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지금 어디에 - 2007년 드래프트

작성자One And Only|작성시간22.10.18|조회수10,709 목록 댓글 31

1. 그렉오든 

컴패리즌 : 빌 러셀~데이비드 로빈슨이었던 선수. NBADRAFT.NET 역사상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선수. 모두가 성공을 의심치않았지만 선천적으로 다른 다리길이 탓이었을까. 심각한 부상을 지속적으로 당하며 총 세시즌, 105경기만을 소화한채 NBA에서 사라졌다. 한시즌을 중국에서 뛴 것이 선수생활의 마지막, 22년 현재 버틀러 대학의 운영담당으로 합류했다. 

 
2. 케빈 듀란트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뽑은 마지막 신인. 오클라호마의 나이스가이. 골든스테이트에서 이중계정. 
커리어동안 이뤄낼 수상은 거의 다 이뤄냈고, 남은 것은 사치품이 아님을 증명하는 정도?

3. 알 호포드 

92년 케빈 윌리스 이후 애틀란타가 뽑아 올스타가 된 최초의 선수. 호크스의 전성기를 지탱했고 현재 보스턴에서 고참으로 
여전히 훌륭한 기량을 펼치고 있다. 르브론과 맞붙어 단 한차례도 시리즈 통과를 하지못한 아픔이있다. 미스 유니버스 출신의 아내와 슬하에 5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태어나보니 아빠도 미남 엄마는 유니버스

4. 마이크 콘리 

멤피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가드로, 서부의 두터운 가드벽에 가로막혀 올스타가 없는 선수중 가장 뛰어난 선수로 남을뻔 했으나 21년, 14년이라는 첫 올스타 사상 가장 긴 기다림 끝에 올스타에 한차례 등극했다. 

5. 제프 그린 
V

케빈 듀란트와 함께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뛰었던 마지막 선수이다. 픽 순위에서 보듯 운동능력과 기술등 꽤나 높은 기대를 받았으나 올스타 레벨에 이르지는 못했다. 현재 덴버에서 여전히 준주전급으로 활약중이다. 보스턴 시절 심장판막 수술을 받아 가슴 가운데 9인치에 달하는 흉터가 있다. 처음엔 엄청 싫었으나,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6. 이 지안리안 

가넷을 연상케하는 신체스펙으로 넥스트 야오밍을 기대했던 선수로 NBA TOP10영상에 그의 CBA 활약이 선정되기도 하였다. 
기대만큼은 아니어도 NBA에서 살아남을만 했지만,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를 택했고, 여전히 중국에선 뛰어난 기량을 펼치고있다.  공식적으론 87년생이지만, 84년생이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진실은 저 너머에.

 
7. 코리 브루어 

깡마른 체격이 인상적이었던 수비가 좋은 포워드. 스피드가 빨라 케빈러브의 아웃렛 패스를 받아내는 리시버 역할을 잘 해냈었다. 댈러스 우승멤버이기도한 그는 19-20시즌이 끝나고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의 선수개발담당으로 코칭스태프에 합류,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8. 브랜든 라이트 

가넷과 보쉬의 팬인 라이트는 골밑 득점 감각은 괜찮았지만 힘과 수비가 약점으로 이를 극복하지 못한채 백업 빅맨으로 2018년까지 총 10시즌을 NBA에서 뛰었다. 현재 TEAM BRANDON WRITE라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어린이들의 치과진료를 지원하는 행사에 일일 치과의사로 활동하기도. 여담으로 미국에서는 레진으로 떼우는 치료가 무보험시 100만원이 넘어간다. 

9. 조아킴 노아 

전직 테니스 스타이자 현 프랑스의 국민가수인 야닉 노아의 아들로 공격력은 신통찮았으나 뛰어난 수비력과 센스로 올스타2회, DPOY, MVP투표 4위등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지속적인 부상으로 기량을 유지한 기간이 짧았고, 시카고를 떠난 4년간 세팀을 떠돌다 은퇴하였다. 불스의 엠베서더로 임명되었고, 2018년부터 교제한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출신 라이스 리베이로와 22년 결혼했다. 
 

