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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블루 칼라 워커'형 파워포워드 계보

작성자Doctor J|작성시간07.10.21|조회수5,688 목록 댓글 80

 

 

 

정통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 계보

 

 

다들 아시다시피 1960년대까지는 농구의 다섯 포지션에 대한 구분 자체가 없었습니다. 센터-파포-스포-슈가-포가와 같은 명확한 구분은 1970년대 중반부터 도입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들어 와서는 웬만한 팀들이 모두 이 포지션 구분에 따라 팀을 짜곤 했지요.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트라이앵글 오펜스와 같은 좀더 세분화 된 공격시스템의 발전과 함께, 두가지 정도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늘어갔습니다. 이미 80년대에 케빈 맥헤일, 찰스 바클리, 칼 말론으로부터 시작된 다득점형 파워포워드가 등장한 이후로, 90년대에는 데릭 콜먼, 숀 캠프, 래리 존슨까지 합세를 해 2~3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콤보 스타일의 파워포워드들이 전성기를 이뤘습니다. 급기야 2000년대가 되니, 노비츠키처럼 3점슛을 쏴대는 장신 파워포워드, 코트 위에서 농구선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해내는 케빈 가넷, 그리고 마치 센터처럼 경기를 장악하는 팀 덩컨이 파워포워드의 모델들이 되었습니다. 가히 포지션 파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변화의 흐름속에서 멸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노가다” 스타일의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농구의 모든 포지션 중에서 가장 매력을 많이 느끼는 포지션이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진정한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면서, 진정한 “노가다” 싸나이들의 부활을 꿈꿔보며, 60년대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유형의 선수들의 계보를 만들어 봤습니다.

 

이 계보 (또는, 족보?)를 만드는데 있어서, 저 나름대로 세워 놓은 기준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루키시즌부터 준올스타급 수준의 기량과 스탯을 보여준 선수 (2) 내구력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출전능력 (3) 경기 내내 거의 페인트존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몸싸움과 수비, 리바운드를 즐겨하는 파워포워드 (4) 팀원들의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큰 형님같은 리더쉽의 소유자 (5) 팀과 팀원들을 위해 죽고 사는 이타적이며 의리파인 선수. 다시 말해서, 계보에 들어간 선수들의 선출기준은 '경기 스타일'이나 '내구력', '팀 기여도' 뿐만 아니라 '스탯'과 '개인기량'까지도 감안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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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노가다 파워포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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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Silas

 

1943년생. 신장 201cm. 골밑에서 몸 비벼대고,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줄기차게 리바운드를 거두어 내던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의 원조격인 선수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흑인이면서 점프력이 없었던 선수였기도 하지요. 전성기때의 경기를 봐도, 덩크를 간신히(?) 하는 스타일입니다. 몸빵은 좋았지만, 근육질의 몸도 아니었고 신장이나 윙스팬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에 의한 리바운드 하나만큼은 귀신이었습니다. 크리튼대학 시절에 세워 놓은 커리어 통산 리바운드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NCAA 기록이기도 하지요. 16년에 걸친 NBA 커리어 동안에 2회의 올스타게임 출전, 그리고 3회의 NBA 파이널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커리어 평균은 9.4점, 9.9리바운드입니다.

 

특히 각 우승팀에서 정말 ‘완소’ 역활을 하며 팀을 우승시켰지요. 1974년과 1976년의 보스턴 셀틱스 우승에 그가 기여한 공로는 스탯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특유의 터프함으로 팀원들에게 믿음을 주었고, 젊고 경험없는 빅맨들은 그의 플레이를 보면서 챔피언이 되려면 어떠한 자세와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지를 현장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1979년에는 떠오르는 신흥강호 시애틀 수퍼소닉스의 일원으로 소닉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초유의 우승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젊고 유망한 센터, 잭 시크마, 그리고 투포환 선수 출신의 싸움과 힘밖에 모르던 파워포워드, 로니 쉘튼을 진정한 터프가이 빅맨으로 조련해 주며, 본인은 식스맨으로서 팀에 공헌을 합니다. 1979년 파이널 경기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역대 50인에 이름을 올린 두 빅맨, 웨스 언셀드와 앨빈 헤이즈가 버티고 있던 워싱턴 불레츠를 소닉스가 4대1로 가뿐히 이겨 버리는데, 두 팀간의 가장 큰 차이는 보드 장악력이었습니다. 시크마, 쉘튼, 사일러스가 이끄는 골밑은 가공할 만 했고, 상대팀 빅맨들은 페인트존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못 한채, 미드레인지 점퍼만 날리는 양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 1970년 크리스마스날에 격돌한 피트 마라비치의 애틀란타와 사일러스의 피닉스 경기를 잠깐 봤는데, 사일러스 정말 대단했습니다. 스탯은 16점-19리바운드-2블락샷-5스틸 인데, 스탯에서 안 나타나는 강인함과 Intensity,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골밑 몸싸움이 상대선수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더군요. 그 이전에 어느 포워드도 감행하지 못 했던 노가다 스타일의 농구로 세 번의 우승반지를 획득한 사일러스. 그가 블루칼라-워커형 터프가이 원조입니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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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ce Lucas

