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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처소로 세워 가 봐요 = 골로새서4;12-16

작성자한상원목사|작성시간19.02.28|조회수355 목록 댓글 4


가정예배 처소로 세워 가 봐요 = 골로새서4;12-16

 

PW : 믿음        BIW : 예배처소로 세우라           AG : 눔바

TS : 믿음이란 가정을 주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는 처소로 세워가는 것이다.

 

 

욕 잘 하는 초딩

 

서울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3학년에 욕 잘하는 아이가 있었답니다.

이 녀석이 입만 열면 욕을 해대는 바람에 선생님은 마음이 무진장 아픈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님들이 참관하는 공개수업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은 욕 잘하는 녀석이 입을 벌릴까봐 불안했습니다.

그날이 오고, 학부모들이 교실 뒤편에 모두 서 계셨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단어 맞추기 문제를 내셨습니다.

여러분 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뭐가 있죠?”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욕 잘하는 아이도 손을 들었습니다.

절대 그 녀석은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응 그래 한수정 학생 대답 해보렴.”

바다요.”

네 바다가 있군요.. 잘 했어요!”

그럼 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요?”

다시 모든 학생들이 저요 저요외쳤습니다.

욕 잘하는 아이도 외쳤습니다.

그 녀석은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 김영홍 학생 대답 해봐요.”

강이요.. 흐르는 강이요.”

. 잘 했어요.”

선생님은 신이 나고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이 리드를 잘 따라와 준 것에 감사했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할까요? ‘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요?”

침묵... 침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당황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욕 잘하는 녀석만 저요 저요라고 외쳤습니다.

선생님은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시켜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도 순간 그 녀석이 갑자기 믿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결심 했습니다.

그래요 주리학생(욕 잘하는 녀석 이름임). ‘으로 시작하는 단어는 뭐가 있죠?”

하룻강아지요!!”

다행히 안 찍혔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자신감 붙은 선생님께서 그 뜻도 물어 봤습니다.

하룻강아지가 무슨 뜻이죠?”

이 어린이 대답 듣고, 선생님은 거품 물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무엇이라 대답했을까요?

졸라 겁대가리 짱박아논 개새끼요!”

어린 아이들이 욕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대부분 가정에서 부모님이 욕하는 가정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화를 많이 보는 아이들도 욕을 많이 배워서 합니다.

가정에서 욕 하지 않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욕하는 가정이 아닙니다.

믿음의 가정은 서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해 주는 가정입니다.

믿음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가정,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가정은 욕하지 않습니다.

 

P4.

 

주님의 교회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

전투하는 교회와 승리한 교회, 지상교회와 천상교회가 있다.

지상교회는 우리들이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다녀야 되는 교회이고, 천상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의 고백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세워진 교회이다.

지상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악한 영들과 치열한 전투를 해야 되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천상교회는 지상에서 치열한 영적인 전투를 승리로 이끈 믿음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교회이다.

지상에서 치열한 전투를 이기고 승리하여 들어가는 천상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천상교회는 신앙인들이 죽어서 가기도 하고,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들어가는 교회이다.

천상교회는 신앙인들이 죽어서 영혼들이 들어가는 교회이면서 동시에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신앙인들이 죽기 전에도 들어갈 수 있다.

천상교회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먼저 들어가 계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다.

천국에는 아무런 죄도, 잘못도, 문제도 없는 완벽하고 완전하고 온전하고 거룩함 그 자체이시다.

그러나 지상교회는 문제덩어리이다.

지상교회는 천상교회로 들어가기 전에 죄인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 하나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교회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이기는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온갖 죄악 덩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지상교회에서는 좋은 일들도 많지만, 좋지 않은 일들도 수없이 많다.

지상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들도 많이 있지만, 책망을 들어야 되는 일들도 수없이 많다.

지상교회에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일들도 많이 있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온갖 욕설과 조롱거리가 되고 버림을 당하는 일들도 수없이 많다.

지상교회에는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들도 많지만, 아주 작고 협소하고 보잘것없는 교회들도 많다.

