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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틀랜타 선수-2

작성자Sunny|작성시간22.11.09|조회수469 목록 댓글 2

꽤 긴 시간을 애틀랜타를 응원하고 있고, 
그동안 많은 선수들이 애틀랜타를 거쳤습니다.

이전에 애틀랜타 선수 두 명은 언급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애틀랜타의 '결번' 선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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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는, NBA에서 5시즌을 뛰었고, 애틀랜타에서는 두 시즌을 뛰었습니다.

애틀랜타에서는 전체 출장 경기의 2/3가 선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만개 직전까지 갔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애틀랜타 팬이라면, 그리고 당대 NBA 팬이라면 이름을 기억할 선수이지요.

바로, 제이슨 콜리어입니다.

콜리어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두 시즌, 조지아텍에서 두 시즌을 뛰고 2000 드래프트에 참가했습니다.
인디애나 대학에서 조지아텍으로 전학을 가면서 출장시간, 기량에서 발전을 이루게 되고, 
드래프트 직전 시즌에는 17.0점 9.2리바운드 1.6도움 1.1블록 야투 47.3% 3점 36.9% 자유투 73.5%를 기록합니다.
[경기당 3점 시도는 2.8개였습니다.]

정확한 슈팅과 넓은 슈팅 범위를 가진 7피트 빅맨을 거를 팀은 당연하게도 없었고, 
그는 2000년 드래프트 15순위로 밀워키에 지명됩니다. 그리고 바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됩니다.
트레이드 상대는 같은 해 9순위였던 조엘 프리즈빌라였습니다.[제이슨 콜리어 + 2001년 1라운드픽 <-> 조엘 프리즈빌라]
그렇게 그는 휴스턴에서 NBA 데뷔를 하게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트레이드의 대상이었던 둘은 03-04 시즌 말미에 애틀랜타에서 만나게 됩니다.]

휴스턴에서 콜리어는 인상적인 모습까지는 보여주지 못합니다.
세 시즌동안 61경기 출장에 그쳤고[23경기, 25경기, 13경기], 두 번째 시즌에 평균 14.6분을 뛴 것을 제외하면 10분 미만을 뛰었지요.

그렇게 그는 밀워키에서 세 시즌을 보내고 시장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미네소타와 계약을 맺지만 정규시즌 로스터에는 합류하지 못하고 웨이브됩니다.
그렇게 그는 D리그[지금의 G리그]로 가게 됩니다.

03-04 시즌, 애틀랜타는 리빌딩을 위한 탱킹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2월, 탱킹을 위해 팀은 트레이드로 로스터를 갈아엎기 시작합니다.
테오 래틀리프, 나지르 모하메드, 제리코 레브라차가 팀을 떠나게 되고 
조엘 프리즈빌라[트레이드로 합류], 마마두 엔제이(은디아예)[10일 계약을 거쳐 정식 합류], 마이클 브래들리[토론토에서 웨이브되었으나 클레임]가 팀의 센터 라인이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과정에서 라시드 월러스가 애틀랜타에서 한 경기를 뛰고 디트로이트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적의 결과는 다들 아실 겁니다.]

그리고 D리그에서 뛰고 있던 콜리어에게도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2004년 3월 8일에 10일 계약으로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게 된 콜리어는 두 번의 10일 계약을 거쳐 애틀랜타와 잔여 시즌 계약을 맺게 됩니다.
탱킹팀이었던 애틀랜타는 그에게 많은 시간과 기회를 줄 수 있었고, 
그는 20경기[선발 16경기]에서 평균 27.3분을 뛰며 11.3점 5.6리바운드 야투 47.9% 3점 25.0% 자유투 78.8%를 기록하게 됩니다.
단 20경기였지만, 시즌 말미에 합류했다는 걸 고려하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지요.
실제로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자 유일한 두 자리 득점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프시즌, 당연하게도[?] 애틀랜타는 그에게 다년계약을 안겨 줍니다.

그리고 맞이한 04-05 시즌, 그는 팀의 선발 센터가 됩니다.
애틀랜타에서의 첫 시즌만큼의 모습까지는 보여주지 못했고, 출장 시간도 직전 시즌의 절반 수준[13.5분]으로 줄게 됩니다. 
그에 따라 단순 볼륨 스탯도 줄었지요.[5.7점 2.6리바운드 야투 46.3% 3점 42.9% 자유투 67.6%] 
[물론 04-05 시즌 애틀랜타가 고만고만한 빅맨 라인을 물량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팀에서 네 번째로 많은 70경기를 출장했고, 그 중 44경기가 선발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로 데뷔 후에는 거의 보여주지 않던 3점슛[휴스턴에서 세 시즌동안 0/2]도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씩 그의 색깔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03-04 시즌 1/4, 04-05 시즌 6/14]

05-06 시즌, 애틀랜타는 탱킹으로 열심히 모은 선수들[조쉬 칠드리스, 조쉬 스미스, 마빈 윌리엄스], 그리고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영입한 조 존슨을 축으로 달릴 준비를 마쳤고, 
콜리어도 젊고 다채로워진 애틀랜타에서 큰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콜리어는 이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2005년 10월 15일, 심장비대로 인한 심장박동 장애로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향년 28세였습니다.

그의 등번호 40번은 05-06 시즌 애틀랜타의 임시 결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콜리어의 사망 이후로 현재까지 애틀랜타에서 40번을 단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임시 결번으로 시작했지만 현 시점에서는 영구 결번에 준하는 상태이지요.

콜리어 사후, G리그[당시 D리그]는 그의 이름을 딴 제이슨 콜리어 스포츠맨십 어워드를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콜리어는 오하이오 주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콜리어는 오하이오 주 스프링필드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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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던 빅맨이 요절해서 당시에 NBA 팬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었지요.

현 시점에서 의미는 없는 가정이지만, 문득 '조 존슨의 패스를 받아 슛을 던지는 그'를 상상해 봅니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자자 파추리아와 주전 경쟁을 했을텐데, '둘의 주전 경쟁은 어땠을지'를 상상해 봅니다.

요절은 그래서 슬픈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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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콜리어의 영상을 하나 찾아서 올리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글에 안 걸리네요.

부득이하게 링크로 남깁니다.

 

NBA에 큰 족적을 넘긴 선수도 아니거니와 탱킹팀 주전 정도였어서 그런지 영상이 없고, 

그나마 찾은 영상도 추억의 이름, 제이크 차카리디스와의 합본 영상입니다.

당연하게도[?] 콜리어의 커리어 하이 영상도 아닙니다.[콜리어의 커리어 하이 득점은 22점]

 

https://youtu.be/D4Mu7Vbrj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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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TMI 하나 남깁니다.

 

제이슨 콜리어는 한국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이슨 콜리어가 조지아텍으로 전학을 온 3학년 시즌에 

조지아텍에는 실력있는 1학년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1학년 선수는 이때로부터 먼 미래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 이름 토니 애킨스. 전태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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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SenesQ | 작성시간 22.11.09 잘 알지는 못했지만 죽음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나네요.
  • 작성자환영의 밀리아 | 작성시간 22.11.09 발전해 나가려는 찰나에 안타까운 일을 겪었군요.. 늦게 알게된 선수지만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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