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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베데스다이신 그리스도 (요 5:1-9)

작성자한성진|작성시간26.06.07|조회수140 목록 댓글 4

베데스다이신 그리스도 (요 5:1-9)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시간 “베데스다이신 그리스도” 라는 제목입니다. 오늘도 베데스다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롭게 되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에는 여러 문이 있는데 그중에 양문이 있었습니다. 제사하기 위해 양이 들어오는 문입니다. 이 양문 곁에는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습니다. 양을 씻는 곳입니다.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이름과 달리 많은 병자들이 절망 가운데 누워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면 낫는다는 믿음 때문에 그곳은 은혜와 자비의 집이 아니라 늘 경쟁과 다툼과 원망과 좌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거기에 38년 된 한 병자도 있었는데 아무도 그를 못에 넣어 주지 않아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예수 만나 온전히 병 나음을 받고 사람들 가운데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육 간에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 만나 변화될 수 있을까요?

 

1. 주님을 복음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1-2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여기는 양 씻는 곳이지 사람을 씻는 곳이 아닙니다. 얼마나 가진 것도 없고 절망 가운데 있었으면 용한 의원 다 놔두고 그곳을 찾았을까요?

 

다행한 것은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떻게?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셨습니다. 롬10:6-9에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믿으면 만나는 것입니다. 요3:12에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라, 고전3:16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은 주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왜 응답이 없습니까? 왜 누리지 못합니까? 못 만난 것처럼 살기 때문입니다. 함께 계신 줄 알고 대화해 보세요. 찬송해 보세요. 순종해보세요. 주님이 더불어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을 능력으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4-9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여기 치료의 베데스다가 나타납니다.

 

치료의 베데스다 전설일까요? 사실일까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위약 효과)일까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전설인 듯하지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한 기록을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과학자들은 미네랄을 가진 물이 화산석 자기층을 고압으로 스쳐 나오면서 물 분자가 분해되면서 산소 수소 그리고 음 성질을 가진 전자가 입혀지게 되는데 이 전자가 고압으로 물에 입혀질 경우 분출 후 3-5분 정도 머문다고 합니다.

 

이처럼 베데스다는 능력의 못입니다. 병자는 그 혜택조차도 입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었으나 병자는 "예"라고도 답하지 못하고 변명만 합니다. 7절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나이다." 믿음이 없어 보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신학자 리언 모리스(Leon Morris)는 "병자는 물에 대한 믿음은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셨다."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성경 다른 곳에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는데, 여기서는 믿음이 없어도 구원해 주셨습니다. 뭔가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도 소원도 없을지라도 성도는 100번이라도 고침 받을 주님의 능력이 와 있습니다. 막16:17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요14:12에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하셨습니다. 딤후2:10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받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느끼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으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날갯짓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신앙생활해 보세요. 평안이 옵니다. 능력이 생깁니다. 은사가 나타납니다(고전12:7). 사40:31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3. 주님을 진리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9-10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만약 병자가 당시 안식일의 규범만 고집하거나 사람들의 눈치를 의식했다면 이 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대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어도 그는 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처럼 진리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사고방식과 삶이 변해야 합니다. 요8:32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셨습니다.

 

미국에서 노예제 시대에 자유를 얻은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는 해방 문서를 받았지만 노예처럼 행동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분은 바뀌었지만 의식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고 예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니까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아들이다. 나는 왕자다. 나는 공주다.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다. 신부다. 성령의 전이다. 하늘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합당하게 살고 말하고 당당해져야 합니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베데스다이십니다. 세상 베데스다는 구원해 주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영육 간에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진리에 서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함으로 베데스다의 예수를 체험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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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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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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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26.06.07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바라기 | 작성시간 26.06.07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할수 있다면 그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나의 작은 미소 때문에 내가 해준 말 한마디 때문에 그리고 내가 베푼 작은 친절과 포근한 사랑 때문에,,,,,,,
    오늘은 나로 인해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으로 인해 내가 행복하게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서 웃음꽃이 활짝 피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이 가득한 희망찬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 작성자별이야 운영자 | 작성시간 26.06.08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현채 | 작성시간 26.06.08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잠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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