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작성자허창수|작성시간19.06.02|조회수814 목록 댓글 8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15 : 14 - 30

축구 선수가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합니다. 어떤 선수는 젖병을 빠는 세레모니를 하여 자신의 어린 아이에게 골 넣은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어떤 선수는 두 손을 모아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로 세레모니를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선수들 가운데 기도하는 세레모니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교회를 중심으로 직분을 맡아 그 일에 충성하여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서울에 모 교회에 장로님은 국가적으로도 큰 일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인정되어 대통령이 나라의 일을 맡아 달라고 했답니다. 그때 그 장로님은 교회에 장로로서 충성하기 위해 사양을 했다고 합니다. 그 장로님 믿음이 대단하지요. 주께서 충성된 종이라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장로로서 교회를 섬기는 것만 하나님의 일이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장로직을 사임하고서라도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성도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멍가게를 하는 것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직분을 맡아 충성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고 직장이나 세상적인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축구 선수는 주일날 경기를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국가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축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라면 축구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에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세 비유의 공통점은 종말론적 교훈입니다. 첫 번째 열 처녀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라는 말씀이고, 달란트 비유는 주께서 오시기까지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교훈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주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맡은 바 사명에 충성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14)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나라로 가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19)란 말씀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재림 하시는 날까지 종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이 달란트를 맡겨주셨다고 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주되 각각 그 재능대로 주었습니다(14,15).

‘종들’은 주께서 세운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과 모든 성도들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모든 성도들에게 달란트를 맡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를 똑 같이 맡긴 것이 아니라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재능대로’란 ‘힘이나 능력에 따라’란 의미로 주인이 종들을 보시고 능력이 있는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기고 좀 부족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 또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따라 다르게 맡긴 것입니다. 혹은 말하기를 주인이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주인은 매우 공평하게 맡긴 것입니다. 재능이 없는 종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겼다면 그것은 그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이 있는 종에게 한 달란트를 맡겼다면 그것 역시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맡긴 것을 ‘달란트’라고 했습니다. 물론 달란트는 당시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습니다. 한 달란트는 일반 노동자가 거의 20년을 벌어야 하는 정도의 가치가 되는 화폐였습니다. 연애인들을 ‘탈랜트’라고 합니다. 연애인들은 남다른 재능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달란트’는 ‘재주’, ‘선천적 재능이나 소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의미로는 ‘은사’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달란트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고 사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라고 생각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에 충성하는 것이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란트’란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재주’, ‘소질’ 등입니다. 성도로서 교회에서 맡겨주신 직분에만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직장이나 사업에 충성하는 것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입니다.

부인들이 살림 사는 것이나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달란트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잘 관리하고 자녀를 바르게 키우는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사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먹고 살려고 장사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장사하는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장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바로 가서 그것을 장사하였습니다. 달란트를 받은 즉시 장사를 했다고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라는 의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재주에 따라 일했다 라고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을 알고 즉시 그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나 소질에 따라 살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재능이나 능력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달란트, 즉 재능을 주셨습니다. 같은 재능을 주지 않고 각각 다르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능을 따라 산다면 지상낙원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화있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산다면 싸움도 전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속이고 빼앗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 은사나 재능을 잘 모릅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한 이후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성공하니까 자신도 그 사람처럼 하면 성공할 줄 알고 그 사람을 따라 하지만 그 사람처럼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바로 가서 장사를 한 종들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나 재능을 따라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나 재능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자신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였다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처럼 유익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 보다 주인을 탓 했습니다. 오늘 실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잘못해서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이 없다든지 운이 없어서, 아니면 세상 탓을 합니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에게로 실패의 원인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 은사나 재능을 알고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는 일에 보람도 느끼고 소득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빨리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음악적인 소질이 있는 아이에게 소질을 따라 가르치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그 아이의 소질을 개발하지 않고 다른 것을 가르치면 그 아이는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과 같이 될 것입니다.

부산에서 목회 할 때 장로님 한 분은 학자요 행정가였습니다. 부산대학교가 설립될 때 중책을 맡았던 분입니다. 그분의 아들은 음악에 소질이 있어 바이올린이나 악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그가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를 할 때 아들은 음악과에 입학 하고자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경영학에 입학 하도록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경영학을 입학하였지만 1년을 다니지를 못하고 퇴학을 했습니다. 자기의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부터 아버지와의 관계는 좋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아들은 가출하고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결국 폐인이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무시한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아들도 아버지도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그분 뿐 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다가 세월만 보내고 살아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알고 그 일을 해서 유익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빨리 알아야 합니다.

농사를 짓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라는 것을 알면 농사를 짓는 것이 즐거워 질 것입니다. 억지로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라고 생각하면 그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꽃을 가꾸는 것 역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주신 은사라고 믿고 그 일을 하면 불평하는 일이 없고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살피는 일이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라고 믿고 하면 축복이 될 것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장사하는 은사를 주셨다고 믿고 하면 더욱 장사하는 것이 즐거워 질 것이며 수익도 많아 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장사해서 달란트를 남긴 종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주인이 와서 종들을 불러 맡겨준 달란트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여 내게 다섯(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받은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서 유익을 남긴 종들을 보고 주인은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살았던 종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시며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 그대로 가지고 왔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게 알았느냐’고 하시며 있는 것까지 빼앗을 뿐 아니라 ‘무익한 종이라’고 하시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살았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고 ‘무익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살지 않은 사람들은 ‘무익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유익을 남긴 종들에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23)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은 ‘바깥 어두운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30)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이 말씀에서 주인이 주신 달란트, 은사를 따라 사는 사람으로 인해 주인이 즐거워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주인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주인의 즐거움’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악한 종을 내쫓은 ‘바깥 어두운 곳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알지 못하고 자기 주관대로 살다가 실패하고 주님 앞에 섯을 때 무익한 종이라 책망듣고 바깥 어둔운데로 쫓겨나는 불행한자들이 되지 않토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불행이 없도록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오시는 날 여러분에게 어떻게 살았는지 결산을 하실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주어진 달란트로 많은 유익을 남겼다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맡겨주신 일을 잘 하였다고 보고하므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의 즐거움에 우리 함께 참여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허창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6.03 감사합니다.
  • 작성자초산나 | 작성시간 19.06.03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허창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6.03 감사합니다.
  • 작성자뚜떼 | 작성시간 19.06.06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샬롬
  • 답댓글 작성자허창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6.07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