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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팀을 사상 최초로 꺾었던 팀, Don't Cry for Me ~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21.07.11|조회수3,098 목록 댓글 34

바로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아깝게 준우승을 한 아르헨티나 팀입니다.

 

2년 후 아테네 올림픽 준우승에서 아르헨티나가 미국을 꺾은 것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어있지만, 실제로 NBA 미국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업셋을 당한 것은 2002년 세계선수권 조별리그 아르헨티나 전이었습니다.

 

미국대표팀의 구성과 전력은 선수 면면으로 봤을 때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메인 오닐, 벤 월러스, 엘튼 브랜드, 안토니오 데이비스, 폴 피어스, 숀 매리언, 마이클 핀리, 레지 밀러, 배런 데이비스, 안드레 밀러 등이 주축이었고, 골밑이나 팀의 수비력이나 외곽슛, 플레이메이킹 등 크게 단점이 보이지 않았던 팀입니다.

 

아르헨티나엔 그 당시만 해도 아직 NBA 물을 먹은 선수조차 없었죠. 페페 산체즈, 마누 지노빌리, 안드레 노시오니, 루이스 스콜라, 레나르도 구티에레즈, 파브리시오 오베르토, 루벤 월코위스키 등, 흔히들 말하는 아르헨티나 농구 황금세대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7푸터 하나가 없는 라인업이었죠.

 

사실 이 경기 시작 전은 물론이고, 전반전이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미국팀이 아르헨티나에 질 수 있다고 본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진짜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직, 아르헨티나 선수들만이 미국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죠. 

 

경기 시작하자마자 페페 산체즈의 빠른 패스웤과 마누 지노빌리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아르헨티나가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벤치와 관중석에 자리잡고 언더독인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던 농구팬들의 응원 함성이 초반부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지노빌리 특유의... 돌파하면서 공중에서 '개인 시간차'로 올려놓는 레이업이 성공하면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속공 상황에서 지노빌리가 엄청난 스피드와 현란한 스텝을 이용해 벤 월러스와 마이클 핀리 위로 레이업을 성공시키자 경기장 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미국 선수들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고, 관중들의 응원열기도 점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 경기 전체를 보실 것을 권합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패싱 플레이가 2000년대 샌안토니오 스퍼스 전술과 매우 흡사합니다. 쉴 새 없이 빠르게 공을 돌려서 오픈맨에게 찬스가 나게 만들고요. 특히, 국내농구 팬들은 아르헨티나의 포인트 가드, 페페 산체즈를 좋아하게 되실 거라고 봅니다.

 

페페 산체즈

페페 산체즈는 '남미가 낳은 역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선수이기도 하죠. 193센티로 신장도 좋습니다. 왼손잡이지만, 양손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아무리 강한 압박수비가 들어와도 혼자서 그 수비를 다 벗겨냅니다. 이 경기에서도 본인의 실수로 드리블이나 패스 미스가 난 적이 없습니다. 안드레 밀러, 배런 데이비스, 마이클 핀리, 숀 매리언 등의 선수들이 2명씩 프레스 걸어도 여유있게 다 따돌리고 팀원들에게 패스해줍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 경기들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지노빌리가 매우 편안해 보입니다. 산체즈가 너무나 리딩을 잘해줬기 때문이지요. 볼운반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그렇다고 산체즈가 파커처럼 공을 오래 몰고다니며 동네 한바퀴 하는 선수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산체즈는 엄청난 볼키핑력을 소유했으면서도 패스를 쉴 새 없이 빠르게 돌려서 모든 공격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가드였습니다. 스티브 내쉬를 연상시키는 최고수였죠.

 

스콜라의 포스트업 공격과 페페 투 노시오니 콤비 플레이

 

전반전에 지노빌리와 산체즈가 모두 벤치에 앉아 쉴 때가 있었습니다. 이 때는 벤치에서 출격한 루이스 스콜라가 하이포스트, 로우포스트, 모두 헤집고 다니며 뛰어난 패싱센스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스콜라 전담 수비수였던 저메인 오닐이 서서히 신경질적으로 스콜라를 견제하는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하죠. 

 

스콜라의 패싱 플레이

전반전을 53:37 16점차로 벌리며 승기를 잡은 아르헨티나. 그리고 선수들 면면이나 팀 전체의 능력을 볼 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던 미국. 

 

후반전이 되자 미국선수들이 거친 수비와 파울을 범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폴 피어스, 마이클 핀리, 배런 데이비스, 안드레 밀러 등이 승부근성을 보여주며 점수차를 좁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저메인 오닐의 말도 안 되는 더티 플레이가 나옵니다.

 

본인의 속공 덩크를 스콜라에게 블락당하자 루즈볼을 잡으러 몸을 던진 스콜라 등을 본인의 양발로 짓밟아버린 것이죠. 

