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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야, 마누야, 바보사야, 역대 최고 ‘식스맨’들이 누구였는지 아나?

작성자Doctor J| 작성시간07.11.19| 조회수5440| 댓글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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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1.19 쿠코치가 그나마 유럽시절의 경기력을 어느 정도 발휘했던 때가 2년차였던 1994~95 시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파워포워드로 뛰기는 했지만, 피픈과 함께 나름대로 공을 많이 소유할 수 있었고, 클럿치 상황에서는 주로 쿠코치가 자신의 패싱력이나 슈팅 능력으로 상황을 정리하곤 했었지요. 시즌이 마쳐지기 전 조던이 복귀했고, 다음 시즌에 로드맨도 영입되면서 막 피어나려 하다가 진 꽃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대신 우승반지 3개를 가질 수 있었죠. 그냥 그의 젊었을 때의 화려한 모습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던 한 팬의 푸념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하려 했는지 다 아실거라 생각했는데 이리 댓글들이 많아졌군요...?!?
  • 답댓글 작성자 허슬 플레이어 작성시간07.11.19 쿠코치가 시카고에서 스팟업 슈터 말고도 맡은 역할이 또 있지요. 큰 키 덕분인지 간혹 백업 파워포워드로 골밑에서 분투를...;;; 시카고 시절 역시 훌륭한 선수긴 했어도 자신의 재능을 NBA에서 100% 다 보여주진 못한 듯 합니다. 하긴 9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유럽 등 외국 선수들이 아주 맘놓고 플레이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으니까요. 쿠코치는 페트로비치, 슈렘프, 디바치 등과 함께 유럽 출신 선수들의 NBA 내 입지를 개척한 선두 주자 급이었으니... 만약 쿠코치가 자신이 좀 더 맘놓고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났다면 반지는 못얻었어도 굉장히 센세이션한 스탯을 찍어줬을 것 같네요. 소프트한 래리 버드라고나 할까... 아 그리고
  • 답댓글 작성자 허슬 플레이어 작성시간07.11.19 nycmania님께서 쿠코치의 수비에 대해 언급을 하셨는데 물론 천부적인 센스를 바탕으로 한 헬핑 디펜스는 좋았지만 정작 자신의 매치업 상대에게는 당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죠. 특히 가로 수비에 많은 헛점을 노출했고 의외로 몸빵 수비는 그럭저럭 해주곤 했었던... 천부적인 오펜스 센스에 비해 디펜스 센스는 별로였던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필 잭슨도 당시 크라우스 등 쿠코치를 대놓고 편애하던 팀 관계자들이 그를 왜 선발출장안시키냐고 따지자 "쿠코치는 수비가 안돼서 스타터로 못쓴다."고 일축해버릴 정도였죠. 물론 달변가 잭슨의 이른바 크라우스와의 대립 구도에서 나온 언론 플레이일수도 있지만 90년대 중반 NBA 현역 선수들을
  • 답댓글 작성자 허슬 플레이어 작성시간07.11.19 상대로 한 투표에서 '최악의 수비수'로 세드릭 세발로스와 함께 선두를 다투기도 했구요. 물론 유럽 출신 선수에 대한 일종의 편견도 어느 정도 작용한 걸로 보여집니다. 전혀 수비할 마인드도 없었던 세발로스에 비해 그래도 쿠코치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은 종종 보여줬으니...
  • 작성자 까망엘프 작성시간07.11.19 와우!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 BGRANT44 작성시간07.11.19 멋지네요. 정말 좋은 글입니다. 하블리첵에서 마누가 보입니다.
