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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서 사라지다가 노인이 되면 다시 찾게 되는 것

작성자무명자|작성시간24.06.19|조회수2,502 목록 댓글 9

 

 

 

 

 

 

 

 

 

 

 

 

 

청소년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부모-자녀 간의 갈등 상황을 간접적으로 굉장히 많이 겪게 되는데,

결국 그들 사이의 갈등은 이것에 대한 인식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로, 행복이죠.

 

아이들은 즐겁고 재밌고 신나고, 

이렇게 본원적인 행복감 자체를 행복이라 느껴요.

 

사실, 이게 당연한 건데, 그럼 부모들은 도대체 무엇을 행복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것, 남들보다 똑똑한 것, 남들보다 잘하고 있는 것,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것

즉, 한 개인이 지닌 여러가지 스펙이 뛰어날수록 그것을 행복과 동치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슨 대학 정도는 들어가야, 무슨 대기업 정도는 들어가야,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있어야,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는 돼야

행복할만 한 거야.

네가 맨날 게임하면서 흥청망청대다가 어중간한 대학 들어가지? 그게 바로 불행한 인생인 거야.

잘난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수 있어. 엄마아빤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살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른들로부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도 점점 그들이 느꼈던 행복감의 가치를 절하시키기 시작합니다.

맛있는 걸 먹으며, 재밌는 걸 보며, 같이 어울려 놀며 느꼈던 벅차오르던 감정을

어느 순간부터 점점 책임 없는 쾌락처럼 받아들이게 되죠.

 

내가 아직 이뤄놓은 것 하나 없는데, 지금 이렇게 깔깔 대고 웃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애들은 죽어라 공부하며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을 텐데?

 

아이들은 경쟁에 물들어가며 점점 행복이라는 감정을 인정하지 않게 돼요.

 

그렇게 뻥 뚫린 아이들의 마음 속 빈자리를 어른들의 정의인 "행복할만함"이 대체하는 것입니다.

 

 

 

 

 

 

 

 

행복할 자격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사람들에게 급수를 매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높은 레벨은 당연히 행복할 것이고, 낮은 레벨은 당연히 불행하리라 단정한다. 행복은 스펙에 종속된다는 믿음. 이 엄청난 착각이야말로 한국 사회에 불행의 씨앗이 퍼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다.

 

 

 

 

 

 

어른이 되면서 사라지는 것.

그것은 바로 순수한 행복감 그 자체입니다.

 

행복할만함이라는 자격 요건에 밀려, 오히려 집주인이 집을 뺏기고 쫓겨나는 형국이랄까?

 

굉장한 아이러니죠.

 

행복하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며 앞만 보며 달려가는데,

정작 희생 리스트의 상단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행복 그 자체라는 사실이 말예요.

 

부모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 네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네 행복을 위해 엄마아빠가 이렇게 희생을 하는데!!!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다며,

행복할만한 미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아이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저당잡히고 희생시키는 것이

바로 현재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입니다.

 

현실을 직시해 봅시다.

 

주체적으로 자라날 자유와 정체성을 잃고, 

현재의 행복감을 담보로 잡아 스펙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여야 하는 삶이

진짜 한국 사회의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행복할만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경쟁에서 밀린 이들은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싶은 겁니까?

 

 

 

 

 

 

행복할만함이 행복을 대체하는 사회에서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채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마구마구 양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은 마지막 한 방을 꿈꾸며 부동산, 주식, 코인 투기 등에 발을 들이죠.

 

사람들은 코인으로 수백배를 벌고 인생 역전을 일궈낸 사례에 열광하지만,

코인으로 전재산을 잃고 패가망신한 95% 이상의 사례들은 애써 외면합니다.

 

지금 이 사회는

 

행복할만함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자산과 위치, 스펙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편하고,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걸로 된 거야. 

 

라는 주장을 하면, 경쟁에서 밀린 패배자들의 자기합리화 ㅋㅋ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행복 그 자체가 아닌, 행복할 자격이라는 돌연변이에 완전히 매몰된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번 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여러가지 취미 활동들을 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

vs

번 돈에 대출 잔뜩 껴서 도심부에 미래 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산 사람

 

여러분은 둘 중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교하자면,

전자는 현재의 행복을 누리는데 집중하고 뒷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자는 주의,

후자는 미래에 행복할만한 사람이 되는데 집중하고 현재는 희생하자는 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면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청중들의 답변은 꽤나 밸런스 있게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위 사례의 나이대를 고정시키면 답변이 한 쪽으로 확 몰렸다는 점이에요.

 

번 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여러가지 취미 활동들을 하며 즐겁게 사는 "노인"

vs

번 돈에 대출 잔뜩 껴서 도심부에 미래 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산 "노인"

 

어떤 노인이 더 행복한 노인인가라는 질문에 후자라고 답한 청중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

 

노인들에게는 미래를 대비하는 일보다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즐기는 게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노인이 되면,

그동안 잃고 지냈던 순수한 행복감 그 자체가 다시 인생의 주된 이슈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행복할만함이라는 개념은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이젠 그다지 중요치 않으니까.

 

 

 

 

 

 

한국 사람들이 행복할만함에 매몰되는 이유는, 현재보다 미래의 가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아직은 먼 미래이기 때문에 별 걱정없는 아이들과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덜 걱정되는 노인들을 제외한다면, 한국 사회의 대다수 청년들과 중장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얼마든지 현재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행복할만함이란,

행복에 가까운 개념이라기보다는 안전, 안정, 안심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발 뻗고 잠잘 수 있을 만큼 어느정도 이룬 상태

 

부모님들은 더이상 자녀 걱정 없이 그저 안심하고 싶은 겁니다.

내 아이들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살 수 있을만큼 스펙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소망

 

불안한 거죠. 아이들의 미래가.

그 불안감이 너무 괴롭고 싫으니까, 최대한 아이들을 성공시키고 싶은 거예요.

돈이 있으면 적어도 괴로울 일은 많이 줄어든다는 것을 내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행복할만함은 사실 행복을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불안과 불행을 대비할 수 있는 개념에 가까운 것입니다.

최대한 먹고 살기 위한 자산을 확보해 놓음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따라서, 행복은 행복감 그 자체로 얼마든지 즐기면서,

불안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는 태도를 동시에 지니면 돼요.

 

심리학에서 항상 강조하는 바는, 행복은 희생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행복은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항상 곁에서 돕는 조력자와도 같은 존재에요.

행복감을 느낌으로써 에너지가 충전되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어 주거든요.

 

그러니 여러분 주변에 존재하는 사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들을 더이상 밀어내려고 하지 마세요.

 

행복에는 그 어떠한 자격 요건도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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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 그림자 | 작성시간 24.06.19 아이를 키우며 고민이 많은데 행복과 행복할만함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V5 밥수라 | 작성시간 24.06.19 구구절절이 좋은말과 맞는말이 많네요..^^. 나는 나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사람을 정신승리 및 자기합리화하는 냐악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이죠!
  • 작성자legend#31 | 작성시간 24.06.19 글 잘 읽었습니다..!! 현재를 즐기고 누리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 역시 마음과 생각을 잘 관리해야 겠다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웅컁컁 | 작성시간 24.06.19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참 좋겠네요.
  • 작성자SenesQ | 작성시간 24.06.20 아... 무명자님 말씀은 진짜 정규교육 과정에 들어가야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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