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댁에 설 쇠러 가기로 한 날이다. 약속한 딸기도 사고, 은행에서 아버지 용돈도 찾았다. 아버지 댁에서 딸기를 씻으려면 번거로울 것 같아 작은 도시락도 샀다. 점심 먹고 딸기 씻어서 통에 담고 아버지 댁으로 출발했다.
딸기가 담긴 통만 봐도 좋은가 보다. ‘아빠’와 ‘따기’가 번갈아 나온다. 아버지 댁 가서 딸기를 먹겠다는 뜻이겠지? 아버지 댁 주차장이 빼곡하다. 다들 설 쇠러 오셨나 보다. 앞서 걷는 김민정 씨를 보니 양손이 가득한 게 명절 같다.
아버지 얼굴을 뵙자마자 용돈 봉투를 꺼낸다. 그리곤 아버지께 척 건넨다. “아빠.”와 같은 말도 없다. 아버지는 “뭐고? 용돈이가?” 하시더니 봉투를 열어 보시고 침대 한편에 놓아두셨다.
“김민정 씨, 아버지께 세배 안 해요?”
“예!”
김민정 씨가 세배하려고 손을 올리자 아버지께서 “됐다, 됐다.” 하셨다. 아버지의 만류에 김민정 씨도 세배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따기!” 하며 가방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딸기가 먹고 싶었나 보다.
“아버님, 지난번에 딸기 사온다고 했었잖아요. 김민정 씨가 준비해 왔어요.”
“아이고, 딸이 딸기 챙겨왔네. 민정이도 앉아서 먹어.”
아까부터 아버지 댁을 지키고 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김민정 씨가 딸기를 먹는 동안,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대화했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다. 아침에 전임자에게 전화해 언제 오는지 물었고, 퇴사 소식을 들었단다. 그러면서 한참 지난 추석 때 이야기를 했다.
“저번에도 보니까 추석에 자고 갔더라고. 아침에 씻겨 준다고 했는데 낯설어서 그런지 안 씻는다 해서 머리만 빗어 준다고 겨우 달래서 머리만 빗었지.”
“아, 그러셨어요? 다녀가셨는지 몰랐어요. 김민정 씨가 누가 있었다고 알려주지도 않았고, 아버님도 말씀이 없으셔서요.”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머리를 긁어서 그랬는지 다 헝클어져 있었고, 씻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지저분했다. 아버지도 요양보호사가 다녀갔다는 말씀이 없으셨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식사를 챙겨서 두 분이 같이 드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이 아침에 식사를 챙기고 간 것이었다.
“왜 옷은 안 들고 왔어요?”
“김민정 씨가 혼자 갈아입는 게 어려워서요. 제가 내일 올 때 챙겨올 거예요.”
“내일 다시 오시는 거예요?”
“네. 지난번에도 그렇게 했어요.”
“아이고, 힘들어서 어째. 명절 아니라도 자고 가고 해요. 내가 와서 민정이 챙기면 되지.”
“아, 고맙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옷이랑 챙겨서 오는데 이럴 줄 몰라서 단출하게 왔네요.”
“그래요. 다음에는 챙겨서 와요. 이렇게 늦게 와서 잠깐 있다 가지 말고, 오래 있다가 가요.”
“그거는 아버님이랑 민정 씨랑 이야기를 좀 해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작년에 추석에 하루 자고 간 게 다라서요.”
“에이 뭘, 이틀씩 자고 가도 되지 뭐. 아버지, 자고 가도 되죠?”
요양보호사의 말에 아버지께서 김민정 씨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후에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 됐다. 전담이 되면 얼마나 김민정 씨를 지원하는지, 김민정 씨가 아버지와 같이 살 수는 없는지, 퇴거는 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등등…. 묻는 것에 대답하고, 김민정 씨가 준비한 설 선물을 전했다. 아버지와 같은 딸기다. 아버지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길어진 대화를 마무리하고, 김민정 씨와 아버지께 저녁에 전화 드리겠다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2026년 2월 12일 목요일, 구주영
아빠, 딸기. 김민정 씨가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음식이네요. 매달 아버지 댁 오가며 인사한 덕분에 이제는 명절에 김민정 씨가 아버지를 찾고, 하루 자고 가는 걸 아버지도 기다리시나 봅니다. 두 분 관계가 이렇듯 가까워지고 여느 아버지와 딸처럼 지내시니 감사합니다. 신은혜
먼 길, 오가는 수고 마다하지 않고 지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 믿고 2, 3일씩 지낼까요? 신아름
명절에 아버지 댁에서 자고 오니 기쁩니다. 이제 민정 씨도 아버지도 익숙하신 듯하고요. 그간 오간 발걸음 덕분이겠죠. 감사합니다. 월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