 

1952년생. 신장 206cm. 원조격인 폴 사일러스의 스타일을 빼다 박은 듯한 명 파워포워드였습니다. 별명이 “The Enforcer”입니다. ‘상대에게 겁을 주고, 때에 따라서는 처리(?)까지 해 버리는 청부업자’란 뜻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별명이 왜 붙었는가? 때는 1974년, 루카스의 루키시즌으로 돌아갑니다. ABA의 세인트 루이스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루카스, 당시 ABA 최고의 센터인 아티스 길모어가 이끌던 켄터키 커널스와 경기를 갖게 됩니다. 길모어는 219cm에 몸무게 120kg의 거한이었습니다. 서로 골밑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길모어가 먼저 루카스를 세게 밀치며 달려 들었습니다. 백스탭을 밟던 루카스, 정확한 타이밍을 노리다가 길모어의 턱에 한방을 갈깁니다. 길모어는 무릎을 탁 꿇더니, 고목처럼 코트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혼절을 한 길모어는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한방이었습니다, 단 한방 (김두한이 따로 없죠). 그리고, 다음 시즌에 켄터키 커널스는 루카스를 영입해 옵니다. 더 이상 켄터키 팬들과 길모어는 루카스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되지요.

 

1977년에 ABA와 NBA가 병합되면서, 루카스는 빌 월튼의 포틀랜드에 새 둥지를 틀게 됩니다. 지금도 전문가들이 공인하는 역대최고의 정통 센터와 파워포워드의 조합이 생겨난 것이죠 (물론, 오클리/유잉 조합과 쏘프/올라주원 조합도 뛰어나긴 합니다만...). 이 두 빅맨의 골밑장악에 힘입어, 블레이저스는 압둘자바의 레이커스를 스윕하고, NBA 파이널에서 줄리어스 어빙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식서스와 만나게 됩니다. 모든 전문가들이 식서스의 완승을 예상할 정도로 식서스의 멤버는 화려했습니다. 4명의 선수가 올스타급이며 20점 이상을 득점해 줄 수 있었던 식서스는 어빙의 공중쇼에 힘입어 1차전을 쉽게 잡고, 2차전은 거의 농구쇼에 가까운 묘기들을 연출하며 대승으로 경기를 가져갔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식서스의 스윕 우승 분위기였습니다. 바로 이 때였습니다. 2차전 4쿼터 종료를 얼마 안 남긴 상황, 식서스의 백보드 부수는 괴물 센터 대럴 도킨스 (211cm 135kg)와 바비 그로스가 몸싸움이 붙었고, 19세의 혈기왕성한 도킨스가 펀치를 휘두릅니다. 도킨스가 백스텝을 밟는 순간, 뒤에서 달려들어 온 루카스가 도킨스의 대갈통(?)을 갈겨 버립니다. 자기 팀원이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거죠. 그리고, 코트 한 가운데서 이 두 거한이 복싱을 하는데..... 저는 이 경기를 볼 때, 중학생이었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한편으로는 심장이 끓어 오르던지... 감이 안오는 분들을 위해서 이렇게 설명을 해 드리죠. 샤킬 오닐이 누군가와 몸싸움이 붙었는데, 칼 말론이 달려 들어 오닐의 머리를 후드려 갈긴 후, 두 선수가 센터써클에서 주먹으로 치고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감이 오십니까? 결국, 2차전의 승리도 식서스에게 돌아 갔지만, 시리즈의 향방은 완전히 바뀌고 맙니다. 루카스의 이 패기 넘치는 태도 덕분에, 블레이저스 선수들은 분위기를 다잡고 강한 오기를 발동시킵니다. 이 정신력이 원동력이 되어서, 블레이저스는 역스윕을 하며, 프랜차이즈의 유일한 우승을 경험하게 되지요. 파이널 MVP는 빌 월튼이었지만, 시리즈의 향방을 180도 바꿔 놓은 것은 루카스의 펀치 한방이었습니다. 또한 루카스는 팀내 최고 득점원이기도 했습니다. 파이널 시리즈에서 평균 21점에 14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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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제가 직접 녹화해 놓은 영상입니다

