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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신자의 영광(빌립보서 3:8-11)

작성자스데반 황|작성시간21.10.04|조회수248 목록 댓글 1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신자의 영광

 

빌립보서 3:8-11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지난 주 우리는 빌립소서 3장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죗값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함을 받는 완전한 은혜의 길인 칭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칭의에 이른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어지고 나아가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주의 강론에 이어서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갈 때 나타나는 성도의 참된 영광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영광은 놀랍게도 인간들이 바라는 세속적인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의 영광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본문이 말하려는 골자입니다.

 

먼저 우리는 빌립보서 3장 8-11절을 원어로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8절부터 11절까지가 한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끊어 읽거나 다른 절을 추가하지 않는 것이 원문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안전할 것입니다.  

 

지금 8-11절에서 보면, 문장의 궁극적인 의도를 알리려는 가정 동사가 3번 나옵니다. 그 세 번의 동사는

8절의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절의 “(내가)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11절의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를 얻는 것”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이 두 가지 목적은 지난 주에 확인한 것처럼 “의”를 붙드는 상태와 맞물려 있습니다. 즉, 그 의를 붙들고 있을 때만이 그리스도를 얻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의가 어떤 의입니까? 바로 9절에서 설명해 놓은 의입니다.  그 의는 내가 율법을 지켜서 얻는 ‘나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그 의’입니다. 거기에 바울은 한 가지 더 부연 설명을 하는데 “그 의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를 계속 붙든 상태에 머물면서’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결하고 탁월한 지식을 얻는 것인데, 이로 인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내 주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8절부터 11절까지 언급되는 모든 것은 과거에 복음을 알기 전에 ‘나의 의’를 얻기 위해 행했던 모든 순종들과 노력들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것을 말합니다. 물론 7절에서 언급하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은 바울이 유대교에 속하여 하나님과 관련되었던 ‘모든 것’입니다. 가령, 할례 받은 것, 이스라엘 족속인 것, 베냐민 지파인 것,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인 것, 바리새인인 것,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것 등등입니다.

 

그러나 8절부터 11절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무관한 ‘모든 것’입니다. 즉, 이 세상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처럼 바울은 이 세상에서의 종교적인 자랑들 및 모든 이생의 자랑에 대해 다 해로 여기고 심지어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며 이에 거듭난 생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알고 누리게 되면서 이 땅에서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이 최고의 영원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며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이 고백은 예수께서 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십자가에서 내 죄를 속하여 주시기 위해 죽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는 주 예수님을 이 우주 가운데 가장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며 경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죄 많은 죄인을 의의 예복으로 입히시기 위해 평생 주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하시고 심지어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그 희생적인 사랑을 안다면 어찌 무한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율법이나 양심을 지켜서 얻는 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의’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즉,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에 있는 존재인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확히 알게 됨으로, 이에 주의 뜻대로 언제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가운데 지옥으로 향하는 자들은 복음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의’ 또는 ‘하나님의 의’를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합니다. 나아가 멸시하며 대적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순종과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이루신 그리스도의 의는 누구에게든지 제시되며 가장 흉악한 죄인에게도 거저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 영접하면 누구든지 내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받아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이 의만이 죄만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덮으시는 의입니다. 이 의만이 주홍 같은 죄와 진홍 같은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덮어 죄 사함 및 영생을 얻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선포하십니다.

[

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 1:18-20)

 

만일 주 하나님의 이러한 무한한 자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가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도다 …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사 53:1, 3-12)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그리스도의 한없는 긍휼하심과 겸손을 봅니까? 지금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더 이상 늦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덧입기 위해 주 예수께 나아와 주를 영접하기 바랍니다.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 의를 입으면 여러분의 산더미 같은 죄도 덮일 것이고 아무리 많은 죄악도 다 씻겨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그분의 발에 입맞추는 것 외에는 죄 사함 및 구원을 얻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외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저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성립된 이 의만이 여러분을 지옥과 죄와 사탄에게서 구원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이 의를 힘입어 구원을 얻기 바랍니다. 빨리 이 의를 입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진노가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

26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즉, 2천년 전)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6-28)

 

[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 9:11-14)

 

그러므로 죽음에서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계시는 나사렛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속량의 옷을 덧입기 바랍니다. 그러한 자에게는 주의 맹세로 하신 언약에 따라 무한한 복이 임합니다. 즉, 죄를 도말하여 주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더라

](골 2:12-14)

 

[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0-14)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도다” (사 44:22).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도다”(롬 3:23-25).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안다면,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인한 죄 사함과 영생을 안다면, 나아가 무한한 사랑의 대상인 독생하신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과, 친히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해 오셔서 나무 위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의한 무한한 저주와 고난을 당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알 때, 어찌 주를 사랑하며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참 신자는 어린양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거짓 신자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에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

 

이제 이러한 희생과 사랑과 고난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된 주의 자녀들은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거룩함입니다. 세상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음이며 더 이상 세상을 닮지 않음입니다.

