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우입니다. 대선도 끝났고, 내일이면 연휴 시작이니 오전에 일과 시작 전 간단하게 대선 감상을 쓰고 가겠습니다. 편하게, 재미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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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대선,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으로 끝이 났습니다. 출구조사 발표, 개표, 김문수의 승복, 이재명의 지지지 앞 일성까지 일련의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진짜로 말 그대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은 아마도 이 대선이 단순히 앞으로 5년간 대통령으로 일할 누군가를 뽑은 선거가 아니라, 지난 12.3 내란을 진압하는 과정의 클라이막스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겁니다. 더 멀게는, 2022년 내란수괴의 당선 이후부터 진행된 역사의 반동을, 다시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길고 먼 여정이었습니다. 지켜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결국 거리에 나간 시민들이 역사를 제자리에, 다시 나아갈 출발점으로 돌려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지지자였든 아니든, 이번 대선과 이재명의 당선은 축하해주고,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잘해주길 박수쳐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내란수괴와 내란범들이 이 사회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못한 데는 이재명과 민주당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내란의 밤을 지켜보면서, 다가올 대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재명에게 표를 줘야겠다고 느낀 시민은 저뿐만이 아닐겁니다. 내란수괴와 내란당에 맞서서 오랜 기간 싸우고, 버텨준 이재명과 민주당 정말 고생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번만큼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주는게 맞겠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그랬기에 이번 선거 결과가 다소 아쉬운 것 역시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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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서론은 여기까지하고, 개인적으로 제가 글을 써야겠다고 느낀 이유가 제가 옛날에 썼던 다른 글 때문이었습니다.
"엇박자 20대 대선 감상: 민주당 꼰대들의 오만"(2022.3.11)
https://cafe.daum.net/ilovenba/34Xk/411667?svc=cafeapi
제가 대선이 끝나고 갑자기 이 글이 생각나서, 어제 출근하는 길에 다시 읽어보니 흠.. 반추할만한 여러 재밌는 포인트가 있더라고요. 제가 저 글에 썼던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대선에서 윤석열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윤석열과 국힘이 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못했기 때문이라고요. 정책적인 차원을 떠나서, 소통의 의지가 부족했던, '계몽의식'에 찬 꼰대들과 586민주화운동 세대가 특정 세대와 성별에게 분노와 반발감을 일으켰고, 그 결과 꼴통들에게 정권을 넘겨주고야 말았다고 썼습니다. 제가 이런 말도 썼었네요.
"꼴통들에게 졌다는 걸 인정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걸 어찌하겠습니까. 지들이 못해서 넘어간 것을. 민주주의란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들이 옳다고 우겨대도, 대중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죠. 그렇다면 다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 엠비와 박근혜를 지나면서, 한국사회의 대중은 아, 그래도, 민주당이 더 낫네? 라고 생각하게 됐는지. 선민의식에 빠진 꼰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꼴통들이 아무리 삽질을 해도 정권이 다시 민주당으로 교체되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5년간, 꼴통와 꼰대의 대결, 아주 흥미롭겠네요."
지금도 저때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민주당은, '선민의식에 빠진 꼰대 이미지'를 벗어났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저는 12.3 이후 펼쳐진 광장의 광경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을 우리가 함께 봤다고 생각합니다. 2030 여성과 연대하는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모습에서요. 20대부터 정말 많은 시간을 광장에서 보내왔지만, 2024년 겨울의 광장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나온 사람들과, 소녀시대와 지디, 데이식스의 노래가 나오는 광장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탄핵안이 가결되던 그날, 여의도광장에서 사람들과 다함께 '다만세'를 떼창하는 그 순간, 그 감격, 그리고 그 연대의 기억은 앞으로 오랜 기간 한국 사회의 힘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이전에 오랜 기간, 거리에서 대학생들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요즘 친구들'은 사회 문제에 너무 관심이 없다고 선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마치 그게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저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던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2030, 특히 여성들은 이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대라는 것을 이번 국면에서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은, 이재명은 꼰대의식을 내려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국민'이라 말하며 소통하고 따라가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지금의 민주당은, 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의 민주당과는 체질이 많이 달라진, 다른 정당으로 느껴집니다. 저만의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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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저는 이런 말도 했었네요.
