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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권면하며 살아봐요 = 잠언31;1-9(180930)

작성자한상원목사|작성시간18.09.27|조회수334 목록 댓글 4


하나님의 은혜로 권면하며 살아봐요 = 잠언31;1-9(180930)

 

PW : 믿음       BIW : 권면하라          AG : 르무엘 왕의 어머니

TS :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도록 권면하고 훈계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만 안 됐어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던 민수네 식구 4명이 복권에 당첨되어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1학년인 민수에게 이사 온 집이 마음이 드냐?”하면서 묻습니다.

민수는 , 마음에 꼭 들어요. 예전엔 한 방에서 모두 잤는데 이제는 내 방이 따로 있구요.

누나도 방이 따로 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만 안됐어요. 아직도 아빠랑 한 방을 쓰고 있거든요.”

아들 녀석이 볼 때 엄마가 아빠와 한 방에서 사는 모습이 퍽이나 안 좋아 보였나 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부는 각방 쓰면 안 됩니다.

부부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각방을 쓰면 안 됩니다.

각방을 쓸 때부터 사탄이 집요하게 공격해 옵니다.

부부는 싫으나 좋으나 항상 같은 방을 써야 됩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는 교회도 하나여야 합니다.

성도들은 좋으나 싫으나 한 교회에서 꾸준하게 신앙생활 잘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이 이 집 저 집 들락날락해서는 안 되듯이 성도님들은 이 교회 저 교회 들락날락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께서 보내주신 그 교회에서 꾸준하게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어여쁘게 지켜봐 주고 있습니다.

 

P4.

 

르무엘(Lemuel) 왕이 어느 나라 왕인지, 어떻게 살았던 왕인지는 정확하게 할 수 없다.

흔히 르무엘 왕을 솔로몬 왕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에 르무엘 왕이 솔로몬 왕이라면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밧세바가 된다.

하지만 르무엘 왕이 솔로몬 왕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잠언31장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르무엘 왕이라는 사람은 솔로몬 왕이 아니라는 생각이 앞선다.

잠언31장에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훈계하며 가르쳤던 말씀과 실제로 솔로몬 왕이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르무엘 왕이 어떤 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솔로몬 왕과는 전혀 다른 왕일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르무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위한 자”, “하나님께 바친 자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잠언31장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들려주시는 훈계로 쓴 말씀이다.

어머니의 삶, 엄마의 삶은 오직 아들의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들에게 왜 사시느냐?’고 묻는다면 100명이면 100명 다 자식 때문에, 아들 때문에, 딸 때문에 산다고 고백하곤 한다.

신랑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엄마들도 아주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 때문에 산다고 고백한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란 아빠가 자식에 대한 사랑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하다.

아빠 때문에 우는 자식보다는 엄마 때문에 우는 자식들이 훨씬 많다.

아빠가 자식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지만, 엄마가 자식에 대한 사랑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엄마에 대하여 아무리 찬사를 드린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아들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유대인이 되는 요인들 중에서 유대인 아빠와 유대인 엄마에서 태어난 자식은 자동적으로 유대인이 된다.

유대인 엄마와 이방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유대인이 된다.

그러나 유대인 아빠와 이방인 엄마사이에 태어난 자식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 된다.

그 이유는 자식에게 깊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아빠와 이방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지만, 엄마가 이방인에서 유대인으로 개종하면 그 자식은 이방인에서 유대인으로 인정한다.

아빠의 영향력보다는 엄마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신이 직접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든, 입양하여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넘치게 받으면서 자랄 수 있는 아들과 딸로 양육해야 될 의무와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엄마들은 반드시 자기가 낳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으면서 인정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훈계와 채찍으로 양육해야 된다.

 

D4.

 

엄마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

 

생명의 주인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식을 이 땅에 보내시려고 엄마가 될 여인을 찾아다니신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식을 이 땅에 보내시려고 하는데, 아무에게나 무작정 보낼 수는 없다.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존귀한 한 영혼을 보내시기 위하여 온 지구촌을 다 찾아다니다가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한 여인을 찾아서 그 여인의 태를 사용하여 이 땅에 보내주신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이 있다면 바로 부모가 되는 직업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중요하고 존귀한 직업이 많을지라도 엄마, 아빠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직업은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장관들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한 아이의 엄마, 아빠 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것보다 어린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큰 교회의 담임목사는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해 낼 수 있다

아니 나보다 더 잘 해낼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 일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중요하고 귀한 일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시는 것이다.

오직 그 자식의 엄마가 되도록, 그 자식의 아빠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고 감동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배가 아프게 하면서 태어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아이의 엄마가 되도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낳고 싶지 않은 아이를 억지로 낳아서 키운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유와 사정에 의해서 임신하여 그 아이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생명을 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고 인정해야 된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훈계하며 양육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에게 아들 르무엘 왕이 왕으로서의 직임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왕이 되게 하기 위해서 훈계하며 양육하시길 요구하신다.

