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농구 붐 시절 세대라면 아실겁니다. 그때 당시 각종 뉴스, 신문, 잡지, 책, 만화, 농구화 등 농구와 관련된
모든 것이 인기를 끌었던 그때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던 어린 시절의 저는 97년 슬램덩크를
처음 보았죠. 당시엔 이미 완결된 상태에서 처음 접한 슬램덩크는 드래곤볼이 세계 제일이던 제 어린 시절의
인식을 확 바꾸어버릴만큼 농구에 푹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자연스레 NBA에도 관심을 가지고 되었고 마이클조던, 샤킬 오닐의 이름만 알던 제게 앤퍼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 케빈 가넷 등의 이름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들의 플레이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잡지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교과서 보다 집에 쌓여있던 전기보다 훨씬 더
집중하고 반복하면서 읽고 또 읽으며 농구에 푹빠진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장황하게 말씀드리면 제 NBA 인생을 함께 시작한 선수가 있습니다.
이미 짐작했을겁니다. 저는 이 선수가 매우 싫었습니다. 왜냐? 고졸주제에, 18살의 새파란 어린 놈이-전 그때 초등학생이었어요^^
그것도 아직 잠재력이란 키워드 하나만 보여준 녀석이 무려,
나의 영웅이었던 Anfernee Hardaway와 같이 제 2의 조던으로 불리우는 겁니다. 왜?
All NBA 1st Team 2회 연속 선정에 빛나고, 2년만에 NBA 파이널에 진출했고 96드림팀의 일원으로
당당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페니의 상징인 조던의 후계자 자리를 겨우 18살짜리가?
전 그때 이 선수는 거품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것도 겨우 초등학생인 제가 그렇게 판단하곤 했죠.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2년차에, 올스타 주전으로 선발 출장하여 나에겐 신과 같은 존재인 마이클 조던과 당당히 매치업을 하고 점프슛을 날리고
덩크를 꽂던 그 모습은 제겐 충격이었고, 코비가 점점 더 주목을 받을수록 전 코비에 대한 미움만 커져갔습니다.
아니, 일종의 시기인줄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우상인 페니가 부상으로 결장한 기간이 길어진 97-98 시즌에, 제2의 조던으로 더욱 각광받던 코비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강력한 식스맨상 후보까지 오른 코비의 모습을 보면서
더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코비의 플레이오프는 제가 썩소를 날리기에 충분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유타와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매우 당당히 에어볼을 연속해서 날리던 그 모습은 '역시 넌 안돼'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코비의 3년차 시즌인 98-99 시즌에서, 자기 포지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리그에서 떠오르던 에디존스를
샬럿으로 밀어내고 주전으로 차지한 후, 시즌 평균 득점이 20점에도 못미치는, 겨우 19.9 점이라는 수치를 보임에
따라 더욱 '넌 안돼는 구나, 2년차에 비해 10분 더 많아진 플레잉타임에도 평균득점은 겨우 4점만 상승한 평범한
선수' 라고 안도했을 뿐 그가 All NBA 3rd TEAM에 선정된 것은 잊은 채 그를 속으로 놀리기에 바빴죠.
그러던 99-00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두선수가 리그를 아주 잡아먹었던 것이죠.
70승에 단 3승 모자라는 67승 15패. 필잭슨과 함께 한 샤킬오닐과 코비브라이언트는 리그의 모든 팀에게 재앙이었습니다.
더욱에 올스타 군단으로 불리우며 개막전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져스(데먼 스타드마이어-스티브 스미스
스카티 피펜-라쉬드 월라스- 아비다스 사보니스외에 그렉 앤써니, 브라이언 그랜트 등 초호화 라인업으로 유명했죠.)
를 사람들 기억에서 잊게 만들만큼 놀랄만한 시즌을 보냈죠.
그러나 다 오닐빨이야 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특히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놀라운 시즌을 보낸 샤킬오닐 앞에서 코비 브라이언트는
또 다시 제겐 '안되는 녀석'으로 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All NBA 2nd TEAM과 All Defensive 1st TEAM에 선정된 것을
무시한 채 말이죠.
그러나 점점 시즌이 지날수록 레이커스가 3연패를 할 수록 '이게 아닌데'란 느낌이 드는 겁니다. 게임 속 코비를 보면 해도
너무 잘하는 것입니다. 나의 우상 페니는 부상으로 지고 있는데 코비는 펄펄 날더니 어느새 All NBA 1st TEAM이 너무나도
잘어울리는, 노란색의 LosAngeles의 유니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샤크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코비를 인정하지 않았던거죠. 아니 어쩌면 너무 잘해서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승승장구하여 일부러 시샘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우승에 실패합니다. 지긋지긋하던 6월의 노란 물결이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선수 중
한명인 바로 이 선수에 의해 드디어 03-04 시즌에 저지 당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 선수입니다.
데뷔때부터 저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Big Fundamental 팀 던컨에 의해 코비의 4연패가 저지 당하니 제가 우승한 것처럼
너무나 기뻤습니다. 칼말론도, 레지밀러도, 존스탁턴도, 찰스바클리도 가지지못한 챔피언 반지를 20대 초의 코비가
무려 3개나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직도 그에게 박수를 보내기엔 그의 업적이 너무나 샘이 나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막 중학교를 벗어나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때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 전 언제나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는 트레이시 맥그레디라고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코비에게 기회가 또 오는 것입니다. 이럴수가! 칼말론과 게리페이튼이 베터랑 최저연봉과 미드레벨에 덜컥
싸인해버리는, NBA Live 스러운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아니 이젠 코비가 조던의 72승마저 깰 상상을 하니, 더더욱 코비를 비난할 구석을 찾기 시작했고, 특히 당시 코비의 성폭행
사건으로 인하여 경기력의 저하를 예상한 저는 이 어마어마한 라인업의 정상 등극 실패를 바라기 시작했죠.