5회의 올스타 게임 (76, 77, 78, 79, 83)에 출전하기도 했던 루카스의 커리어 평균은 16점, 9.5리바운드이지만, 스탯에 나타나는 것 이상으로 팀에 많은 공헌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이 선수의 터프함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빌 월튼은 자신의 아들에게 Lucas의 이름에서 따온 Luke란 이름을 지어 줬습니다. 이 레이커스의 룩 월튼이 가장 존경하는 레전드가 바로 모리스 루카스입니다. 엄청난 떡대와 힘을 자랑하며, 골밑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루카스. 자신의 팀원이 맞으면, 상대가 누구더라도 반드시 제압해 버리는 루카스. 그가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 계보의 2세 손입니다.

 

 

 

3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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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ck Williams

 

1960년생. 신장 203cm. 폴 사일러스와 모리스 루카스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나 할까요? 매릴랜드 대학 시절부터,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골밑 플레이를 거칠고도 효과적으로 잘 해낸 선수였습니다. 우리의 김진수 선수가 이 대학으로 장학생이 되어 입학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이 선배 선수의 위대함을 배우고 터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버크 윌리암스는 개인적으로는 저의 All-time favorite 다섯 손가락에 드는 선수이기도 합니다. 부상을 안 당하는 강골중의 강골이기도 하지요. 원래 이름은 찰스 윌리암스였지만, 강인한 숫사슴 (Buck)처럼 잘 뛰고 점프를 잘 한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 Buck인데, 아예 이름처럼 되어버린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80년대 중후반의 최고 리바운더는 "3 찰스"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 찰스 바클리, 찰스 오클리, 찰스 윌리암스.

 

윌리암스는 대학 시절에, 뛰어난 폐활량을 바탕으로, 학교 내의 모든 중장거리 육상기록을 갈아 치워 버렸습니다. 육상선수로 키워 보고자 타대학에서도 많은 유혹의 손길이 왔다고 하더군요. 이 부분이 앞선 두 레전드와 구별되는 부분입니다. 버크 윌리암스는 몸싸움과 리바운드에만 능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속공시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상대코트로 뛰어 들어갈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추고 있었고, 공격 리바운드를 잡더라도 곧바로 호쾌한 덩크를 찍어버릴 수 있는 탄력까지 갖추고 있던 선수입니다. 90년대 포틀랜드 시절에는 몸싸움만 열심히 해주는 선수로 스스로의 역활을 축소시켰지만, 80년대 뉴저지에서의 그의 플레이는 정말 멋있고 박력이 넘쳤었습니다.

 

