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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전미 최고의 센터와 미국 제외한 세계 최고의 센터가 맞붙었습니다.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19.02.11|조회수6,123 목록 댓글 41


1982년, 냉전시대의 긴장감이 삼엄했던 시절에 소련 국가대표 농구팀이 미국 대학팀들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소련 농구팀은 1982년 그 해에 세계선수권 우승을 한 팀이었고, 미국은 1980년 올림픽을 보이코트 한 후 홈에서 열리는 1984년 올림픽 금메달을 반드시 따내기 위해 일찌감치 준비에 들어갔던 터. 이 농구 투어는 양국이 2년 후에 있을 올림픽을 앞두고 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소련 농구팀은 미국에 한 달여 동안 머물며 미국 12개 대학팀들과의 투어를 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당시에 미국의 모든 농구 관계자가 집중적으로 관찰하며 연구하고 싶었던 선수는 단 하나... 17세의 나이로 소련과 유럽 농구를 평정한 221센티미터의 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였습니다 (당시 공식 신장, 7' 3" 1/2). 





소련 농구팀은 게임당 27분을 뛰며 평균 18득점, 9리바운드, 4어시스트, 4블락샷을 기록한 이 어린 신동의 활약에 힘입어 12개 대학과의 경기에서 9승 3패의 전적을 거두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당시의 동서 냉전 분위기는 삼엄했습니다. 모든 경기가 치열했고, 웃음도 없었으며, 파울이나 수비는 매우 거칠었습니다. 게다가 미국 홈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은 소련 선수들을 더 자극해서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곤 했죠.


CBS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가 된 인디애나 대학과의 경기 또한 치열하기가 이를 데 없는 터프한 경기였습니다. 이런 큰 경기에서 어린 사보니스는 더욱 더 잘했고, 코트 위를 날아다니다시피 뛰며 30득점, 15리바운드로 팀의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올림픽 팀 감독으로 이미 내정이 된 인디애나 대의 바비 나이트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사보니스는 내가 본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농구선수들 중 최고다" 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디애나 대학과의 경기 3일 후, 1982년 11월 17일, 드디어 전국의 농구팬들이 기다려 온 경기가 벌어집니다. 바로 전미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센터인 버지니아 대학의 랄프 샘슨(7' 4")과 17세의 농구천재, 사보니스의 맞대결이었죠. 






두 선수 모두, 커림 압둘자바를 넘는 큰 신장에, 스윙맨들을 뺨칠 만한 스피드와 운동능력까지 보유한 괴물 센터들이었습니다. 샘슨은 이미 3년 연속으로 NCAA 최고의 선수상을 거머쥐었으며, 17세의 사보니스는 소련 리그 우승은 물론, 소련 청소년대표 팀과 성인 국가대표 팀에서 동시에 뛰며 세계적인 선수로 우뚝 솟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경기는 시작하자마자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양 팀 선수들 모두 실수를 남발했고, 특히 사보니스와 샘슨 두 센터도 서로를 너무 의식해서였는지 긴장한 모습들이 역력했습니다.


경기 분위기가 서서히 가열되면서, 사보니스와 샘슨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샘슨(50번)은 사보니스 위로 인유어페이스 파워덩크를 찍고, 사보니스(18번)는 다음 포제션에서 샘슨의 슛을 블락해 쳐내버렸죠.  


  



이 경기에서 샘슨은 의욕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수비 리바운드와 블라킹에서 그 에너지와 정열이 많이 엿보였죠.


약간 오버하는 듯, 리바운드 잡고 내려오는 액션도 매우 컸고, 평상시답지 않게 소리를 질러가며 팀원들을 독려했고요. 언론에서 집중 조명하고 있던 소련의 사보니스를 의식한 행동들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사보니스의 고난도 슛을 블락하면서 속공에 참여하는 저 샘슨의 스피드를 보십시오.


그러나...


샘슨은 사보니스의 골밑 수비벽을 잘 뚫지 못했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샘슨이 포스트업 공격력이 출중했다거나, 미드레인지 점프슛이 정확한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페인트존 안에서 공격 시도를 많이 했는데, 그게 번번이 사보니스에게 자리를 빼앗기거나 블락을 당하면서 무위에 그쳤습니다.







이 두 센터의 맞대결에서 보였던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사보니스는 페인트존 근처나 탑에서 골밑으로 컷인해 들어가는 선수에게 재빠르게 어시스트를 해줄 수 있는 감각이 뛰어났으며, 둘째, 사보니스는 3점 라인 안쪽 어디에서건 미드레인지 점프슛이 가능했었다는 점이죠.


바로 이 두 가지가 이 두 선수의 맞대결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경기는 2차 연장까지 가는 혈전이었고, 홈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소련 선수들이 공 잡으면 야유도 보내고) 심판진들의 참으로 아리송한 판정 등에 힘입어(?) 버지니아 대학이 신승을 거뒀습니다.


두 선수의 최종 스탯입니다.


랄프 샘슨: 13득점, 25리바운드, 0어시스트, 2스틸, 4블락샷

사보니스: 21득점, 15리바운드, 6어시스트, 4스틸, 6블락샷



경기가 끝난 후, 미국 아마츄어 농구협회 이사인 Bill Wall 씨는 "사보니스가 명백하게 샘슨을 갖고 논 경기였다" 라고 평했으며, 농구 레전드, Bill Walton은 "사보니스는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다 잘하는데, 신장까지 나보다 10센티가 더 크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부터 줄곧 사보니스를 지켜봐 온 보스턴 셀틱스 단장, 레드 아워바흐 씨는 1986년에 "사보니스는 현 NBA 선수들을 모두 포함시켜도 세계에서 가장 농구 잘하는 3~4인 중 하나다" 라고 까지 치켜세웠습니다.



아무튼, 1982년 동서 냉전시대 때, 미국을 대표하는 거인과 FIBA를 대표하는 신동이 만나 명승부를 펼친 것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농구팬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져볼 만한 경기였다 생각되어, 졸필이지만 이렇게 짧은 글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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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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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취해봐 | 작성시간 19.09.16 박사님 글 잘봤습니다. 농구머리도 좋은데 거기다가 피지컬까지..
  • 작성자V5 Kobe | 작성시간 21.01.22 마른 사보니스는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네요ㅎㅎ
  • 작성자리오타 | 작성시간 21.02.21 88서울 올림픽때의 사보니스도 대단했죠. 데이빗 로빈슨이 그렇게 밀리는 건 샤크가 등장할때까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 사보니스는 이미 무릅이 다 작살이 났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결승에서 유고를 꺽고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그때 유고 멤버들은 정말 대단했었죠. 페트로비치, 다닐로비치, 토니쿠코치,디노라자, 블라디 디박 등이었습니다.
  • 작성자▶◀Justice | 작성시간 21.02.23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2.24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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