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조환희,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하루 (SK vs 건국대 연습경기 후기)

작성자맹꽁이|작성시간23.08.30|조회수6,985 목록 댓글 4

건국 체육관 위 낯선 현수막. 내용은 이러했다.

 

‘서울 SK 나이츠 프로농구단 전희철 감독님과 선수들의 건국대학교 방문을 환영합니다’

 

수차례 직관한 연습경기, 오늘도 내일도 전국 어디서든 프로와 대학팀의 경기는 일상처럼 펼쳐진다. 그럼에도 필자도 이러한 광경은 처음이어서 카메라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팀 창단했을 때 체육관이 없어서 고려대를 방문했다. 그 이후, 대학 체육관에서 연습경기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비시즌, SK는 양지에서 5번 경기를 가졌을 뿐, 위수 구역이 설정이라도 되어있는지 그 외의 구역으로는 발을 내밀지 않았다.

 

심지어 파란을 일으키며 준우승을 차지했던 건국대 홈구장에선 프로와의 연습경기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

 

이 때문이었는지, 팁 오프 전부터 체육관 입구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체육관을 관리하는 분께서는 이른 시간부터 경기장을 지키고 계셨다.

 

“농구 보러 왔어요? 아직 시간이 꽤 남았는데, 저기 관중석 가서 기다려요”

 

딱 보기에도 굉장히 연배가 있으셨던 그 선생님. 너무나 친절한 선생님의 호의에 필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정도로 건국대가 SK와의 연습경기를 학수고대했다는 증거 아닐까.

 

남대 1부에 소속된 팀은 12팀. 누군가는 모교를 응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연고지에 가까운 팀에 빠져들기도 하고, 또 개중에는 12팀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건국대는 1부 중에서도 연고대와 더불어 인기 부문 탑 랭크에 위치한 팀. 선수들 모두 외모가 잘 생겨서 그런지 일약 스타덤에 오른 선수도 적지 않다. 당연히 농구도 잘하고 말이다. 부산 KCC를 보는 모습이랄까.

 

SK 선수단 무리에는 지난 24일부터 경기에 나선 후안 고메즈도 있었다.

 

사실 이날 필자가 충주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아바리엔토스보다 뛰어난 운동 능력, 벨란겔보다는 준수한 슈팅 능력. 필리핀 1번의 미래. 그는 아마 김선형의 백업으로 좋을 것이에요. SK 전력도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현지에서 한국 농구를 즐겨보는 필리핀 팬들의 의견은 이러했다. 자연스레 기대치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 노릇.

 

3점슛 성공률이 안 높다고 들었지만, 지켜본 그의 슈팅은 밸런스와 릴리즈 모두 괜찮아 보였다. 더불어 꽤나 준수한 적중률까지 남겼다. 다만, 실전에 들어가 고메즈는 단 하나의 3점슛도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나 건국대의 빠른 스피드와 거친 압박 수비에 고전했는데, 역시 한국 농구 적응에 시간이 필요로 해 보인다. 당연한 절차다!

 

이날 SK는 1쿼터를 제외하면 단 한차례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스타팅 라인업으로 내세웠던 선상혁과 김형빈 더블 포스트. 왜 요즘 농구 트렌드가 빅맨들도 슛 비거리를 늘려야 하고 외곽슛을 장착해야 하는지 절실히 느끼게 해줬다.

 

최승빈이 슈터 같은 움직임으로 3점슛을 무자비하게 꽂는 반면, 선상혁과 김형빈은 미드-레인지 점퍼에서 에어볼을 투척했다. 승부처에 가서는 프레디가 이를 인지했던 것인지는 수비를 깊게 나가지 않은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환희의 퍼포먼스가 500명 관중의 눈을 사로잡았으리라 장담한다. KBL에서 내로라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 오재현과의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 쇼다운은 백미였다.

 

서로 매치업에서 공격을 성공하면 이에 질세라 곧바로 맞받아치는 득점 사냥에 나선 두 선수. 너 한번, 나 한번.

 

이날 조환희의 모습은 혼자서 나아가는 무소의 뿔과 같았다. 밸런스가 무너져도, 수비에 둘려싸여도 집중력을 유지하며 계속 득점포를 뿜어댔다. 건국 체육관은 투우 경기가 벌어지는 아레나로 변한지 오래였다.

 

3쿼터 중반, 조환희는 오재현에게 스틸 당하고 원맨 속공을 당했다. 이에 기분이 상했는지 공을 받자마자 엑셀 기어를 올리고 질주한 조환희. 당시 건국대의 평균 공격 소모 시간은 6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오재현과 김수환의 맹추에 건국대는 종료 1분 전, 84-80까지 쫓겼다.

 

하지만 얼리 엔트리 김도연과 최승빈이 영웅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듯 연속 3점슛을 꽂았다.

 

그렇게 충주에서 열린 프로와 첫 연습경기는 결국 집안 축제로 끝났다.

 

누군가에겐 일상처럼 지나가는 하루.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그런 날이자 기다려왔던 날.

 

매번 치르는 똑같은 경기 중 하나였지만, 건국대에게 이날은 선수들뿐만 아니라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가슴 한 켠 저 멀리에 있는 뜨거운 불을 지펴낸 나날 중 하나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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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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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데보라 | 작성시간 23.08.30 너무 생생하게 써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짜자장 | 작성시간 23.08.31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cu@heaven | 작성시간 23.08.31 리얼합니다!
  • 작성자이사장 | 작성시간 23.08.31 오오! 최승빈 성장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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