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고대·중세·근세 등 시대를 좀 나눠야 하지만
노잼일 것 같아서 그냥 재미로 한방에 나열해본 순위.
기준은 다음 3개고 당연히 완전 주관적.
a. 객관적 군공과 세계사적, 군사사의 영향력
b. 구체적인 전략, 전술적 기록
c. 상황 고려 (불리한 세력인지, 수성보단 원정과 정벌을 더 고평가, 다병종 상대도 고평가 등등)
같은 전선에서 활약한 듀오들은 웬만하면 대표로 한 명만 뽑음. (eg. 위청·곽거병, 이광필·곽자의)
한·당·송·명 등 한족 정통왕조만 포함 (요·금·원·청 제외), 현대사 제외.
10. 초한쟁패기 서초패왕 항우
“지금 이곳에서 곤궁해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
거록대전에서 왕리의 진군 주력을 격파하여 진을 멸했고 사실상 천하를 제패했다.
팽성에서는 정예 기병 약 3만으로 유방의 제후연합군 수십만을 기습해 궤멸시키며 중국사에서도 손꼽히는 야전 지휘력을 보여주었다. 형양·성고 및 제나라 전선에서도 유방·팽월·영포·전영 등 수많은 군웅들을 상대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결국 해하에서 고립되어 전사한다.
대전략은 거의 초숭이었고 공성전과 장기전에도 약했으며 전술 기록이 미비해 군공 원툴이지만, 그 원툴이 너무 압도적이라 10위 선정.
군공 외 다른 점을 중시한다면 후주 시영이나 진왕 이존욱, 송무제 유유 중 하나를 대신 넣어도 무방할 듯하다.
9위. 명 중산왕 서달
“신중하고 군율이 있으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아 장수의 본분을 갖춘 자로는 대장군 서달만한 이가 없다.”
주원장의 휘하에서 장사성·진우량계 세력을 평정하고, 북벌군 총사령관으로 대도를 함락해 원을 중원에서 몰아냈다. 이후 산서·섬서까지 진격하여 원 잔존세력을 격파하고 명나라의 북방 방어선을 설계했으며, 정복지에서도 군율을 엄격하게 유지해 약탈과 민심 이반을 억제한 덕장이자 지장.
기병 중심의 북원군을 상대로 보병·기병·성곽·보급을 결합한 안정적인 작전을 수행하며 수십여 차례 전투를 모두 이긴다.
특히 코케테무르를 상대로 한 침아공 전투와 태원전투에서 비창도허 전술로 원 주력군을 격파한 점과, 산동에서 서쪽으로 대도를 크게 고립시키는 대전략을 직접 수립한 점이 고평가할 부분이다.
그러나 북벌 자체가 그렇게까지 불리한 환경은 아니었고, 사막원정 중 영북에서 한 번 패한 부분 때문에 평가가 깎인다. (심지어 불과 몇 년 뒤 후임 남옥이 똑같은 조건에서 성공하며 북원을 멸한다)
8위. 후한 광무제 유수
"광무제에게 한삼걸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광무제가 워낙 뛰어나 신하들이 크게 드러날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 (제갈량의 평가)
1만여 병력으로 호왈 40만 왕망군을 붕괴시킨 곤양대전은 과장을 감안해도 지형과 바람을 이용한 훌륭한 기습작전이었고, 보급도 힘든 상태에서 하북을 평정한 뒤 적미군·동마군을 토벌한다.
이후 특유의 대전략과 용인술로 유영·팽총·외효·공손술 등 각지 군벌을 차례로 평정했다. 직접 기병을 이끌고 적진을 돌파하는 전술 능력뿐 아니라, 적장을 포섭하고 세력을 흡수하는 정치·군사 통합 능력이 뛰어났다.
무리한 결전을 피하고 장기적으로 적의 보급과 동맹을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10년 만에 천하를 통일했으며, 황제 자신이 최고 전략가이자 야전 지휘관이었다.
다만 천통 군주들 중에서도 친정 횟수가 낮은 편이라 8위.
7위. 당 태종 이세민
"3만의 병사면 충분합니다."
호뢰관 전투에서 두건덕의 하북군을 격파하고 왕세충의 항복까지 받아내 한 번의 전역으로 중원의 양대 경쟁세력을 제거했다. 설인고·유무주·송금강을 연이어 차례로 격파하며 당의 중국 통일을 사실상 완성했다.
소수 정예기병으로 적을 유인한 뒤 결정적인 순간에 친위기병을 투입하는 전술을 즐겨 사용했다. 적의 예봉이 강할 때는 방어하며 지치기를 기다리고, 전열이 흐트러지는 순간 직접 돌격해 지휘부를 붕괴시키는 타이밍 감각, 다병종 기병을 이용한 망치-모루 전술이 탁월했다.
