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한 사람이 관계에서 겪게 되는 일

작성자무명자|작성시간26.02.23|조회수1,138 목록 댓글 3

 

 

 

 

 

 

 

 

 

 

 

우리는 흔히 

"우유부단한 성격"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곤 하는데,

사실 우유부단함은 성격이 아니라,

 

특정 성격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일종의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유부단의 한자어 조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優 (넉넉할 우)
柔 (부드러울 유)
不 (아닐 부)
斷 (끊을 단)

 

이걸, 부드럽고 너그러우나(but) 결단력이 없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관계 심리의 영역에서는 완전 다른 풀이가 됩니다. 어떻게?

 

부드럽고 너그럽기 때문에(so) 끊어내질 못한다.

 

 

 

 

 

 

 

LOSE-LOSE GAME

 

 

 

 

 

 

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착한 사람들이 관계에서 "가해자"가 되는 경우이다.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가해자가 된다는 것일까? 물론, 단순하고 일방적인 가해자는 아니다. 매우 특수하게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의 역할까지 겸하게 되는 양가적인(ambivalent) 포지션인 것이다.

 

 

 

 

 

 

우유부단한 태도는

통상적으로, 우호성이 높은 성격 특성으로부터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호성이 높은 성격이라 함은,

관계의 상대방을 중시한다는 뜻이며,

그만큼 타인지향적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이걸 단순하게 해석해 보자면,

'아..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인간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어요.

 

가령, 추운 겨울날 우리집에 손님이 찾아왔다고 상상해 봅시다.

 

땔감은 총 열 개인데,

손님이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손님 방에 땔감 아홉 개를 넣는다면,

주인인 나는 정작 땔감 한 개로 추운 밤을 버텨야겠죠.

 

관계의 상대방을 중시한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를 시할 수 있다는 것이고,

타인지향적이라는 건,

그만큼 자기지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해요.

 

즉, 높은 우호성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자기 자신에게는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절을 잘못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남들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성격적으로 높은 우호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착한 사람들은 관계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중시하고 타인지향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자신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는 포지션을 잡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향할 때가 바로,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경우이다.

 

 

 

 

 

 

당단부단 반수기란 (當斷不斷 反受其亂)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하면, 도리어 난리를 당하게 된다."

 

 

센터에서 관계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착한(우호성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관계에서 배신당하고 착취당하고 이용당했던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결국 인간 혐오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애당초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부터 돌봤기 때문입니다.

그 남들 중 일부가 배은망덕한 태도로 나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에,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상처는 상처대로 남는 매우 비효율적인 관계의 희생자가 되는 거죠.

 

하지만, 가장 최악은,

내가 일방적인 희생자의 포지션이 아니라,

의도와는 달리 결국 가해자의 포지션까지 겸하게 될 때인데,

 

이러한 상황은 보통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질질 끌려다니다가 

결국 서로를 증오하게 될 때까지 이르게 되어 비정상적인 관계에 고착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별로 생각이 없는데, 상대방의 푸쉬에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게 동성(친구)이든 이성(연인)이든, 그 사람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최대한 맞춰 주며 관계를 유지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관계를 계속 유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는 일들이 생기게 될 수 있다. 그러한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착한 사람 쪽도 명명백백히 이 비정상적인 관계의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처 주기 싫어서, 최대한 좋게 좋게 지내려고 한 게 원래 의도였겠지만, 마음에도 없는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게 결국 악수가 되어 관계는 곪아 터지게 되고, 둘 모두 종국에는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게 된다.

 

 

 

 

 

 

"때로는 단기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 장기적 고통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특히 연애와 결혼 장면에서 굉장히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나는 이미 마음이 떴지만,

상대방이 나를 극렬하게 붙잡고 놓지 못한다면,

우호성이 높은 사람들은 당장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결정(이별)을 하지 못하고

우유부단(優遊不斷)하게 관계를 질질 끄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마지 못해 관계를 이어가며 기본적으로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 못마땅한 감정이 한번씩 표출되며 상대방의 마음에 생채기를 입히는 거죠.

결국,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이 불편해 관계를 연명하지만,

나 또한 상대방에게 조금씩 상처를 주며 비정상적인 관계의 한 축이 되어가는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관계에서는 단호하고 냉정한 판단이 오히려 미덕일 때가 있습니다.

 

비록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관계가 나로 인해 불편해지더라도,

내 마음에 솔직해짐으로써 언제든지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과단성.

 

인생은 짧고 유한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데,

상처 주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무의미한 선택일 지도 모릅니다.

 

  

 

 

 

 

남에게 친절한 사람은 나에게 불친절한 사람일 수 있다. 나를 희생하는 친절은 어차피 오래가지 못한다. 그 어떠한 인간도 자신을 소모하면서 끝까지 남에게 친절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관계에서 나를 희생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감정이 아닌 기준을 앞세워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야 한다. 원치 않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선택은,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인 동시에 그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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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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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NO.1ACE | 작성시간 26.02.23 새벽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
  • 작성자고양이목에쥐달기 | 작성시간 26.02.23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잘 통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진작에 끊어낼 걸 하는 경우도 있고.. 참 어렵네요. 이래서 우유부단하다고 하나봅니다.
  • 작성자물개34 | 작성시간 26.02.23 이 내용을 최근 직접 크게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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