[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5-17)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의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을 묵상하며. 부활하셔서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영광의 주와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연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행여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더럽혀지면 신속하게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그분의 보혈로 씻김을 받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께 두 손 들고 회개하며 나아올 때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더럽히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면서 지난 주에 확인한 것처럼 바울은 우리는 부활의 권능을 덧입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주의 속량으로 죄 사함을 받은 주의 백성이 살아야 마땅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8-11절까지 이어지는 한 문장에서 10-11절에서는 부활의 권능을 말합니다.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빌 3:10-11)

 

그런데 원어로는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는 “본받으면서”, “그의 죽으심에 함께하면서”라는 분사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주의 죽으심을 본받는 상태가 진행되어야, 또는 주의 죽으심과 함께 하는 상태에 있어야,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 그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참여한다’는 것은 주님의 고난을 체험함으로 공감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계속 함께하면서”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 그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경험적으로, 구체적으로 알려면 그분의 죽으심과 항상 함께 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현재 삶 가운데서 누리려면 그분의 죽으심과 늘 함께 해야 하며, 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며 그 고난에 공감하기를 원한다면 변함없이 주의 죽으심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바울은 부활하셔서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계속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함께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 수 없고, 주의 부활의 권능도 알 수 없으며,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오는 한량없는 주님과의 사랑과 공감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 여러분! 이 말씀처럼 듣기 싫은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바람은 세상에서 잘 먹고 힘 안 들게 살며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 하나로 평안하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죽음에 계속 하나되어야 그리스도를 알고, 생명의 성령의 역사를 누리고, 주의 십자가의 의미와 그 효력을 안다고 하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습니까? 오, 그러나 그 짜증내는 주체가 누구인지 압니까? 바로 육신이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며 자아를 실현하려는 교만한 ‘나’입니다. 이러한 이기적이고 사악한 마음을 가진 옛사람은 늘 꿈틀거리며 살아서 신자인 우리들까지도 죄 가운데 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나의 옛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옛사람으로 행하였던 모든 죄악에 대해 신속하게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거듭나지 않은 영혼이라면, 지금 비록 아직 삶이 연장되고 있고 호흡이 있고 이 세상의 즐거운 것들을 누릴 수 있더라도 이는 지옥이 임하는 것이 연장되는 것일 뿐, 어느새 죽음과 함께 영원한 멸망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그리스도 함께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없다는 말씀이요, 그리스도 함께 죽지 않는 자라면,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계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롬 6:6-7, 5)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또한 우리는 내 안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를 사랑하며 그분과 성령 안에서 연합하여 살아갈 때 반드시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역경이 있을 것을 예측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빛이요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풍조를 따르면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라

](요 15:18-20)

 

[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10-12)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러나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성령 안에서 누리는 부활의 권능은 우리로 하여금 넉넉하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도록 하여 훗날에 그리스도의 큰 영광에 참여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그러므로 부활의 권능은 이 세상의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이에 우리는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부활 이후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당하는 자들에게는 주께서 친히 함께 하셔서 늘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2-33).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부활의 권능은 우리 마음을 복음을 위해 담대하게 하고,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주를 사랑하며 따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평소의 삶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는 내 주장과 이익을 추구하는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명을 받아 계속 성장해야 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이 또한 우리에게 반드시 부활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그 권능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계속 죽일 수 있을 때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 4:7-12)

 

이처럼 우리는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고 죽음을 지나신 우리 주 예수님처럼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죽음까지도 불사르려는 자세로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와 한 마음이 되어 그분을 더욱 알아가게 되고 생명의 성령의 능력인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게 되며 또한 주의 고난의 무한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권능을 누리는 신자는 주를 위한 순교까지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십자가 정신은 가장 중요한 본질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주의 생명과 능력으로 사는 비결은 놀랍게도 신자가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가장 미련하게 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는 것이 신자의 모든 능력의 열쇠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죽기까지 자신의 옛사람을 죽이며 사는 것입니다. 오직 그런 정신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믿음으로 죽을 때 가장 거룩하고 신비한 능력이 흘러 넘치며 내 주변에 주의 역사를 흘러 넘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깊이는 어떤 신학 지식의 깊이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종교 생활을 해 온 기간과도 비례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의 깊이는 얼마나 십자가에서 나를 죽이고 주의 영으로 살 수 있는 훈련이 되었는지와 비례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죽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신앙의 가장 깊은 절정입니다. 이때 이런 상태에서는 내가 없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 상태가 됩니다. 그 상태는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이 된 상태로서 하나님의 무한하고 깊고 높은 방대한 모든 것이 얼마든지 신자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부활의 권능을 누리는 비결인 반면, 또한 주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권능을 허락하시는 것은 더욱더 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죽는 결단을 하고 죽으면, 주의 부활의 권능이 내게 임하는데 그 권능은 내가 더욱 내 자신에 대해 죽는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권능이 주어진 목적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도록 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이 땅에서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가장 큰 고통을 체험했지만 아들을 돌려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들 그리스도를 택한 백성을 위해 희생 번제로 바치실 때의 무한한 사랑과 또한 그에 비례하는 무한한 아픔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과정을 통해 자아를 죽이고 순종함으로써 믿음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는 놀라운 칭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도에는 유한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능력과 사랑과 슬픔과 영광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에 인간이 십자가의 도를 헤아리려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내 자아를 죽여야만 희미하게나마 맛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맛본다는 것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19 부당하게고난을받아도하나님을생각함으로슬픔을참으면이는아름답고