1981년에 NBA에 입단하자마자 아이재야 토마스를 누르고 따낸 최우수 신인상이 그의 임팩트를 증명해 줍니다. 루키 시즌에 15.5점, 12.3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넷츠팀을 플레이옾에 진출시켰고, 이듬해에는 17점에 12,5리바운드, 1,8개의 블락샷을 기록하며 All-NBA팀에까지 선정됩니다. 3년차인 1984년 플레이옾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식서스를 1라운드에서 업셋하는데 있어 일등공신이 되지요. 시리즈 평균이 18점에 14리바운드였습니다. 그 후로도, 80년대에는 매시즌 꾸준히 17~18점에 12리바운드를 해주며, 올스타 게임에도 3회 (82, 83, 86) 선정 되지요. 버크 윌리암스는 커리어 통산 부문에서도, 많은 리바운드 (특히 공격 리바운드)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81년부터 88년까지 결장한 게임이 단 한경기였는데, 다쳐서 결장한 것이 아니라 1983-84 시즌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싸움꾼 로니 쉘튼 (폴 사일러스가 키운 선수)과의 일대일 난투극때문에 징계로 한경기 정지를 먹은 것이 이유였습니다. 13점에 10리바운드를 커리어 평균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의 진정한 가치는 큰 형님과도 같은 리더쉽에서도 발견이 됩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젊고 운동능력이 좋은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온 포틀랜드는 경험많은 골밑을 책임져 줄 수비형 리바운더가 간절했던 팀입니다. 그리고 1990년 시즌을 앞두고 버크 윌리암스가 합류를 하지요. 이 소식을 접한 드렉슬러가 너무 좋아서 날뛰다가 어디를 다쳤다고까지 합니다. 윌리암스는 이 젊고 잘 뛰는 팀을 당장에 컨텐더로 만들어 버렸고, 라커룸에서는 정신적인 지주 역활을 했으며, 코트 위에서는 칼 말론, 올라주원, 데이빗 로빈슨등과 맞짱을 뜨며, 블레이저스 팀이 어느 팀과 붙더라도 리바운드에서만큼은 항상 우세를 가져갈 수 있도록 팀을 이끌었습니다. 비록 두번의 파이널 진출 (90, 92)이 무위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의 팀내 영향력은 드렉슬러를 능가했지요. 80년대 초중반, 그의 전사와 같은 게임에 임하는 자세, 배짱, 용기는 오티스 쏘프, 찰스 오클리, 데일 데이비스와 같은 후배 선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4세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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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Oakley & Otis Thorpe

 

1963년생인 오클리와 1962년생인 오티스 쏘프는 선배들의 길을 잘 답습해서 실행에 옮긴 아주 모범적인(?) 후배들이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소속팀에 블루칼라-워커로서 큰 공헌을 했고, 1994년에는 파이널에서 서로 맞대결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거의 혈투 수준이었죠. 모리스 루카스는 찰스 오클리를 가리켜, 역사상 자기와 가장 닮은 선수라고 평을 했고, 폴 사일러스는 오티스 쏘프가 버크 윌리암스에 가장 흡사한 스타일의 농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루카스를 닮아서일까요? 오클리는 입단하는 해부터, 마이클 조던의 보디가드 역활을 자원했습니다. 첫 해부터 이런 인터뷰를 했지요. “어느 누구든지 조던에게 심한 파울을 하면 내가 죽여 버린다. 조던에게 파울하고 싶으면 나에게 죽을 각오하고 파울하기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두 선수 정도를 손 봐 줍니다. 위협스러운 오클리때문에 경기력에 지장이 온다고 상대방 선수들로부터 불평이 나올 정도로 말이죠. 1988년 디트로이트와의 정규시즌 게임 도중, 피스톤스의 싸움꾼 릭 마혼이 조던에게 약간 심한 파울을 했는데, 여지없이 마혼에게 달려 들더군요. 이런 선수가 팀에 있으면 참 마음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조던은 지금도 오클리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자주 골프도 치고 있습니다. 루카스와 몸매도 흡사하고 골밑에서의 움직임도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루카스는 공격력이 출중해서 마음만 먹으면 25~30점도 득점하는 선수였고, 오클리는 인사이드 수비가 좀 더 강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루카스는 자신의 팀원들에게는 참 따뜻한 선수였지만, 오클리는 팀원들에게도 터프했습니다. 불스 선수들 중에도 오클리에게 맞은 선수가 허다하고, 토론토 시절에도 빈스 카터와 많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말년에 스탯을 많이 까먹었지만 9.7점에 9.5리바운드라는 견고한 커리어 평균을 갖고 있습니다.

 

