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들로 인해 밤낮으로 그들을 대적하여 파수꾼들을 세웠는데(느 4:9)"
타인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견뎌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면전에서 말로 적개심과 공격성을 대놓고 드러낼 때 그것은 또 다른 어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대적들은 건축자들을 낙심케 하여 모험적인 건축 작업의 의욕을 상실케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음을 그들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분노를 드러내면서 느헤미야와 그의 충성된 무리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완전한 충돌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는 그 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대적들은 직접 현장으로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8절). 이전과 같이 느헤미야는 이러한 상황이 그 백성에게 가져올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이런 일 때문에 그 백성 가운데서 두려움이, 심지어는 공포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이 인간 대리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느헤미야에 관한 전체 이야기는 이러한 진리를 입증해줍니다. 하나님은 이 경우에 그분의 백성의 승리를 통하여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승리는 유대인들의 잔존자들을 향해 위협적인 태도를 취한 인간 대적들만을 향해 거두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승리는 인간 대적들에게 동기를 심어주고 그들을 이용한 악하고 어두운 영적 세력들을 향해서도 거두어졌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마귀인데 그는 하나님의 목적들을 좌절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중단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수많은 책략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마귀의 궤계가 너무나 자주 먹혀들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시초에서부터 마귀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해로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이 두려움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공포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대처 능력을 상실한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들을 놓쳐버리고 최선의 노력들을 중단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위대한 이들조차 이러한 두려움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했는데 그 중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예는 엘리야입니다.
그는 이세벨의 위협을 받자 두려워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또 베드로도 이러한 실례가 됩니다. 그는 지극히 담대한 이였으나 주님의 체포되심과 재판받으심 후 두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제자들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이 모든 예들을 볼 때 이렇게 두려움의 반응을 보이고 나서 그들이 나타낸 모습은 하나님의 일을 중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귀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악한 자의 뜻을 좌절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느헤미야는 유대인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파수꾼을 세워 밤낮으로 대적들을 지키고 대비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나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기도" 이반 스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