20 …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 2:19-25)

 

이런 상태에서 바로 우리를 통해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되는데 이는 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죽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나타나는 영원한 열매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자아를 죽이며 사는 신자는 그 마음이 맑고 정결하기 때문에 죄와 부딪힐 때 가장 큰 고통을 당합니다. 양심의 고통을 당합니다. 내 안의 죄성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나아가 내 주변의 죄의 역사들로 인해 고통 당합니다. 가정에서도 식구들의 죄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교회에서도 다른 지체들의 죄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나아가 사회의 죄를 보면서도 심적인 고통 을 당합니다. 그때 그들은 그 고통 속에서 기도하며 빛과 거룩함을 위한 도구가 되고자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더욱 의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겠노라고 다짐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기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실 때 허락하셨던 부활의 권능을 그 신자들에게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부활의 권능이 나타나는 신자에게서는 그 주변의 악한 일들과 죄악들이 밝은 빛 때문에 물러나거나 타서 사라지거나 혹은 빛으로 다가와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불신자를 볼 때 두 가지 감정이 겹칩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분노와 또한 영혼을 향한 사랑입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서로 지체를 향해 같은 감정이 나타납니다. 어떤 지체가 죄 가운데 거하며 죄악을 행하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주의 연합된 상태에 있는 신자는 부활의 권능 가운데 그 죄악에 대해 엄중한 감정 및 그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고픈 사랑을 함께 갖게 됩니다.

 

그곳이 어디든, 마음 안이든, 마음 밖이든 죄의 실재를 보게 되는 참 신자는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면서 주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게 되고 그들에게 빛의 모습을 보여주며 회개하게 하든지 혹은 구원의 채널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받는 고난을 뜻합니다. 이런 고난은 어리석은 사람의 죄와 모순과 교만과 더러움과 배신을 당하면서도 한 영혼의 영적 성장을 위해 받는 고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고난은 종종 교회 공동체에서 시기, 오해, 비방, 이단, 이간질 등으로 받는 고난일 때도 있습니다. 이때 이러한 고난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수고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주와 온전히 하나 되었을 때, 우리는 이 시대를 보며 예수님처럼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눅 13:34-35).

 

그러면서도 죄인들이 벌여 놓은 수많은 비참하고 더러운 죄의 결과물들을 손수 고생하면서 닦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숙한 신자의 마음과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섬김과 겸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나타나는 부활의 권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긍휼과 동정심을 우리 모두가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긍휼과 동정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을 수 없으며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고작 그런 이기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세상에 썩어질 것을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천박하고 교활한 야망 또는 정욕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된 신자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 구원 및 주 안에서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며 눈물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취하는 것이 어찌 부패한 인간의 마음 자체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해야 하고, 그 후 그리스도의 생명을 덧입어 그분께서 주시는 부활의 권능의 역사로 인한 선하고 아름답고 동정심이 많고 오직 주의 나라를 위해 그 어떤 고난과 수치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을 품어야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얼마든지 기꺼이 동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맘에 차고 흘러난다는 뜻이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룩한 사랑으로 흘러 넘치는 그 성도야말로 주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아름다운 신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토록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품고 평생 살아가는 신자들은 주 앞에 섰을 때 잘했다라는 칭찬을 듣고 영원한 부활 영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주어지는 영광은 쇠하지 않는 영원한 영광입니다.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6-18)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오늘 이 말씀으로 여러분의 옛사람의 교만과 이기심이 무너지고 모든 이생의 자랑과 자기 의를  내려 놓는 가운데 주와 한 마음이 되는 겸손의 상태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활의 권능이 임하여 평생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또한 그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하게 쓰임 받는 남은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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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一麥.) | 작성시간 21.10.05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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