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 브라이언트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코비의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다들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게 공식적으로 확인되니 씁쓸하기도 하고, 갈 때가 되었나싶기도 하고, 복잡미묘하네요.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만 하자면 저는 96년도에 LA 근교로 가서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일부를 보냈습니다. 미국에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는 연고지 개념이 굉장히 투철합니다. (제가 산 동네가 유난히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서 레이커스에 대한 감정은 우리나라에서 대표팀에 대한 감정에 버금갔고, 그런 곳에서 살면서 저는 마이클 조던을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였음에도 자연스럽게 레이커스를 응원하게 되었죠. 어쩌면 두 팀이 (제가 NBA를 본 이후로) 한번도 플레이오프에서 부딫히지 않았기에 양립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런 저에게 당시, 요새 말로 가장 핫한 젊은 스타였던 코비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당시 저희 동네 어린이들 중에서 코비는 진짜 hip 하고 cool하다는 그런 이미지가 있달까요? 마이클 조던=농구처럼 된 상황에서 뭔가 다른,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는 십대스타라는 점에서 코비는 어린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후보가드 주제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도 발매될 정도였죠.
저는 이후 코비가 슈퍼스타로 성장하고,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성장하는 걸 계속해서 관심있게 봤습니다.. 한번도 그의 팬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마치 어린 시절 같은 동네 출신 형이 잘나가는 걸 보는 것처럼 뿌듯한 감정이 있었죠. 누가 뭐래도 그는 "One of Us"였으니까요.
코비가 17세의 나이에 데이빗 스턴과 악수한 순간부터 거의 2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그 자신감 넘치던 소년은 NBA에서 가장 어린 슈퍼스타가 되었고, 전 세계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는 남자가 되었으며,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나서는 애국자가, 관록 넘치는 챔피언이, 그리고 후배들의 도전을 여유있게 받는 베테랑이 되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선수인 마이클 조던을 보면서 자란 세대가 행운아였듯이, 코비같이 매력적이고 뛰어나며, 보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주는 그런 독특한 선수를 볼 수 있던 우리들은 모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코비에 대한 댓글을 웬만하면 달지 않게 됐습니다. 달기만 하면 까는 말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요. 현재 코비의 경기력은 전성기와 비교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올스타들과 비교하는 것조차 가혹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화가 났던 것은 그의 경기력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실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 대단한 조던도 나이 40에 삽질하던 경기가 있었고, 한때 외계인이라고 장난섞어 불리던 케빈 가넷은 슛조차도 거의 하지 않는 경기가 늘어나고 있으며 하물며 코비는 조던보다 훨씬 더 많은 NBA경기를 뛴 만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가 힘들죠.
문제가 되는 건 그의 태도입니다. 지난 시즌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초반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슛을 쏘던 코비는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플레이스타일이 달라지며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더 하기 시작했고, 리바운드/어시스트에서 두각을 나타냈죠. 코비를 봐오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는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코비는 농구천재이고, 시야와 센스가 탁월한 만큼 득점 외에 다른 부분에서 공헌할 능력이 충분하니까요. 비록 얼마 안 가고 부상당했지만 그는 변화를 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이로 인해 그에 대해 거는 팬들의 기대는 다시 커졌습니다. 코비가 예전의 Black Mamba로서 리그를 지배할 것이라는 기대가 아닙니다. 그의 리더쉽으로 젊은 레이커스 팀을 이끌것이라는 기대였죠.
그런데 시즌이 개막하고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난사, 처참한 경기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골스와의 경기 후 다들 아시는 그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m not really worried about it, honestly," Bryant said. "My shooting will be better. I could've scored 80 tonight. It wouldn't have made a damn difference. We just have bigger problems. I could be out there averaging 35 points a game. We'd be what, 3-11? We've got to figure out how to play systematically in a position that's going to keep us in ballgames."
"솔직히 걱정이 안됩니다. 제 슈팅감각은 더 나아질 겁니다. 오늘 80점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개뿔 소용없었을 겁니다. 우리는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제가 평균 35점씩 넣을 수도 있지만 성적은 3승 11패쯤 될까요? 우리는 시스템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식으로 농구를 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레이커스의 가장 큰 문제가 시스템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현재 레이커스는 이기는 방법을 잃어버린 팀처럼 농구를 하고 있고 바이런 스캇의 전술적 문제점은 다들 알고 있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코비 본인은 문제가 없느냐? 이건 아니죠. 아무리 시스템 상에 문제가 있어도, 팀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선수가 들어가지도 않는 슛을 계속 던져대는 건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그 선수가 20년차 베테랑에, 어린 선수들이 보고 본받을 만한 점이 많은 레전드라면 말이죠.
코비가 저 인터뷰를 할 당시 성적은 2승 12패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차피 코비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니 원없이 슛을 쏘게 해주는게 어떠냐"라고 하십니다. 근데 전 이건 위험한 일이라고 봅니다. 코비는 마지막이지만, "레이커스"는 마지막이 아니기 때문이죠. 아니, 디안젤로 러셀같은 어린 레이커에겐 이제 시작입니다.