10. 스펜서 허즈 
 

좋은 사이즈, 뛰어난 BQ를 가졌던 백인 센터로 NBA에서 10시즌을 뛰었다. G리그에서 한시즌을 더 뛴뒤 빅3에서도 뛰었다. 시애틀 출신으로, 슈퍼소닉스의 복귀를 지지한다. 아마추어 쉐프, 급성장하는 아마골퍼, 예술에 많은 관심.....이라고 인스타에 자신을 소개하고있다. 현재는 그냥 아내와 재미지게 사는 듯하다. 

 
11. 에이시 로 

응애 나 애기커리 

전미 최고의 가드였던 로였지만 NBA에 그의 기량은 통용되지 않았고 4시즌간 갈아입은 유니폼만 5개. 이후 유럽으로 건너갔다. 13-14를 마지막으로 현역생활을 청산, 현재 대학농구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여담으로 어릴적 손을 다쳐 오른손 잡이이지만 장거리 슛은 왼손으로 쐈으며, MLB 명예의 전당 멤버인 '미스터 선샤인' 어니 뱅크스(1931~2015)의 증조카이기도 하다. 

12. 테디어스 영 

고교시절의 명성으론 드래프트 탑을 다툴 유망주였지만 대학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약간 미끄러졌다. 올스타레벨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어느팀에서나 제 역할을 해내는 선수로 현재는 토론토에서 시아캄과 반스의 뒤를 받쳐주고있다. 

13. 줄리안 라이트 

 포워드/빅맨으로 뛰어난 운동능력에 꽤나 볼을 다루는 재주를 보여 제 2의 보리스 디아우가 될 수 있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심각했던 슛은 나아지지않았고 4시즌만에 NBA생활을 마쳐야했다. 해외로 눈을 돌린 12년부터 현재까지 13개의 팀에서 뛰며 역마살이 있는 모양. 최근 BIG3리그와 계약했다. 

14. 알 쏜튼 

득점력은 괜찮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다. 4시즌 이후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19-20시즌 부산 KT에서도 뛰었으나 기복이 심해 중도 퇴출되었다. 현재는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뛰고있다. 

15. 로드니 스터키 

천시 빌럽스가 난자리를 채워주길 기대하며 디트로이트가 적극적으로 밀어줬던 선수이다. 돌파능력은 좋았지만 슈팅능력이 부족했고 다른 기량은 특출난부분이 없었다. 16-17까지 선수생활을 한 뒤 현재는 'SHOOT 360'이라는 현대식 트레이닝 센터의 커크랜드 지점을 운영하고있다. 

와 부럽당

16. 닉 영 

 


득점력과 슈팅하나는 괜찮았으나, 전반적으로 농구를 '막'했던 선수로 기억된다. 워싱턴시절엔 맥기와 함께 존 월의 저혈압치료를 담당했다. 리핏 이후 시대의 레이커에서의 모습을 많이 기억할 것이고, 17-18 우승팀 골든스테이트의 멤버로 우승 반지도 챙겼다. 덴버에서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하였다. 최근 틱톡스타와 복싱매치를 가졌고 노콘테스트로 끝이났다. 
 


 
17. 션 윌리엄스 

키드빨을 받으며 올루키팀에도 선정되며 좋은 출발을 했으나, 블락 능력을 제외하면 키드 없이 NBA에서 장기근속하기엔 무리였다. 거기에 마리화나등 코트밖 생활이 지저분했으니... 이후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1,12 두시즌 NBA에 복귀했으나 큰 변화는 없었고 다시 해외무대를 밟았다. 18-19 바레인에서 생활이후 전해지는 소식이 없다. 
 
18. 마르코 벨리넬리 

실베스터 스탤론을 약간 닮은 이탈리안 가드는 썩 괜찮은 BQ를 가진 슈터로 NBA에서 장수했다. 스퍼스에서 한차례 우승컵을 들었던 벨리넬리는 마지막 2년을 스퍼스에서 보낸후 이탈리아로 돌아가 지난시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 자바리스 크리헨튼 

고교시절 뛰어난 유망주였고, 대학에서도 덜 가다듬었지만 훌륭한 기량을 펼쳤다. 장신에 운동능력까지 좋아 꽤나 포텐셜이 높다고 여겨진 선수다. 하지만.... 레이커스와 계약한 직후 갱단의 멤버로 합류했다고한다. 그래도 기회를 줘 봤던 세 팀에서 네시즌이 끝난후 중국에서 한시즌, D리그에서 한시즌을 보낸후 선수로 활동하지 않았다. 2011년 갱단간의 다툼으로 총질을하다 22세 네아이의 엄마 줄리안 존스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되어 2015년 23년형을 받았다. 만기시 2038년. 쉰의 나이가 된다. 

