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고린도전서 9:15-27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 중, 즉 주후 50-52년 사이에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구원 받은 자를 통해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 도시는 새로 생긴 도시였습니다. 과거 고린도 도시는 주전 431년에 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에만 해도 대단히 유명하고 강력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주전 146년에 로마 총독 루시우스 머미우스 아카이쿠스(Lucius Mummius Achaicus)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때 고린도 도시는 로마 총독에 의해 신들에게 바쳐졌고 그 도시가 다시 건립되는 데는 약 백년 정도 지나야 했습니다. 마침내 주전 46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고린도 도시를 재건립하고 재향 군인들과 자유민으로 하여금 그곳에 거주하게 한 후 도시 이름을 율리아 고린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후 고린도 도시는 상업 요충지로 자리 잡으면서 신속하게 성장하였습니다.
고린도 도시는 지중해 지역에서 유명한 상업 요충지가 되었지만 반면 어느새 온갖 종류의 죄악의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고린도 도시의 도덕적 타락 가운데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사랑과 미의 여신인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 신전에는 천명의 신전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은 공식적으로 고린도 도시의 시민들 및 방문객들과 얼마든지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린도 도시는 아덴과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지성주의의 교만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울 당시 그 도시에는 약 40만명 정도의 인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패한 주변 환경은 고린도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슬픈 것은 바울이 그토록 마음을 다해 세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떠난 후에 4개의 분파로 분열되었습니다. 그 분파는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였습니다(참조, 고전 1:12).
따라서 고린도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복음이 매우 무색해졌습니다. 그러한 분열 상태로는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모순이 되었습니다. 이는 외부에서 불신자들이 오더라도 교회의 분열을 본다면 복음을 오해하고 교회를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한편, 고린도 도시에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교만한 가운데 기적을 좋아했습니다. 반면 헬라인들은 세상의 초등학문인 철학을 좋아하며 우쭐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도시를 순회하며 우주와 생명, 인간과 정치 등, 여러 사상을 논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교회 내에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즉, 교회 내의 유대인들은 율법과 기적을 좋아했고, 교회 내의 헬라인들은 철학을 논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말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도다”(고전 1:22).
그래서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던 고린도 교회의 유대인의 경우 성령의 은사라는 이름 하에 하늘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원했고 헬라인들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말 기술 및 표현 기술로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그릇된 생각에 대해 자신과 그가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변론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3-25).
즉,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이 그 핵심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온 세상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복음만이 죄 많은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죄의 세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도 복음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이 복음 외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어둠의 권세에서 빛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8).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이 복음은 세상 지혜로는 이해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를 가장 통달한 바울은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할 때 그 능력은 무엇을 추구하는 능력입니까? 군중을 장풍처럼 무너뜨리는 능력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으키는 능력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켜 각광을 받는 개인의 영광을 위한 능력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보다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또한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를 주는 칭의의 능력으로서 사망과 지옥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능력이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성령의 진리와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지혜입니까? 남들보다 똑똑해져서 잘난 척할 수 있는 지혜입니까? 혹은 세상적으로 잘 되도록 돈 버는 지혜, 권력을 얻는 지혜, 인기를 차지하는 지혜입니까? 성경은 그러한 지혜를 세상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5-18)
그러면 이러한 하늘의 지혜를 어디서 얻으며 그 근원은 무엇입니까? 그 근원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의 복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독생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나아가 주의 십자가는 이 세상의 죄를 완전하게 제거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참조, 고후 5:21).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더라”(요 1:29)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바로 이 복음이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합니다. 어디로부터요? 네, 죄로부터 구원합니다. 그러면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이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천국을 누리며 주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감사와 평강과 기쁨이 흘러 넘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지만 오직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의 복음은 어리석게 들리고 거리끼는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지금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한량없이 누린다면 이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 다른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1-12).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지만 구원을 얻기에 불가능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사람으로 오셔서 평생 완전하게 율법을 지키시고 완전한 의를 이루신 후 주를 믿는 우리에게 그 의를 주셨습니다. 이에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공의로운 형량을 우리 주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내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지금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셔서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로 계시며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그러므로 택한 자들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고 또한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의로운 삶을 살면서 거룩한 성품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영광의 주를 의지하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역사하며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참조, 갈 5:6).
이제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각각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9).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기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셨습니다. 그 후 누구든지 승리의 주를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죄와 사망과 지옥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 18).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6-57).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영생과 승리를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내용을 하 단어로 말하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속량이 그 바탕이며 신자는 그 바탕에 근거해서 구원의 확신을 얻고 주만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그러므로 십자가가 없는 복음은 거짓 복음이며,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거짓 교회이고, 십자가가 없는 신자는 거짓 신자입니다. 오직 십자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이제 우리의 본문 고린도전서 9장으로 건너오면, 괴수 중의 죄수였던 바울이 구원을 받은 후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 역시 동일한 동기와 목적으로 살아야 할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 9장 2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그 앞 절과의 문맥을 통해서 이해하면 이 뜻은 “사람들을 복음을 전하여 구원함으로” 복음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함으로 복음에 참여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합니다.” 즉, 바울이 행하는 그 어떤 것도 복음을 위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12절을 보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마땅하고 선한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요? “복음을 위하여” 그러합니다.
