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영어교재, 교과서 등의 첫장에 나올만한 표현인
How are you?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아마 해외 체류 경험이 없는 한국인 10명 중 8-9명은 자신의 상태와 상관 없이,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할 것이다. 덕분에 나도 안부를 묻는 영국인들에게 아직까지 ‘Fine’ 외에 시의적절한 답을 빨리 찾아내지 못해 무뚝뚝한 한국인 행세를 한다.
그런데 영국에 와보니 으레 형식적으로 하는 위 질의응답에도 조금씩 다양함을 엿볼 수 있다.
질1 How are you?
질2 Are you alright?
질3 You alright?
답1 Very well
답2 Couldn’t be better
답3 Not too bad
영국의 TV 방송 중 아나운서가 옆에 있는 인터뷰 대상자 혹은 현지에 나가 있는 지역 통신원에게 하는 첫 안부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의 ‘Very well’이라는 말을 자주 쓰더라. 물론 미국식이든 영국식이든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표현이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안부 인사에 익숙하지 않던 영국살이 시절, 옷이나 골동품 상점 등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으면, 매장 직원이 다가와 ‘Are you alright?’라는 소리를 해서 기분이 나빴던 점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객을 향한 당연한 인사였는데 이를 잘못 이해한 나는, 고가의 물품을 구경하고 있는 초라한 동양 여인네에게 ‘너 괜찮냐? (제정신이냐?)’라고 묻는 듯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억지 해석일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선 길거리에서 넘어졌거나, 아파 보이는 사람들에게나 할 것 같은 ‘Are you alright 혹은 you alright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여기서 들어보니 ‘How are you?’ 보다 가벼운 인사말로 쓰는 것이다. 이를 모르면, ‘멀쩡한 사람에게 왜 이렇게 묻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영국인들이 감탄사를 남용한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 감탄사 못지 않게 ‘좋은(다)’ ‘예쁜(-쁘다)’ 등의 관형어나 서술어를 강조하는 부사어를 만만치 않게 남용하는 것도 영국인들의 몫이다.
자주 보는 영국의 일일 연속극에서 한 배우가 굉장히 기분 좋은 상황에서 상대가 ‘How are you?’하자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표현의 답변을 하던데, 마치 우리나라의 구어인 ‘졸라’가 결합되어 ‘졸라굿’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출산을 하기 전까지 나를 돌봐주던 조산사(midwife)를 만나서 혈압, 맥박 등을 잴 때 마다 그냥 ‘good’ ‘fine’ 정도 해도되는데 이 여자 말끝마다 이 ‘졸라굿’이라고 해, 혼자서 기분이 묘했던 적이 있다. 물론 임신 초기부터 출산까지 별 문제 없이 건강했던 내 상태에 대한 표현임은 알겠는데 우리 말, 그것도 표준어가 아닌 ‘졸라’라는 단어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영국 구어로 ‘매우’, ‘꽤’의 뜻이 있는 부사어인 ‘Jolly’라는 단어를 쓴 것이었다. 영어의 ‘Very’와 유사한 의미와 용법으로 쓰이는 셈이다. 물론 이 ‘Jolly’는 형용사로 ‘즐거운’, ‘기분 좋은’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니 비록 속어이긴 하지만 우리말의 ‘졸라’와 쓰임새도 비슷해 잘못 들릴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