시고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속히 평강의 길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평강의 길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의무와 권리를 행하므로 평강의 길을 아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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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15.02.09 좋은 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허창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2.10 감사합니다.
  • 작성자love is | 작성시간 15.10.17 은혜의 설교 감사합니다.
  • 작성자장미화 | 작성시간 17.03.15 설교 감사합니다.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18.08.27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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