19절을 보니, 모든 사람을 향해 바울은 자유롭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됩니다. 왜요? “복음으로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니, 바울은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강한 자에게는 강한 자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을 보입니다. 왜요? “복음으로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즉, 복음은 바울의 삶 전체를 주관하는 유일한 동기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결정을 내렸고, 복음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무엇이든 복음에 의해 복음을 위해 복음 때문에 살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 받도록 하고자 복음을 위해 그의 모든 것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그의 동기였고 삶의 목적이었으며 그의 가장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이 복음을 믿지 않으면 그 누구나 영원한 불못에 떨어질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사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심으로 바울은 회심하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복음을 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 바울은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그는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성도들에게도 그와 동일한 자세를 취할 것을 늘 권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이와 같이 바울에게는 복음이 전부였고 그의 모든 행동과 삶은 온통 복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누리는 천국의 기쁨과 이미 결정된 새하늘과 새땅의 기업을 나의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누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더욱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부실하고 형편없는 비참한 그리스도인들은 영혼 구원 및 그리스도를 닮는 신앙 생활에 미지근해 진 사람들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이 거의 없거나 희미한 상태에 있습니다. 영적인 관계로 보면, 영적 간음을 행하는 상태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이러한 미지근한 신자들을 향해 외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또한 이러한 두 마음을 품은 신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될 수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8, 7).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에 있는 자들은 세상적으로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일시적인 쾌락과 환상이 있을 지라도 반드시 탕자처럼 비참과 괴로움과 좌절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마음을 정하고 마음과 삶을 온전히 주께 드린다면 순식간에 복음의 능력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와 주와의 교통을 맛보게 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과 거룩과 만족과 보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국립 도서관에 가 보면 우리가 읽어본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무한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국립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 보겠다고 계획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가장 한심하고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는 사람에게는 시간에 있어서 한계가 있고, 재능과 자원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뭐든 무한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삶의 방향과 목적이 없는 한심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는 우선 순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그의 삶의 최고 우선 순위에 복음을 둡니다. 여러분은 왜 돈을 법니까? 왜 공부합니까? 왜 매일 뛰어 다닙니까? 잘 먹고 잘 살려구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우선 순위는 썩어질 세상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믿음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의 믿음은 썩어질 세상을 위한 거짓 믿음일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들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우선 순위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참 신자에게는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이 전부 복음을 위한 것이 되게 됩니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하면,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께 충성하기 위해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신자는 가짜 신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의 끝은 반드시 허무와 절망과 멸망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썩을 것을 믿고 썩을 것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의 삶을 영원한 것을 향하도록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우선 순위로 삼는 신자는 무엇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남들이 뭐라 하든 모든 것을 행하는데 있어서 하나로 집중합니다. 즉, 복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거룩하여질 수 있도록 내 모든 자원과 시간과 능력을 복음에 집중합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집에서 잘 맞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행을 다니며 여가를 누리고 백화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교제하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욕된 것들은 아닐지라도 만일 복음과 무관한 만남과 수고와 여가라면 사실 궁극적으로는 방탕이며 허무입니다. 그러나 그 여가와 만남과 여건들을 복음을 위해 사용했다면 영원한 보람과 연결될 것입니다.
세상 친구들과 함께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과 무관하다면 죽음과 함께 인생을 돌아볼 때 그 모든 교제의 시간들은 헛되고 헛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중심으로 만나는 친구 관계를 맺고 힘을 모아 복음의 진보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그 친구와의 관계는 영원한 영광과 보람을 위한 가장 가치 있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삶은 복음 전파와 복음을 가르치는데 힘쓰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부터 복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복음으로 인해 구원 받았을 뿐만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생각과 말과 행실을 하게 되면서 온 세상을 향해 누구든지 복음을 믿고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 1:5-6).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위해 어떤 희생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시간과 자원과 건강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베푸신 결혼의 복과 만남과 직장과 지식과 재물과 시간을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목표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실 성경은 그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우리는 주의 충성스런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에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0-31, 33)
이 시간, 우리의 죽는 날을 기억합시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는 곧 죽음의 문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지날 때 우리는 죽음 저 너머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혹시 천국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직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천국을 보장 받고 싶다면 이 시간 당장 주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기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또한 영광의 주이신 만왕의 왕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날 때 과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
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까?
만일 주의 칭찬을 받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고 집중하고 희생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자원과 시간과 재능을 복음을 위해 사용하기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인생을 짧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삶 동안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누군가가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리고 복음 전함을 통해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성장하였다면, 영광의 나라가 임하였을 때 온 세상을 향해 그 사람이 여러분을 향해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 분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아 구원 얻게 되었고, 저 분 때문에 내가 복음의 능력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바울처럼 화답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저도 복음 안에서 누리는 이 자유를 기억할 때마다 제게 귀한 글을 남겨 주신 믿음의 선진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또한 제게 복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 친구에게 제 평생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지옥에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가 완성되는 것보다 더 큰 보람과 영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하든 복음의 진보를 위해 양보하고 집중하고, 희생하고, 달려가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삶을 간절히 호소하면서 영원한 영광을 보여줍니다.
[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4-27)
이 세상의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절제하고 훈련에 집중하는데, 하물며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훈련해야 하는지 도전합니다.
그리고 경건의 훈련에 힘쓰지 못할 때 우리는 믿음의 경기에서 패배할 수 있음을 알려주면서 그러한 패배를 두려워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늘 복음 전하는 일이 성공으로 마칠 수 있도록 우리는 항상 경건의 훈련을 통해 죄를 멀리하고 거룩함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전한 복음, 우리가 전할 복음이 끝까지 열매를 맺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인 것입니다.
[
7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딤전 4:7-10)
오늘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 내 삶 전체가 집중되기를 바라며, 이는 동시에 경건의 훈련이 동반되어야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을 확신하면서 더욱 복음에 우리의 남은 삶을 바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