2절에서 어머니는 아들 르무엘 왕에게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들을 어떻게 권면하고 훈계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말로 다할 수 없도록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는 늘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아들 왕을 위하여 울면서, 가슴 아파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답게 키워야 할까를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살았던 여인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들을 향한 마음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이성의 문제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라고 권면하고 있다.

여자라는 단수형을 사용하지 않고 여자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다.

왕에게는 왕이 가진 권력, 권세 때문에 왕의 주변에는 수많은 여인들이 상존한다.

수많은 왕비들, 후궁들을 비롯하여 시녀들이 상존한다.

우리나라의 역대 왕들도 보면 왕의 주변에는 수많은 여인네들이 득실거리곤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건, 어느 민족이건 왕의 주변에는 수많은 여인네들이 득실거리면서 권력싸움의 중심에 선다.

조선시대 왕들은 대체적으로 단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83세까지 사신 영조대왕같은 왕들도 계시지만, 대체적으로 조선시대의 왕들은 단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 왕들이 대체적으로 단명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여인들 품속에서 살았고, 운동을 하지 않았고, 기름진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온갖 질병에 걸려서 단명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런가하면 항상 정치적인 정적들에 의해서 독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권력가 옆에는 언제나 여인네들이 득실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왕이 아니라 사사들 주변에도 보면 많은 여인네들이 사사들의 주변에 득실거린다.

수많은 이스라엘의 왕들, 유다의 왕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다윗 왕, 솔로몬 왕뿐만 아니라 왕들에게는 수십 명, 수백 명의 여인네들이 득실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잖아도 정신없이 처리해야 될 국정(國政)들이 산적해 있어서 힘들게 살아야 되는데, 왕들 주변에 있는 여인네들이 서로서로 간에 암투, 시기, 질투 때문에 왕의 삶이 하루도 편하게 지낼 날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그런 속사정을 너무나 잘 깨달은 여인이기 때문에 아들 르무엘 왕에게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고 권면하는 것이다.

여인네들 때문에 올바로 국정을 돌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왕비(王妃) 외에는 다른 여인들에게 마음을 나누어주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왕에게 많은 여인네들에게 힘을 쓰지 말고 현숙한 여인 한 여인을 찾아서 현숙한 여인과 더불어 화목한 가정을 꾸리도록 권면하고 있다.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는 10절부터 마지막까지 말씀하고 있다.

 

이웃 나라와 전쟁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웃나라들의 왕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면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해야 된다.

이웃나라와 전쟁하게 되면 그동안 평화롭고 안정되게 맺어온 외교관계는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국제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나라의 왕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이웃나라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전쟁을 하게 되면 많은 전쟁비용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국고(國庫)가 탕진될 수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수많은 군사들이 전쟁에 참전해야 되기 때문에 군사들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백성들의 피를 흘려야만 된다.

전쟁에 군사들이 동원되면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게 된다.

백성들의 삶은 가난해지고 곤핍해지고 더욱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백성들의 입에서 왕을 원망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된다.

왕이 해야 될 사명은 주변국들과 전쟁하여 백성들을 고통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잘 먹고 따스하고 안전하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왕이 해야 될 가장 큰 사명이다.

 

음주문제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어머니는 4-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왕이란 자리는 술과 함께 앉아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산적한 국정을 돌봄에 있어서 수많은 연회를 베풀어야 되는 자리이다.

대소신료들뿐만 아니라 외교사절단과의 연회를 베풀어야 되는 자리이다.

왕이란 자리는 술과 함께 해야 되는 자리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아들 르무엘 왕에게 술로 인해서 피해를 입어서도 안 되고, 술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

아주 좋은 맘으로 시작된 연회 자리에 술로 인해서 좋은 결실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술로 인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연회들도 수없이 많다.

왕이란 자리는 술과 함께 앉아있는 자리이지만, 술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여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그 술을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 주어버리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술로 인해서 잠시나마 고통과 슬픔을 잊어버리고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죽게 되거나 근심이 있는 자들에게 주라고 권면하고 있다.

 

연약한 자를 돌봐주라고 권면하고 있다.

8-9절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고 권면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 왕에게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봄에 있어서 앞장 서야 된다는 말씀이다.

왕이 존재해야 될 이유가 바로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봄으로서 그들이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국가가 해야 될 일이 사회적인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원한과 원성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어야 되는 일이다.

 

나라와 백성들을 든든히 세워 가시는 하나님.

 

르무엘 왕이 어머니가 권면하는 훈계를 잘 듣고 명심하면서 잘 지키게 되면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르무엘 왕이 통치하는 나라에 직접 왕이 되어 주시면서 나라와 백성들을 가장 안전하고 든든하고 견고한 나라로 세워갈 것이다.

그러면 아울러 백성들의 삶도 더욱 더 윤택하게 되어갈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을 주장하면서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수님을 믿는 100만 명의 국민을 만드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새워서 추진하였다.