지상교회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교회들도 많이 있지만, 사탄과의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배를 당해서 패잔병과 같은 교회들도 많다.

지상교회에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높이고 찬양하는 교회들도 많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사탄을 추앙하고 경배하는 교회들도 많다.

일명 사탄교를 숭배하는 교회들도 많다.

수없이 많은 이단교회들도 교회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세워져 있다.

지상교회는 천국에 소망을 둔 신앙인들이 모여서 세워진 교회이지만, 죄인의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문제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지상교회는 온갖 문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문제없는 지상교회를 찾으려고 하면 무덤으로 가면 된다.

무덤에는 죽은 시체가 묻혀 있는 무덤만 있을 뿐이다.

지상교회는 온갖 문제덩어리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정을 예배드리는 처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Privacy)가 침해될 수 있다.

개인의 사적인 일들이나 공간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가정들마다 독특한 특색이나 감추고 싶은 일들도 있을 수 있지만, 숨기지 못하고 가정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질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고 듣고 봉사하고 섬기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고 고백하고 증거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의 가정을 그러한 신앙공동체, 예배공동체, 기도공동체, 봉사와 섬김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에는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삶, 십자가의 삶, 십자가의 보혈, 예수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삶의 흔적을 아주 조금이라도, 1/10000이라도 닮아가고자 헌신하는 삶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아울러 교회는 획일화 된 교회가 아니라 각 교회와 가정은 각각 다른 삶의 모습과 스토리가 있음을 각자 인정해 주는 배려의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해진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나 기준만이 옳고 합당하고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교회는 분란과 분쟁과 다툼과 부끄러운 수치와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게 된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와서 예배를 통해서 치유와 안식과 평강과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온갖 분쟁과 다툼으로 인해서 상처와 아픔을 당해야 된다면 예배드리는 기쁨과 즐거움과 축복이 사라지게 된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감옥살이하면서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이것을 바울의 옥중서신이라고 부른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라고 부른다.

오늘 본문 15의 말씀에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라고 우리 한글성경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15절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직역성경에서는 라오디케아의 형제들과 눔바와 그녀의 집 교회에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에는 라오디게아에는 형제들이 모이는 교회가 따로 있고, 눔바 여인의 집에도 교회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히에라볼리(Hieraplis)에서 13km 지점에 라오디게아(Laodicea)교회가 있고, 3km 정도 더 가면 골로새교회(Colossae)가 있다.

히에라볼리는 온천지역으로서 따뜻한 온천물이 흐르는 곳이다. 오늘날 파묵칼레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오늘날 파묵칼레(Pamukkale)는 파묵(목화)과 칼레()가 합친 이름으로 목화의 성이라고 부른다.

눈처럼 하얀 석회암층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뒷산이 하얀 석회암층으로 이루어져 마치 목화솜이 만들어낸 성 같다고 하여 파묵칼레가 되었다고 한다.

평원위로 솟은 높이 200미터 절벽의 샘들에서 솟아나오는 칼슘을 함유한 온천수가 계단모양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은 환상적 풍경이다.

히에라볼리에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최초로 집사로 안수 받은 빌립집사 기념교회가 있다.

라오디게아는 교통과 모직 공업의 중심지이다.

유명한 의학교가 있는 도시로서 명성이 있었던 지역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바울의 3차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무는 동안 에바브라(Epaphras)의 전도 활동으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4;13에 보면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바울이 지목한 그는 바로 에바브라를 거론하는 말씀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은 외부적인 큰 핍박이나 내부적인 이단 사상이나 부도덕한 행위로 인한 문제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와 더불어 책망만 받은 교회이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매우 부유했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의복과 안약과 금융업을 통해 얻은 부로 풍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들 스스로 생각하고 자랑하는 지역이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외부적인 핍박도 없었고 이단 사상으로 인한 내부적인 혼란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은 미지근했고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했던 교회이다.

