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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날 괴롭힐 때

작성자무명자|작성시간24.08.14|조회수848 목록 댓글 3

 

 

 

 

 

 

 

 

 

 

 

 

대다수의 인문학자들은 증오야말로 사람을 망치는 가장 위험한 감정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결국 당신을 망치는 길이니 미워하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용서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날 괴롭힌 사람을 향한 증오와 복수심은 인류의 DNA에 새겨져 있는 본능이기 때문에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해서 쉽사리 버릴 수가 없는 매우 강력한 감정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무턱대고 증오와 복수심을 멀리하려 하기보다는,

왜 이런 마음이 드는 지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어떻게 해야 미워하는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생존 알고리즘

 

 

 

 

 

 

대놓고 또는 은연중으로 날 물 멕이려는 작자가 있을 때, 이를 감지하고 응징하려는 시스템이 내재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생존 확률이 높을까?

 

 

 

 

 

 

현대 사회에서는 감정이 이성보다 매우 뒤떨어진 비문명적 요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원시 시대에는 감정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며 실용적인 생존 기술이었습니다.

 

죽고 죽이는, 먹고 먹히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우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행동 기제가 필요하였으며,

이를 위해 진화되어 온 마음의 기제가 바로 현대인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입니다.

 

분노, 증오, 공격성, 복수심 등등

 

먹을 게 부족하고 하루하루 생존이 중요했던 시대.

누군가 날 헤치려 하고, 내 식량을 뺏어가려 한다면,

이에 맞서 내 삶을 지키기 위해,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응징하려 하는 것은 자연스레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향상시켰을 겁니다.

 

원시인들도 서로 조심했을 것이고,

다른 포식자들도 호모 사피엔스는 성깔이 드러우니 만만히 봐서는 안 되겠다라는 느낌을 새겼겠죠.

 

인간들이란 뚜껑이 열리면 그냥 받아버리는 족속이니 조심해야 돼.

 

 

 

 

 

 

인류에게 이러한 부정적 감정이 얼마나 강력한 기제인지를 증명해주는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최후통첩게임(독일 훔볼트 대학의 경제학자 Werner Guth 개발)이라고,


이 게임의 플롯은 간단한데, 2명 중 한 명이 제안자, 나머지 한 명이 반응자가 됩니다.
실험자는 제안자에게 일정액의 돈을 주게 되는데,

(예를 들어, 10만원, 100만원 등등)
이 때, 제안자는 자기 마음대로 액수를 분배할 수 있죠.
5:5도 좋고, 9:1도 가능해요.
단, 제안자가 네 몫은 ?%야라고 했을 때, 

반응자가 최종 NO라고 거절하면 둘 다 돈을 못 갖게 되는 시스템이라서, 명칭이 최후통첩게임인 겁니다.
이게, 정말 경제학적 논리로만 따지자면, 반응자는 단 1%라도 받아서 챙겨야 하는 게 맞는데, 

(천원, 만원이라도 일단 공짜로 생기는 것이니 받는  게 이득임)

그간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 보면, 10-20%를 오퍼받았던 경우,

거의 70%의 피험자들이 상대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공정하지 못한 제안에 분노를 일으켰을 테고, 

복수하고자 하는 일념에 내가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도 무시한 채,

상대방 또한 돈을 받을 수 없게끔 자폭하는 의사결정을 보였던 것입니다.

 

 

 

 

 

 

나한테 10프로만 주고 네가 90프로를 가져간다고?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 이 10프로 없어도 돼. 네가 90프로 못 가져가는 거 보는 게 나한테 더 큰 이득임.

 

 

 

 

 

 

당대의 유명한 진화심리학자 중 한 명인 Leda Cosmides는
인간의 이러한 행위패턴을 "cheater-detecting algorithm"으로 설명하였는데,
인류의 진화 역사 상, 협잡꾼을 찾아내서 반드시 응징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단 얘깁니다.


쉽게 말해, 

일을 하지 않고서도 고기나 열매를 나눠 갖으려는 cheater들을 탐지하고 색출해 내는 능력이 있던 구석기인들이

그렇지 못했던 구석기인들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더 컸을 거라는 추론인 거죠.

당연히, 자원이 풍족하지 못 했던 시대를 살았던 구석기인들이라면 자원 관리에 철저해야 했을 테고, 

협잡꾼들을 방치해 두면 자연스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그들의 곳간이 비워져 버렸겠죠.