"윤석열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라고 생각합니다. 무능함, 독선, 꼰대, 검찰적폐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그 안에 제대로 된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나라를 더 뒤로, 후퇴시키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하다가, 꺼져버리길, 제 인생에서, 제 눈에 다시 보이지 않게 5년 뒤에는 사고 없이 조용히 꺼져버리길 축복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 진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밌는 건, 이재명이 기존 민주당 색깔과는 확실히 좀 다른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대선이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데... 과연..."
저주 아닌 저주와 희망을 남겼었는데, 2025년 6월에 와서 보니, 저주는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이재명이란 희망 역시 그대로 남았다는 점에서 재밌는 논평이었네요. 윤석열은 셀프계엄이라는 최악의 역사적 후퇴를 일으키면서 쫓겨났고, 사형으로 끝이날겁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겠죠. 국민의힘 역시 내란당으로 전락했고요. 그러면서 이재명, 기존의 민주당, 즉 문재인과 문재인의 민주당과는 다른 인물이고, 이후 다음 대선에까지 나와 이번 패배와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는데, 결과적으로 맞췄네요. 이재명은 확실히 달랐고, 대선에 나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재명이 앞으로도 잘해주길 바랍니다. 사실 제가 그보다 전에는 이재명을 제가 왜 싫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이재명과도 지금의 이재명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늘 그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이재명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성장한 것이겠죠. 저도 지금은 이재명이 대통령 자리에 맞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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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과에 대해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특히 2030 남성들의 표는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비난보다는 이해와 설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즘, 여성혐오에 대한 열린 스탠스가 지금의 이재명과 민주당에 대한 2030 여성들의 굳건한 지지를 만들어냈듯이, 2030 남성들의 지위 변화, 경제 문제, 즉, 그들이 처해있는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때입니다. 2030 여성들이 연대했던 4050 남성들은 어쩔 수 없는 꼰대이지만, '탈꼰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꼰대여야 합니다. 현상을 보고 지적하고 가르치려만 하지 말고, 결국 그 구조를 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알럽에 '여성 혐오의 역사'에 대해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제 '이대남의 역사와 현실'에 관해 글을 쓰고 우리가 이야기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란을 진압하고 한국 사회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권 연장이 필요합니다. 어설프게 적폐청산을 하는 척하다가 그만두고, 오히려 그뒤에 윤석열이라는 역풍을 불러왔던 5년짜리 정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5년이 아니라, 그보다 긴 장기적인 '정상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란당이란 것이 판명이 된 그 당을 정치권에서 퇴출시키고, 새로운 진보정당들과 소통하고 진보적인 이슈들을 어젠다로 끌어올릴 수 있는 그런 민주적 사고가 가능한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대남을 극우에서 떼어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꼰대들의 비난이 아니라, 정치적 상대로서 그들을 되돌려놓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또 한번, '탈꼰대'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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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다릅니다. 이재명은 합니다." 제가 3년전 대선에서는 목적어가 없는 구호라면서 이재명에겐 방향성, 통치이념이 부재해보인다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이재명은 내란진압과 정상화, 경제재건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갖고 어딘가로 나아가려 합니다. 이재명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란것을 보여줬습니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이재명은 이전에 민주당에는 없던 유형의 정치인이고, 무언가 하긴 할겁니다. 그 결과가 좋길 기대해봐야겠죠.
그리고 다른 것보다도, 그의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이대남 역시 이재명은 다르구나, 하는 놈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길, 그런 5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저도 맘편히, 뽑아줘야 해서가 아니라, 정말 제가 지지하는 정당에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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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연휴 잘 보내시고요. 저도 퇴근하고 세미나 마친뒤 오늘 밤은 즐기려합니다. 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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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ard*하경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6.05 ㅎㅎ저도 그래서 골랐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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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운다 작성시간 25.06.05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감 되는 부분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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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ard*하경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6.05 감사합니다 연휴잘보내셔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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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theo 작성시간 25.06.09 잘 봤습니다. 정치가... 너무 과잉하지만 않으면 참 여러가지 생각해볼 거리도 많고 이야기해볼 것도 많은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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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Card*하경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6.09 네 특히 이번같은 국면은 과잉안하기도 쉽지않은 상황이었으니.. 앞으로 5년 잘하길 바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