 

이 때부터 관중들은 미국팀에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고, 경기 내내 별 존재감 없었던 저메인 오닐은 5파울 퇴장까지 당합니다.

 

 

3쿼터 말미에 미국이 60:66, 6점차까지 쫓아왔을 때,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공격을 지노빌리가 책임지고 성공시키면서 8점차로 두 팀 모두 4쿼터를 맞게 되죠.

 

지노빌리는 배런 데이비스, 폴 피어스를 제껴내고, 안토니오 데이비스와 벤 월러스 사이로 들어가며 3쿼터 마지막 슛을 성공시켰습니다. 미국팀 벤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모든 관중들이 함성을 보낸 그야말로 미친 플레이였습니다.

 

 

4쿼터 내내 양 팀이 주거니 받거니하며 아르헨티나 6~8점 차 리드를 계속 지켜나갈 대 또 하나의 명 플레이가 나옵니다. 아마 이 플레이야말로 이 경기, 아니, 이 토너먼트의 베스트 플레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요.

 

현란하게 돌아가는 패싱 플레이와 지노빌리의 벤 월러스를 앞에 둔 더블클러치 레이업이 성공을 한 것이죠.

 

슬로우모션으로 다시 한 번 보시죠. 

 

사실상 이 플레이를 기점으로 승부는 결정이 났습니다.

 

페페 산체즈의 노련한 볼핸들링과 플레이메이킹, 그리고 마음이 급해져서 마구 던지기만 하는 NBA 선수들...

 

외신기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고,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고 있었으며, 아르헨티나 팬들 몇 명은 눈에 감격의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페페 투 오베르토'의 플레이가 성공하면서 점수차가 14점차로 벌어졌고,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사실상 결정이 나버립니다.

 

 

이 경기에서 주목해야 할 아르헨티나의 숨은 영웅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센터 루벤 월코위스키인데요. 신장은 6-10에 불과하지만, 타고난 힘과 탄력, 골밑 몸싸움 능력, 리바운드, 그리고 정확한 미드레인지 점프슛으로 미국팀 빅맨들을 압도했습니다. 

 

루벤 월코위스키

 

후에 보스턴 셀틱스와 시애틀 수퍼소닉스에서 뛰기도 했죠.  월코위스키는 넘쳐나는 힘과 에너지, 그리고 정확한 패싱과 점프슛까지 보태며 골밑에서 미국의 빅맨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경기는 87:80 아르헨티나의 승리.

 

주득점원을 살펴보면, 미국은 폴 피어스 24점, 마이클 핀리 14점, 안드레 밀러 14점, 아르헨티나는 지노빌리 15점, 노시오니 14점, 스콜라 13점, 오베르토 11점, 월코위스키 9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국가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업셋을 당했습니다. 우리쪽에서 보면 업셋이지만, 아르헨티나 선수들 입장에선 어느 정도 예상까지 했던 잘싸운 승리였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페페 산체즈도, 지노빌리도, 자기들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았지만, 그냥 경기 전에 떠벌이지 않고 말을 아꼈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자신감을 갖고 이 경기에 임했던 것입니다.   

 

 

재미없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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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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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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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대만 | 작성시간 21.07.17 너무 좋은 글인데 이제야 봤네요. 이 게시판도 자주 들어와 봐야 겠네요. 덕분에 추억에 빠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17 고맙습니다.
  • 작성자1(0) Sir 빈스 커리 플래쉬 M | 작성시간 21.08.01 아 !!!

    옛날에 댈러스 내쉬가 샌안가서 PG 보면 시너지 엄청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
    ( 진호빌리 때문이 아니고 던컨 때문에요 ㅋㅋ 당시에도 파커가 자꾸 안으로 파고들어서 공격하고, 슛거리도 짧고 .. 던컨 영역을 자꾸 침범한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해서 던컨한테는 3 점 되고 리딩 되고, 클러치 타임에 마무리 되는 내쉬가 단짝 PG 로 딱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댈러스 시절에 분명히 노비가 더 유명하긴 했는데, 공격 안풀릴때나 클러치 때 보면, 내쉬 손에 공 들려있었죠 ㅋ)

    어쨌든 내쉬 같은 선수가 아르헨티나에 있었네요. 더군다나 지노빌리랑 플레이가 엄청 잘 어울어졌다니 !!!!
    진짜 내쉬랑 파커랑 자리 바꿔서 샌안에 내쉬 있었음 어땠을지 또 궁금해지네요 ㅋㅋㅋ

    너무나도 재밌고 상세한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8.01 산체즈는 내쉬와 정말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였어요.

    내쉬가 스퍼스에 있었다면 (파커에겐 미안하지만) 환상적이었을 겁니다. 덩컨과 마누의 평균득점이 2~3점씩은 더 올라갔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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