피해자 줄리안 존스. 
눈깔을 확 

20. 제이슨 스미스 

힘이 부족하고 수비는 별로였지만 게임에 이해도가 높고 기술적으로 괜찮았던 빅맨. 18-19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현재 NBC스포츠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21. 데콴 쿡 

2009년 3점슛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코트위에서 성공률은 그리 신통치않았던 슈터(통산 .359%의 3점)로 12-13까지 NBA에서 뛴 후 2020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최근에는 강사로 일하고 있다.


22. 제러드 더들리 

전성기엔 뛰어난 수비수이며 좋은 외곽슛까지 있는 선수였지만,  라커룸 보컬리더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생활 말년 버블에서 우승도 경험했고 한시즌을 더 보낸후 은퇴하여 현재는 댈러스의 스태프로 합류했다. 

23. 윌슨 챈들러 

좋은 득점력을 가졌지만 유리몸이 아쉬웠던 선수. 19-20시즌 약물규정 위반으로 25경기 출장정지처분을 받았고, 버블에 참가하길 거부하고 중국리그와 계약을 맺었다고한다. 현재 뚜렷하게 하는 일은 없고, 프런트로 합류 or 선수로 복귀 루머가 돌고있다. 2015년 몸관리를 위해 채식을 시작했고(현재도인지는 불명) 2016년 엄청난 크기의 골리앗 그루퍼를 낚은 경력이 있다.  


24. 루디 페르난데즈 

스페인 황금세대의 일원. 덩크콘테스트에 참여할만큼(스페인의 첫 NBA리거, 페르난도 마틴을 추모하는 저지를 입었음)  상당한 운동능력과 기술을 갖췄던 선수다. 기복이 조금 심한것이 약점. 조금 더 NBA에서 도전을 할 수 있었겠지만 4시즌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쭉 선수생활을 하고있으며 2022년 유로컵에서 자신의 네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5. 모리스 알몬드 

51승을 거뒀던 유타의 가려운부분을 긁어줄수 있을것만 같았던 컴패리즌: 마이클 레드의 슈팅가드. 하지만 첫시즌 4.3분 두번째 시즌 10.2분 기회를 받지 못했다. D리그에서는 53득점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하기도했다. 유타에서 두 시즌 이후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11-12시즌 워싱턴의 부름을 받았으나 별다른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13년까지 짧게 선수생활을 한 뒤 트레이닝관련 일을 했던것 같은데, 홈페이지도 없어졌고 이외의 근황은 찾을수 없다. 


26. 애런 브룩스 

휴스턴에서 세번째 시즌, MIP, 19.6득점에 5.3개의 어시스트. 200개의 3점과 40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6인(달성시점기준)등 화려한 스타트를 끊었지만 그게 고점이었다. 휴스턴은 같은 단신이지만 리딩과 수비가 좋은 카일 라우리에게 손을 들어줬고, 브룩스는 다시는 그 생산성을 되찾지 못했다. 2019년 호주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면서 은퇴하였고, 2020년부터 뉴욕닉스에서 투웨이 계약 선수들을 코칭하는 업무를 맡고있다. 


27. 애런 아프랄로 

정확한 슛과 득점력으로 11시즌을 NBA에서 뛰었다. 

은퇴 이후에는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네소타를 구매하기위한 그룹을 형성했으나 라스베거스로 팀을 옮기려한 탓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그룹으로 미네소타는 팔렸다. 미국의 유명 래퍼 켄드릭 라마와 고교동문으로, 'Black Boy Fly'라는 노래에 애런 아프랄로의 이름이 나온다. 당시에 농구를 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아프랄로를 부러워했다고. 


28. 티아고 스플리터 


르브론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개근중인 스플리터. 13-14 우승 스퍼스의 주역으로 스크린, 패싱등 스퍼스의 시스템에 잘 적응하며 BQ는 괜찮은 선수였으나 그 이상으로 올라서기엔 나머지가 모자란 선수였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것은 유리몸. 81게임을 한번 소화한 나머지는 기본 20경기를 결장했다. 커리어 후반부엔 엉덩이 부상으로 신음했으며, 이로 은퇴했다. 현재는 브루클린 네츠의 선수개발 담당으로 코치진에 합류해있다. 