이정, 이세적, 후군집 등 명장들을 적재적소에 파견해 돌궐·설연타·토욕혼·고창국을 정벌하게 한다.
그러나 유일 대외친정인 고구려 원정을 말아먹으며
7위 선정.
6위. 송 길국공 맹공
"신은 갑옷을 입은 무장입니다. 마땅히 싸움을 말해야지, 화친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금 말기 무선의 금군 잔존 주력을 여언·이금채·호산·석혈산에서 연달아 격파하고 채주 함락의 선봉에 서며, 금나라 최후의 야전전력을 붕괴시키고 채주를 함락,
금을 멸망시킨다.
이후 몽골과의 전쟁에선 단평입락 이후 무너진 남송 방어선을 강릉·황주·삼협 일대에서의 승리를 통해 재건하고 몽골군의 장강 진출을 차단하며, 오히려 사천과 양번을 함락시키는 등 천하의 몽골제국을 중국사 최약체 남송 하나 들고 공세적으로 몰아붙인 기동방어의 천재.
조정의 반대로 더 이상의 북벌을 추진하진 못하나 양양·강릉·사천으로 이어지는 방어망을 재건해 그의 사후에도 송은 30년을 더 버틴다.
도하전, 매복, 야습, 공성·수성, 수전까지 전투 유형을 가리지 않고 승리했고, 이 과정에서 반도격, 우회기동, 위장·기만, 복병, 동시다발 기습, 지형 활용을 능숙하게 구사한 데다 기록도 구체적이다.
대부분 홈그라운드에서의 공로인데, 유목제국 하나씩 멸망시킨 이세적, 소정방, 두헌, 남옥의 군공이 더 대단한 것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한·당·명 전성기 국력을 갖고 싸우는 것과 남송 들고 몽골과 싸우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구체적으로 기록된 전술,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할 만하다.
5. 전한 표기장군 곽거병
"지금 상황에 맞는 전략이 무엇인가만 생각하면 됩니다. 옛 병법을 체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일곱 살에 처음 출전해 흉노 본진을 급습, 괴멸시켰고, 하서 전역에서는 장거리 기동으로 흉노의 우현왕 세력을 붕괴시켜 한나라가 하서회랑을 장악하게 했다.
심지어 동료들의 실수로 4경로 분진합격이 실패해도 단독부대만으로 종심돌파를 성공시키며 흉노족의 재앙으로 등극한다.
막북전투에서는 현지조달만으로 수천 리를 돌파해 흉노 좌현왕군을 격파하고 바이칼까지 진출하며 기원전 최강의 유목제국인 흉노를 사실상 붕괴시킨다.
정찰·기동·기습·추격을 극단적으로 결합하여 흉노식 기마전술을 오히려 흉노보다 더 과감하게 사용한 천재적인 기병 지휘관.
군재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동시대 사마천조차도 천운이 따랐다며 모방이 힘든
(심지어 본인이 다시 하라해도 힘든)
전술을 구사했지만,
사실 철도 깔리기 전에 유목제국 정벌은 이 방법 뿐이며
후대 이정·이세적·남옥 등 유목제국 킬러들 역시 비슷한 리스크를 짊어진다.
이목과 위청이 홈그라운드에서 유목기병을 격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곽거병은 유목제국을 정벌하는 방법을 제시한 선구자라 볼 수 있다.
4. 전국시대 진 무안군 백기
"장평에서 항복한 수십만 명을 속여 모조리 묻어 죽였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죽어 마땅하다"
이궐에서 성동격서를 통해 한·위 연합군을 섬멸하고, 초나라 수도 영을 함락했으며, 화양·형성 등지에서도 제후국의 주력을 반복해서 격파했다.
장평대전에서는 반간계로 염파를 치운 뒤 조괄의 출전을 유도해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하여 조군 수십만을 포위·항복시켰다.
정면전·우회·포위·보급 차단·적 지휘관 교체 유도까지 전쟁의 모든 수단을 활용했으며, 평생 70여 차례 전투에서 대규모 패전이 거의 없는 섬멸전의 화신이었다.
특히 그의 등장 이후 전쟁이 섬멸전, 총력전 양상으로 바뀌어 가는데, 이는 백기가 영토와 국경보다는 적의 인프라와 인력을 소모시키는 방식의 전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초토화 작전의 아버지, 총력전의 선구자라 볼 수 있다.