히에라볼리에서 시작한 온천물이 라오디게아로 도착하면 따끈따끈했던 온천물이 식어서 미지근해진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15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상태를 책망하면서 예수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 16절의 말씀을 보면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보내는 골로새서를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읽고 난 다음에, 라오디게아 교회로 보내서 라오디게아 성도들도 편지를 읽도록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낸 편지도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읽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편지를 썼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는 현재 분실되어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여인은 눔바(Nymphas)’라는 여인이다.

눔바는 사랑의 예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눔바의 가정에 라오디게아의 또 다른 교회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눔바 여인의 가정에 있는 가정교회에도 문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면 눔바 여인은 어떤 여인일까?

눔바 여인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사도바울이 눔바 여인의 가정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고 하실까?

 

D4.

 

가정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초대교회는 일정한 건물을 갖춘 교회가 아니다.

유대인 회당이 있는 경우에는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건물이 있을 수 있었지만, 지역에 회당이 없는 경우 또는 회당이 있더라도 유대인 회당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가 쉽지 않다.

일정한 모임의 장소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앙인의 가정에서 예배장소로 사용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어쩌면 가정집에서 모이는 교회는 큰 교회일지도 모른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us I)에 의해서 313년 밀라노칙령을 내리게 되고,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325년 니케아종교회의를 통해서 로마국교화가 되기 전에는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몹시 핍박과 박해를 받으면서 신앙생활 해야만 되었다.

그래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아주 적은 무리들이 남몰래 모여서 예배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처지이다.

특히 터키의 화산암으로 되어 있는 갑바도기아(Cappadocia)지역에는 남몰래 아주 작은 동굴을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신앙생활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오늘날처럼 대형교회당은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성지순례를 가는 터키 땅의 교회당들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세워진 교회들이다.

터키 땅뿐만 아니라 성지순례를 하는 곳곳에 세워진 교회당들은 예수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시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속사도시대, 더 나아가서 교부들의 시대에 세워진 교회당들이 아니다.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국교화 되기 전에는 가정집에서나 동굴에서나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은밀한 곳에서 삼삼오오 신앙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었기 때문에 가정집에서 모임의 장소가 되는 교회는 그런대로 안정되고 안전하고 축복된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 여인의 가정에서 몇 명의 신앙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신앙공동체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다.

어디가 되었건, 누구의 집이 되었건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의 처소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계획 가운데 세워지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된다.

우리 주님께서 섭리하지 않으시면,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질 수 없다.

눔바 여인의 가정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서 예배드리는 예배공동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눔바 여인의 가정을 인정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면서 많은 은혜를 입혀 주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가정에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

 

눔바 여인의 집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안식일이나 주일에는 일정한 시간에 신앙인들이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예배드리는 처소가 된다.

그러기에 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가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주변의 삼엄한 눈초리들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고 초조함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은 바로 삼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좋아하는 예배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주신 증거 중에 하나가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골로새교회를 위해서 쓴 편지에 눔바 여인의 집에 있는 교회에 안부를 전해달라고 편지를 쓴 것이다.

눔바 여인의 가정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처소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눔바 여인의 가정을 축복된 믿음의 가정으로 삼아주셨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기에 눔바 여인의 가정은 삼위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정을 내어드리는 헌신을 한 가정이다.

성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고 기도하고 섬기는 은혜를 베풀어준 가정이다.

가정의 모든 것들을 오픈하고 개방한 가정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눔바 여인의 가정을 축복된 가정으로,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가정으로 세워주시는 것이다.

 

L4 & B4.

 

눔바 여인의 가정을 라오디게아 교회의 또 다른 예배처소로 삼아주셨듯이 우리들의 가정을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처소로 세워야 되지 않겠는가?

현대사회는 가정을 오픈하거나 개방하려고 하지 않는 세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에는 목사님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더라도 댁에서 식사대접하지 않고 식당에서 대접하려고 한다.

그전에는 목사님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는 것을 마치 예수님을 직접 모시고 식사대접해 드리는 것처럼 대단한 일로 여겼었다.