29. 알란도 터커 

뛰어난 운동능력과 탄탄한 신체를 갖추고있었지만 조력자로 코트에서는것에 어려움을 겪으며 4시즌 이후엔 D리그와 해외무대를 전전했다. 2017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후 모교 위스콘신대학에서 코칭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진 수석코치의 자리를 잘 메워줬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재계약하지 못했는데, 선수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감독을 몰아내려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본인은 이에 부인했다. 


30. 페트리 코포넨 

제리 웨스트가 점찍었던 핀란드의 농구천재. 2007년 나이키 캠프에서 데릭 로즈를 상대하여 7득점 6어시 1턴오버를 기록하기도. 여튼 농구 센스는 있으나 시간이 더 필요했던 프로젝트형 선수였던 코포넨은 몇번이고 서머리그에 참여하곤 했으나 NBA에서 뛰지않은채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바라보고있다. 22년 유로바스켓을 끝으로 16년의 핀란드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지었다. 

미남도 피하지 못한 탈모


31 칼 랜드리 

단신 빅맨이지만 컴바인 벤치프레스 21개가 증명하듯 힘이 좋았던 선수로. 팀에 필요한 허슬을 제공해줬다. 15-16시즌 필라델피아를 끝으로 9시즌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중국과 계약했다. 2019년 일본무대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쳤다. 현재는 농구캠프를 열고 있다. 마커스 랜드리의 형이다. 


 
34 닉 파제카스 

NBA에서 1시즌, 26경기만을 뛰었다. 몇년간 복귀시도를 계속했으나 포기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2012년 일본리그에서 뛰기시작, MVP를 2연패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이 활약에 힘입어 일본의 국적을 얻어 대표팀에서 뛰게되었다. 

한국은 어때?

35 글렌 데이비스 

야@# 이 @#! 게임을@#$! 니가 !@$%%$$ 
흑흑

 데뷔시즌부터 우승을 차지한 행운아. 9시즌을 보낸후 NBA와 계약하지 못했고 공백기간을 거쳐 2018년 캐나다에서, BIG3에서 한차례 뛰었다. 9살때 벌써 168cm에 73kg건장한 체격으로 '빅 베이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체격답게 힘이 좋은편이었는데, 보스턴 시절 팔씨름 대회에서 승승장구 했으나 케빈 가넷에게 졌다고한다. 가넷에게 베팅한 피어스만 돈을 벌었다고. 최근에는 코메디 투어를 다녔다. 

37 조쉬 맥로버츠 

괜찮은 점퍼와 패스기술을 가졌던 빅맨으로 괜찮은 백업으로 커리어를 보냈다. 마이애미에서 피로골절부상을 입으며 선수에서 은퇴했다. 현재는 모교 카멜고등학교의 보조코치로 일하고 있다. 

40 순 유에

장신에 운동능력이 좋았으나 팀과 융화될 생각이 없었던 선수로 딱 한시즌, NBA반지 하나는 챙겨 중국으로 돌아갔다. 21년 베이징 로얄 파이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NBA와 CBA 챔피언 반지를 가진 유이한 남자로(다른 한 명은 토론토 우승 멤버, 에릭 모어랜드) NBA반지를 프로포즈하는데 썼다고 한다. 

 
42 데릭 바이어스 

그러나 이 사진이.. 

수비가 좋다는 평가의 육각형 선수였으나, 그 육각형의 크기가 너무 작았고 운동능력이 좀 쳐졌다. 드랩 당시 
알럽에선 스틸이라는 평가가 많았었다. 한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방출되어 해외를 떠돌다 11-12시즌 스퍼스에서 
2경기, 10득점을 올리며 한을 풀었다. 마지막으로는 BIG3 무대에서 뛰었다. 

 
 
48 마크 가솔

로터리로 화려하게 데뷔한 형과는 달리 2라운드 후반에서야 뽑힐수 있었다.(만약 이 픽만 트레이드 되지않고 레이커스가 뽑았더라면?ㅎㅎ) 멤피스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많은 개인 수상을 이뤄냈고, 토론토 시절엔 NBA우승과 농구월드컵 금메달을 한해에 해냈다. 리그의 많은 센터들이 가장 어려워한 수비수로 꼽는데, 특히 엠비드는 가솔을 상대로 굴욕적인 경기를 많이 기록하기도. 현재는 스페인 리그에서 선수생활 말년을 보내는중. 