  • 작성자 느바포에버 작성시간07.11.19 제가 예상했던 분들이 꽤 있군요. 역시 Doctor J님의 글이 볼거리가 가장 풍성한 듯 하네요. 근데 제 생각에도 베르캄프님 말씀처럼 쿠코치가 단순한 스팟업 슈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피펜이 없을 때에는 경기 운영도 하고 다른 부분에서도 많은 기여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팟업 슈터라면 스티브 커가 아니었을런지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1.19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쿠코치 유럽시절 경기를 구해서 보시면 제가 말한 진의(眞意)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느바포에버 작성시간07.11.19 ㅎㅎㅎ 제가 과장법을 이해하지 못했군요 말씀을 들으니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욕구가 확 땡기네요^^
  • 작성자 Bulls.Forever 작성시간07.11.19 닥터 제이님 말씀도 이해가 되는게 유럽시절 쿠코치는 농구신이었죠...레이커스의 마이클 쿠퍼도 식스맨으로 자주 나와서 있을줄 알았는데 없네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1.19 마이클 쿠퍼... 위에 이름은 있는데 놓치셨나 봅니다.^^ 쿠퍼는 뭐랄까, 전형적인 식스맨으로서 팀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기 보다는 그냥 에이스 스타퍼의 역할이 더 부각되는 이미지였죠. 공격옵션은 속공피니쉬와 스팟업 3점슛밖에 없었으니까요. 뛰어났었지만 저 위에 있는 6인보다는 식스맨으로서의 포스가 좀 떨어졌습니다. 쿠퍼와 바비 존스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All-Time Defensive 팀에서 더 깊이 다루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Bulls.Forever 작성시간07.11.19 위에 있었네요..ㅎㅎ 쿠퍼 선수가 공격옵션은 부족했지만 수비말고도 리딩능력도 꽤나 출중했던걸로 기억되네요...매직존슨이 벤치에 들어가면 쿠퍼가 탑에서 공격을 지휘하던 모습도 가끔 보였던것 같고...무엇보다 어시스트 능력이 발군이었죠...출전시간 대비 어시스트 비율이 상당한 수준..아무튼 다음에 꼭 쿠퍼에 대해서도 글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작성자 모닝 작성시간07.11.19 쿠코치가 그정도로 대단한 선수인 지는 처음 알았네요. 불스에서의 모습만 해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는데, 그 모습을 저렇게나 평가절하 시키고 싶어하시다니...유럽에서의 쿠코치가 얼마나 대단했길래 그런지 궁금하네요 ㅎㅎ
  • 작성자 샤킬오닐™ 작성시간07.11.19 당시 유럽 최고의 선수 토니 쿠코치로만 알고 있던 제가 최강 불스의 최고의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던 식스맨 쿠코치로 살아가야 했던 그런 고충을 새삼 처음 알았습니다..그런데도 본인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며 큰 공헌을 했다는거에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작성자 캠프만세 작성시간07.11.19 유럽의 매직존슨...쿠코치..하지만 반대로 시카고에서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더욱 많은 영광을 얻을 수 있었죠. 이름도 더 날렸고. 약팀에서 에이스로 활약을 할수는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영광과 명성은 못날렸을듯..^^ 지노빌리도 마찬가지로 지금 다른 팀으로 가면 에이스로 활약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나 우승은 못하겠죠 ㅎㅎ
  • 작성자 레인맨 작성시간07.11.19 제가 봤을때도 쿠코치가 시카코에서 그리 큰 역활을 담당했다고는 생각하진 않습니다. 스팟업슈터..과장됐지만, 제가 본 파이널에서 쿠코치가 한역활은 딱그거 뿐이였습니다.
  • 작성자 허슬 플레이어 작성시간07.11.19 Doctor J님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존 하블리첵이 60년대 러셀, 샘 존스등과 함께 뛸때는 특급 식스맨이었다는 건 워낙 유명해서 알고있었는데요 70년대 데이브 코웬스, 조 조 화이트랑 함께 뛰면서도 여전히 벤치에서 출전했는지 다소 궁금합니다. 60년대에도 대단했지만 70년대 하블리첵은 그야말로 팀의 'The Man'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는데 (물론 데이브 코웬스도 있었지만...) 거의 르브론 급 스탯을 올리며 경기당 45분 가까이를 뛰던 70년대에도 벤치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맥헤일처럼 처음에만 식스맨이다가 중간에 스타터로 전환한 케이스인지 궁금합니다. 옛날 자료들을 보면 득점 등 주요 카테고리는 쉽게 알 수 있는데
  • 답댓글 작성자 허슬 플레이어 작성시간07.11.19 경기당 선발 출장같은 부분들은 80년대 이전의 경우엔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해서...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얘기가 나온 김에 질문드립니다. 그리고 하블리첵이 보스턴의 출장 경기 프랜차이즈 레코드를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선발 출장과 벤치 출장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 지도 좀 궁금하구요^^
  • 답댓글 작성자 Doctor J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1.19 하블리첵은 67-68 시즌과 68-69 시즌부터 이미 자주 선발로 출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빌 러셀이 감독겸 주장으로 뛰던 시즌들이었죠. 그리고 69년 우승을 끝으로 완전히 선발진에 들어왔습니다. 69년 우승 후에 빌 러셀은 은퇴를 했고요, 그래서 70년 시즌부터는 하블리첵이 팀을 이끄는 The Man이 됐지요. 70년대에는 센터인 데이브 코웬스가 함께 팀을 이끌어서 혼자서만 큰 짐을 지고 가야 하는 부담 같은 것은 덜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커리어의 앞부분 7시즌은 대부분 식스맨으로서, 그리고 나머지 9시즌은 완전히 선발로 뛰었습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45-55 정도인가요? ^^
  • 작성자 미선이 작성시간07.11.19 페리쉬-버드도 끔찍한대 거기다 맥헤일 이라니...정말 농구하기 싫었겠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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