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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농구 게시판

북한 농구의 90년대 전성기를 이끈 두 거목 - 리명훈과 박천종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20.10.06|조회수3,911 목록 댓글 45

 

2미터 30이 넘는 센터 리명훈,

그리고 "인민 조던" 박천종.

 

1990년 아시안 게임,

필리핀 전에서 추출한 GIF 입니다.

 

 

 

1. 리명훈의 덩크

 

 

리명훈은 큰 키에도 불구하고

기동력이 좋았습니다.

골밑 몸싸움도 잘하는 편이고,

자리선점이나 골 근처에서의

근거리 슈팅, 자유투도 좋았고요. 

 

 

 

2. 박천종 to 리명훈

 

 

박천종의 엔트리패스.

2미터의 필리핀 센터가 수비하지만,

참 쉽게 엔트리패스가 들어가죠.

 

 

 

3. 박천종의 속공 레이업

 

 

185센티의 신장이지만,

경기 중에 원핸드 덩크를

뻥뻥 찍어대던 박천종입니다.

 

리명훈의 리바운드에 이은

행타임을 이용한 멋진 레이업!!

 

 

 

4. 박천종의 공격 리바운드

 

 

역시나 탁월한 운동능력을

베이스로 깐 뛰어난 공격 리바운드

 

 

 

월등한 기량차를 선보인 필리핀이

결국 승리는 했지만,

리명훈이 코트에 있을 땐

북한이 밀리질 않았습니다.

 

리명훈이 3파울로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에 점수차가 벌어졌죠.

 

그럼에도 리명훈은 이날

30점 가까이 득점했습니다.

 

 

 

이제는 북한농구협회 회장인 박천종

 

그 말근육 다 어디 가고... 이젠 후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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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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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르질라 브롱코스 | 작성시간 20.10.06 르질라 브롱코스 이었는데 3년전에 비해 리명훈은 노쇠한 모습이 역력하여 서장훈에 의해 골밑에서 밀려나기 일수였고 결국 11득점, 8리바운드로 상당히 부진했습니다.반면 서장훈은 리명훈을 공수에서 압도하면서 22득점,14리바운드로 골밑을 장악합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박천종을 막지 못해서 2쿼터까지는 상당히 고전을 했습니다. 사실 박천종도 2002년 당시엔 이미 전성기에서 많이 내려간 상태로 운동능력이나 체력이 상당히 떨어져있었지만 슛팅력은 오히려 항샹되었는지 내외곽을 오가면서 점퍼와 3점을 꽂아댔고 이상민, 추승균, 문경은등이 번갈아 막았지만 전혀 막아내지 못하면서 2쿼터까지 20여점을 허용합니다. 다만 3쿼터부터 체력이 떨어졌는지 박천종의 슛이 잘 들어가지 않기 시작하고 우리나라는 문경은의 3점과 속공으로 점수차를 순식간에 벌리면서 101:85로 16점차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승리의 1등공신은 골밑을 장악한 서장훈과 신들린 3점을 선보인 문경은(대략 3점 6개정도 넣으면서 28점정도 넣었죠.)이었고 북한은 박천종이 30점가량을 넣으면서 분전했지만 리명훈이 서장훈과의 골밑 싸움에서 완패했고 북한의 나머지 어린(?) 선수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에 불과했는지라 상대가 되지 못
  • 답댓글 작성자르질라 브롱코스 | 작성시간 20.10.07 르질라 브롱코스 했습니다. 그외에 리명훈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한창 리명훈이 20대 전성기였던 96년쯤에 NBA 진출을 시도했었습니다. 만약 성공했다면 중국의 걸어다니는 만리장성(왕즈즈, 멩크 베티어, 야오밍)들보다 5~6년 앞서서 동양인이 NBA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었는데 정치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던 걸로 기억하고 그와는 별개로 NBA에 진출해서 어느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였는지는 좀 의문이었습니다.99년에 만30세 나이로 서울에 와서 현대+기아팀의 센터 정훈종을 탈탈 털었던 것은 인상적이긴 했지만 정훈종이 그렇게 뛰어난 빅맨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상의 고평가는 무리이고 만33세였던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서장훈에게 탈탈 털린 것은 이미 리명훈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지만 리명훈은 정훈종, 서장훈외에도 우리나라 빅맨을 상대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바로 서장훈 이전에 국내 최고 빅맨이었던 김유택과의 2차례 매치업이었는데 첫 매치업은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으로 이때 한창 전성기였던 김유택이 아직 기량이 미숙했던 리명훈을 압도했었고 6년 후 96년 대만 존스컵 대회에서 한창 전성기였던 리명훈과
  • 답댓글 작성자르질라 브롱코스 | 작성시간 20.10.07 르질라 브롱코스 이미 전성기를 지나 노쇠한 모습이 역력했던 김유택이 다시 만나게 됩니다.참고로 김유택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는데 96년 대만 존스컵에는 당시 농구협회에서 국가대표팀이 아닌 실업선발팀을 출전시키면서 김유택도 합류하게 되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하여간 대만 존스컵에서 우리나라 실업선발과 북한 국가대표팀이 붙게 된 것이었는데 경기 양상이 어땠는지는 중계가 되지 않아서 알 수가 없지만 당시 언론 기사에 의하면 노쇠한 김유택이 전성기 리명훈을 상대로 노련미를 발휘하며 골밑을 지켜냈고 경기도 실업선발이 북한 국대를 이겼습니다.김유택이 승리의 1등공신이라는 기사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김유택이 아무리 뛰어난 빅맨이라고 해도 96년 당시 분명 전성기에서 많이 내려와서 노쇠한 시점이었는데 그런 김유택을 상대로 전성기의 리명훈이 골밑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리명훈의 NBA성공여부에 많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0.07 르질라 브롱코스 👍👍
  • 답댓글 작성자sang장 | 작성시간 20.10.07 르질라 브롱코스 정말 자세하고 재미있는 글이네요. 제가 96년에 미국에 살았었는데 위에도 썼지만, 리명훈이 캐나다에 와서 훈련을 받으며 NBA 팀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때 미국서도 꽤 화제가 되어 리명훈이 방송에 여러 번 나왔기 때문에 상황을 기억합니다. 일단 건강테스트에서 의사들이 리명훈은 의학적인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였답니다. NBA 에도 리명훈 정도의 키에 완벽한 균형의 신체와 건강한 심장(이게 거인들에게 중요하죠)그리고 호르몬 수치를 가진 선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높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으로 돈이 송금되면 불법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캐나다 팀에서 뛰는 방법, 북한으로 송금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는 방법 (김정일이 승인했다고 하죠)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결국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리명훈은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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