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화, 혐오의 시대를 보다보면 저는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양비론의 폐해인데, 이 양비론의 위험성에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릴적 형제간의 다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죠. 간혹 부모님이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둘 다 잘못했다"며 똑같이 야단치시면 억울해합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시비지심'이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번엔 네가 잘못했다"는 명확한 지적은 억울함을 덜어주지만, "둘 다 똑같다"는 말은 문제를 덮어버리고 아무 해결도하지 못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와 반대편에 "둘 다 옳다"는 양시론이나 "둘 다 틀렸다"는 양비론이 있습니다. 자신이 논쟁의 당사자보다 높은 심판관의 위치에 있다고 여길 때 사용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개입하기 싫다"는 귀찮음의 표현, 혹은 사안을 하찮게 여기는 '지적 나태함‘입니다.
우리 사회에 양비론이 널리 퍼진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큽니다. 언론은 최종 판결자처럼 행세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너도 틀렸고, 둘다 틀렸다"고 말하기 시작했죠. 이는 심판의 권위는 누리되, 지적으로 무능하고 게을러 사안을 깊이 들여다볼 능력이 없음을 확인 시켜주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7만 8천 원의 법인카드 잘못 쓴 것이나, 수억 원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뇌물을 '둘 다 잘못'이라 뭉개 버립니다. 이러한 접근은 대중의 분별력을 마비, 감퇴시킵니다. 또한 누가 들어도 '바이든'으로 들리는 발언을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논란'이라고 보도하는 행태는, 명백한 사실조차 판단하기를 포기한 양비론의 극치라 봅니다.
이렇게 사회가 양비론에 익숙해지면 시비분비를 따지는게 무의미해지죠. 사람은 본래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합니다. 첫째는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시비선악의 관점이고, 둘째는 '나에게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따지는 이해득실 관점입니다. 공자는 이를 두고 견리사의라 했습니다. 이익을 보거든 그것이 의로운지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비론은 "이거나 저가나, 이상황이나 저상황이나 다 똑같다"는 인식을 퍼뜨려 시비선악 기준을 무너트리죠.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가 무의미해지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해득실 계산만 남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심화되면, 타인의 선의조차 의심하게 됩니다. 시비선악의 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에, 모든 행동을 "저 사람이 저렇게 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일까?"라는 이해득실로만 해석하게 됩니다. 결국 양비론은 이타심, 연민, 선함과 같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때론 자기 기분이 끌리는 대로 해석하게 되죠. 게다가 사람이 물질화 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산다", "정의나 올바름을 논하는 것은 위선이다" 라는식의 생각을 하게 되면 이해득실만 따지는 인간이 되는 거죠. 우리는 늘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때론 자신을 재판하고 타인을 재판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죠. 그것이 인간다움인데,
시비선악이 사라지고 모두가 서로를 물어뜯는 혐오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양비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해득실만 따지는 물질적 인간, 혹은 검은 머리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양비론에 빠지지 않게 어떠한 문제든, 잘못이든 꼼꼼히 따져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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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웃으면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9.03 힘이 딸리거나 논리적으로 밀리면 논점 흐리고 물타기를 하죠 국힘 주특기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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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생이다그런줄 작성시간 25.09.03 언론 지적은 참 정확하게 해주신 거 같네요.
원래 스탠스가 기계적 중립인데, 형식에 집어 삼켜져 그게 본인들의 존재 이유가 되어버린...
양비론은 결과적으로 현상유지, 결국 그게 선이든 악이든 현재에 손을 들어주자는 건데 ㅎ
그게 내란이었는데, 그건 안 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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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웃으면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9.04 언론만 좀 바뀌어도 정말 많은 것들이 다방면으로 개선될 것 같은데, 언론개혁은 참 어려운 끝판왕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국민들이 앞으로도 계속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속 모이고, 대화하고, 뭉치고, 행동하고 선택해 가면서 나아가면 결국 더디지만 바꿀 수 있다 믿습니다. 인생이다그런줄님 늘 좋은 글들과 말씀 감사합니다~ -
작성자정대만 작성시간 25.09.04 양비론의 위험성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양비론을 핑계로 작은 악을 감추는 것도 문제 입니다. 동일 진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양비론이라 비하하며 단일 대오를 요구하고 그에 따르지 않는 자를 회색분자 취급하는 일도 매우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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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웃으면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9.04 네 그래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면 진실을 기반으로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