208cm의 오티스 쏘프는 버크 윌리암스의 계보를 잇는 운동능력이 좋은 파워포워드였습니다. 1992년에 올스타 게임에 출전하기도 했던 쏘프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캔사스 시티 킹스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워낙 윙스팬이 좋고 손이 커서, 다른 빅맨들이 못 하는 묘기에 가까운 레이업이나 덩크도 많이 선보였었고, 또 준족이어서 속공에도 항상 참여했었습니다. 1994년 휴스턴의 첫번째 우승팀 주전 포워드였고, 올라주원이 골밑에서 자유롭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많은 공간을 창출해 준 인사이더였죠. 1984년 1라운드 9번 픽으로 NBA에 들어 온 쏘프는 이후 17년을 뛰었습니다. 휴스턴 프랜차이즈 최고 야투율 기록자 (55.9%)이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버크 윌리암스, 숀 캠프, 칼 말론, 찰스 바클리 등, 뛰어난 파워포워드들이 즐비했던 서부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해 준 빅맨이었습니다. 커리어 평균은 14.0점, 8.2리바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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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철인” AC 그린, 시카고 첫 Three-Peat의 주역 호레이스 그랜트, 그리고 ‘코트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빼놓을 수가 없겠습니다. 세 선수 모두 8~90년대 '왕조'의 주역들이기도 하지요. 그린은 무경기 결장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선수지만, 스탯면에서 위에 열거된 선수들에게 밀리고, 벤치멤버로 뛴 시즌이 많았기 때문에 제외시켰습니다. 그랜트는 뛰어난 파워포워드지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1991~92 시즌부터였고, 위의 선수들에 비해선 파워포워드로서의 포스가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로드맨의 경우는, 원래 피스톤스 시절에는 파워포워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외시켰습니다. 1986년에 입단한 후, 로드맨은 1992년까지 줄곧 지금의 브루스 보웬과 같은 상대방 에이스스타퍼/스몰포워드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리바운드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몸도 불리고 파워포워드로 전향을 한 케이스였습니다. 그래도 굳이 로드맨을 집어 넣는다면 5세 손 “서출”이라고 해두고 싶군요. 

 

그리고 현역선수들 중에는, 우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라이언 그랜트가 떠오르는데, 모든 면에서 자질은 갖추었지만 위의 선수들과 비교되기엔 조금 밀리는 감이 있고, 바레장같은 선수가 가능성은 있는데, 가능성만 있을 지, 잠재력을 발휘해 줄 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약간 싹수가 노란 것이 벌써부터 돈욕심을 낸다는 것. 저 위에 열거된 선수들은 연봉 욕심을 낸 적이 없는 선수들이었습니다. 벤 월러스가 센터만 아니었다면, 이 계보의 5세 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텐데,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커리어 대부분을 단신 센터로 뛰어 온 선수라서 제외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빅벤도 오클리와 같은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 출신인데, 이 대학 농구팀은 농구는 안 가르치고 노가다 일만 시키나 봅니다.  안토니오 맥다이스도 요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지켜 보면서,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선수는 유도니스 하슬렘입니다.

 

일단은, 정통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의 계보는 오클리와 쏘프 (그리고 로드맨)에서 끊어졌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선수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계보에 올라있는 선수만큼 포스가 안 나오고, 팀내 비중도 그리 크지 못 합니다 (예를 들면, 말릭 로즈P J 브라운). 위에 열거된 선수들의 또 하나 공통점은, 팀이 우승을 하는데에 큰 기여를 했거나, 파이널 컨텐더가 아니었던 팀을 컨텐더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웨이드도 대단했지만, 2006 파이널에서 하슬렘의 노비츠키 수비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단순한 우연으로 봐 지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우승을 하길 원하는 팀은 이런 선수들을 키우거나 영입해 와야 하지는 않을런지요.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면서, 이타적이고 강하며 리바운드와 수비를 잘 해주고, 팀원들의 보디가드 역활도 해주는 성실하고 강인한 터프가이들이 등장해, 이 멋진 싸나이들의 계보를 계속 이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혼'을 실어 플레이하는 진짜 싸나이, Enforcer, 블루칼라 파워포워드 한 사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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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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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형준 』㉷㉸㉰ ♬☜ | 작성시간 07.10.26 흥미로운 소재로 글을 써주셧네요. 개인적으로는 닉스팬은 아니지만 아무이유없이 닉스에서 계보를 이어주는 선수가 나왔으면 하네요.
  • 답댓글 작성자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10.28 출장시간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현 닉스의 말릭 로즈가 '딱'인데 말입니다. 데이빗 리도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습니다. 지켜 봐야죠.
  • 작성자세이야 | 작성시간 07.10.26 정말 신기한게 저 싸우는 동영상 우르르가서 패싸움이 아니고 두 선수다 가드 올리고 상체 흔드는게 완전 복싱 동작이네요. 정말 대단하네요. 두선수다 .ㅋㅋㅋ
  • 작성자ShowStopper | 작성시간 07.10.27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번거로울 법한 질문도 매번 너무나 멋지게 답변 해주시고 항상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하늘향기 | 작성시간 07.12.13 루카스 쵝오~~!! 역시 "루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저거였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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