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적 효율성을 따지자면,
모든 행보가 이익 > 손해의 공식을 따를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절대 손해 보지 않는 사람
자본의 논리에만 입각하여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좀처럼 지지 않으니, 매우 우수한 경제적 역량을 지녔다고 해야 하겠죠.
하지만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가
"마음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집니다.
손해 민감성 = 위협 민감성
위협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은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매우 낮다는 점입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낮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볼 땐 별일 아니어도, 내가 볼 땐 문제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야, 잠재적 위협거리들까지 전부 다 커버할 수 있게 되잖아요.
※ 하루에 100번 위협을 느끼는 원시인과 하루에 10번 위협을 느끼는 원시인의 생존율은 어떨까?
당연히 전자의 생존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사소한 자극들도 전부 다 캐치하니, 놓치는 위협 자극의 수가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정신건강의 카테고리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전자와 후자, 어떤 원시인의 스트레스 수준이 더 높을까?
압도적으로 전자일 것이다.
매순간 긴장하고 의심하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의 공식이 존재합니다.
바로, 손해 = 위협 이라는 공식이죠.
인류에게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본능이 있어요.
이득보다 손해에 포커싱함으로써,
잘 사는 것보다는 잘 생존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
일단 살고 보자(생존율 ↑)라는 미션이 우리들 인류의 메인 테마였던 셈이죠.
그런데, 세상을 손해 프레임으로 보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이 손실 회피 본능이 훨씬 더 자주 발동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야 할 손해가 10이라면,
이들에게는 피해가야 할 손해가 100이 넘는달까?
문제는 그게 진짜 손해일지 아닐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겁니다.
즉, 잠재적 손해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처하는가가
결국 우리들 인간의 성과 및 스트레스 수준을 조절하게 돼요.
일일이 따져보는 삶은 성과를 보장한다.
하지만 당신의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간단한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수십분간의 최저가 검색을 통해 철저히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고,
대충 이 정도 가격이면 OK라는 생각에 신속히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어떤 선택이든지 최고의 성과를 올리려는 전자의 부류를 극대화자(Maximizer),
적정한 수준에서 충분히 만족하려는 후자의 부류를 만족자(Satisficer)라고 불러요.
저명한 심리학자 베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종적 연구에 따르면,
극대화자들의 경우,
만족자들보다 20% 더 높은 평균 연봉 과 함께
(성과 ↑)
7배 가량 더 많은 우울 증세 를
(정신건강 ↓)
보고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절대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외적으로는 더 나은 성과를 보장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더 높은 압박에 시달리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손해에 민감한 사람들의 삶이 팍팍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