그런데 점점 성도들의 가정을 오픈하는 것에 대하여 부담감을 느끼면서 될 수 있으면 가정 밖에서 식사대접을 하려고 한다.

성도들이 모여도 카페에서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

교회들 마다 앞 다투어서 카페를 만들고 있고, 만들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만들려고 한다.

 

우리 가정을 어떻게 예배드리는 교회처럼 세워갈 수 있을까?

 

우리의 가정을 구역예배, 순예배, 소그룹 모임의 장으로 세우면 된다.

 

대형교회들은 구역예배나 순예배나 소그룹 모임도 카페나 식당에서 모이는 경우가 있다.

구역이나 순이나 소그룹은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가정을 구역이나 순이나 소그룹 모임의 장으로 오픈하면 우리 가정을 교회 안에 있는 작은 교회로 세워가는 것이다.

작은 교회는 말씀과 찬양과 기도와 헌신과 섬김과 나눔이 이루어지는 작은 신앙공동체이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우리 주님께서 임마누엘로 동행하시겠다는 말씀을 의지하여 우리의 가정을 작은 교회로, 작은 신앙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예배처소로 세우면 된다.

 

가정의 아버지, 남편이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의 제단을 쌓는 가정으로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가정의 제사장으로 세워주신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예배를 올려드리면 된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남편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권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선포하는 것이다.

아직 남편이나 아버지가 신앙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머니가 신앙의 대리권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항하여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될 수 있는 가정으로 세워 가는 것이다.

가정예배가 살아 있는 가정이 된다면 가정이 교회처럼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찬송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 있는 가정으로 세워가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을 예배를 드리는 교회처럼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사랑과 복음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정이어야 한다.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신 보혈의 피 값으로 구속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복음을 최우선으로 앞세워야만 온전한 가정교회를 세울 수 있다.

인간의 죄악된 속성, 성격, 인격, 인품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믿음의 자세, 겸손의 자세가 앞세워져야 한다.

가정 곳곳에 주님의 십자가로 가득 채워놓고 항상 그 십자가를 보면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것이다.

가정에 주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것 같은 향기가 묻어나오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입는 가정이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예배드리는 처소에 찾아오시고 임재하시고 감동을 주실 때, 인간의 못된 인성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성화시켜 나갈 수 있다.

인간 자체가 죄인이고, 모난 인격과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입지 않으면 옛 성품, 상처, 아픔, 쓴 뿌리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각기 다른 온갖 상처와 쓴 뿌리를 지닌 채 살아간다.

구정물이 가라앉게 되면 위에는 맑은 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맑은 물속을 헤집으면 온갖 더럽고 역겨운 구정물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감동과 은혜를 입지 않고 쓴 뿌리가 인격이나 성격이라는 이름으로 헤집고 드러나게 되면 인간의 죄악된 속성이 그대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툼과 분쟁과 상처와 아픔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늘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으로 가라앉아 있는 쓴 뿌리들이 표출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

성령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마음과 생각과 인격과 신앙을 사로잡고 주인이 되어서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매사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감동을 입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정이어야 한다.

 

신앙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을 축복으로 받을 때, 비록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온 가족들에게 크고도 놀라운 감동을 베풀어주시도록 기도하고 사모하면서 예배자로 세움을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우리의 영혼은 더욱 더 날개 치며 올라가는 독수리처럼 웅장하게 된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교회예배도 살아난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교회예배도 살아날 뿐만 아니라 직장 신우회 예배도 살아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드리는 예배도 살아난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세계 곳곳으로 파송 받아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지 예배도 살아나게 된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곳곳에서 감사와 힐링과 회복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주님의 사랑이 널리널리 퍼져 나가게 된다.

가정예배가 살아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 자신에게는 평화와 평안과 안식의 노래가 흘러넘치게 된다.

 

우리교회 (WAWOORI) http://cafe.daum.net/GRACEOF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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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19.03.01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한상원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3.02 감사합니다.
  • 작성자초산나 | 작성시간 19.03.01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한상원목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3.0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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