그래서 군대에는 군목제도, 경찰서마다 경목제도, 각 학교에는 교목제도, 회사들과 직장마다 신우회, 사목제도를 도입하여 어떻게 하든 주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교회당들이 우뚝우뚝 세워지면서 나라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울 수 있는 주춧돌을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바탕 위에 여러 차례 단계별로 경제개발을 시행하면서 단군 이래 5000년 동안 외세들의 침략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더 이상 배고프지 않는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범한 죄악들과 실수들도 많다.

그러나 실책이라 할 수 있는 과오보다는 이분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이 더 크고 위대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좌파정치인들은 처음부터 이승만대통령과 박정희대통령의 세워놓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와 경제발전 위에 세계적인 부강한 나라를 등에 업고 정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모든 것들을 적폐청산이라는 미명으로 과거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고 파괴시키고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마저도 뒤엎으려고 하는 현실이 정말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자유대한민국을 끝까지 굳세게 지켜주옵소서 라고 날마다 울면서 기도하고 있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두 팔로 휴전선을 지켜주시고 자유통일, 복음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한다.

진정한 평화통일은 자유통일이고 복음통일이다. 자유 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주님의 복음이 없는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라 가면에 불과하다.

 

L4 & B4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아들 왕에게 이성의 문제, 이웃나라와의 전쟁의 문제, 음주의 문제와 사회적인 약자를 위하여 권면하면서 아들 르무엘 왕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권면하며 훈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과 신세대들에게 어떻게 무엇이라고 권면해야 될까?

오늘날의 사회에는 권면해 줄 수 있는 어르신세대들이 사라진 불행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어린 꼬맹이들조차도 훈계나 권면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꼬맹이들, 청소년들, 여성들이 버젓이 흡연하는데도, 약자들의 돈을 강탈하고 성폭행하면서 재산을 갈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세대에 살고 있다.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어른들에게 대들고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고 침을 붙어도 그저 지켜만 볼 뿐, 아무런 권면이나 훈계를 할 수 없는 세대에 살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라는 동성애 축제가 서울 한 복판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벌어지도록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부추기도 있다.

어떤 정신 나간 정치인은 동성애를 반대하면 3,000만원의 벌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떠벌리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는 어떤 정신 나간 목사들도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설교할 정도이다.

성경만 제대로 읽어도 알 수 있는 엄연한 죄악을 죄악이 아니라고 설교하고 있을 정도이다.

자살하여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리를 덮기 위해서 죽은 어떤 정치인을 오늘날의 다윗이라느니, 예수님이라느니 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이다.

온갖 죄악의 덩어리를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웃 어르신들의 입을 가로 막고 있는 현실이다.

이럴 때에 정말 오직 예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신앙인들은 어떻게 자녀들과 후세대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고 훈계하고 권면할 수 있을까?

21세기가 다 채워지기 전에, 22세기가 오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으면 하는 맘 간절하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 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된다면, 21세기 더 나아가 22세기에 살아야 되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권면하고 훈계해야 할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를 붙들고 권면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대와 나라와 민족과 지역에 따라서 변하지 말라고 애원하고 매달려도 어쩔 수 없이 변해갈 수밖에 없다.

변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위치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바뀌고 변하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진리, 사상, 풍습, 전통, 생각, 맘이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변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총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은 절대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진리를 믿음으로 붙들도록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권면하고 훈계해야 한다.

 

말보다는 삶의 흔적으로 보여주는 권면을 해야 한다.

 

말은 유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못하고 삶의 흔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먼 하늘에 메아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은 어늘하고 어둡잖아 보여도 오직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바로 이렇게 사는 것이야.’라고 보여줄 수 있다면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능력은 대단할 것이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백 마디로 아무리 권면하고 가르치고 훈계한다 해도 우리들의 삶의 흔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유익을 가져올 수 없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성령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면서 권면해야 한다.

 

사실 무언가에 꽉 박히게 되면 그 무언가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조차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다.

그 무언가에 꽉 박히도록 감동을 주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면 안 되는 일도 되는 일로 바뀐다.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될 수 있는 일들도 얼마든지 안 되는 일들로 바뀔 수 있다.

결국은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온전하게 이룰 수 있도록 강권적으로 역사해 주시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와 백성으로 세워져 갈 수 있다.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 후손들에게도 성령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감동을 주셔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앞에서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셔야 된다.

믿음은 성령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해 주시고 감동시켜 주심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온전히 성령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믿음은 성령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의 길임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어서 사랑하는 자녀들,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훈계하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하는 것이다.

믿음은 주님의 권능으로 훈계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도록 권면하고 훈계하는 것이다.

 

우리교회 (WAWOORI)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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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18.09.27 좋은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한상원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9.27 감사합니다.
  • 작성자초산나 | 작성시간 18.09.28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한상원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9.2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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