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댓글작성자gabage time작성시간26.03.29
세조때 유능한 인재 많이 죽이고 훈구 권신들이 판치게 된 것도 있긴 한데 그 무렵부터 소빙기 기후변화 도래로 농업 생산력이 붕괴되며 나라 경제가 도탄에 빠진 것이 결정적이었죠. 농업이 기반인 국가에서 농사가 안 되니까 백성들은 굶주리고 도적들은 들끓는데 조정은 훈구, 외척들이나 폭군이 설치고 다니고... 중종때부턴 왜구들도 기승을 부렸고요.
작성자V.CARTER작성시간26.03.29
선조가 전쟁 중에 찌질한 모습을 보였을 지라도 왜란 전까지는 내치 능력을 보여 주기도 했고 왜란 이후에도 노력을 기울여 상당한 수준의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도리어 그 역량을 갉아 먹은게 광해군이고 제발 딱히 하지도 않은 저놈의 중립외교는 좀 치워 버렸으면 좋겠네요. 대동법도 신하들이 하도 졸라서 대충 하는 척만 하다가 그만둔게 몇번인데 그걸 업적이라고... 차라리 내치에 있어서는 광해군 보다 인조가 훨씬 낫습니다.
답댓글작성자gabage time작성시간26.03.29
광해군은 대동법 확대가 아닌 착수죠. 정작 확대시킨 건 인조인데 인조는 업적 없음으로 하고... 너무 노골적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인조는 반정 후 정계에서 밀려난 서인 명신들을 대거 기용해 내치를 안정시켰죠. 반정공신인 김육, 이귀, 김자점은 폐급들이었지만 반정 이후 정계 복귀시킨 이들이 워낙 훌륭했죠. 반면에 광해군은 북인들에게 너무 휘둘렸고 무리한 경복궁 재건 공사로 국고도 많이 파탄냈죠.
답댓글작성자V.CARTER작성시간26.03.29
무려 세종때 까지 살아 있었죠.(물론 이건 태종이 살아서 세종에게 일찍 양위한 것 때문이지만) 승하 했을때 세종이 아버지 눈치를 본 탓인지 묘호를 올리지 않아 계속 명에서 내려준 왕호인 공정왕으로 불리다 숙종때 되어서야 정종이라는 묘호를 올리게 됩니다. 뭐 그거야 죽고 나서 일이고 살아 있을때는 동생(이자 족보 상으로는 아들) 태종과 사냥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장난도 쳐 가면서 잘 살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