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춘덕, 가족 26-17, 니가 여를 우째 알고 왔노
고모님이 퇴원하면 북상 집으로 오실 줄 알았다.
하지만 고모님은 댁으로 오시지 못했다.
몇 번이나 집으로 전화했지만, 결국 고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입원해 계실 때 치매 소식을 잠깐 들었던 터라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저씨가 찾아뵈었을 때는 얼굴만 조금 상했을 뿐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치매 이야기가 의아할 정도였다.
읍내 사는 큰아들 내외와의 연락으로 고모님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모친이 연세도 너무 많고 밤에 치매 증상이 심해서 도저히 북상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계시다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요. 신원에 치매 어르신들 돌보는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아저씨는 고모님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짜겠소. 혼자 있으만 밥도 그렇고 불편해서 안 돼요.”
“한번 가서 뵈어야겠지요?”
“그래야지요. 일하로 안 갈 때 가봐야 안 되겠소.”
신원요양원을 검색하니 ‘거창시니어카운티’가 떴다.
전화번호를 찾아 문의했다.
주말에도 면회는 가능하지만, 30분 단위로 예약해야 만날 수 있단다.
아저씨와 의논해 예배 후에 찾아뵙기로 하고 오후 2시로 예약했다.
고모님 드실 베지밀과 부드러운 쿠키를 샀다.
신원 가는 길은 거의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폐교된 중학교 자리에 1년 전 치매요양원을 신설했다고 들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전망이 좋고 건물 안팎이 깨끗했다.
방문기록지를 작성하고 내부로 들어가니, 직원이 “백경애 어르신 만나러 오셨지요?” 하며 친절하게 방문객을 맞았다.
조금 있으면 내려오실 테니 면회실 안에서 기다려 달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고모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안면 있는 두 분이 함께 들어오며 인사했다.
통화했던 큰아들 내외였다.
뜻밖에도 면회 시간이 겹친 것이다.
그분들과 함께 고모님을 뵈니 반가움이 더했다.
“고모님, 잘 지냈어요?”
“춘덕이 아이가. 니가 여를 우째 알고 왔노?”
“어무이, 전화가 있잖아요. 퇴원했는데 집에 전화해도 안 받으니까, 내한테 연락이 왔대요. 그래서 내가 알려줬지요.”
“그캐, 그란데 이래 다 같이 한 차로 왔나?”
“따로 왔는데 여기서 만났지요. 내도 춘덕이 오는 줄은 몰랐어요.”
“어르신, 얼굴은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지셨어요. 식사는 제때 잘하는지요?”
“세상 핀해요. 만날 이래 묵고 놀기만 하지. 뭐 필요하다 카만 다 갖다주고. 그래도 집만 못 해. 마당에 널어 논 것도 있고, 집에 치울 것도 있는데, 여 이래 있어 갖고 될 일이 아이라. 여 있는 어떤 양반이 우리 집에 한번 차로 델다 준다 캤는데, 그 사람이 북상을 안다 카더라꼬. 북상 가만 우리 집도 알겠지.”
“어머이,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이제 혼자는 못 있어요. 밤에는 우짜실라꼬 자꾸 집에 간다 캐요. 그라만 우리도 마음 편히 지낼 수가 없어요.”
자식 내외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 고모님은 한숨을 푸하고 내쉬었다.
“그래도 자꾸 집 생각이 난다. 손주들도 보고 싶고. 여 있응께 다 보고 싶고 그러네.”
눈시울을 붉히던 고모님은 결국 무딘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어르신, 배고프시죠? 고모님 드시라고 아저씨가 베지밀하고 빵을 샀어요. 하나 맛보시겠어요?”
“오데, 나는 안 묵어도 돼. 너그들 배고플 낀데 하나씩 묵어. 춘덕이가 꼭 이래 뭐슬 사 갖고 온다. 그냥 오라 캐도 꼭 묵을 걸 사서 와. 돈도 없을 낀데.”
“춘덕이가 어무이 잡수라고 사 왔다 카는데, 어여 잡숴봐요.”
쿠키와 베지밀을 먹으며 가족들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내가 아는 분들 이야기도 있었지만, 가족들만 아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면회 시간이 끝났는지 고모님을 모시러 직원이 들어왔다.
“자, 이제 어르신은 올라갈 시간입니다. 이야기는 다 나누셨지요?”
“고모님, 잘 지내요. 시간 나면 또 올게요.”
“바쁠 낀데 자꾸 우째 와. 그래도 내가 춘덕이 얼굴 보니까 좋다. 이래 고모 본다꼬 와줘서 고맙데이.”
고모님은 아저씨의 손을 꼭 잡으며 “고맙데이, 고맙데이.” 반복해서 말했다.
그 모습이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무이, 우쨌든 잘 잡숫고 잘 주무시고 해요. 우리도 갔다가 또 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내리 가. 내 걱정이랑 말고.”
고모님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춘덕이는 여전히 말이 없네. 어데 아픈 데는 없제?”
“없어요.”
“그래, 요새는 어디서 일해?”
“웅양 사과밭에요.”
“남상 허 사장 농원 아니고요?”
“이 사람아, 거기 그만둔 지가 언젠데. 한 몇 년 됐제?”
“읍내로 이사 나오면서 그만두셨어요. 그해 가을에 바로 웅양에서 일하셨고요.”
“그렇구나. 오늘 이래 만나서 반갑네. 찾아와 줘서 고맙고. 또 봐.”
사촌 형님 내외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2026년 6월 7일 일요일, 김향
같은 날 우연히 함께 찾아뵌 덕에 고모님 마음의 불안이나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소식 묻고 찾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효진
요양원에 계신다는 소식에 바로 찾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아름
고모님이 요양원에 계시군요. 퇴원하면 집으로 오실 줄 알았는데. 잘 지내시기를 빕니다. 몸도 마음도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월평
백춘덕, 가족 26-2, 백지숙 씨와 신년 인사, 계획 의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