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장 크게 좌절을 겪을 때는 언제일까?
절망적인 일들만 연이어서 일어날 때?
아닙니다.
인간에게 최악의 좌절은 바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나에게 가장 나쁜 것으로 돌변하는 순간,
내 멘탈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며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되죠.
나에게 일말의 안식처도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 느껴지는 극도의 무력감
이 상황을 내향인에게 대입해 본다면 어떨까? 가령,
집이 더이상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고통의 공간이라면???
공간의 감정
한 지인이 출산 후에 산후우울증 비슷한 것을 겪으면서,
저에게 고통스러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는, 집에만 있으니 미쳐버릴 것 같다는 거였죠.
저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너 집덧이야."
응? 입덧도 아니고 집덧이 뭐야???
그녀는 임신 기간부터 출산 이후까지 상당한 스트레스들에 시달려 왔었는데,
문제는, 그 스트레스들에 노출돼 있던 장소가 항상 다름아닌 그녀의 "집"이었던 거죠. 즉,
임신 이후의 어느 순간부터,
막대한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가 발현된 환경인 집이
그녀의 머리 속에서 연합되기 시작한 겁니다.
나의 집 = 스트레스로 가득찬 공간
예전에 힘든 시간을 보냈던 장소에 다시 가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는다든지,
반대로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에 가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던지 하는 경험이 다들 있을 겁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에서 해마(Hippocampus)는 기억과 공간 정보를 함께 저장합니다.
편도체(Amygdala)는 그 기억에 감정의 색깔을 입히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어떤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나 긴장을 경험하면
그 공간 자체가 "긴장을 유발하는 신호"로 학습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맥락적 조건화(contextual conditioning)라고 불러요.
즉, 집에서 계속 갈등을 겪고 긴장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자동으로 긴장을 유발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향인에게 집은 원래 에너지를 회복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공간이 긴장과 스트레스의 장소로 학습되면
회복해야 할 장소에서 오히려 에너지가 계속 소모되는 상황이 만들어져요.
이런 상황은 보통 동거인들(주로 가족)과의 불화가 만들어 내는데,
집이 오히려 고통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내향인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희망의 공간 → 좌절의 공간
이때 필요한 것은 의외로 단순한 변화일 수 있습니다.
공간을 바꾸는 것.
집이 회복 공간이 아니라면
잠시라도 다른 공간을 회복의 장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카페
도서관
공원
산책로
이런 공간들은 비록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집과 연합된 긴장 기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흥미롭게도 새로운 장소를 새로운 감정의 컨테이너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특정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특정 산책길을 걷는 순간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합니다.
어쩌면 내향인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집이 아니라
내 감정이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심리적 안식처 몇 곳일지도 몰라요.
내향인에게 집은 "치유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게 안된다면,
집 말고 다른 공간을 내 마음의 안식처로 삼아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떡해서든 독립해서 나만의 스위트홈을 만드는 거겠죠.
공간과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내향인들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도
나만의 공간을 긍정적 감정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공간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면 베스트요,
안타깝게도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했다면,
혼자 사는 즐거움이 내 공간의 오아시스화를 한층 더 앞당길 수 있겠죠?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