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생명의 말씀을 마음밭에 받아들이고, 생명의 말씀을 붇잡고, 순종하며 살기(1/4)💖 † 書信書☆(使徒書信)
*축복(祝福)* 해방동이 행전(行傳) (Ezre)⇨(正直)⇨(觀心)⇨(信賴)⇦(義理)⇦(順從)
복음송가 908장③*용서하소서
주님 사랑 받기만하고, 감사할 줄 몰랐었네. 주님 말씀 듣기만하고, 실행하지 못했었네.
아버지여 연약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명령 순종하면서 주를 위해 살렵니다. 히11:1-7절) 믿음의 능력(能力)
Ⅲ.믿음으로 산 사람들(후Ⅰ)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理由)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①믿음의 대상(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이 세상(世上)에 있는 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이고, 구체적(具體的)인 것들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생명의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고 하니까 불안(不安)합니다.
또
②다른 사람이 우리의 믿음을 인정(認定)해 주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오히려*미쳤다거나,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本文) 말씀은 아브라함 이전(以前)에 믿음으로 살았던 세 사람을 소개(紹介)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과 그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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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아벨
11:4절)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祭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義)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證據)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禮物)에 대(對)하여 증언(證言)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즉 아벨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형(兄) 가인과는 다른 제사(祭祀)를 드렸고, 그것 때문에 형(兄) 가인의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창4:3-8절 참조)
어떤 사람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祭祀)에 대(對)하여,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祭祀)를 드릴 때, 인색(吝嗇)한 마음으로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고,했고, *아벨은 정성 (精誠)껏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설명(說明)합니다.
그러나 실제(實際)로는 정반대(正反對)였습니다.
가인은 *자기(自己)의 곡식(穀食)으로 자기(自己) 자신(自身)에게 감사(感謝)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제사(祭祀)를 드렸습니다.
중요(重要)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祭祀)는 결코 자기(自己)가 원(願)하는 방식(方式)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佛敎)나, 천주교(天主敎)에서 보게 되는 것은 그들은 자신(自身)의 정성(精誠)과 종교적(宗敎的) 감정(感情)으로 예배(禮拜)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예배(禮拜)를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예배(禮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對)한 믿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아벨은 자기(自己) 아버지인 아담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인간(人間)이 하나님께 죄(罪)를 지었고,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인간(人間)의 수치(羞恥)를 가리기 위해 짐승을 하나 죽여서 가죽옷으로 입혔다는 사실(事實)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祭祀)를 드릴 때는 반드시 죄(罪)를 회개(悔改)하는 뜻으로 짐승을 죽여서 바쳐야 한다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이 부분(部分)이 우리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 (祭祀)에서 찾아내기 어려운 부분(部分)입니다.
아벨은 자기(自己) 아버지 아담을 통(通)해서 들었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짐승을 죽이는 제사(祭祀)를 믿음으로 드렸고, 가인은 그것을 무시(無視)하고, 자기(自己)가 생각(生角)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方式)으로 예배(禮拜)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배(禮拜)의 결과(決科)는 완전(完全)히 달랐습니다. 즉 아벨은 그 제사(祭祀)를 통(通)하여 하나님의 응답(應答)과 축복(祝福)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그 예배(禮拜)로 전혀 은혜(恩惠)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마음이 더욱 악(惡)해지게 되었습니다.
아벨은 믿음의 제사(祭祀) 때문에 형(兄) 가인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對)한 불만(不滿)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自身)의 멋진 예배(禮拜)를 받아주지 않고, 동생(同生) 아벨의 그 시시한 짐승을 죽이는 제사(祭祀)를 받으시고, 그를 축복(祝福)하시느냐?는 불만(不滿)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對)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벨은 형(兄) 가인이 시키는 대로 멋진 제사(祭祀)를 드리지 않고, 믿음으로 제사(祭祀)를 드렸기 때문에 미움을 받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성경(聖經)은 그 결과(決科)에 대(對)하여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1:4절)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祭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義)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證據)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禮物)에 대(對)하여 증언(證言)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것을 창4:10절)...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呼訴)하느니라.”고 기록(記錄)하고 있습니다.
그럼, 히11:4절)...그가 죽었으니,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란 무슨 뜻일까? 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더라는 뜻입니다. 즉 아벨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기에 죽었지만, 영원(永遠)히 죽지 않는 생명(生命)으로 살아 있더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죽었지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벨이 *지금도 말하느니라'고 하는데 도대체 하나님께 무슨 말을 했을까? 대부분(大部分)의 사람들은 아벨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저는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저의 원한 (怨恨)을 갚아 주십시오.'라고 호소(呼訴)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生角)한다면, 하나님께서 살인(殺人)한 가인을 죽이지 않고, 살려 주신 것을 이해(理解)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아벨은“하나님! 저의 제사(祭祀)는 물론 제 자신(自身)의 죄(罪)를 위해 드리기도 하지만 가인을 위해 드리는 의미(意味)도 있습니다. 제발 가인을 용서(容恕)해 주옵소서.”라는 의미(意味)도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標)까지 주셔서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제 윈수(怨讐)를 갚아 주십시오.” 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저희들은 알지 못하고 저런 짓 하고 있습니다. 저희 죄(罪)를 용서(容恕)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 때문에 멸망 받아야 할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 피를 믿는 자는 영생(永生)을 얻고, 믿지 않는 자도 이 세상(世上)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는 피뢰침(避雷侵) 역할(役割)을 합니다. 즉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질 때, 피뢰침(避雷侵)이 있으면, 거기에 떨어짐으로 주위에는 벼락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심판(審判)이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예수님께 떨어짐으로 우리는 살게 된 것입니다.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제사(祭祀)드릴 때, 영생(靈生)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世上)의 죄인(罪人)들에게도 하나님의 보호(保護)와 축복(祝福)이 임(臨)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나라를 살리는 예배(禮拜)를 드리려면, 다른 것으로 예배(禮拜)를 드리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믿고, 예배(禮拜)드릴 때,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심판(審判)이 우리 가운데 큰 은혜(恩惠)의 불로 떨어져 은혜(恩惠)를 받고, 이 세상(世上)은 일시적(一時的)으로나마 하나님의 보호(保護)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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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에녹
11:5절)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者)라 하는 증거 (證據)를 받았느니라.”
