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버-테이커 구도에서,
※ 기버 : 항상 주려는(타인중심적인) 사람, 테이커 : 항상 받으려는(자기중심적인) 사람
예스맨 부하 직원(기버)을 항상 부려먹으려는 직장 상사(테이커)를 생각해 보면 된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뭐냐면,
테이커들이 의도적으로 기버를 끌어들이고 착취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 테이커들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가령 나르시시스트 같은 이들이 그렇죠.
하지만, 테이커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기버-테이커 구도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어요.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착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숨겨진 강박 때문입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삶
우리가 흔히 착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때,
착하다라는 형용사가 꾸며주는 대상은 그 심성이 아니라 행동일 때가 많습니다.
타인의 속내는 알기 힘들죠.
하지만 타인의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기에 파악하기 쉽잖아요.
즉, 우리는 보통 이타적인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고 착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작 그 내심은 딱히 남들을 도울 마음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결국엔 하죠.
왜냐?
나에 대한 타인의 기대를 알게 되었을 때,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심한 내적 불편감을 겪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기대를 외면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스트레스를 느끼니,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남들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하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명시적인 부탁이 없더라도,
우호성이 높은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높기 때문에
타인의 기대를 스스로 캐치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경우인데,
우호성이 높은 아이들은
부모가 별다른 말을 안하더라도
눈치껏 부모가 바라는 방향을 캐치해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부모가 기뻐하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아이에게 긍정적 강화 작용을 함으로써,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동이 습관화되는 것이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내면의 강박
이러한 특징을 교묘하게 이용해 기버들을 탈탈 털어먹는 적극적인 테이커들도 있고,
힘드네 죽겠네 하며 징징대면서 기버들의 자발적인 도움 행위를 유발하는 소극적 테이커들도 있어요.
※ 나르시시스트라고 해서 항상 과격하고 잔인한 포식자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현형 나르시시스트(Covert Narcissist)들은
자신들의 취약함과 상처를 어필하며 타인의 동정심과 죄책감을 이용하려 한다.
이러한 낚시에 가장 잘 걸려드는 사람들이 바로 기버이다.
착한 사람들의 정신적 피로감은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를 관리하려 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누군가 실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누군가 서운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누군가 자신을 나쁘게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이런 가능성들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돼요.
마치 보이지 않는 고객 만족도를 관리하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배려는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기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건강한 태도는 아니겠죠.
하지만 타인의 기대와 나의 책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를 품는 것은 그 사람의 영역이지,
그 기대를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모든 기대에 응답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점점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는 도와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에는 타인의 실망감과 나의 불편감을 감수할 줄도 아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착함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건강한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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