56 라몬 세션스 

신인시절 24어시를 기록하며 현재까지도 벅스의 어시스트 기록 보유자인 세션스는 9개팀을 떠돌며 괜찮은 백업가드로 커리어를 보냈다. 레이커스 시절엔 데릭피셔에 길들여져있던 팬들에게 슈퍼플레이같은 평범한 속공을 보이기도 했다. 17-18 워싱턴을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마쳤고 현재는 에이전시로 제 2의 삶을 시작했다. 

59 DJ 스트로베리 

MBL의 강타자 데럴 스트로베리의 아들. 피닉스에서 내쉬의 백업으로 자리잡아주길 기대했으나 한시즌만에 NBA에서 사라졌다. 이후 해외에서 뛰며 한때 KBL의 단신용병 후보로도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는 이집트리그에서 뛰고있다. 카메룬의 국적도 가지고있는 이중국적으로 카메룬 대표팀에서 뛰기도 했다. 

 
언드래프티 
 
미르자 텔레토비치 

보스니아 전쟁을 유년기 겪으며 자라난 텔레토비치는 2012년이 되어서야 브루클린의 부름을 받아 NBA에 입성할 수 있었다. 피닉스시절 벤치출전 3점 기록을 가지기도 했었던 그는 좋은 대우를 받으며 밀워키와 계약했으나 무릎부상에 이어 폐색전증까지 발견되며 선수 은퇴를 결정지었다. 은퇴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농구연맹의 회장을 22년 6월까지 수행했다. 

조엘 앤서니 

블락능력은 그럭저럭이었지만 별다른 기량은 없었던 단신 센터로. 마이애미에서 두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16-17 샌안토니오가 마지막 NBA경력이고, 이후 해외에서 20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현재 캐나다 프로리그팀, 몬트리올 얼라이언스의 GM이다. 

아이반 존슨 

한국에서 실력은 확실했으나 사고란 사고는 다치며 영구제명되었다. 이후 2011년 NBA에 입성하여 애틀란타에서 두시즌간 블루워커로 그리 나쁘지않은 기량을 선보였으나 트러블메이커 기질이 문제였을까. 이후로 해외에서 생활을 했다. 2016년 필리핀에서도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으나 한 시즌 징계로 감형되었다. 2017년 필리핀과 계약을 마지막으로 텍사스에서 살고있다는 소식만 들린다. 

 
개리 닐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닐은 터키와 이탈리아에서 득점왕을 차지했고 스페인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이 활약을 알아본 스퍼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NBA경력동안 괜찮은 득점력을 선보였지만 유리몸기질이 있었고 결국 15-16워싱턴에서 부상을 입은후 한시즌만에 NBA생활을 마쳤다. 18-19까지 선수생활을 했고  현재 Calvert Hall 고교의 사회과목 교사이자 농구부 코치이다. 

 
코트니 심스 

2년간 세개의 팀, 5경기에 출장에 그쳤던 심스는 KBL에서도 몇년 뛰었고, 2018년 일본을 끝으로 은퇴했다. 현재는 TEAM SIMS라는 농구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앤서니 톨리버 

대학이후 갈아입은 유니폼만 총 17개(D리그 포함). 19-20시즌엔 총 세팀에서 뛰었다. 특출난 무언가는 없었지만 괜찮은 슛과 허슬을 보여주던 선수였다. 20년 BLACK LIVES MATTER 시기즈음하여 교황과 만나 사회문제를 얘기한 NBA선수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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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윤희곤 | 작성시간 22.10.23 이름도 얼굴도
    기억 남는 선수들이 많네요
    소중한 게시물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 작성자사량부 | 작성시간 22.10.26 오든..ㅠㅠ
  • 작성자팜쟁 | 작성시간 22.10.26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작성자sheed | 작성시간 22.10.27 디트팬이라면 애증의 스터키,,,, 아프랄로도 생각보다 커리어를 잘 이어나가서 놀랐습니다.
  • 작성자고스펄스고 | 작성시간 23.07.22 오든은 개인적으로 이번 웸반야마보다 훨씬 더 기대주였는데 너무 아쉬워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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