다만 애초에 진의 국력이 워낙 강했고, 춘추전국시대답게 전투의 양상이 모호하게 기록돼 4위. (춘추전국은 기록 때문에 거의 배제)
3위. 당 분양왕 곽자의
“천하는 20년 동안 그의 생사로 나라의 안위를 가늠했다.”
군벌들의 저승사자, 돌궐의 재앙, 동라의 악몽, 토번의 과부제조기.
안사의 난 당시 하곡·정변군·구문성·항양·가산·유림하에서 북방·하북의 반란군을 연파하고, 하동 수복을 거쳐 향적사 전투에서 장안을, 신점 전투에서 낙양을 탈환한다.
업성 패전 뒤에도 전선을 수습해 제2차 낙양 탈환전으로 사조의 정권을 끝장내며 난을 종결한 1등 공신.
이후 동라족의 난을 진압하고 아사나종례의 돌궐군을 격파했으며, 토번이 장안을 점령하자 수천 명으로 유격전, 허장성세를 통해 20만 토번군을 철수시킨다.
뒤이어 일어난 공신 복고회은의 난을 진압하고 영대전투에선 토번·위구르 연합을 상대로 반간계와 추격섬멸전을 통해 6만을 생포하는 등 토번에게 최악의 패배를 남긴다.
다병종을 능숙하게 지휘하며 망치와 모루 전술을 즐겨 썼고, 중국사에서 가장 다양한 병종을 상대로 승리한 명장이며 전술 기록도 구체적이다.
다만 장안 근교에서 안경서에게 한 번 일격을 허용했고, 신점전투 등에선 이광필의 활약이 컸던 걸 감안해 3위 선정.
2위. 당 위국공 이정
“손무와 오기의 병법을 함께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사람뿐이다.”
홍수를 역이용한 수운기동과 기습도하작전으로 소선을 정벌하고, 공성에 성공하며 보석공을 토벌한다. 고작 1년 만에 이효공과 함께 강남을 정벌하며 당나라 능연각 공신에 배향된다.
돌궐정벌에서의 음산전투 당시 선 후방포위 후 기병 3천으로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정양을 기습하는 딱따구리 전술을 구사, 주력을 괴멸시키고 힐리가한을 생포해 동돌궐을 멸망시켰다. (역잘알이라면 7세기 돌궐의 멸망이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노년에는 초원과 고원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분진합격과 포위기동을 성공시켜 선비족의 토욕혼을 멸망시키는 등 내전과 동서남북 외전 모든 전장에서 승리했다.
수전·산악전·초원전·사막전·공성전과 국가 단위의 원정을 모두 성공시킨 완성도에서는 최고 수준이며, 수많은 병법서를 남기고 그 후계자들이 무려 소정방, 후군집, 이세적이다.
신빙성은 좀 의심되지만 당나라 육화진법의 창시자로 꼽히며 이론까지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2위.
1위. 전한 회음후 한신
"폐하께선 능히 10만을 거느릴 수 있고,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한중 하나 들고 출발해 암도진창을 통해 관중 삼진을 평정하고, 위나라를 공격할 때는 목앵으로 도하하는 척 속인 뒤 별도로 강을 건너 후방을 기습했다.
정형에서는 배수진을 쳐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동시에 별동대로 조군의 빈 성채를 점령했으며, 유수전에서는 모래주머니로 막아둔 강물을 터뜨려
초·제 연합군을 수장시켰다.
북방의 위·대·조·연·제를 연속해서 멸망시키며 유방이 항우와 대치하는 동안 사실상 중원 전체를 혼자 정복했고, 마지막 해하전투에서 망치와 모루의 포위섬멸전을 구사하며 초를 멸하고 항우를 참살한다.
쓰레기 군대를 쥐어줘도 기만·우회·도하·수공·배수진·별동대·심리전·대군단 운용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구사했으며, 한나라 창업전쟁의 승패를 혼자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 FM 코리아
댓글 6
댓글 리스트-
작성시간 26.09.01 사실인지도 모르겠고 실제했는지도 몰겠고.
생각엔 다 허구 허상 과대포장 -
작성시간 26.09.01 파초대원수 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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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6.09.02 new
삼국지 전문 유튜버 양양이를 보면.. 중국 그 대륙을 어떻게 이동하고 그 절벽과, 산세를 타넘어 다녔는지 신기합니다. 싸우기전에 지쳤을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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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6.09.02 new
한신이 정말 놀랍죠 극악의 상황을 여러차례 극복하고 승리하는걸 보면 군신의 경지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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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6.09.02 new
저에게 진정한 무장은, 왕기 천하대장군 뿐입니다
오오 장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