 

따라서, 이 cheater-detecting algorithm을 유전자로 지니고 있던 구석기인들이 결국엔 생존에 성공했을 테고,

우리 현생 인류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이러니, 못된 심보를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에게 응징을 가하려고 하는 심리가 강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왜? 증오와 복수심이야말로 인류를 살아남게 만든 강력한 본능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구석기 시대가 아니다. 육체적 생존은 더이상 현생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정신적 생존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슈가 되었다. 부정적 감정들이 구석기인들에게는 육체적 생존을 위한 도구적 기제였다면, 현대인들에게는 정신적 생존을 훼손하는 가장 위험한 독이 된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현대의 심리학을 이해하려면,

결국 원시시대에 인간에게 왜 이러한 마음들이 진화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추적해야 합니다.

 

원시시대를 기준으로,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모두 감정이라는 시스템 하에 정립되었지만,

기나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환경이 너무나도 급변한 관계로, 

그때는 맞았던 것들이 지금은 틀리게 되면서 이러한 불협화음이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을 좀먹게 된 것입니다.  

 

오직 육체적 생존을 위해서만 진화돼 온 감정들이

육체적 생존이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정신적 생존을 위축시키고 있는 셈인데,

 

증오와 복수심은 말할 것도 없고,

인정 욕구나 자존감 같은 감정들도

원래는 인간들을 서로 뭉치게 함으로써 생존에 도움을 주는 감정이었지만,

 

(ex.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서로 결집하게 됨)

 

지금은 과도한 인정 욕구와 불안정한 자존감으로 인해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이게 다, 현대인들이 여전히 과거의 정신적 유물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입니다.

 

환경은 급변했는데, 현대인들의 뇌는 여전히 구석기인들의 뇌와 동일한 것이죠.

 

 

 

 

 

 

생물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진화의 시계추는 여전히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즉, 우리는 여전히 구석기인들의 시스템을 지닌 채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에게는 감정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결정짓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증오와 복수심 같은 구시대적 감정에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나를 괴롭힌 심보가 못된 인간에게 증오와 복수심을 품는 건 시스템의 일입니다.

즉, DNA에 새겨진 행동 패턴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 시스템은 구석기 기준이므로, 현대인들이 굳이 맞춰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시대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심을 갖는 것이 

그 사람의 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독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었다면,

그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 이 감정은 구석기 뇌의 오류가 증폭시킨 왜곡된 감정이라고 해석하는 것부터 시작하셔야 해요. 

 

지금 이 감정이 정답이 아니라 오답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한결 차분해지며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만큼 적당한 부동심을 갖추게 되거든요.

 

 

 

 

 

 

물론, 이렇게 알아차렸다고 해서 증오와 복수심이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감정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의 부동심은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능과도 같은 이 강력한 감정들을 온전히 해소시켜 주지는 못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일어난 부정적 감정들을 "동기 부여"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켜 주는 겁니다.

 

어차피 심보가 못된 인간들은 굳이 내가 벌하지 않더라도 정당한 업보를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왜? 그들에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죠.

 

업보란 게 그런 겁니다.

 

인간이 지닌 cheater-detecting algorithm으로 인해,

악당에게 당한 대다수 사람들이 악당을 벌할 기회만을 벼르고 있으므로,

악당이 조금만 삐끗해도 그 많은 증오와 복수심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게 되죠.

 

어차피 알아서 무너질 거,

나는 그 분노를 발판 삼아 언젠가 무너질 악당과의 격차를 벌려놓기 위해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무심하게 한 번 확인해 보면 돼요.

 

결국 그럴 줄 알았다. 쯧쯧 불쌍한 인생 같으니라고.

 

 

 

 

 

 

썪은 열매는 굳이 내가 치지 않더라도 언젠간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썪은 열매에 분노할 에너지를 거둬들여, 나의 나무에 멋진 열매가 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시간이 흐른 뒤, 원수의 메마른 나무와 내 풍성한 나무를 비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최고의 복수가 될 것이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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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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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이레이 | 작성시간 24.08.14 그러나 사기친 인간들이 마땅한 벌을 받지 못하는 시스템을 볼때면 화가 두배로 치미는 ...
  • 작성자Game 7 | 작성시간 24.08.14 매번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결국 모두 공멸의 길을 걷게 되죠.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머리로도 그래야한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본문에서 언급하신 부분 중

    ‘어차피 심보가 못된 인간들은 굳이 내가 벌하지 않더라도 정당한 업보를 받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니까(권선징악 사필귀정 자업자득은 그저 이론상의 얘기고 실제로는 내게 피해를 끼친 나쁜놈이 더 잘 사는).. 이 부분 때문에 증오와 복수심을 못 내려놓게 되는 것 같아요
  • 작성자SenesQ | 작성시간 24.08.15 재밌게 잘 봤습니다. 업보란게 정말 작동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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