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 반란군 놈의 쉐끼야!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니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역적놈의 쉐끼들!
작성자John Havlicek 작성시간19.12.20 조회수2480 댓글 11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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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페야 스토야코빛 작성시간19.12.20 12.12직후 장태완 장군은 강제예편당했으며
장태완 장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올바르고 소신있는 일을 하다가 패하여
반란군에게 모진 고초를 겪은데 분개와 통탄을 하면서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은 모반자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탄하고,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다 1980년 4월에 별세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외동아들 장성호(당시 20세)가 행방불명됐다.
12.12 군사반란이 터질 때 장성호는 고등학생이었으며,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들어갔고, 그 해 자연대 수석을 차지했다.
장성호는 평소처럼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대문을 나선지, -
답댓글 작성자 페야 스토야코빛 작성시간19.12.20 한 달만에 칠곡군 왜관읍 근처에 있는 산기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들과 아버지를 잃은 장태완은,
본인이 두 사람을 죽게 내버려뒀다고 매우 슬퍼했다.
부친의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불효를 탓하며 전국을 유랑했고,
아들이 죽은 후에는 "성호는 내가 죽인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잡아들이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두 사람과 같은 법정에 서기도 했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이 때 장태완은 대한민국 국회에서 386세대 국회의원들을 만나
"12.12 쿠데타를 내가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러분이 그간 고생 많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