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가 친구들을 만나 소주 한잔 할 때면,
대화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집안이 변변치 않아 지원도 없는데다가
부모님은 언제나 형만 챙겼고,
자신은 늘 뒷전이었다는 이야기
철수는 벌써 직장을 네번이나 옮겼다.
신기한 건,
회사를 옮길 때마다 불평의 대상만 바뀔 뿐,
결론은 늘 같다는 것이다.
"왜 항상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상한 사람들만 가득하지?"
"업무량만 봐도 매번 나만 손해보는 것 같아."
연애도 마찬가지
항상 자기가 어떻게 당했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얼마나 해 준 게 없는지 불평만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하는 패턴이 매번 반복된다.
철수는 오늘도 술을 얻어먹으며 말한다.
"이 세상에 나처럼 불쌍하고 운 없는 인간도 없을 거야.
난 맨날 당하고만 살아.
세상은 왜 나한테만 이렇게 불공평한 걸까?"
정체성의 독(毒)
자기연민에 빠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정신은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항상 손해만 보는 피해자"
라고 규정짓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피해를 입었다라는 "경험"에서 시작되지만,
자기연민이 일상화되면서
피해는 더이상 사건사고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정체성이 돼요.
이러한 피해의식은 표정에도 깃들어 늘 어두운 안색을 띄게 되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안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습성이 있죠.
무엇보다도,
이들은 세상이 불공평하며 자신은 항상 당하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하기에,
나같은 피해자를 당연히 사람들이 돕고 배려해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난 억울한 피해자이니까, 당연히 세상 사람들이 날 도와야 해.'
결국, 피해자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향한 삐뚫어진 보상 심리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자기 가치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피해자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이해 안될 수 있어요.
저렇게 살아간다고 뭐가 좋을까?
도대체 왜 스스로를 비하하며 살아가는 거야?
하지만 인간에겐 자신이 믿고 있는 나를 계속 입증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를 자기확증(Self-verification)이라고 하는데,
이 본능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심지어는 자신이 믿고 있는 내가 부정적인 나라고 할지라도,
이런 나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입증받고 싶어하죠.
※ 내 정체성(내가 믿는 것)이 유지되는 세상은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세상은 우리 뇌에게 안정감을 선사한다.
따라서, 우리 뇌는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그 정체성을 입증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행동적 확증(Behavioral Confirmation)이라 부르는데,
예를 들어,
'나는 항상 피해를 보는 사람이야.'
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사소한 행동도 부정적으로 해석하며,
끊임없이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대화를 피하거나 거리를 두기 시작하겠죠.
'그래, 이것 봐.'
'역시 내 주변 사람들은 항상 이상해.'
'세상은 왜 이렇게 나를 억까하는 걸까?'
처음에는 단순한 믿음이었지만,
그 믿음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다시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피해자라는 자기개념은 점점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연민이 인생을 망가뜨리는 이유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행한 나를 점점 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죠.
피해자인 나, 불행을 몰고 다니는 나를
죽을 때까지 확증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란 과연 어떤 걸까요?
이러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나에게 일어난 일과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혼동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삶은 누구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누구나에게 잔인할 수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겪는 일들일 뿐,
시간이 지나면, 좋은 일도 생기고, 활짝 웃게 될 날들도 오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규정짓는 게 아니라,
그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의되어진다.
인간의 뇌는 행복한 나보다 익숙한 나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평생 가장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빌바오 작성시간 26.06.26 돌아보게 되네요. 요즘 익숙해진거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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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페니쫑 작성시간 26.06.26 너무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공감하며 이해하게 되네요 -
작성자맙소사ㅋㅋ 작성시간 26.06.26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어린시절의 아픔이 있는 이들이 자기연민이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사람들은 극복도 쉽지 않은 것 같네요. 옆에선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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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이제는~!! 작성시간 26.06.26 저도 궁금하네요. 도와주고 싶은데 결국 과거 상처로 회귀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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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양이목에쥐달기 작성시간 26.06.26 맞아요 자기 스스로 불쌍히 여기기 시작하면 그 상태가 굳어버리기 쉬운 것 같아요. 그런 상태로 빠지려 할 때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 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