그러나 코비는 코비였습니다. 진짜 프로란 어떤 모습인가 보여주더라구요. 두 Court(법정과 경기장을 뜻하죠)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샤크도 말론도 페이튼도 모두 코비의 조력자 처럼 보일만큼 코비는 진정
리그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의 기량을 보이는 것입니다.
놀랄만한 일이었죠. 대체 이놈은 언제 나의 예상대로 하락하고, 안되는 모습을 보일까?
그러나 내가 가장 미워하던 선수를 서서히 인정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더군요.
비록 우승에 실패했지만 코비는 역시 All NBA 1st TEAM과 All NBA Defensive 1st TEAM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였습니다.
04-05 시즌 샤킬오닐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웨이드와 함께 우승을 차지하며 역시 오닐없는 코비보단 코비없는 오닐이
더 나아보였습니다. 05-06 시즌에 마이애미에 첫 우승을 안긴 오닐의 '우승 청부사'의 능력이 다시 한번 발휘되는 순간에
코비는 묵묵히 소년가장처럼 Lakers의 노란 유니폼을 입고 팀을 이끌었습니다.
오닐없는 코비의 첫 홀로서기인 04-05 시즌 코비는 All NBA 3rd TEAM으로 떨어지는 비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코비의 하락을 기뻐하기는 커녕 맘속 한 구석에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무너질 선수가 아닌데, 왜 항상 최고의 모습만 보이던 코비가 생애 첫 PO 탈락이라는
모습을 보이니...마음속에 동요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코비를 인정하기 시작한 겁니다. 코비의 전성기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어느새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의 커리어를 예상하기 시작했죠. 그 어릴적 중학생때는
그는 곧 밑천을 드러낼 것이다란 부정적인 예상만 가득하게 만들더니 이젠 그와 정반대의
모습이 되어 버렸더군요.
그는 더 대단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렇게 말이죠.
결국 05-06 시즌 코비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이더라구요. 바로 이 모습과 함께 말이죠.
전 세계가 경악한, 당시 NBA의 인기가 하락을 지속해 국내 스포츠 신문의 메인 페이지에는 글자하나도 볼 수가 없던
시절에 무려 스포츠 신문 1면 하단을 장식한 대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현대 농구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던 81득점. 대부분의 득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은 절대적인 에이스에 대한 신뢰를 느끼게 해준 순간이며 그의 게임 장악력을 보여준 대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특히 3쿼터동안 62점을 몰아친 댈러스전의 기억이 가기전에 랩터스전에서 보여준 그의 엄청난 퍼포먼스는
샤크없는 코비의 홀로서기가 어떤 모습이 될지 짐작하게 해주었습니다.
더욱이 당해 피닉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코비의 놀랄만한 퍼포먼스는 Beat LA를 달고살던 제게
오히려 The Kobe Bryant Rises를 외치게 되더군요. 놀랄만한 일이였죠.
그렇게 저는 점점 코비를 응원하는 횟수가 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0년만에 코비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의 기량은 진작에 인정 했으나 그의 팬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점점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Worst List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던 선수가, 어느새 제 Favorite List 1위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코비의 모습은 다들 아실겁니다.
2번의 우승과 2번의 Final MVP. 더욱이 여전히 All NBA 1st TEAM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코비의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많은 선수가 떠오릅니다.
바로 이들입니다.
코비와 더불어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이 서서히 기량이 하락하고 주목도가 하락하였는데도 코비는 여전히
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였습니다.
팀던컨, 케빈가넷, 빈스카터,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디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 없으십니까?
모두 리그에서 손꼽히던 슈퍼스타였으며 그 중 몇몇은 코비의 라이벌로 불리기도 했던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현재 여전히 올스타 주전으로 당당히 출전하고 있는 선수는 코비가 유일합니다.
이점이 제가 코비에게 빠진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최고였습니다. 그런 그를 인정하기에 10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여전히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저를 기다려줬습니다.
그래서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현재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폴, 드웨인 웨이드, 케빈 듀란트 등 젊은 세대들과 여전히 최고의 기량으로
대결하는 모습은 제게 15년전 그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조던을 존경하고 그와 함께 경기를 뛸 수 있어서 행복했다던 코비는 이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그 존경의 눈빛을
받으면서 경기를 치르고 있을것입니다.
코비의 커리어는 엄밀히 말하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비는 코비이기에 아주 멋진 모습으로
NBA를 떠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보아왔던 코비 브라이언트. 어느새 이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수가 되었고, 저는
이 말을 코비가 은퇴하는 그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비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마치 80년 90년대 NBA를 보아온 팬들이 말하는 "조던과 함께 해서 행복했습니다." 처럼,
그러나 아직 멀었죠. 코비의 그 지긋지긋한 연습중독과 노력은 드와이트하워드와 함께하는
새 시즌을 여전히 기대하게 만듭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1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여전히 그 누구도 무시못할 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나이는 먹기싫은데 12-13 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뛰어주기만 해도 고마운 선수가 아닌, 여전히 그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는 그런 선수입니다.
마지막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에, 어느새 옛날 추억이 떠올라 마치 다이어리 쓰듯 코비에 대해 써보게
되었습니다. 새벽녘이라 두서없는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jongheuk 작성시간 12.08.23 NBA 게시판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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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레인맨 작성시간 12.08.25 저도 코비가 참싫었어요.. 저 아프로머리.. 그러나 2005년 이후로 스틸마이넘버원...벌써 7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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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ILoveNBA★KG5 작성시간 12.09.02 코비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저랑 비슷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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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Wilt Chamberlain 작성시간 12.09.06 코비의 플레이를 직접 볼수 있던 세대여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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