지난 시즌 킹스와의 경기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코비가 더블팀을 달고 무리한 슛을 던지고, 이 슛이 에어볼이 되자 공을 달라고 손을 들고 있던 선수들이 허탈하게 천천히 손을 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경기 중에 이런 장면은 수 차례 반복되었죠.
이걸 보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장면은 97년 플레이오프였습니다. 클러치 상황에서 루키 코비는 자신감 있게 삼점라인 두발짝 밖에서 장거리슛을 연속으로 쏘았고, 3연속 에어볼이 되었죠. 누군지 기억은 안 나는데 마지막 에어볼 당시 사이드라인 삼점슛 밖에서 한 선수가 손을 들고 있다가 허탈하게 내리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코비는 어렸고,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코비가 리더로서 성장하는 걸 보면서 "아 그때 패기 넘치던 루키의 만용에 가까운 무모함은 리그 최고의 선수의 자신감으로 승화되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저는 그 생각이 틀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킹스 전의 그 에어볼을 보면서 말이죠.
그럼에도 저는 지난 시즌 후반 코비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역시 코비는 성숙했다고 느끼게 되었죠. 득점 욕심을 줄이고 어시스트/리바운드 위주로 가는 코비는 제가 기대하던 말년 베테랑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요. 근데 그 기대는 올해 다시 박살났습니다.
위와 같은 장면이 반복될 때, 코비를 제외한 다른 레이커스 선수들의 심정이 어떨까요? 특히 어린 선수들이요. 이들의 멘토, 이들의 리더가 이런 무리수를 남발하는 과정에서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농구"를 몸에 익힐 수 있을까요?
2015 파이널 MVP 안드레 이궈달라가 진정으로 위대한 점은 그의 특급 수비력과 리더쉽보다도, 한 때 올스타였던 그가 자진해서 벤치로 가면서 "희생의 정신"을 심어줬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이런 팀 문화는 워리어즈가 챔피언이 되는 밑거름이 되었죠.
일각에서는 코비가 믿을만한 동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난사를 한다고 하십니다. 물론 현재 레이커스 선수들은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또한 젊습니다. 예전에 코비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선수들입니다. 패스를 받을 가치가 없는 선수들은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특히 1-14 필드골을 기록하는 상황에선 말이죠.
아이재아 토마스는 올해 코비에 대해 논하면서 레지 밀러를 언급했습니다. 말년의 저메인 오닐, 제일린 로즈, 론 아테스트 등이 성장할 수 있게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말이죠. 저메인은 한 때 리그에서 손꼽히는 파워포워드였지만 밀러가 그를 처음 봤을때만 해도 포틀랜드에서 벤치만 달구던 어린 유망주였습니다. 그런 오닐을 위해 한 때 마이클 조던과도 맞짱뜨던 슈퍼스타가 롤플레이어 역할을 자처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메인의 성장가능성이 너무 눈부셔서? 아니, 그건 밀러가 떠난 이후 팀을 지탱할 기둥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코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비는 20년간 LA팬들에게 굉장히 많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영원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이후 LA에 남게 되는 건 지금 뛰고 있는 어린 선수들입니다.
코비는 역대 10위 안에 드는 위대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매직 존슨 다음으로 위대한 Laker입니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선수도 팀보다 위대하진 않습니다.
현재 레이커스는 이기는 농구를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많은 책임이 스캇과 팀 시스템에 있죠. 그러나 코비 정도 선수라면 적어도 질 땐 지더라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본인이 앞에 나서기보다는 스스로 희생하여 다른 선수들에게 길을 보여줌으로 인해서 말이죠.
코비가 은퇴를 발표함에 따라 많은 선수들과 팬들, 전문가들이 그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코비는 이 모든 영예를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벤 삼촌이 말했듯이,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라고 하죠.
적어도 레이커스의 Heart and Soul이었으며, 팀의 리더이자 리그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라면, 자신이 떠난 이후 팀을 지킬 선수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자신을 사랑해준 LA의 팬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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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Unlucky MDE 작성시간 15.12.01 좋은글 공감하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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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ynamic Rip! 작성시간 15.12.01 공감가는 글이고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이지만 굳이 왜 이 시점에서 쓰셔야 했는지... 현재 슈퍼스타들 뿐 아니라 팬들도 그를 리스펙 하는 분위기 속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냥 마음이 안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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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Family Guy 작성시간 15.12.01 저 역시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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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KO8E BR24NT 작성시간 15.12.01 그러게요 누가 모르나...
하필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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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캔디캐인 작성시간 15.12.01 뭐 다 아는 내용이라 공감이야 갑니다만 윗분 말씀처럼 분위기에는 전혀 맞지않는 글 같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