에녹이 살던 당시는 온 세상(世上)이 노아의 홍수(洪水) 전(前)이었기 때문에 방탕(放蕩)하고 타락(墮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방탕(放蕩)하고, 타락(墮落)한 삶을 살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全部)라고 생각(生角)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기 전(前)에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고, 누리자'고 생각(生角)하기 때문에 방탕(放蕩)하고, 죄(罪)짓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11:5절)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옳겨지기 전(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창5:24절)에녹이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世上)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기록(記錄)하고 있습니다. 즉 에녹에게 하나님은 실제적(實際的) 인 분이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존재(存在)가 관념적(觀念的) 즉 머리로만 존재(存在)하는 분이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存在)였지만, 에녹에게 하나님은 실제적(實際的) 살아계신 하나님, 존재(存在)하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世上)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인정(認定)하는 것과 인정(認定)
하지 않는 것은 천지(天地)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世上)은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自己)의 머리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生角)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世上)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기(自己)의 능력(能力)과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着角)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가 모든 것의 주인(主人)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알게 되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고, 말씀의 체험(體驗)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世上)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에녹처럼 하나님을 늘 인식(認識)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실제(實際)로 믿고, 그 말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죽음을 통과(通過)하지 않고, 곧바로 영생(永生)의 세계(世界)로 가버렸겠습니까? 그러므로 실제(實際)로 좋은 것들은 저 천국(天國)에 다 있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자기(自己) 자신(自身)에게 계속 속고, 곧 철거(撤去)될 건물(乾物) 즉 육체(肉體)에 모든 것들을 투자(投資)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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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노아.
11:7절)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警告)하심을 받아 경외(敬畏)함으로 방주(方舟)를 준비(準備)하여 그 집을 구원(救援)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世上)을 정죄(定罪)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義)의 상속자(相續者)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救援)과 멸망(滅亡)을 너무나 생생(生生)하게 체험(體驗)한' 사람입니다. 노아 때까지만 해도 이 세상(世上)에는 큰 홍수(洪水)도 없었고, 큰 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얼마 후(後), 큰 홍수(洪水)가 내려 온 세상(世上)을 멸(滅)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통(普通)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그런 비가 내리지도 않았고, 그런 홍수(洪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멸망(滅亡)시킬 수 없다'고 주장(主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고, 자신(自身)의 모든 삶을 투자(投資)하여 홍수 (洪水)를 대비(對備)할 큰 배(船)를 만들었습니다. 노아의 이런 행동(行動)은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바보같은 짓이었습니다. 즉 120년 동안 장사(商業)를 하거나, 다른 물건(物件)을 만들었어도 어마어마한 것을 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무려 120년 동안 배(船)만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방주(方舟)라는 배(船)는 제대로 된 배(船)가 아니었습니다. 즉 노도, 돛도 없는 바지선 같은 배(船), 즉 *움직이지도 못하고, 물 위에 둥둥 떠 있기만 한'배(船)였습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120년 동안 배(船)짓는 일만 했습니다. 결국(結局) 하나님은 온 세상(世上)을 심판(審判)하실 때, 그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입증(立證)하셨고, 본문 7절)...믿음을 따르는 의(義)의 상속자(相續者)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 때, 세상(世上)을 붙들고 살던 사람들은 모두 멸망(滅亡)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었던 노아는 멸망(滅亡)당하지 않고, 그의 가족(家族) 여덟 식구(食口)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相續)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세상(世上)에 아무리 좋은 것들이 많아도 그것을 의지(依支)하지 않고,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실제(失題)로 존재(存在)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이 세상(世上)의 모든 것들이 장차(將次) 없어질 것임을 믿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으라'고 하는 배(船)는 신앙(信仰)의 공동체(共同體)입니다. 열심(熱心)히 믿음의 공동체(共同體)를 만들 때, 그 안에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쌓이기 시작(始作) 할 것이요, 기적(奇蹟)의 능력(能力)이 나타나기 시작(始作)할 것이요, 기도(祈禱)의 응답(應答)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結論)(후 Ⅱ)
11:6절)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者)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自己)를 찾는 자(者)들에게 상(賞)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세 가지 사실(事實)을 깨달아야 합니다.
①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方法)은 믿음밖엔 없다'는 사실(事實)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하신 것을 믿고, 성경(聖經)을 믿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크신 은혜(恩惠)를 주실 것입니다.
②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믿으려고 *애쓴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으로 체험(體驗)해야 합니다.
③진심(眞心)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者)들에게 믿음의 상(賞)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能力)과 축복(祝福)과 영생(永生)입니다. 하나님이 성령(聖靈)을 부으셔서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사는' 즉 죽음을 통과(通過)하지 않고, 영생(靈生)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依支)하고, 그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므로 우리의 삶이 영원(永遠)히 무너지지 않는 반석(盤石)위에 세운 집이 될 수 있기를 주(主)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아-멘
찬송가 357장*주(主) 믿는 사람 일어나*
| 오늘의 묵상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者)마다 세상(世上)을 이기느니라. 세상(世上)을 이기는 승리(勝利)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者)가 아니면, 세상(世上)을 이기는 자(者)가 누구냐(요한1서 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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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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