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calltax작성시간08.12.12
정덕화는 정말 수비의 귀재였지만 이충희 팬으로서 안타까운건 무릎이 맛간 상태의 이충희가 정덕화한테 꼼짝못하고 당시 실질적 에이스는 고 이원우 선수가 했는데...마치 이충희는 정덕화의 수비에 소위 발렸다는 인식이 강한것이 정말 안타깝네요,,
작성자제트작성시간08.12.12
저때 중학생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정덕화가 주장도 하고 팀도 우승하고 그래서 mvp받았던것 같습니다 저때만 해도 정덕화 선수가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정말 mvp돌아가면서 탄것 같네요 저때만해도 김유택선수가 최고였던것 같은데요 간통 사건이 언제인지 모르겟는데 저때와 시기가 맞다면 그때문일수도 있을것도 같네요
답댓글작성자위대고명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8.12.12
제가 이번에 자료 검색하다 보니 당시 상황에 대해서 많이 정리가 되면서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단 당시 창단멤버는 유재학/정덕화/한기범이었습니다. 창단 멤버 예유 차원에서 MVP가 돌아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김유택 선수는 89시즌에 간통 사건으로 피소되었기 때문에 90 시즌에 정덕화가 받은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작성자귀여운 맥기윙스작성시간08.12.12
의외로 서장훈이 농구대잔치 득점왕한적이 없군요 97년엔 현주엽,서장훈선수가 둘다 4학년으로 마지막 농구대잔치였는데 현주엽선수가 득점왕이군요 그당시 평균득점이 30점 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2001년 현주엽의 리바운드 1위는 그당시 부상으로 경기 출장시간이 평균 20분정도 밖에 안됏었는데 김주성을 제치고 리바운드 1위를 햇었죠 그때 결승상대도 중앙대였는데 상무가 우승했구요
답댓글작성자N0.25작성시간08.12.12
농대를 기록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게, 저 때는 팀별로 전력차가 크던 때라서 연세대학교 같은 경우는 최고의 슈퍼스타들만 모여있었죠, 자연히 공격비중도 서장훈외에도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많아서 득점왕까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득점을 못한 것은 아니고요.
작성자Best스머프작성시간08.12.12
글 잘봤습니다^^ 근데 글 작성된지 몇년된듯..? 이 글 보면서 연대때의 김동우가 생각나는군요. 우지원,김훈 이후로 제대로 된 슛터라 칭찬했었는데. 꼭미남에다가,,, 근데 솔까말해서 프로 1순위로 지명 후 첫 루키 시즌에, 대학때 만큼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죠. 지금은 팀에 없어서 안될 선수라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